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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동행] 집 없는 사람이 수급자가 되는 법 上

“우리 같은 사람들을 받아주느냐가 문제죠”

[동행]은 당사자들이 병원, 관공서, 법원, 시설 등을 이용할 때 부딪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전하는 꼭지

어떤 이가 묻는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뭐냐고. 자, 이렇게 답해준다. 첫째, 주민등록증(신분증). 둘째, 주민등록상 주소지. 셋째,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이러저러한 서류들. 끝.

‘수급 신청’에 들어가는 돈은 얼마?

그렇다면 만약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거주불명 등록)라면 어떨까. 혹은 일정한 주소지가 없는 거리 홈리스라면 어떨까. 그래도 신청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먼저 고시원이나 쪽방에 가서 방을 하나 얻자. 그리고 관할 주민센터(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 재등록 신청과 함께 전입신고를 한다. 남은 것은?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에게 수급 관련 안내를 받고 필요한 서류들을 구비하여 내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돈’이다. 쪽방이든 고시원이든 서울에서 자기 몸 하나 뉘일 주소지를 가지려면 대략 20~30만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여기에 주민등록 재등록을 할 때 내야 하는 과태료(최대 10만원)가 추가된다. 30~40만원. 이것이 일정한 주거지가 없는 주민등록 말소자가 수급 신청을 하는데 들어가는 최소한의 ‘참가비’다. 적어도 이 정도 돈은 들여야 비로소 수급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심사받을 수 있다.

일단 신청을 하고 나면, 심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현 주소지를 유지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심사가 정확히 언제 끝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빠르면 30일 내에 통보를 받는다. 그러나 운 나쁘게(?) 부모・자식과 같은 가족 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이라면 최장 60일까지 걸릴 수 있다. 심사가 늦어지면 한 달 치 방세(20~30만원)를 더 내야 한다. 결국 수급 신청에서부터 통보를 받기까지 필요한 금액, 이른바 ‘안전빵’에 해당하는 금액은 60~70만원이 되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애초에 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게 일상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조차 구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국가가 일정 금액을 지급하겠다는 건데, 생각해보자.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조차 구할 수 없어 수급을 신청하려는 사람이, 과연 60~70만원씩 들어가는 ‘참가비’를 감내할 수 있을까? 신청을 해도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행스런 일이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고 있다. 고시원 방세(주거비)를 일정 기간 동안 지원하기도 하고, 주민등록 말소자가 재등록 시 내야하는 과태료를 상당 부분 경감해주기도 한다.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당사자가 부담해야 할 돈은 거의 없다. 물론 애초에 계산에 넣지도 않았던 식비, 핸드폰비, 교통비, 서류 인쇄비 등등을 모두 제외한다면 말이다. 자, 어쨌든 이렇게 수급 신청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돈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럼 다른 문제는 없는 걸까? 당연히 그럴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글에서 소개할 두 분의 홈리스 당사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사자는 몰랐던 ‘당사자를 위한 사업’

지난 2월 2일(목) 늦은 오후. 홈리스행동 상근 활동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는 내게 두 분의 당사자 아저씨와 어디를 함께 가기로 약속했는데, 혹시 대신 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약속 시간은 오전 10시. 저녁에 활동하고 낮에 잠자는 밤도깨비형 인간인 나로서는 꽤나 부담스러운 시간이긴 했지만, 예전에 만나본 적이 있는 분들이기도 하여 선뜻 동행에 나서기로 했다. 잠이야 조금 늦게 자면 그만 아닌가? 내 대답을 듣고 그가 추가적으로 알려준 사항은 다음과 같다. ▲두 분 모두 조건부 수급 신청을 원하신다는 것, ▲그러나 현재 주민등록상 주거지가 없어 먼저 「서울시 희망온돌 사업」이란 것을 통해 고시원 방세를 지원받아야 한다는 것, ▲이 사업은 지역 내 사회복지관에 가서 신청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내일 두 분을 모시고 용산구 OO복지관에 가서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것.

다음날인 금요일 오전 10시. 약속장소에서 김용수(40대 초반・가명) 아저씨와 박정호(40대 중반・가명) 아저씨를 만났다. 호형호제 사이인 두 분은 ‘주민등록이 불가능한 곳’에서 지난 10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수급자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는 그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복지관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했다. 말없이 계속 걷기도 뭐해 지금 신청하러 가는 희망온돌 사업이란 걸 들어본 적 있으시냐고 물었다. 두 분 다 오늘 처음 들어봤다고 하신다. 홈리스가 주요 지원대상이 아니라서 아마 잘 모르셨을 거라 말했다.

