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엡스타인 관련 파일과 영상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트럼프를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배 계급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들 모두는 같은 클럽에 속해 있다.
American Satyricon . 출처 : Mr. Fish
트럼프 행정부는 소아성애자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의 행적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집된 파일과 영상의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트럼프가 딥스테이트(Deep State)를 해체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트럼프 지지자들과 순진한 자유주의자들이 품은 그 믿음—에 마침를 찍었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그래왔듯, 우리를—그리고 종종 미성년 소녀·소년들을—이윤이나 쾌락의 수단으로 착취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혐오스러운 카르텔, 즉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인들, 억만장자들, 유명 인사들로 구성된 집단의 일원이다.
엡스타인의 주변 인물 명단은 말 그대로 ‘부유하고 유명한 자들’의 인명사전이었다. 거기엔 트럼프뿐 아니라, 엡스타인과 함께 태국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진 빌 클린턴(Bill Clinton), 앤드루 왕자(Prince Andrew), 빌 게이츠(Bill Gates), 헤지펀드 억만장자 글렌 두빈(Glenn Dubin), 뉴멕시코 전 주지사 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 전 미국 재무장관이자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 인지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스티븐 핑커(Stephen Pinker), 변호사 앨런 더쇼비츠(Alan Dershowitz), 억만장자이자 빅토리아시크릿 CEO인 레슬리 웩스너(Leslie Wexner), 전 바클레이스 은행가 제스 스탤리(Jes Staley), 이스라엘 전 총리 에후드 바라크(Ehud Barak),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David Copperfield), 배우 케빈 스페이시(Kevin Spacey), 전 CIA 국장 빌 번스(Bill Burns), 부동산 재벌 모트 주커먼(Mort Zuckerman), 메인주 전 상원의원 조지 미첼(George Mitchell), 엡스타인의 끝없는 쾌락 잔치에서 즐거워하던 할리우드의 불명예스러운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명단에는 대형 로펌과 고액 변호인, 연방 및 주 검찰, 사설 탐정, 개인 비서, 홍보 담당자, 하인, 운전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엡스타인의 연인으로, 로버트 맥스웰(Robert Maxwell)의 딸인 길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을 포함한 수많은 인신 매매책과 포주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피해자들을 무자비하게 폄훼하고 침묵시킨 언론과 정치인들, 그리고 엡스타인의 범죄와 공범 네트워크를 폭로하려 했던 몇몇 용감한 기자들까지도 위협한 자들 역시 그 안에 있었다.
여전히 숨겨진 정보는 많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사실도 있다. 엡스타인은 자신의 호화 저택과 카리브해에 있는 개인 섬 리틀세인트제임스(Little St. James)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권력자들이 십대 또는 미성년 소녀·소년들과 성행위를 하거나 학대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그 영상물은 완벽한 협박 수단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모사드(Mossad)를 위한 정보 작전의 일부였을까? 아니면 엡스타인이 들통나는 것을 피하고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한 이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혹은 두 목적을 모두 지녔을까? 엡스타인은 자신의 전용기 '로리타 익스프레스(Lolita Express)'를 이용해 미성년 소녀들을 뉴욕과 팜비치 간에 실어 날랐다. 이 전용기는 단체 성행위를 위한 침대까지 갖추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유명한 친구들, 빌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를 포함한 이들은 공개된 탑승 기록상 이 전용기를 여러 차례 이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많은 탑승 기록은 사라진 상태다.
엡스타인의 영상물은 FBI의 금고 안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권력자들의 성적 성향과 냉혹함을 폭로할 수 있는 상세한 증거들이 들어 있다. 팸 본디(Pam Bondi) 법무장관이 주장하는 것처럼 ‘고객 명단’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단일한 ‘엡스타인 파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엡스타인에 대해 수집된 수사 자료는 수많은 박스에 담겨 있으며, 이것을 전부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면 팸 본디의 사무실을 넘쳐날 것이고, 한 방 안에 전부 모은다면 거의 공간을 다 차지할 것이다.
엡스타인이 2019년 8월 10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교정센터 수감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는 공식 부검 결과는 사실일까? 아니면 그는 타살된 것일까? 그날 밤 감방 내부를 촬영하던 감시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 없다. 엡스타인의 형이 고용한 법의학 병리학자 마이클 바든(Michael Baden)은 뉴욕시 수석 검시관을 역임한 인물이며, 부검 당시 현장에 있었다. 그는 엡스타인의 부검 결과가 타살을 시사한다고 믿고 있다.
