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붕괴론’이라는 유령

실정의 돌파구는 전쟁?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

이는 4.19이후 혁명으로 무한 자유를 획득한 학생들의 평화통일 염원을 담은 구호가 아니다. 2016년 10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의 날에 북한 주민을 향해 탈북을 직접 촉구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며 탈북을 대놓고 ‘촉구’했다. 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붕괴론’을 염두에 두고 북한 지도부와 주민을 분리해 북한 주민을 상대로 직접적인 동요를 추동하는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의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이런 발언은 새삼스럽지도 않고 일관성도 없다. 남북 모두 상호 비방과 선전선동을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적 능력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체제 우월성 차원에서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 역시 논리적 연관성이 별로 없다. 관리는 쌍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남북관계의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 지도부와 주민을 분리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대규모 수해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거부한 점에서 일관성이 없다. 남북관계를 비대칭, 불균형, 부등가, 불공정 등의 관계로 들이대지만 이 역시 별무 소용이다. 남북관계는 끊임없는 헤게모니 쟁투이기 때문이다.

다목적용의 ‘북한 붕괴론’

문제의 핵심은 ‘북한 붕괴론’이 대북 공격으로 현실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상반기에 남북 군사적 충돌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오바마가 북한을 공격할 마음을 굳혔고 박 대통령에게 미국의 북한 공격에 동의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근혜는 오바마의 요청에 긍정적(?)인 답변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도 없진 않다. 미국은 선제 타격론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다. 오바마와 박근혜는 상호 교감 속에서 북한에 대해 위협적인 발언을 수차례 주고받아 왔다. 박근혜는 지난 2월 ‘레짐 체인지’를 언급한 이후, 8월에는 ‘체제 동요의 가능성’을 언급했고, 9월에는 ‘김정은의 정신상태가 통제 불능’이라고 발언 수위를 높여 왔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미국 측에서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발언을 반복해 왔다. 오준 주 유엔대사가 갑자기 사표를 낸 배경도 미심쩍다.

대북 선제공격론의 조건은 북한을 완벽하게 괴멸시켜 반격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군사적으로 우세하다 해도 남한도 그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 피해는 개돼지로 인식되는 노동자 민중이다. 그래서 소문은 소문이 아니라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노동자 민중의 희생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근혜의 실정으로 인해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은데다 현 집권 세력의 괴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가미되면 오히려 전쟁은 최고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대북 선제공격론이 중국과 러시에 대한 선전포고와 다름없으므로 이들의 동의와 양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고려하면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판단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위협수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상투적이며 비효율적이다.

백남기 농민 문제, 사드 배치 문제,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 우병우 문제, 성과 해고제, 국정교과서 문제, 건국절 문제 등 수 많은 사회적 문제를 ‘진흙탕’으로 만들어 놓고 이를 정면 돌파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반대 세력의 입을 막고 반격을 약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악화한 남북관계의 원인을 김정은 탓으로 돌리고 싶을 것이다.

‘북한 붕괴론’의 허와 실

이처럼 ‘북한 붕괴론’은 1990년대 초반부터 심심찮게 등장한 하나의 유령이다. 이 유령은 집권 세력에게 마법의 묘약이다. 북한 붕괴론은 대북 정책 실패를 은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붕괴론’ 신봉자들은 북한이 붕괴한다면 한반도 문제가 다 풀릴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들은 그저 북한을 규탄하고 전쟁 불사를 외쳐야만 의로운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북한 붕괴론’은 미래의 여러 가능성을 다 책임질 수 있는 주장이 될 수 없다. ‘수령 유일 지도체제’의 절대권력과 고도로 통제된 폐쇄적 공간이 북한의 내구력을 강화해 주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북한 붕괴론’은 매우 위험한 접근방식이다. 김정은과 박근혜 양측 모두 서로를 오판한다면 비극은 도둑처럼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지금 노동자 민중이 할 수 것은 어떠한 전쟁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굳은 결의와 실천이다. 전쟁과 전쟁세력은 노동자 민중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박근혜는 자신을 ‘무오류의 신’이자 ‘군림도 하고 통치도 하고’ 있는 ‘전지전능한 군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에게도 낡은 제도의 모순을 해결하고 날로 피폐해 가는 나라를 거듭나게 하겠다는 오랜 유신의 꿈이 있다. 강력한 권력의 출현, 그것만이 나라의 고질적인 병폐를 뿌리 뽑고 민생을 안정시킬 유일무이한 길이고, 만민은 대통령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다. 청명이니 공의니 하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자신의 권력욕을 포장하고 붕당을 획책하여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무리는 가차 없이 처단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집권 세력은 안보, 성장, 신자유주의만 있을 뿐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비전도 없다. 야당도 대안세력으로서의 능력이 없다. 소로우(Henry D. Thoreau)의 주장처럼 모든 사람에게 혁명의 권리가 있다면 나쁜 정부에 대해서, 그 폭정이나 무능, 부도덕에 대해서 불복종하고, 이를 거부해서 마침내 혁명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조건들이 자신의 사고와 일상생활에 대해 강한 규정력을 발휘한다면 어떠한 권리를 -그것이 혁명권이라도- 실천적으로 행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당장 형해화된 민주주의 국가의 폐지를 요구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보다 나은 국가를 요구해야 한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의 말이 늘 새롭다.(워커스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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