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투기일 뿐이고, 투자가 아니다. 규제되지 않고, 어떤 자산으로도 뒷받침되지 않으며, 단지 누군가가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정해진다.” — 매튜 스티븐슨(Matthew Stephenson)
“이건 완전히 미친 짓이고, 말도 안 되는 도박이다.” — 고(故) 찰리 멍거(Charlie Munger), 2023년 발언
“암호화폐는 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 되지 못하며, 아무것도 뒷받침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는 금의 대체 수단일 뿐, 달러의 대체 수단은 아니다.” — 제롬 파월(Jay Powell),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비트코인은 사기처럼 보인다.… 나는 비트코인이 싫다. 왜냐하면 이건 달러와 경쟁하는 또 다른 통화이기 때문이다.” —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021년 6월
지금은 미국의 ‘암호화폐 주간’이다.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가격은 사상 최고치인 12만 달러를 돌파했고, 미국 의회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더 명확한 규제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법안들을 검토할 예정이다. 앞으로 5일 동안 미 의회는 「지니어스법(Genius Act)」, 「디지털 자산시장 명확성법(Digital Asset Market Clarity Act)」, 「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감시국가법(Anti-CBDC Surveillance State Act)」을 심의한다. 이들의 목표는 “미국을 세계 암호화폐의 수도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 상원은 이미 민간 기업이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통과시켰다. 「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감시국가법(Anti-CBDC Surveillance State Act)」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발행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민간 암호화폐가 정부 발행 화폐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암호화폐의 등장은 대침체(Great Recession) 이후 1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암호화폐는 중앙은행의 발행이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디지털 토큰이며, 실제 금을 캐듯이 컴퓨터로 복잡한 '블록체인 거래(blockchain transactions)'를 통해 디지털 방식으로 ‘채굴(mining)’된다.
암호화폐 가격은 오랫동안 달러 기준으로 격렬하게 변동했지만, 미국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 가격은 투기 대상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 ‘자산’으로 자리 잡으며 꾸준히 상승해 왔다. 암호화폐는 점차 공인된 금융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영국의 코인셰어스(CoinShares)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암호화폐에 연동된 글로벌 펀드로 1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유입되었고, 전체 운용 자산은 1,760억 달러에 이르렀다.
하지만 암호화폐 열풍은 시작부터 사기, 범죄, 부패로 얼룩졌다. 그 사례는 너무 많아 다 나열하기 어렵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지난해 9월 연례 보고서에서, 2023년 미국 내 암호화폐 관련 사기로 인한 피해액이 56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45%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파산한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는 고객 자산 80억 달러를 유용한 혐의로 2024년 3월 뉴욕 법원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달에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부동산으로 담보된 암호화폐를 판매하겠다고 투자자 5,000명 이상을 기만한 유니콘(Unicorn)이라는 투자 플랫폼을 1억 달러 규모의 사기로 기소했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암호화폐가 달러나 유로 같은 국가 발행 화폐를 대체하여 국가 규제로부터 개인을 해방할 것이라 믿었지만, 그런 세계는 절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초대형 금융기관들이 이 통화를 장악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금융자산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전형은 도널드 트럼프 자신이다. 그는 과거 암호화폐를 사기라고 비난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디지털 자산 관련 사업으로 6천만 달러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그의 아내 멜라니아도 자신만의 디지털 화폐를 갖고 있다. 이들은 모두 ‘밈 코인(meme coin)’이라 불리며, 인터넷 밈이나 유행, 시사 이슈에서 유래한 토큰이다. 안락사된 회색 다람쥐, 만화 속 강아지, 외설스러운 농담 등을 주제로 한 밈 코인이 있다. 수상한 홍보업자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암호화폐 정보 플랫폼 코인마켓캡(CoinMarketCap)은 약 1,690만 개의 암호화폐를 추적 중이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존재하며, 투자자들은 끝없는 선택지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 하 소비자 선택의 ‘극치’다.