사무실로 올라가 희망온돌 사업 담당자(사회복지사)를 찾았다. 그는 우리를 상담실로 안내한 뒤 커피를 준비하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 정호 아저씨가 “복지사 선생이 친절하시네”라며 한 마디 하신다. 담당자가 커피를 들고 돌아온 뒤, 본격적으로 상담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건네준 서류를 잠시 살펴보던 담당자는 아저씨들에게 약간의 질문을 한 뒤, 곧바로 두 달 치 방세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내일은 토요일이니 가능한 오늘 고시원을 잡으시면 좋겠다”고까지 했다.

며칠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 예측 못했던 상황에 아저씨들은 물론이고 나 또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파심에 뭔가 조사 같은 건 없냐고 물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는 이 사업이 ‘선(先)지원 후(後)조사’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던 것 같다. ‘긴급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인데 조사한답시고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사실 이 사업은 노숙인 분들 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거예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받아주느냐가 문제죠”

담당 사회복지사는 내게 구체적인 지원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요는 다음과 같다. ▲어느 고시원이든 복지관이 자리한 용산구 관할 지역이면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고시원의 사업자등록증 사본과 통장사본, (임대)계약서를 받아오면 복지관에서 방세를 입금해 준다는 것, ▲방세는 30만원 이내면 상관없다는 것.

일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는 걸까. 본래 나의 임무는 복지관까지의 동행이었으나, 기왕 이렇게 된 거 고시원 계약을 마칠 때까지 아저씨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고시원 업주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방세를 복지관에서 입금해 준다는 것, 사업자등록증 사본 등을 요구하는 것 따위)이 아저씨들의 입장에선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어쨌든 수급 신청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넘은 셈이다. 일단 돈(주거비) 문제가 해결된 거다. 솔직히 이제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복지관에서 나오자마자 “방이 별로 없을 건데” 하며 걱정하시는 두 분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에 널리고 널린 게 고시원 아니던가.

아저씨들은 계속 여기저기에 전화를 하셨다.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방 남는 게 있냐고 물으신다. 그리고는 숙대입구역 인근으로 가보자고 하신다. 왜 업주가 아니라 지인에게 전화를 하셨던 것일까. 가는 길에 용수 아저씨께 슬쩍 물었다. 가고 싶은 고시원이 따로 있으시냐고.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신다. “그런 게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을 받아 주냐가 문제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돈 내는 사람이 왜 ‘자신을 받아 줄지 말지’를 걱정해야 하는 걸까. 아저씨의 설명은 이렇다. 어떤 곳은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어떤 곳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또 어떤 곳은 행색이 추레하다는 이유로 방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을 내주는 곳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혹여 방을 내주더라도, 층별로 사람들을 분류하여 학생 및 직장인 이용자들과 그렇지 않은 이용자들을 서로 격리(?)하는 곳이 많단다. 결국 아저씨들이 체감하기에 본인들이 갈 수 있는 고시원은 그리 많지 않은 셈이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왜 아저씨들이 업주가 아닌 지인(고시원 이용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인지를. 그것은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이를테면 합리적인 추론 같은 거였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본인들도 들어갈 수 있다는 그런 추론 말이다.

아저씨의 말을 들으면서,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회복지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복지서비스 이용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했다. 그래야 권리도 생기고 낙인도 없어진다고. 아마 두 분 아저씨가 이용하시는 이 복지서비스를 만든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수많은 고시원들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혹은 권리일까?)를 줬다고 말이다. 쓴웃음이 나왔다. ‘선택할 권리’가 있는 건 아저씨들이 아니라 고시원 업주였다.

우여곡절 끝에 한 고시원에 가서 계약을 했다. 업주는 꽤나 친절했다. 놀랍게도 그는 두 분 아저씨가 오늘 처음 들어봤다는 희망온돌 사업을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현재 자기네 고시원에 복지관을 통해 들어오신 분이 많다고 했다(어쩌면, 이 복지서비스의 ‘진정한 이용자’는 바로 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임대계약서, 사업자등록증 사본, 통장 사본을 받은 뒤 다시 복지관으로 향했다. 담당 복지사는 두 분 아저씨께 수고하셨다고 말하며, 후원 물품으로 들어온 전기담요 두 개를 내어 주었다.

두 분 아저씨는 이제 다른 곳에 보관해 둔 짐을 가지러 가신다고 했다. 이제 남은 일은 주민센터로 가서 전입신고를 한 뒤 수급 신청(상담)을 하는 것이다. 내일은 주말이니 다음 주에 다시 만나서 주민센터에 함께 가자고 말씀드렸다. 아저씨들과 헤어지면서 이젠 정말 끝났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나중에 주민센터에 방문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음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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