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동의’는 만능키가 될 수 없다

[미디어택] 미디어가 사건을 기록하는 ‘선 넘는’ 방법


미디어 비평을 하다 보면 곤란한 때가 있다. 어떤 콘텐츠가 좋고 나쁜지 딱 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19등급 드라마’를 주제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동 성폭력범 조두순 캐릭터의 등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그랬다. tvN 〈마우스〉 강덕수와 SBS 〈모범택시〉 조도철은 누가 보더라도 조두순을 캐릭터로 가져온 것이 분명했다. 이처럼 실화를 드라마로 가져올 때의 유의미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사건에 대한 주목도를 높일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법제도 개선을 끌어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 사건을 콘텐츠에서 다룬다는 것은 줄을 타는 행위와 다름없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미디어와 실제 벌어진 사건·사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그만큼 ‘실화’를 다룬 콘텐츠들이 넘쳐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적정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최소한의 선’이라는 걸 설정해보곤 했다. 어쩌면 그것이 미디어 비평에 있어서 최대치의 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두순 사건을 다루는 것은 표현의 자유…하지만 지켜야 할 선

미디어가 실화를 다루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tvN 〈마우스〉와 SBS 〈모범택시〉에서 조두순 캐릭터를 가져온 것만을 탓할 수는 없는 이유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그리는지는 다른 문제다.

tvN 〈마우스〉가 조두순을 그리는 방식은 조금 위험하다. 드라마에서 강덕수는 피해자에 대한 재범 가능성을 계속 염두에 둔 것처럼 그린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강덕수는 피해자가 어디에 사는지 궁금해한다. 피해자를 몰래 찍은 사진을 보고는 “이쁘게 잘 컸네. 우리 아기”라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횡단보도에서 마주친 피해자에게 귓속말로 “기대해. 비 오는 날 찾아갈게”라며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이 드라마에서 피해자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등장하지만, 공포와 불안한 감정을 그대로, 장기적으로 노출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드는 질문은 그런 것들이다. ‘실제 사건을 가져와서 드라마가 하려고 하는 말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드라마가 도움이 될 것인가’.

드라마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두순이 출소하던 날 집 앞까지 쫓아간 무수한 기자들과 유튜버들이 있었다. 그리고 밖에서 그 집을 비추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던 무고한 시민이 조두순으로 둔갑돼 인터넷상에 올라왔고, 개념 없는 언론사들이 그를 기사로 내보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실화’를 콘텐츠로 가져올 때 최우선 고려해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와 그 주변인들에게 2차 가해를 줄 만한 부분은 없는가. 그것이 최소한의 ‘선’일 수 있다는 얘기다.

CCTV 영상이 다양한 콘텐츠 속에 깊숙이 들어왔다

‘실제 사건이 콘텐츠로 담긴다’는 큰 틀에서 보면 ‘뉴스’ 또한 비판에서 벗어날 순 없다. 지난 11일 JTBC 〈뉴스룸〉은 평택항에서 일하다가 300kg의 쇳덩이(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덮쳐 사망한 이선호 씨의 사고 정황이 담긴 CCTV 영상을 입수해 공개했다. 모자이크 처리했고 직접적으로 덮치는 순간은 삭제했다고는 하지만 적절했는지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CCTV 영상을 뉴스를 통해 그대로 노출해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MBC 〈뉴스데스크〉는 인천에서 발생한 가족 및 친지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당시 상황이 기록된 CCTV를 공개하면서 큰 비난에 직면했었다. 가해자가 각목을 휘두르는 장면 등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폭력적인 모습이 그대로 노출됐기 때문이다. 빙판길에 미끄러진 버스와 가로등 사이에 끼어 사망하는 영상이, 때로는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 강물에 빠져 사망하는 CCTV 영상이 뉴스를 통해 전달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블랙박스 설치가 한국 사회에 보편화하며 더욱더 확장돼 왔다.

데이트폭력 피해자 여성들의 CCTV 영상은 단골손님처럼 뉴스에 등장하기도 했다. 2015년 4월, 창원에서 한 남성이 여자친구를 폭행·살인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사망 전 엘리베이터에서 폭행하고 피해자를 끌고 가던 CCTV 영상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2017년 7월, 만취한 남성이 여자친구한테 무차별 폭행을 퍼부은 것도 모자라 트럭을 몰고 여성을 향해 돌진한 사건도 CCTV 영상과 함께 알려졌다. 2020년 11월, 남성이 부산 지하상가에서 쓰러진 여성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는 핸드폰만 챙겨 간 CCTV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사건들은 그야말로 ‘대표적’일 뿐 무수한 사건·사고들이 아무런 규제 없이 노출되고 있다.

예능프로그램도 논란을 피해가긴 어렵다. TV를 통해 일반인들이 출연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게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그만큼 논란도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한번 노출되면 ‘삭제’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피해자 동의’라는 말은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면 콘텐츠 제작자들이 으레 하는 말들이 있다. ‘피해자로부터 사전 동의를 받았다’라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전 동의를 받았다고 한들, 피해 장면이 담긴 CCTV나 그를 재현한 모습을 접하는 피해자들과 주변인들의 고통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이제는 ‘적극적 동의’ 과정이란 걸 고민해야 할 때다.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거나 CCTV 영상이 노출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포함해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콘텐츠 제작자 스스로 ‘피해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피해 장면을 재현하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CCTV 영상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사고가 발생한 구조적 원인에 접근할 방법이 없지 않다는 걸 제작자들도 모르지 않는다.

tvN 〈시그널〉에서 이재한 형사는 첫사랑을 연쇄살인으로 잃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사진으로만 봤겠지. 그냥 사진 몇 장으로만…. 희생자 이름, 작업, 발견 시간, 발견 장소. 그게 당신이 아는 전부지만, 난 아니야. 며칠 전만 해도 살아 있는 사람이었는데, 날 위로해주고, 웃어주고, 착하고, 그냥 열심히 살던 사람이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사건을 접하는 형사에게 한 말이다. 하지만 콘텐츠 제작자들에게도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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