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사측의 "강압에 의해" 영업 부서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매우 위험한 상태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구조조정으로 '토탈영업TF'에 배치된 후 올해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정병수 노동자의 유서도 공개됐다.
KT 구조조정과 노동자 자살, 긴급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기자간담회. 참세상
KT는 2024년 10월, 최대 5,800여 명에 이르는 본사 인력의 희망퇴직 및 신설법인 전출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으로 4,523명의 인력이 감축되었다. 이들 중 1,723명은 KT 넷코어(Netcore)와 KT P&M 등 신설 자회사로 전출되었고, 2,800명이 특별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들 총 4,523명의 감축 인력은 KT 전체 노동자의 약 24%에 이르는 규모다.
희망퇴직과 자회사 전출을 거부한 2,500여 명의 직원은 '토탈영업TF'로 배치되어 도시 외곽 지역 등에서 기존 업무와 다른 휴대전화 및 인터넷 영업 등을 담당하게 됐다. 이들 중 대부분은 영업 업무를 수행한 적이 없는 기술직 노동자들이었다.
이같은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의 죽음이 잇따랐다. 지난해 11월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을 한 노동자가 퇴직 1주일 만에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했고, 올해 1월과 5월에는 토탈영업TF 소속 노동자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설 자회사 넷코어 소속 노동자 1명도 지난달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운수노조 소속 KT새노조는 연이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사측의 "강압적인 구조조정"과 "폭력적 경쟁으로 노동자들을 내모는 조직문화"에서 비롯된 "구조적 참사"라면서, 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러한 현실을 드러내는 긴급 정신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KT새노조의 의뢰로 정책연구소 이음이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4일까지 6일간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조조정으로 '토탈영업TF'로 배치된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기존 영업직군 노동자들 역시 일상적인 고용불안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온라인 설문에 대한 자기기입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총 302명이 참여했다.
KT 영업직 노동자 긴급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KT새노조, 정책연구소 이음 제공
응답자의 평균 연령은 52.7세, 평균 근속 기간이 21.6년으로 KT에 "청춘을 바쳐온" 노동자들이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심각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4.5% 고용이 매우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고용불안을 느끼는 주된 이유에 대해 '매우 그렇다(1점)'부터 '전혀 그렇지 않다(4점)'까지 4점 척도로 물었을 때, "평가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재배치될 수 있기 때문에(1.3점)", "KT는 수시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1.1점)", "강제 근무지(지역) 전환배치를 할 수 있기 때문에(1.3점)"라는 세 가지 이유에 대한 평균 점수 모두가 '매우 그렇다(1점)'에 가까워, 대규모 구조조정이 노동자들에게 일상적 고용불안을 느끼도록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KT 영업직 노동자 긴급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KT새노조, 정책연구소 이음 제공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의 경험을 묻는 질문에서는 절반 이상이 '무리한 요구, 빨리하라는 닦달'(55.6%)과 '무원칙적인 지시'(50.7%)를 경험했고, '인격 무시(46.4%), '책임 떠넘기기'(42.1%)를 경험한 경우가 절반에 가까웠다. 10명 중 세 명이 '차별 혹은 왕따(30.1%)'를 경험했고, '필요한 정보와 물품 등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경험도 39.1%나 나타났다. 응답자의 29.5%는 '언어폭력'을 경험하기도 했는데, 이들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의 대부분은 고객이 아닌 회사의 상급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살펴보면, 전체 응답자 중 수면장애 위험군이 56.3%에 이르렀다. 특히 토탈영업TF 소속 노동자의 경우 45.8%가 위험군에 속해, 기존 영업 직군 노동자(22.2%)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았다.
KT 영업직 노동자 긴급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KT새노조, 정책연구소 이음 제공
우울증의 경우도 전체 응답자 중 62.7%가 위험군으로 나타났는데, 이 역시 기존 영업 직군 노동자의 경우 36.4%가 위험군인 반면, 토탈영업TF 소속 노동자들은 64.8%가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불안장애의 경우 두 집단 모두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전체 응답자의 88.1%가 위험군으로 집계되었다.
이와 함께, 구조조정 과정에서 토탈영업TF에 배치된 노동자들이 새로운 직무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적성에도 맞지 않는 영업 업무로 "강제 배치"된 과정에서 커다란 어려움을 겪어온 사정도 엿볼 수 있었다.
