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페미니즘’, 단지 네 글자가 필요하다

[워커스 이슈⑧]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인터뷰

지방선거 종료 한 달. 낙마한 정치인 중 이토록 자주 소환되는 정치인이 있을까 싶다. 라디오 고정 출연, 인터뷰, 각종 행사에 그의 이름이 줄곧 오르내린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였던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의 이야기다. 원외 정당 후보가 보여준 놀랄 만한 선거 결과, 페미니즘 이슈에서 그가 던지는 파격적이고 적극적인 발언은 과연 새로운 흐름이다.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거세지고 있는 현재. 그의 발언들은 페미니스트들에게 ‘그럼에도 자리를 지켜달라’는 호소와 용기로 다가온다.

난민혐오,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정치혐오와의 싸움을 선언했다. 《워커스》는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페미니즘 운동의 과격한 구호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리고 사회적으로 만연한 혐오를 우리는 어떻게 부숴야 할지 등을 신지예 공동운영위원장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오늘공작소’ 사무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출처: 김용욱]

“페미니즘 정치가 세상과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서울시민의 1.67%(8만2874명)가 신 위원장을 선택했다. 사표에 민감한 대한민국 국민들로선 꽤 과감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를 어떻게 평가하나.

부족한 예산과 인력을 갖고 기적적으로 치러낸 선거였다. 과거 녹색당의 선거 전략과 달랐다. 그동안 녹색당은 선거 공보물에 깨알 같은 텍스트로 정책을 담아내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메시지는 강하고 두껍게, 끝은 뾰족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선거 캐치프레이즈도 최대한 줄였다. 처음에는 ‘눈부시게 평등한 서울로, 신지예’였다. 너무 길어서 다 쳐내고 ‘페미니스트’만 남겼다.

페미니스트 후보로서 가장 먼저 바꾸고 싶었던 것이 뭔가.

정치 혐오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온다. 강남역 살인사건, 낙태죄 폐지, 미투운동, 몰카 반대 시위는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국가와 정치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일례로 미투 폭로 후 가해자가 자살하면 수사는 종결된다. 피해자에게 백래시가 가해지고, 고립되고, 꽃뱀으로까지 몰린다. 불법촬영도 얼마나 오랫동안 이야기했나. 리벤지 포르노, 소라넷 같은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니 여성들의 분노가 쌓이고, 구호는 점점 더 강해진다. 여성들의 이러한 경험은 정치 혐오로 이어진다. 정치인들이 먹버(먹고 버린다)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정치하면 어떻게 세상이 변하는지, 일상이 변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페미니스트가 시장이 되면 세상은, 일상은 어떻게 변하나.

서울시장은 입법 권한이 없지만 매해 예산 35조 원이 배정된다. 사업 방법에 따라 강력한 메시지를 낼 수 있다. 나는 서울시의 모든 사업에 성평등 계약제를 도입한다는 공약을 냈다. 여성의 건강권을 위한 정책으로 보건소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현재는 보건증 발급이나 금연교육을 하는 곳으로만 알려진 보건소를 이주여성, 장애여성, 성소수자들의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젠더건강센터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곳에 산부인과 시설을 마련해 여성들이 편하고 값싸게 진료를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젠더건강센터에 미프진(자연 유산 유도약)부터 구비해 낙태죄에 대한 마지막 방어선을 치고 싶었다. 초경 전이나 완경 이후 여성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남성들에게 피임교육을 제공하는 역할도 생각했다. 또한 서울시 개방직 공무원에 대한 여성 과반제 정책 등으로 여성의 삶을 다양하게 끌어내고 싶었다. 현재 서울시 본청 2급 이상 공무원 중 여성이 없다. 멸종이다. 고용할당제로 서울시 공무원 중 여성이 40%가 넘지만 문제는 유리천장이다. 4급 개방직 공무원에 한해 시장 권한으로 여성을 먼저 고용하는 공약을 냈다.

