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진실 인양은 이제 시작이다

[워커스 인터뷰] 박종운 1기 세월호특조위 상임위원

세월호 침몰 사고 3주기를 닷새 남기고 선체가 뭍에 올랐다. 거대한 선체를 보기 위해 모인 세월호 가족과 시민의 모습은 한없이 작았다. 우리 사회의 적폐 앞에 선 모습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세월호를 끌어올렸고 이제 또 다른 진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세월호 가족을 비롯해 수많은 관계자들이 선체 인양 작업을 애태우며 지켜봤다. 《워커스》는 이들 중 박종운 변호사를 지난달 12일 만났다. 박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 (대한변협)가 추천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이었다. 위원장 직속 3개 소위 중 안전사회소위 위원장으로 일했다. 그 전에는 대한변협 세월호특위 대변인과 현장대응 지원단장을 맡았던 그다. 세월호특별법 초안을 만드는 데도 참여했다. 정부가 세월호특별법을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강행했을 때는 광화문광장 노숙농성에도 함께 했다. 소위 ‘박수동영상’으로 여당과 보수단체의 공격을 한 몸에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워커스》는 박종운 변호사에게서 선체 인양 과정에 대한 평가와 세월호 진상규명과 새로운 사회를 위한 과제를 들어봤다.

  박종운 변호사

특조위 때부터 선체 인양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결국 지상에 올랐는데 어땠는가

처참했다. 여기저기 잘리고 구멍까지 뚫렸다. 오랜 세월 바다에 잠겨 흉칙했다. 쇠사슬로 끌어올리다 두 군데나 찢어졌다. 그 찢어진 모습이 유가족의 마음이고 국민의 마음이 아닌가. 3년 동안 이렇게 찢어진 마음으로 살아온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세월호 인양에 말이 많았다. 왜 필요하다고 봤는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피해자 인권의 관점에서 필요하다. 미수습자 아홉 분 뿐 아니라 희생자 중에서도 생체조직이 다 못 올라온 경우가 있다. 유류품은 사고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증거기도 하지만 가족에게는 기억의 상징이다. 일종의 증거법적 관점으로도 필요하다. 세월호는 침몰과 급속 침몰의 원인을 밝히는 데 가장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물적 증거다. 마지막으로는 기억의 상징물로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는 세월호 같은 참사가 발생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선체를 보며 기억하자는 것이다.

선체 인양이 갑작스런 감이 없지 않다.

원래 작년에 세월호 받침대인 ‘리프팅빔’을 다 깔았다. 그래서 올 3월이나 4월 사이에 인양될 것이라고 예견은 했었다. 그런데 3월 10일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는 과정에서 해수부가 상당히 속도를 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 파면 결정 뒤 불과 8일 만에 인양 작업이 시작됐다. 선체조사위법도 3월 2일 국회를 통과해 21일 제정, 공포됐는데 해수부는 그 중간(18일)에 이미 예비 인양작업에 들어가 버렸다. 순서대로 보면 선체조사위가 꾸려진 이후에 선체조사위의 지도점검을 받아 선체를 인양해야 했다. 혹여 해수부가 선체조사위의 지도점검을 피하려고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게 빨리 될 것 같으면 그 전에도 할 수 있었는데 왜 하지 않았는가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인양이 지연됐는데

최소 6개월 전에 인양됐어야 한다. 정부는 2014년 11월 11일 선체 수색 종료를 선언했는데, 이는 미수습자 가족도 동의했던 것이다. 그때 가족들은 당연히 곧 인양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달 간 인양 결정 자체가 안됐다. 그만큼 시간을 끈 것이다. 원래 순서대로라면, 11월 그렇게 수색이 중단 됐으면 겨울에 일을 못할 때 선체 인양을 결정하고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정했어야 했다. 그리고 봄이 올 때 우선 협상 대상자를 활용해서 유실물 방지 대책을 세우고 인양을 시작했으면 작년에 인양됐어야 했다. 물론 인양 과정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 인양 결정 후 여러 가지 실패를 했다. 이 과정에서 늦어진 것까지 합치면 더 빨리 됐어야 한다. 세월호가 인양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환영하고 당연히 그 노고를 치하해야겠지만 너무 늦어졌다.

세월호 선체와 함께 진실도 인양될 수 있겠는가

주로 인양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미수습자를 온전히 수습한다거나 증거물을 보존한다는 데에는 별로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비판을 해야 하는데 인양이 잘못되면 안 되기 때문에 말을 아꼈다. 나중에라도 선체조사위나 감사를 통해 지적돼야 한다.

선체가 상당히 훼손됐고 자체 부식도 많다. 유실물 대책도 문제였다. 과연 현재의 선체로 침몰 원인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을지 단언하기 어렵다.