엡스타인 사건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깊은 분열이 있다는 허구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엡스타인 파일 공개에 대해 민주당은 트럼프와 다를 바 없는 무관심을 보였다. 그들 모두는 같은 클럽에 속해 있다. 이 사건은 법원과 사법 당국이 어떻게 권력자들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공모하는지를 드러낸다. 또한 이 사건은 우리의 과시적 지배 계급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낱낱이 폭로한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고, 언제든지 약하고 취약한 이들을 침해하고, 약탈하고, 착취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우리의 과두적 지배자들이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도널드 트럼프든 조 바이든이든 그저 가면만 바꿔 쓴 채 살아가는 천박한 기록이다. 이 기생적 지배계급은 고대 로마 제정 시기, 칼리굴라·클라우디우스·네로 시대에 쓰인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아르비테르(Gaius Petronius Arbiter)의 풍자 소설 ⟪사튀리콘⟫(Satyricon) 속에서 이미 풍자된 바 있다. ⟪사튀리콘⟫에서처럼, 엡스타인의 인맥은 가짜 지식인, 가식적 광대, 사기꾼, 허풍선이, 하급 범죄자, 탐욕스러운 부자, 성적 일탈자들이 장악했다. 엡스타인과 그의 측근들은 페트로니우스적 차원의 성적 일탈을 일상적으로 저질렀다. ⟪퍼버전 오브 저스티스: 제프리 엡스타인 스토리⟫(Perversion of Justice: The Jeffrey Epstein Story)라는 책에서, 마이애미 헤럴드의 탐사 보도 기자 줄리 브라운(Julie Brown)은 그런 사실을 기록했다. 그의 끈질긴 보도는 엡스타인과 맥스웰에 대한 연방 수사를 다시 열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브라운에 따르면, 2016년 한 익명의 여성은 “케이트 존슨(Kate Johnson)”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캘리포니아 연방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이 1994년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간, 13세였을 때 트럼프와 엡스타인에게 강간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장에서 “나는 트럼프에게 멈춰 달라고 크게 애원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내 애원에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세게 때리고, ‘나는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소리쳤다.”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썼다.
존슨은 엡스타인이 자신을 뉴욕의 저택에서 열린 일련의 ‘미성년 성파티’에 초대했으며, 그곳에서 트럼프를 만났다고 말했다. 돈과 모델 일자리 기회에 대한 약속에 이끌려, 존슨은 트럼프와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강요당했다고 밝혔다. 그중 한 번은 그가 ‘마리 도(Marie Doe)’라고 부른 12세 소녀와 함께였다.
소송에 따르면 트럼프는 구강 성행위를 요구했고, 이후 “두 미성년자를 밀쳐내며 성적 행위의 ‘형편없는’ 수준에 대해 분노하며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 소송은 4월 26일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지방법원에 제출되었다.
그 뒤, 엡스타인은 트럼프가 존슨의 처녀성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이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데 분노하여 “주먹을 쥔 채 그의 머리를 때리려 했다”고 전해진다. 존슨은 두 남성이 자신과 가족을 해치겠다고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힐 경우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소송은 트럼프가 엡스타인의 집단 난교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열세 살의 ‘케이트 존슨’이 자신에게 수음을 하는 동안 그것을 지켜보기를 즐겼다고 적고 있다.
트럼프는 그의 침묵을 사는 방식으로 이 소송을 무마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 이후로 자취를 감췄다.
2008년, 당시 플로리다 남부 연방지검 검사였던 알렉스 아코스타는 엡스타인과 형사상 모든 연방 기소로부터 면책을 제공하는 유죄 인정 협상을 체결했다. 이 합의는 엡스타인, 네 명의 지명된 공범, 그리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공범’들에게 모두 연방 형사 책임을 면제했다. 이 협정은 엡스타인의 성범죄에 더 많은 피해자와 권력자들이 연루됐는지를 밝히려 했던 FBI 수사를 중단시켰고, 기소 절차를 멈추게 했으며, 기소장을 봉인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은 인사로 여기는 결정에서, 트럼프는 첫 임기 중 아코스타를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마이클 울프(Michael Wolff) 트럼프 전기작가에 따르면, 트럼프는 2020년 7월 길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이 체포된 이후, 엡스타인과 오랜 기간 쌓아온 친분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그에게 사면을 검토했다. 2022년 7월, 맥스웰은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제프리 엡스타인이 생전에 가장 가까웠던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였다... 이 둘은 15년 넘게 거의 붙어 다녔다. 그들은 모든 것을 함께했다.” 울프는 팟캐스트 <더 데일리 비스트> 진행자 조애나 콜스(Joanna Coles)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여성을 함께 쫓고, 사냥하고, 최소 1년간 같은 여성을 공유했으며, 서로의 전용기를 공유했다. 엡스타인은 트럼프에게 세금 탈루 방법까지 조언했다.”