‘페미니즘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여성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페미니즘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에게 두 번 실망했다. 첫 번째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낙태죄에 대한 의견을 밝힌 것이다. 그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제로섬으로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며, 사회적 의제로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짜 페미니즘 정부라면, 낙태죄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낙태죄는 여성의 임신중지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정부는 왜 지금 시대에서도 낙태죄 폐지 입장 하나를 내지 못하나. 왜 법무부가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여성은 무책임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만드나.

두 번째는 불법촬영물에 관해 정부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4월 여성가족부에서 불법촬영물 삭제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여가부(여성가족부) 산하의 진흥원에서 진행하는 1년짜리 단기 용역 사업으로 예산은 고작 6~7억 원 정도다. 센터가 만들어져도 부족할 지경인데, 1년짜리 단기 용역 사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P2P홈페이지 관리와 불법촬영 기계에 대한 통제, 법률 구비 등 종합적인 정책이 나왔어야 한다. 불법촬영물은 가해자를 검거하기 어렵다. 사건에 대한 접근도, 시스템 마련도 다른 사건들과 달라야 한다. 정부가 법적 제도적 대책을 고민하는 것이 아닌, 일시적인 정책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출처: 김용욱]

“맬컴 엑스가 있었기에 마틴 루터 킹의 목소리가 들린 것”

‘문재인 재기해’라는 구호에 대해 최근 ‘잘못됐다, 한국사회의 가부장제에 도전하지 못하는 단어’라는 입장을 밝혔다. 어떤 취지의 말이었는지 듣고 싶다.

‘재기해’라는 단어가 가부장제에 저항하고, 가부장제 자체를 없애겠다는 비전을 담고 있을까? 개인적으론 아니라고 본다. 그것 또한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그렇다고 지금 여성들의 구호를 단순히 폭력적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은 더욱 아니다. ‘재기해’라는 단어가 나온 맥락을 봐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몰카 반대 시위 며칠 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이 도화선이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편파수사라는 말은 맞지 않다. 일반적인 처리를 보면 남성 가해자의 경우 구속되고, 엄벌이 되는 비율이 더 높았다”며 “우리 사회가 여성들이 입는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 등의 무게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파수사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면서 덧붙인 워딩들이 여성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여성들은 그동안 분풀이, 하소연, 명예심,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누누이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또다시 그런 식의 프레임으로 짜 맞췄다. 구호의 맥락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했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었다.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어내는 구호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막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최근 페미니즘 운동에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크다.

도덕적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이것은 함정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욕설 한마디 없이 촛불만 들고 싸우나? 불과 2년 전 촛불집회 때도 ‘사형하라’ ‘자폭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삼성 이재용을 향해 ‘자폭하라’ ‘해체하라’ 하지 않나. ‘공격성’을 이유로 ‘재기하라’는 구호의 특수한 맥락을 삭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공격성, 폭력성을 문제 삼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온건하거나 온순해지길 바라는 거다. 전략적인 문제다. 흑인 인권운동에서 마틴 루터 킹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었던 것은 맬컴 엑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어야 온건한 방식의 이야기가 들린다. 래디컬 페미니즘을 공격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왜 그렇게 분노하는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언론과 비판 여론이 ‘워마드’와 ‘재기해’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뭉뚱그려 비판받는다. 2015년 리부트된 페미니즘이 현재 어떤 처지에 있다고 보나.

《백래시》라는 책은 여성운동이 일어났던 시기마다 어떤 반격이 뒤따랐는지를 설명한다. 80년대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자 이를 ‘불임증’이라고 소개하면서, 미국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언론이나 각종 통계, 전문가들은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의 삶을 얼마나 망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 여성들은 히스테릭하다고 몰아갔다. 지금도 그렇다. 페미니스트들에게 반사회적이고 공격적이며 비정상적이라는 이미지를 씌운다. 최근 서지현 검사, 김지은 씨에게 비이성적인 여성이라는 프레임이 스며들고 있다. 워마드 게시물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화된다. ‘인류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여성’ ‘칼을 든 여성’의 이미지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워마드의 이미지는 곧 페미니즘으로 연결된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은 왜 자정능력이 없느냐는 식의 공격이 이어진다.

