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태도를 바꾼 것일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을 빼려는 모습이더니 우크라이나에 새로 무기 제공을 약속하고 나섰다. 자신은 절대 새로운 전쟁은 벌이지 않을 것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취임 24시간 안에 끝낸다는 허황한 공약으로 대통령이 된 그다. 대규모 전쟁을 그렇게 빨리 종식할 수 있을 것으로 믿은 유권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마는, 그래도 트럼프는 민주당의 ‘영원한 전쟁’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에게 ‘평화 후보’로 인식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번 무기 제공으로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셈이 되어 지지자들로부터도 적잖은 반발을 받게 되었다. 핵심 지지 기반인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 내부에도 상당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보수우파의 여론 주도자로 한때 그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터커 칼슨도 등을 돌렸다.
트럼프는 약 100억 달러(14조 원)어치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낸다고 알려진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전쟁이 아니라고 말해왔는데 이제 태도를 바꾼 셈이다. 전임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전쟁을 전폭 지원하며 러시아와 모든 외교관계를 끊었던 것과는 달리,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의 전화 외교를 통해 관계 복원을 도모해오던 데서 대러시아 강경 태도로 돌아선 것 같기도 하다. 트럼프는 50일 안에 러시아가 자신이 요구해온 휴전 합의에 동의하지 않으면 100%의 관세를 부과하고, 러시아의 거래국에 대해서도 2차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바이든 정부에서 극단으로 치닫던 미국-러시아 갈등이 그의 취임 후 한결 누그러지는 듯하다가 다시 악화하는 모양새다.
출처: Unsplash, Igor Omilaev
트럼프의 태도 변화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입만 열면 혁파하겠다고 비난해온 네오콘의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반면에 대선 때 표 얻으려고 네오콘 공격한 것 말고 트럼프가 과연 진심으로 네오콘 세력과 단절하려 했을까 의구심을 드러내는 분석가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트럼프는 원래 장사꾼이며, 이번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는 과정에서도 그런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는 어제 한 유튜브 채널(Doialogue Works)에서 스위스군의 대령 출신으로 세계정세분석가인 자크 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겠다고 하면서 돈은 100% 유럽국가들이 낸다고 했다. 다시 말해 무기는 미국이 제공할 터이니 무기회사가 받을 돈은 유럽국가들이 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6월 24〜26일 나토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트럼프의 압박으로 유럽국가들이 국방 예산에 GDP의 5%까지 책정한다고 약조한 점이 상기된다. 국방 예산이 GDP의 5%라는 것은 여간 높은 것이 아니다. 유럽은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 이후 끝없는 경제위기를 겪어 지금 경제난이 심각하다. 유럽연합의 GDP 성장률은 2023년 0.5%, 2024년 0.9%였고, 2025년에는 0.6%로 예상된다. 성장률이 3년 내리 0% 수준에 머무는데 유럽국가들은 지금 비생산적인 국방비의 증액에 나서려 하고 있다. 유럽의 유력 국가들, 예컨대 E3으로 알려진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국방 예산이 각각 GDP의 2.3%, 2.1%, 1.9% 수준인데 5%로까지 올리려면 앞으로 엄청난 증액이 필요한 셈이다.
독일의 <슈피겔>지에 따르면, 미국이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바로 공급하지는 않고 제3국을 통해 보낼 것이라고 한다. 제3국이 기존에 보유한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고, 그것을 대체할 신무기를 미국으로부터 구매한다는 것이다. 그런 계획에 참여할 국가로는 독일,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네덜란드, 캐나다가 꼽힌다. 자국 보유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먼저 보내고 미국에서 새 무기를 사겠다고 나선 유럽국가들 목록에서 두드러지게 빠진 나라가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다. 최근 프랑스는 외무장관이 자국은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무기 제공 대열에 빠지겠다고 밝혔고, 이탈리아의 총리 조르자 멜로니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이탈리아가 대열에서 빠진다고 한 것은 그동안 유럽의 대러시아 정책에 대해 불만을 표해온 점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한편 영국, 독일과 함께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 온 프랑스가 빠진 것은 프랑스는 유럽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각종 무기를 자체 생산해 미국 무기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제가 악화일로인데도 유럽의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고 미국 무기를 새로 사라는 트럼프의 요구를 받아들인 이유는 그들 다수가 국내에서 지지를 잃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공통점은 모두 우크라이나 전쟁을 마치 자기들의 전쟁인 양 여긴다는 것이다. 스타머와 마크롱, 메르츠는 ‘의지의 연합’을 통해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표명하는 자리를 수도 없이 가져왔다. 그들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모두가 국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탈산업화, 경제난, 이민, 복지 악화 등 국내에 산적한 문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사실상 남의 일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큰 관심을 가져 생긴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국내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국내 문제가 악화할수록 우크라이나 전쟁에 매몰되는 모습이다. 국내 상황이 불리하니 외국과의 갈등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라 하겠다.