암호화폐 재벌 저스틴 선(Justin Sun)은 도널드 트럼프 브랜드가 붙은 10만 달러짜리 고급 시계를 자랑했다. 이 시계는 그가 트럼프의 버지니아 골프클럽에서 열린 비공개 만찬에 참석하며 받은 것이다. 선은 2,000만 달러어치의 $Trump 밈 코인을 구매해 220명의 구매자 중 1위를 차지했으며, 이에 따라 만찬 초청을 받았다. 5월 22일 트럼프가 개최한 이 만찬과 다음 날의 백악관 투어는 $Trump 코인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행사였고, 이틀간 약 1억 4,800만 달러를 끌어모았다. 상당수는 익명 혹은 외국인 구매자였다.
선은 트럼프가 두 아들과 함께 작년 가을 설립한 또 다른 암호화폐 사업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orld Liberty Financial, WLF)’에 7,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사용자들이 암호화폐를 예금, 대출, 투자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 은행’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트럼프 일가는 이 회사의 6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현재 암호화폐 사기 관련 12건의 사건을 중단하거나 종결했는데, 이 중에는 2023년 SEC로부터 사기 혐의로 기소된 저스틴 선의 3개 암호화폐 기업도 포함된다. SEC는 공익(public interest)을 이유로 지난 2월, 이 사건들을 ‘일시 중단’시켰다.
‘암호화폐 주간’은 미국 달러나 유로 같은 국가 발행 통화가 민간 암호화폐로 대체될 것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알 수 있다. 첫째, 모든 암호화폐는 달러로 가격이 매겨진다. 즉, 사람들이 실제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사용하는 통화는 여전히 달러이다. 비트코인이나 다른 암호화폐는 일상에서 수십억 건에 이르는 거래를 대체하지 못했다.
둘째,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와 같은 기존 명목화폐(fiat currency)에 연동된 암호화폐로, 비트코인 같은 변동성 높은 코인과 달러 같은 공인 통화 간 전환을 가능하게 만든다. 스테이블코인은 실물 화폐와 연동되어 암호화폐 시장 전반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며, 트레이더들이 변동성 큰 디지털 코인 사이에서 투자 대기 자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 스테이블코인은 결국 암호화폐에서 ‘진짜 돈’, 즉 달러나 유로로 빠져나가기 위한 탈출구에 불과하다. 스테이블코인 기업들은 달러로 보장되는 자산을 확보하고 있어야만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 이들은 미국 국채와 같은 달러 자산을 보유해, 코인을 현금으로 환전하고자 하는 수요에 대응한다.
문제는 스테이블코인이 종종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테더(Tether)는 2022년, 자산 중 현금은 고작 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위험한 기업어음(commercial paper)에 투자한 사실이 드러나며 대규모 환매 사태에 직면했다. 당시 스테이블코인은 규제 대상이 아니었고, 금융감독이나 예금자보호 대상도 아니었다. 현재는 규제가 추진되고 있지만,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상원의원은 “지니어스법은 제재 회피나 불법 활동을 막지 못할 뿐 아니라, 일론 머스크의 X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자체 통화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며 “미국 국민을 사기, 수수료, 금융 붕괴로부터 지킬 수단이 없다”고 비판했다.