우선 인양과정이 신중하지 못했다. 선체가 원형 그대로 올라왔다면 상당부분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좌측 선미(배 뒷부분) 램프(대형 화물칸 출입문) 문제다. 원래 이게 꽉 닫혀 있어야 하는데, 특조위 2차 청문회 때 선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햇빛이 비쳤다고 한다. 그 말은 물이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침몰의 직접적 원인 또는 최소한 급속한 침몰의 원인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래서 선체를 끌어올리면 이를 확인하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을 인양 과정에서 잘라버린 것이다.

선체 내 장치들도 흐물흐물 해져 다 무너져 내렸다. 전기선이나 기계 장치들이 대개 망가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조타기(배의 키를 조종하는 장치)가 고장이 났던 거냐, 아니면 사람이 잘못 돌린 것이냐를 규명하려면 조타 장치들이 다 그대로 있어야 한다. 물론 조타기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저 뒤에 있는 방향타까지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간에 끊어져 있으면 원인을 규명하기가 어려워진다.

유실물 방지 대책도 문제였다. 2014년 11월부터 유실물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계속 얘기했었다. 그런데 상하이샐비지가 우선협상 대상자가 된 뒤 유실물을 방지할 때까지 사실상 방치됐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유실됐을까. 그러면 그때는 못했다하더라도 최소한 인양할 때는 유골이나 유류품이 유실되지 않도록 제대로 처리했어야 한다. 그런데 선체에 구멍을 뚫었을 때 유실물 방지 대책을 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인양 과정에서도 유실물 방지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어야 하지만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끌어 올리니 샌 것이다. 동물뼈 논란도 황당했다. 왜 섣불리 가족들에게 알렸느냐는 비판을 하지만, 비판할 점은 발굴전문가나 국과수 전문가를 동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다. 그래서 뼈가 흘러 나왔을 때 바로 감식했어야 한다.

제2 특조위의 필요성이 나오고 있다

선체 인양으로 진상 규명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인양은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데 한정된다. 여전히 구조 실패, 참사 이후 정부나 언론의 대응 문제, 특히 안전사회 종합대책이나 피해자 지원 대책 문제가 남아 있다. 세월호 침몰이 참사가 된 핵심은 구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침몰했기 때문은 아니다. 침몰한다고 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볼 때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구하지 못하거나 안했다. 세월호 진실의 핵심은 침몰의 원인 보다 구조 실패에 있다. 이를 밝혀야 한다.

국정원 논란은 어떻게 보는가

국정원은 현재로선 증거가 없다. 법적으로는 국정원이 세월호 주인이 아니다. 지배력을 실제로 행사한 것인가가 핵심인데 우리도 많은 노력을 했지만 청와대와 국정원이 엄청나게 방해를 했기 때문에 어려웠다. 다만 국정원이 청해진 해운에 여러 가지 편의를 봐준 흔적은 있다. 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안 된다. 청와대는 권력자가 물러났지만 국정원은 여전히 정부 기관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를 구하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도 몰락했다

세월호가 촛불의 전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촛불은 항상 세월호 진상 규명을 외쳤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항상 선봉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대응이 스스로를 위험한 상태로 몰아갔다. 대표적으로 참사 직후 5월에는 세월호 가족들을 청와대로 모시고 울면서 담화를 했던 사람이 왜 6, 7월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느냐다. 권력층은 세월호 특별법 만들 때 계속 방해했고,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은 인해장벽을 쳤다. 정부가 아니라 일부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세월호는 가장 쉽게 박근혜 정부의 허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특조위 때 개인적인 공격도 받았다

2015년 11월 6일 안산에서 열린 세월호 행사 때 한 유가족 분이 박근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비판적 발언을 했다. 국정교과서 문제가 떠오르던 때다. 그 유가족은 ‘이런 식이면 세월호 진상 규명도 묻히겠구나’라며 진상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그러면서 저도 함께 박수를 쳤다. 그런데 MBC는 이를 편집해 논란을 만들어냈다. 이른바 박수동영상. 여당은 국가 정무직 공무원이 어떻게 대통령 모욕 발언에 박수를 칠 수 있냐고 난리를 쳤다. 보수단체는 나를 고발하고 시위했다. 그 기자는 MBC의 사내 특종상을 받았다. MBC는 당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으로부터 해당 영상을 건네받아 보도했다. 그런데 이 동영상이 흘러간 과정도 공식적인 경로가 아니었다. 하 의원은 이 동영상을 가지고 있다가 11월 23일 세월호특조위가 대통령 7시간에 대한 행적 조사를 결정한 직후 공개했는데 일종의 카드로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차기 정부에서의 진상 규명, 어떻게 전망하는가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진보적인 정부는 아니다. 중도 진보적인 정부라고 할까. 하지만 그 정도라도 좀 나을 것이다. 객관적인 한계는 인정해야 한다. 정권이 바뀐다고 세상이 다 바뀌지는 않는다. 누가 잡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개인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 전체의 한계다. 이른바 깨어있는 국민들이 흐름을 이끌어 간다고 본다.[워커스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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