엡스타인을 기소할 증거 자료들이 대량으로 사라지는 등 법적 이상 현상은 2007년 엡스타인이 연방 성매매 혐의를 피하게 했다. 당시 엡스타인의 변호인단은 알렉스 아코스타(Alex Acosta)와 비밀 플리바겐(유죄 인정 협상)을 체결했다. 엡스타인은 그 결과로 미성년자 상대 매춘 알선이라는 경범죄 수준의 주(state) 법 위반 혐의로만 유죄를 인정할 수 있었다.
엡스타인의 소아성애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지목된 주요 인물들은, 엡스타인의 변호인 앨런 더쇼비츠(Alan Dershowitz)를 포함해, 자신들을 폭로하려는 이들을 맹렬히 협박해왔다. 더쇼비츠는 예를 들어 자신이 엡스타인의 피해자 버지니아 주프리(Virginia Giuffre)와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주장하며, 루이스 프리(Louis Freeh) 전 FBI 국장이 수행한 조사 결과를 인용한다. 그러나 그는 그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프리는 17세에 앤드루 왕자에게 인신매매된 인물로, 자신을 엡스타인과 맥스웰의 친구들 사이에서 “과일 접시처럼 돌려졌다”고 표현했으며, 19세가 되던 해에 탈출했다. 그는 2025년 4월 “자살”했다. 더쇼비츠는 줄리 브라운과 <마이애미 헤럴드> 편집진에게 지속적으로 협박을 보내왔다.
브라운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더쇼비츠는) 봉인된 문서에 담긴 정보들을 계속 언급했다. 그는 언론이 자신이 말한 ‘사실들’을 보도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나는 설명하려 했다. 언론은 앨런 더쇼비츠가 어떤 문서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사를 쓸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직접 봐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그 자료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그는 나를 공개적으로 법원 봉인 문서의 제출을 요구했다며 범죄 혐의를 씌웠다.
이것이 더쇼비츠의 방식이다.
더쇼비츠에 대해 내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점은, 언론이 거의 예외 없이 그를 비판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자들은 트럼프와 그의 행정부 인사들을 거의 매일 팩트체크했지만, 엡스타인 사건에 관해서는 더쇼비츠에겐 대부분 면죄부를 줬다.
2015년 주프리의 폭로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더쇼비츠는 온갖 방송에 출연해 엡스타인의 비행기 탑승 기록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맹세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은 주프리가 엡스타인과 관련되어 있던 시기에 엡스타인의 전용기에 탑승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언론이 확인만 했더라도, 그는 그 기간 중 실제로 엡스타인의 비행기에 탑승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또 다른 선서 진술에서 아내 없이 비행기를 탄 적이 없다고 증언했지만, 탑승 명단에는 여러 차례 아내 없이 혼자 비행기에 탑승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는 최소 한 번 이상 ‘타티아나’라는 모델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엡스타인은 하버드대학교에 기부했고, 하버드 심리학과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분야에서 아무런 학문적 자격이 없었지만, 출입카드와 비밀번호, 사무실까지 제공받았다. 그 사무실은 하버드의 진화역학연구소(Program for Evolutionary Dynamics) 건물 안에 위치해 있었다. 엡스타인은 언론 보도 자료에서 자신을 ‘과학 후원자 제프리 엡스타인’, ‘교육 운동가 제프리 엡스타인’, ‘진화론자 제프리 엡스타인’, ‘과학 애호가 제프리 엡스타인’, ‘괴짜 헤지펀드 운용자 제프리 엡스타인’이라고 불렀다.
엡스타인은 ⟪사튀리콘⟫의 ‘트리말키오와의 만찬(Dinner with Trimalchio)’ 장에서 풍자된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허영과 공허를 그대로 재현했다. 그는 일론 머스크(Elon Musk), 살라르 카망가르(Salar Kamangar),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 같은 억만장자 친구들을 위한 호화 만찬 모임을 기획했다. 그는 사회공학적 기괴한 계획을 상상해냈다. 예컨대, 뉴멕시코에 있는 자신의 광대한 농장에서 자신의 DNA로 인류를 재생산하려는 ‘아기 생산 시설’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엡스타인은 또한 냉동수명연장술에 집착했는데, 이는 인간을 냉동 보존했다가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트랜스휴머니즘 철학이다.” 브라운은 이렇게 썼다. “엡스타인은 자신의 과학 네트워크 일부에게, 여성들에게 자신의 정자를 주입해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자기 머리와 성기를 냉동 보존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한다.”
엡스타인 사건은 지배계급의 도덕적 파산, 향락주의, 탐욕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이 사건은 정당을 가리지 않는다. 빌 클린턴 같은 민주당 정치인들, 빌 게이츠 같은 자선가들, 억만장자들, 트럼프까지 — 그들은 하나의 포식자 계급이며 사기꾼 집단이다. 그들은 소녀들과 여성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착취하고 있다.
[출처] Trump, Epstein and the Deep State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로, 15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중동 지국장과 발칸 지국장을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