암호화폐 광풍은 멈출 기미가 없다. 이제 주요 변화는 암호화폐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가 주도한 ‘무규제 암호화폐 시대’를 이용해 미국의 전통적 은행업으로 급속히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강화해 미국 국채와의 연계를 강화할 예정이다. 앞으로는 인가를 받은 은행이나 일부 비은행 기관만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사실상 ‘자유로운 민간 화폐’의 종말을 의미한다. “많은 암호화폐 기업들이 ‘우린 은행도, 법도 필요 없다’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우릴 규제해달라’고 말하고 있다”고 법률회사 데이비스 라이트 트리메인(Davis Wright Tremaine)의 파트너 맥스 보니치(Max Bonici)는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대형 은행들이 뛰어들고 있다.” 미국은행(Bank of America)을 비롯한 대형 은행들은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가 완료되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3~5년 내 유통 중인 스테이블코인 가치가 현재 2,400억 달러에서 1조 달러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씨티그룹은 스테이블코인이 잠재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시장 규모에 195조 달러 규모의 국제 자금 송금과 1경 달러 규모의 SWIFT 기반 자금 흐름을 포함했다. JP모건은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M2 통화량 22조 달러 중 최대 10%, 즉 2조 달러를 차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거대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미국 대통령과 의회의 지지를 받은 대형 금융기관들의 낙관론은 결국 자기 입장을 판매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수요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의해 실질 가치가 쉽게 잠식된다. 일부 은행들은 이를 우회하려 한다. JP모건은 스테이블코인의 대안으로 ‘예금 토큰(deposit token)’이라 불리는 JPMD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은행은 JPMD가 향후 기관 고객 전용으로 안전하게 자금을 송수신할 수 있는 체인 기반 은행 예금의 형태가 될 것이며, 이자는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역시 민간 암호화폐가 ‘화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준다. JP모건의 토큰은 결국 해당 회사 내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기프트카드나 마일리지 포인트와 다를 바 없다. 이들은 보편적인 화폐가 아니며, 스테이블코인과 마찬가지로 결국 또 다른 거래를 통해 달러 같은 ‘진짜 돈’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비트코인의 경우, 장부상 수익은 좋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 현금화 과정은 전혀 다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금액을 인출하려면 암호화폐를 외부 지갑에 옮겨야 하며, 이 과정에서 높은 거래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고 블록체인 해킹이나 사기에 노출될 위험도 매우 크다.
국제 무역과 금융에서는 상품과 자금이 거래 당사자 간 동시에 이동하기 어려워, 위험과 지연,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예일대학교 금융안정성 프로그램의 스티븐 켈리(Steven Kelly)는 “스테이블코인이 이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할 때의 문제는, 현재와 미래의 공급망 결제는 결국 은행 예금을 필요로 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스테이블코인은 화폐가 아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진정한 화폐는 서로 다른 은행에서 발행되더라도 누구나 주저 없이 수용한다. 그것은 중앙은행이 제공하는 공통의 안전자산(중앙은행 지급준비금)과 1:1로 결제되기 때문이다.… 예금 토큰은 현재 이 특성이 있지 않으며, 앞으로 이를 갖게 될 가능성도 작다.”
화폐는 보편적인 가치의 형태이며, 보편적으로 인식되어야만 진정한 ‘화폐’가 될 수 있다. BIS는 “어떠한 통화 체계든 그 기초는 ‘액면 그대로’ 결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화폐의 가치는 모두가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이것이 곧 ‘화폐의 단일성(singleness of money)’이다. 다양한 은행에서 발행된 화폐가 누구에게나 주저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중앙은행이 공익을 위해 제공하는 공통의 안전자산으로 액면 결제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국가는 중앙은행을 통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보장하고, 필요 시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한다. 이러한 속성은 스테이블코인 같은 민간 토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설령 이들이 이제 국가의 규제 체계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스테이블코인은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 아니라 기업채나 어음과 같은 또 하나의 금융자산에 불과하다.
게다가 BIS는 “암호화폐는 화폐가 가진 확장성과 조정 능력의 장점을 결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거래량이 늘어남에 따라 장부(블록체인)의 크기도 커지는데, 그럴수록 업데이트 속도가 느려지고 거래 비용도 증가한다. 암호화폐는 보안이나 분산형 시스템이라는 근본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는 확장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암호화폐는 부패, 사기, 자금세탁에 취약하며, 민간 토큰으로서 국가 통화 대비 환율도 들쭉날쭉하게 움직인다. 이 때문에 대형 금융기관들은 사회 전체에는 아무런 실질적 가치도 제공하지 않은 채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게 된다.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는 점점 더 다른 형태의 허구자본(fictitious capital)과 가격 움직임을 같이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와 시장 분석에 따르면, 비트코인과 S&P 500 지수의 상관관계는 지난 5년간 많이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 인플레이션 급등, 통화정책 변화 같은 거시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양 자산의 가격이 유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로 이들의 30일간 상관계수는 70%를 넘긴 적도 있었으며, 이는 이들이 글로벌 위험과 통화 결정에 공동으로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향후 금융 시장의 불안정이나 이른바 ‘실물 경제’의 급격한 침체는 암호화폐 시장과 그 ‘안정적’이라는 스테이블코인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출처] Crypto corruption and un-Stablecoins – Michael Roberts Blog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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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