E3 국가를 포함해 대부분이 경제난에 내몰리고 있음을 고려하면 유럽국가들이 트럼프의 요구에 따라 국방비를 GDP의 5% 수준까지 증액할 방법은 사실 하나밖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사회복지비를 대폭 삭감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최근에 총리 스타머의 주도로 집권노동당에서 복지비를 삭감하려다 당내에서 큰 저항을 유발한 바 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낸다고 결정한 것도 자신의 지지 기반인 MAGA의 저항을 유발할 공산이 크다. 그동안 그는 자신이 우크라이나이든 중동이든 해외 전쟁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며 지지층을 끌어모았으나, 최근에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과 이란 공격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이번에는 자신이 끝내겠노라고 장담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을 깊숙이 넣는 행보를 취했다. 그에 따라 지지층 이반이 생기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대패할 공산이 있고, 그다음에는 첫 번째 임기 때처럼 민주당의 탄핵 공세에 시달려 이번에는 정말 탄핵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트럼프는 자신이 미국을 위해 좋은 장사를 한 것이라며 변명하겠지만 말이다.
트럼프의 장담과는 달리 미국에는 우크라이나든 유럽이든 보내줄 무기가 별로 없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미사일 17개’를 보낸다고 했는데, ‘17개’가 포대 17개를 의미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고, 발사대 17개를 의미하면 가능하긴 해도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뿐 아니라 설령 우크라이나가 패트리엇 미사일을 확보한다고 해도 악화일로에 있는 전선의 대세를 뒤바꿀 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 패트리엇은 키이우를 공격하는 러시아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쓰일 뿐 공격에는 사용될 수 없다. 트럼프는 처음에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타격할 수 있도록 재즘(JASSM)과 토마호크 등 공격용 장거리 미사일을 지원 무기에 포함하려다가 내부 논의 끝에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로 취소했다고 한다(토마호크는 핵폭탄을 장착할 수도 있어서 우크라이나가 그 미사일로 모스크바를 공격하면 러시아로서는 핵 공격을 받는다고 여기고 대응할 수도 있어서 자칫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러 정황을 놓고 볼 때 트럼프가 이번에 보인 대러시아 강경 조치는 허풍으로 끝날 것으로 여겨진다. 러시아에 매기겠다는 100% 관세, 특히 2차 제재로 러시아의 교역국들에 매기겠다는 관세는 강제로 부과하기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러시아로서는 미국이 100%, 아니 500% 관세를 매겨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공산이 크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는 지금 교역이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2차 제재 위협도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 그 주된 대상국은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주요 브릭스 국가들일 텐데 그들 국가에 미국이 관세 제재를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얼마 전 중국에 145% 관세를 매겼다가 중국이 희토류 대미 수출 금지를 포함해 강경 대응에 나서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 러시아 기름을 산다고 인도에 고율 관세를 때리면 인도 또한 고분고분하게 있을 리 없다.
결국 트럼프의 위협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제2인자 격인 메드베데프가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올린 짤막한 반응이 그런 점을 요약해준다. “트럼프가 크렘린에 과장된 최후통첩을 내렸다. 결과를 예상하고 전 세계가 움찔했다. 호전적인 유럽은 실망했고, 러시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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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는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중앙대학교 교수, '문화/과학' 발행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참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의 생김새⟫, ⟪길의 역사⟫,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