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범죄자를 ‘영웅’으로 만드는가

[미디어택]

무대 중앙에 한 사람이 걸어와 선다. 그의 눈은 빠르게 좌우를 살핀다. 기자들이 얼마나 왔는지가 궁금했다. 다행히 카메라 셔터가 쉴 새 없이 터질 만큼 취재 열기가 뜨겁다. KBS·MBC·SBS 지상파는 물론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 로고가 붙은 ENG 카메라들도 나란히 정렬했다. 그와 함께 마이크도 수북이 쌓여 있다. 시선 아래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펜 기자들이 꽉 들어찼다. 하나같이 노트북을 펴놓은 그들은 ‘말 한마디’ 놓치지 않을 태세다. 이쯤이면 흥행대박이다. 왼쪽에 있는 카메라부터 중앙, 오른쪽까지 차례차례 시선을 준다. ‘자, 이제 준비했던 쇼를 보여주자.’

이것은 지난 4월 9일 노원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 살인사건 피의자인 김태현의 검찰 송치를 앞둔 도봉경찰서 앞의 풍경이다. 뒤늦게 이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여느 톱스타의 작품 제작발표회 혹은 출·입국을 앞두고 취재진의 앞에 선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범죄자 김태현, 그리고 톱스타들이 서 있던 그곳은 바로 ‘포토라인’이었다.


포토라인 ‘논란’의 역사

우리나라에 ‘포토라인’이 생겨난 때는 1990년대 중반이다. 1993년 1월,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였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던 날 취재진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정 회장은 카메라 기자들과 충돌하며 이마가 찢어졌고, 취재에 있어 최소한의 질서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포토라인은 그 이듬해에 도입됐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 사회 ‘포토라인’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그 후, 2006년 8월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포토라인 운영준칙>을 제정하고, 제1조(목적)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취재원의 인권 보호를 도모한다”(제1조 목적)라고 명시했다. 이 준칙에서 ‘포토라인’은 “다수의 취재진이 제한된 공간에서 취재해야 할 경우, 혼란을 막기 위해 취재진의 동선을 제한해 자율적으로 마련한 자율적 제한선”으로 정의됐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포토라인’은 운영 과정에서 많은 부침이 있었다. 대표적인 쟁점은 초상권 문제였다. 이는 법원의 엇갈린 판결로까지 이어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배우 전양자 씨가 검찰에 출두했는데, 그와 동행한 이들의 얼굴이 포토라인을 통해 노출되면서 소송이 벌어졌다. 1심은 언론사가 패소했다. 카메라를 피하거나 얼굴을 가리지 않고 ‘포토라인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초상에 대한 촬영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2심에서 곧바로 뒤집혔다. 고등법원은 ‘포토라인 자체가 취재, 촬영이 예정된 공개적인 장소였다’는 점에 더 의미를 둔 것이다. 이 사건은 1심과 2심의 판결이 크게 엇갈렸으나, 상호 합의로 소송이 종결됐다.

포토라인이 자율적으로 운영되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8년 1월, 사법농단 사건으로 검찰 소환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중앙지검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을 그냥 지나쳐 ‘패싱’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비판도 늘 따라다녔다.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태 당시 최서원 씨가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는 날에는 취재진이 몰려 포토라인이 붕괴됐다. 그 과정에서 최 씨가 쓰러지면서 벗겨진 신발이 화면에 포착됐다. 당시 언론매체들은 신발의 브랜드에 집착하는 보도들을 쏟아냈다. ‘그게 무슨 저널리즘이냐’라는 비판이 제기된 사건이었다.

그러는 동안 권력자들이 포토라인을 패싱할 수 있는 방법과 사례도 쌓여갔다. 이에 따른 ‘차별’ 논란도 끊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2018년 5월, ‘홍대 누드모델 촬영’ 사건의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서면서 성차별 논란까지 더해졌다. ‘불법 촬영’ 관련 남성 피의자들과의 차별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된 것이다.

포토라인의 최대 쟁점 중 하나는 형사재판의 근본이 되는 무죄 추정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포토라인이 여론재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여야 정치권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부분이었으며, 포토라인 시스템을 바꾸는 실마리를 제공한 논리가 됐다. 2019년 12월, 법무부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전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 준칙)>을 시행했다. 경찰 또한 2020년 12월, <경찰 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만 포토라인을 설치키로 했다. 그러나 정치권 내 ‘포토라인’을 둘러싼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첫 수혜자가 조국 전 장관이라는 비판과 함께.

포토라인을 둘러싼 새로운 유형의 문제

그동안 ‘포토라인’을 둘러싼 쟁점은 ‘취재원 보호’, ‘공개 수사 안착과 국민의 알 권리’, ‘초상권 등 인권침해’, ‘무죄 추정 원칙과 망신 주기 식 여론재판’ 그 어디쯤 존재해왔다. 하지만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태현이 포토라인에서 보여준 모습은 전혀 다른 유형의 문제를 보여준다.

서울경찰청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 김태현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시국과 맞물려 김태현은 포토라인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됐었다. 그런데도 김태현은 태연히 마스크를 벗었다. ‘유족에게 할 말은 없느냐’는 질문에 경찰에 양해를 구해 결박된 팔을 풀고는 무릎을 꿇었다. 이와 관련해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굉장히 침착하고 뻔뻔하고, 말로는 반성한다고 하면서 카메라를 주의 깊게 응시했다. 얼굴까지 다 보여주면서. 그게 수치심이나 죄의식이 있는 사람의 행적으로는 보이진 않았다”라고 분석했다.

이 섬뜩한 행보는 김태현이 처음은 아니다. n번방 성 착취물을 제작·유통한 조주빈은 포토라인에서 “손석희 사장님, 김웅 기자님, 윤장현 시장님 등, 저에게 피해를 본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죄한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모텔 투숙객을 살해하고 한강에 시신을 유기한 장대호를 보자. 장대호는 ‘신상 공개’ 대상자였음에도 경찰은 그를 포토라인에 세우지 않았다. 이유는 확실했다. 수사당국은 “장대호가 언론에 공개될 때마다 돌발 언행을 한 것을 고려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장대호는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 생애에 또 그러면, 너 또 죽는다”라고 말해 충격을 준 바 있다.

김태현·조주빈·장대호에게 ‘포토라인’은 어떤 의미였을까. 포토라인에 선 그들은 조금도 하찮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앞서 언급했듯 스타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범죄자들은 이제 포토라인 시스템을 십분 활용해 자기를 과시하고 있다. 그 앞에 선 언론의 모습은 어떤가. 범죄자의 스피커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가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범죄자가 영웅으로 비치도록 언론이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제는 그사이 그들을 추종하는 범죄자들이 양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범죄자들에게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 잘못일까. 그것이 범죄자들에게 레드카펫이 될 것이라 걱정하는 건 단지 기우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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