'적절한 교육훈련이 제공되어 할 만하다'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37.7%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목표를 채우는 데 부담이 없다'는 질문에는 73.2%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므로 문제없다'는 질문에도 74.5%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고, 75.2%가 '나는 영업 체질이다'라는 문항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1점)부터 '매우 동의한다'(4점)까지 4점 척도의 평균 점수를 내보면 기존 영업 직군 노동자의 경우 각각의 질문에 대한 응답의 평균 점수가 2.0점에서 2.7점까지로 나타난 반면, 토탈영업TF 소속 노동자의 경우 1.3점에서 1.9점까지 나타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1점에 가까울수록 해당 질문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경향이 더 뚜렷해진다는 의미로, 토탈영업TF 소속 노동자들이 기존 영업 직군 노동자들보다 더 '적절한 교육 훈련 경험'이 부족하고, '영업 목표'에 대한 부담은 높으며, 영업 업무가 자신과 맞지 않고, 원해서 선택한 업무가 아니었다고 인식한다는 뜻이다.
사측이 '토탈영업TF' 소속 노동자들에게 차별적인 대우를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응답도 눈길을 끌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토탈영업TF 소속 응답자의 월 평균 법인카드 사용액은 1만 7천 원인 반면, 기존 영업 직군 노동자의 사용액은 15만 1천 원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정책연구소 이음의 한임인 이사장은 이에 대해 "KT 사측이 노동자들을 토탈영업TF로 내몰고는, 영업 업무를 위한 필수 비용 지원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고 짚었다.
한임인 이사장은 또한 이번 조사 결과 "토탈영업TF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을 비롯해 본사 영업 및 지사의 노동자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면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일차적이고 종국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법적 위치에 있는 KT 사측이 즉각 책임있는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동자의 잇따른 죽음과 심각한 정신건강 상태의 근본적 원인은 노동자 동의 없이 강행된 구조조정이라며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한 이사장은 "다수 노조가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노동자 개인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구조조정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면서 "특히 수십 년간 기술직 업무를 수행했던 노동자들에게 생판 처음 겪는 영업이라는 업무는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고, 영업 인프라도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영업을 하라고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자르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KT 사측과 다수 노조가 불합리한 합의를 한 결과 개별노동자들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다"며 "KT노사는 개별 노동자들을 보호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고, 따라서 국회 등을 통해 문제를 환기하고 시민사회와 더불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발언 중인 고 정병수 노동자의 유족. 참세상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지난 구조조정 이후 '토탈영업TF'로 배치되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정병수 노동자의 유서도 공개됐다.
고인은 유서에서 "너무 힘들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무슨 잘못을 했길래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고시에 합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 그 결과 출근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누가 내가 바친 청춘을 책임져 줄 것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 받으면서 자괴감이 든다. 회사의 방향이 그렇다고, 회사를 위해서 일해온, 열심히 살아온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 내가 언제 이런 반항에... 내가 이런 취급을... 난 한 번도 내 삶의 터전에서 소홀히 한 적이 없다. 이런 결정을...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내몰려야 했던... 난 인정할 수가 없다. 내 삶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고인의 장인인 유족도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심경을 전했다. 유족은 고인이 "장모의 건강을 항상 살갑고 다정하게 챙기는 훌륭한 사위였다"면서 "사위는 그렇게 살뜰히 살피던 장모보다도 KT라는 회사를 더 사랑하고, KT에 다니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성실하게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재택근무를 하는 시기에도 날마다 회사를 왔다 갔다하며 최선을 다해온 사위를 어떻게 회사가 갑자기 구조조정을 한다는 이유로 괴롭히고 내쫓을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고인의 동료인 김미영 KT새노조 위원장. 참세상
고인과 같은 '토탈영업TF' 소속 노동자인 김미영 KT새노조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고, 회사가 노동자들을 비용으로 돈만으로 볼 게 아니라 귀히 여겨, 기업과 노동자가 서로 상생하고 성장하는 기업 문화로 바꿔 나갈 때, KT도 대한민국 노동자들도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가 반성하고 책임자 처벌과 함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 가지 요구로 △KT새노조를 포함하는 노사와 시민사회 합동 실태조사를 통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김영섭 대표의 강제적 구조조정에 대한 사과와 책임 △토탈영업TF의 해체와 소속 노동자들의 정삭 조직 재배치를 짚었다. KT새노조는 이와 함께 △토탈영업TF 소속 직원들에 대한 외부 전문기관의 심리 상담 및 치료 △사망 노동자들의 유가족에 대한 KT의 충분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