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돌봄 이중고 속 여성노동자, 슈퍼우먼 돼야 투쟁할 수 있나?

[기고] 여성노동자 투쟁과 가사‧돌봄 노동

“옆 사람과 얘기 한마디 하기 어려울 만큼 하루 종일 전화가 울려대는 날이 많아진다. 메시지는 수십 개 수백 개…. 종일 징징거리는 전화와 빨간 동그라미 안에 새로운 메시지 숫자에 심장이 두근두근 한다. 이런 게 공황장애인가 싶었다.”

[출처: 신유아]

개인적인 사정들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라도 부당하고 불합리한 환경을 타파해 보고자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체제에 순응하며 살고 싶지만 억울하고, 분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노조를 만들고 투쟁을 시작한다.

노조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더 많은 주체들을 만들기 위해 동료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며 조직을 키워나간다. 구조의 문제를 혼자 감당할 수 없기에,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절대 바뀌지 않기에 조직된 조합원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사회적 연대를 요청한다. 투쟁은 길어지고 답은 안보이고 조금씩 지쳐갈 즈음 내부갈등은 시작된다. 갈등의 요인은 너무 많다. 개개인의 사정들을 모두 끌어안고 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하며 상대방과 교류하는 것이 참 어렵다.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낯선 이와 친해지려면 한참 시간이 걸린다. 이런 사람이 어쩌다 보니 지회장이라는 명찰을 달고 허덕이는 중이다. 포기하고 주저앉을 수 없어 지금까지 정신없이 앞만 보고 온 것 같다. 지금도 포기할 수 없는 건 변함없다. 그런데 자꾸 벽이 높아진다. 당장 눈앞에 잃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00지회 지회장)


사실 함께 투쟁하다보면 살짝 얄미워지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할 테니 살짝 뒤로 물러서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회사에도 노조에도 양다리 걸치며 눈치 보는 사람 등은 선두에서 싸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얄미운 것이 당연하다.

그런가하면 마음은 있으나 가정사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 몸이 아파서 몸빵은 버거운 사람, 아이들 돌봄으로 시간을 빼기 힘든 사람, 가족의 부정적 태도(노조활동에 대한)로 갈등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파업초기 집행간부로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될 만큼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던 이는 양가 부모님의 병환으로 집행간부직을 내려놓아야했고, 또 다른 조합원은 같은 이유로 파업중간에 근무지로 복귀했다

[출처: 신유아]

코로나19의 확산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의 돌봄 문제로 이어지고 오롯이 부모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이런 사회적 여건 속에 파업은 조합원들에게 많은 고민을 남긴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농성장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자주 들린다.

추석연휴 일주일이 넘도록 엄마와 농성장을 지킨 아이도 있고, 아이 셋을 데리고 농성장에서 2박3일을 보내고 가는 조합원도 있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다치는 사고는 비일비재하고 최근 한 조합원의 아이는 엄마 없는 집에서 음식물을 몸에 쏟아 크게 화상을 입어 급하게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중이다.

[출처: 신유아]

장기간 파업으로 임금보전이 안되다 보니 경제적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가족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는 노조활동 자체가 버거운 사람들이 많다. 이러저러한 과정을 지켜보다가 문득 고민이 생겼다. 오랜 시간 많은 투쟁사업장과 연대하면서 보고 듣고 있던 상황들과 다른 지점이 보인다.

여성노동자 위주 투쟁은 한계점이 많다. 특히나 젊은 여성노동자 투쟁은 시작부터 벽에 부딪힌다. 가사노동, 특히 육아 돌봄 노동의 벽이다.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여성 인권이 좋아지고, 처우가 높아졌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혼도장 찍고 투쟁해라’, ‘네가 나가면 애들은 어쩌냐’, ‘네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 등 온갖 서러운 소리 다 들어가며 참아야한다. 그로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 또한 온전히 엄마에게 주어진다. 물론 아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정도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출처: 신유아]

역으로 남성노동자 위주의 투쟁을 보면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엄마들이 책임지고 거기에 생계까지 도맡아가며 투쟁을 돕는다. 심지어 가대위(가족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투쟁을 함께하는 경우도 많다. 가대위는 공동체적 활동으로 생계비 마련도 하고 역할분담을 통해 육아도 함께 돌본다. 너무나도 이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남성노동자 위주의 투쟁이기에 가능한 구조다.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고자 거리로 나왔지만 공기처럼 따라다니는 가사노동의 편견이라는 모순을 안고가야 한다. 이것은 또 다른 운동의 영역으로 병행하기 버겁다. 모든 모순과 편견을 버티며 투쟁을 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다시 모순과 편견이 중요한 결정의 이유가 돼버린다.

[출처: 신유아]

결국 처음 노조를 만들고 노조가입을 설득하던 조직력은 결정적 순간 한계를 느끼며 설득의 어려움을 겪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모순과 싸워야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하기도 주저하게 된다. 사회 구조적 문제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는 모순과 싸워야한다. 뫼비우스의 띠 같다.

여성노동자 투쟁을 시작하기 전에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한 노조나 연맹 차원의 대책을 가지고 준비하는 것은 어떠한가. 사회적 지원책이 없는 한 투쟁의 한계는 너무도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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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성

    가사노동 과 육아노동 은 유독 여성에게 지금시대에서도 강조되고있습니다 평소 워킹맘들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투쟁맘들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수 있을까요
    신유아동지의주장에 동의합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조연주

    아진짜 투쟁투쟁 ㅠㅠㅠ

  • 양평촌놈

    가사노동 과육아 정말 힘든것 입니다. 저는1인가족이라 여성들이 집안에서 하는일이 너무많다고 생각 하지요. 가정주부 정말 많은 일들을 한다고 생각 하지요. 지금노조에 참여 하시는분들 너무 힘들것 같지요. 그래도 언제가는 희망이 생길 것입니다.

  • 마스크미인

    노조가 왜 있어야 하는지 머리로는 분명히 압니다.
    하지만, 미성년 아이를 두고 있는 워킹맘들은 파업으로 집을 비우면...집은 전쟁터 처럼 이산가족이 됩니다.
    한놈은 친정에, 또한녀석은 시댁에...신랑은 야근으로 회사에....
    눈앞에 현실벽이 높아 무너질때가 많지만, 그래도 우리는 꼭 해낼것입니다.암요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