“페미니즘 포 올(feminism for all)의 구호가 만들어지길”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제주도 예멘 난민 수용에 반대했다. 어떻게 봐야 하나.

난민을 받아들이자는 페미니즘 모임을 해 볼까(웃음). 페미니즘 안에도 존재하는 이런 흐름은, 한국 사회가 가진 난민에 대한 깊은 혐오가 원인이라고 본다. 그리고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불안증이다. 현재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있는 분들은 트라우마타이즈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심적 타격을 입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심리적 불안감이다. 흑백논리에 빠지기도 하고,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기도 한다. 이는 단지 성폭력 피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여성들은 대부분 비슷한 심리적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몰래카메라가 두려워 공중화장실에서 얼굴을 가린다. 혹시 나체 사진이나 영상이 온라인에 돌아다니지는 않을까 항상 두렵다. 엄청난 심리적 불안감이다. 어떻게 이성적일 수 있겠나. 난민 수용에 대한 문제는, 여성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 사회의 문제를 더욱 드러내는 것이라 본다. 이 같은 반응은 정치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난민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은 세계에서 난민을 네 번째로 많이 배출해 낸 나라다. 한반도 인구의 10%가 해외에서 살고 있다. 국제 난민 협약 가입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국가는 여성들의 공포 뒤에 숨어서 ‘더 깐깐하게 심사하겠다’고만 한다. 이미 한국은 충분히 깐깐하게 심사하고 있다. 난민 인정률은 1%밖에 안 된다. 독일은 지역별 할당제와 인구, 예산을 체계적으로 정립해 난민 100만 명을 수용했다. 그들은 원주민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공동체 교육, 일자리 정책 등을 시행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그런 정책적 과제들을 고민하지 않는다. ‘깐깐한 심사’나 ‘치안 강화’ 같은 단편적인 대책은 국민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같은 정책은 난민에 대한 여성과 시민의 편견을 공고히 한다. 여성들도 그 정도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공포심이 더 커진다. 정부는 말했어야 한다. ‘난민은 세계의 시민이고, 그들의 자녀들은 우리 국민의 자녀다. 그들은 앞으로 한국 국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다양성을 통해 더욱 건강하고 당당해질 것’이라고 선포했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구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제3물결로 넘어왔다.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가부장제와 성폭력, 성차별을 없애는 운동이 됐다. 다양한 성을 받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남성들도 이에 동조하고, 트렌스젠더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을 퍼뜨려나갔다. 페미니즘 포 올(feminism for all)이라는 구호를 만들어 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아직 운동 초기다. 그동안은 리버럴 페미니즘이 강했고, 지금은 래디컬 페미니즘 쪽에 가깝다.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현재 급부상 중이다. 운동 초기에는 여러 소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현재 페미니스트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백래시》에 따르면, 반격에 힘을 실었던 사람들이 여성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이름이 알려진 여성운동가가 ‘나는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말했을 경우, 이 또한 백래시의 한 흐름으로 읽힌다. 선의를 가지고 운동적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외부에서는 ‘그것 봐라, 쟤들이 하는 건 잘못됐다. 신지예는 조금 낫고 다른 래디컬 페미니즘은 틀렸어’라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결국 페미니즘 운동을 막는 일이 된다. 설사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운동이 현재진행형인 지금은 여성 목소리에 힘이 실려야 한다.

운동사회와 페미니즘은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할 수 있을까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전통적인 소통, 조직 방식으로 운동하는 시대는 끝났다. 다양한 운동과 방식이 있듯, 페미니즘 운동과 방식도 다양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운동을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러면 더욱 강력해지고 확산될 것이라 본다. 그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페미니즘 운동을 서포트하고,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해석해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활동 목표는 뭔가.

오는 2020년 녹색당 원내 진입이 목표다. 이를 위한 활동들을 열심히 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여성문제를 포함해 평등에 관한 활동들을 해 나가고 싶다. 이번 선거에서도 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국은 불평등지수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나라다. 성별, 자산, 소득, 지역 등 사회 곳곳에 불평등이 만연해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도생의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 불평등을 없애나가는 활동들을 해 나가고 싶다.[워커스 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