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에 한전KPS의 불법파견이 부각되고 알려졌지만, 서부발전과 한전KPS가 만든 다단계 하청구조 안에서 벌어지던 불법파견은 발전소가 건설된 시점부터 시작된 아주 오래된 구조적 폐해였습니다. 저와 같은 2차 하청노동자 중엔 발전소가 건설되고 2003년부터 일을 해왔던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은 발전소의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 매년 회사가 바뀌었습니다. ‘쪼개기 계약’이라고 합니다. 서부발전과 한전KPS에서 다단계 하청구조를 만들고 쪼개기 계약과 불법파견을 하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발전소를 정비하는 데 비정규직을 쓰면 정규직 대비 인건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규직 대비 절반 수준의 인건비로 같은 작업을 시킬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임금 차액은 1차로 원청이, 2차로 하청이 가져가는 이중 착취 구조로 이어집니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3D 업무를 비정규직에게 떠넘길 수 있다는 점도 원청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구조’로 여겨집니다.
둘째, 이런 착복구조를 만든 배경에는 이윤 창출의 이유도 있지만 카르텔과 관련한 배경도 있습니다. 한전KPS의 하청업체 사장 또는 경영진 대부분은 한전KPS에서 고위직을 맡았던 퇴직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한전KPS 퇴직자들이 퇴직 후 협력업체를 운영하며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갈취해 회사와 경영진의 배를 불리고 있던 것입니다.
셋째, 파견법 제6조 2항의 고용의무를 회피하기 위함입니다. 파견근로자가 2년을 초과해 일할 경우, 사용사업주는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가 생깁니다. 이를 피하고자 원·하청은 1년 단위의 ‘쪼개기 계약’을 반복하며 같은 사람이 2년을 채우지 못하도록 인위적인 고용 구조를 만들어 왔습니다.
넷째, 쉬운 해고를 위해서입니다. 태안화력발전소의 경우 올해 12월부터 발전소 폐쇄가 시작됩니다. 발전소 폐쇄나 경영상 이유 등 불가항력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원청은 직접 고용한 노동자를 해고하는 대신 하청업체와의 계약만 해지하면 됩니다. 그 결과, 하청노동자들은 아무런 보호 없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한전KPS는 노동조합 조직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불법파견과 계약구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전KPS는 전국 각 발전소에서 정비 업무를 수행하며, 발전소마다 평균 10명 정도의 하청노동자를 불법파견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조직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한 구조입니다. 노동자가 원청의 뜻에 어긋나거나 노조 설립을 시도할 경우, 원청은 공사비나 노무비를 삭감해 계약을 해지하고 해당 노동자를 퇴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더라도 규모가 매우 작고,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노조 조직을 시도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서부발전은 불공정 계약과 불법 파견 등의 문제를 묵인하며, 반복되는 중대재해와 하청노동자 착취를 사실상 방조해왔습니다. 이는 공기업이 앞장서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우리 발전소 산업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현장에 있는 우리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는 십수 년간 ‘불법파견’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일해왔습니다. 2022년이 돼서야 한전KPS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했습니다. 증거는 차고 넘쳤습니다. 혼재근무를 했던 기록과 원청의 작업지시 문서들이 모두 불법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2021년 한전KPS비정규직지회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우리는 고용노동부를 찾았습니다. 현장에 불법이 만연한다고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한전KPS가 공기업이라 도와줄 수 없다”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시간 동안 뭘 했습니까. 공공기관에서조차 벌어지는 불법파견을 방치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하는 것이 정부기관의 역할입니까? 서부발전과 노동부가 무엇이 다릅니까? 더 이상 죽음의 현장을 외면하지 말고 정부기관으로써 역할을 다하십시오. 공기업의 산하기관이 아니라면, 불법을 저지른 기업에 엄벌을 가하고 심판자로서의 책임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원청사의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현장.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 제공
오늘날 다단계 하청구조는 더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위험은 가장 아래로 전가되고, 사람들은 그 끝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돈과 효율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돈으로 죽음을 덮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을 수는 없습니다. 노동자들은 우리의 피가 섞인 전기를 내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서 일하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정부가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만든 법이 바로 중대재해처벌법입니다. 그러나 이 법의 계기가 된 김용균 노동자조차 그 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이 법으로 제대로 처벌받은 기업도 없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시민이 죽어야,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가 죽어야 처벌하겠습니까. 얼마나 더 많은 시민과 노동자가 죽어야, 사법부는 책임을 물을 것입니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기계에 끼여 죽게 하고 숨 막혀 죽게 하고, 재난과 사고에 쓰져 죽게 하고 터져 죽게 할 것입니까. 이대로는 살 수 없습니다. 속이 터져 살 수가 없습니다.
노동부가 태안화력발전소의 불법파견을 조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할 거면 똑바로 해야 할 것입니다. 한전KPS는 소송의 피고가 되자 관련 문서를 파기하고, 현장을 분리 조치해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불법을 자행해왔는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노동부와 사법부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죽어간 사람들의 목소리, 김용균과 김충현의 목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구조적 살인의 책임자를 끝까지 처벌하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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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은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이다. 이 글은 지난 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 고발 및 엄중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영훈 지회장이 발언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