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막아내는’ 것이 아닌 ‘함께 겪는 것’

[이슈③]

차례

① 탄소중립위원회 청소년 위원은 왜 사퇴를 선언했나
② 민주주의의 위기와 기후위기
③ 기후위기, ‘막아내는’ 것이 아닌 ‘함께 겪는 것’
④ 기후정의운동은 ‘사회적 대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⑤ ‘기후정의 선언’에서 ‘기후 총파업’ 까지
⑥ [워커스 사전] 탄소중립
⑦ 기후위기, 세상을 멈추는 노동자


  기후정의운동가들이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막식이 열린 지난 5월 30일, P4G가 기후위기의 해결과는 무관한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에 불과하다며 개최 장소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비폭력 기후불복종 직접행동을 펼쳤다.
[출처: 황혜준]

지난 8월 어느 날,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합동 사회장’에 갔다. 발언자가 너덧 명, 실무자가 두세 명 정도였고, 조문객은 나와 나의 동지뿐이었다. 다 합쳐도 열 명 남짓이어서 조문객보다 장례를 꾸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틀째인 데다 날이 흐려 그런지 참 휑했다. 교통도 편한 광화문 한복판이었는데. 비가 툭 툭 내리기 시작했다. 나와 동지는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발언을 들었다.

“뉴스에 나옵니다. 폭염에는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나가지 않았습니다. 나가지 않았는데, 집안에서 죽었습니다. 이분이 숨을 헐떡일 때, 정말 죽을 것 같았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구청에서도, 시청에서도, 주민센터에서도 아무도 관심 주지 않았습니다. (…) 코로나로 무더위 쉼터도 운영되지 않는 상황, 아무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폭염이 또 온다면, 코로나가 계속 이어진다면 언제라도 발생할 상황입니다. 정부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죽음입니다. (…) 에어컨만 있어도 살았습니다. 100만 원만 있어도 살았습니다.”

삼켜 누르고 삭힌 것들이 단단히 빚어져 나온듯한 음성이었다. 비장애인이었다면, 가난하지 않았다면 맞지 않았을 죽음이 도처에 있다. 그런 죽음을 도시 한복판에 드러내는 장례식이었다. 단호하게 퍼지는 목소리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장례에 참여한 이들 사이에 막을 만든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장례식을 쳐다보지 않고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과연 내가 이들을 지나친 순간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나는 파트타임으로 미술 학원에서 중학생을 가르친다. 한 학생에게 합동 사회장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한다. “우리나라에 더워서 죽는 사람이 있다고요?” 놀랄 만도 하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폭염으로 인한 사망은 제대로 파악되지도 않았다. 응급실에서 온열 질환을 호소하고 죽어야만 온열 질환 사망으로 집계됐다. 폭염에 냉방이 없어 사망해도 그곳이 집이라면 열사병이 아니었다. TV에는 연일 유명한 사람들이 잘 먹고, 놀고, 쉬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겨울에 얼어 죽거나 여름에 더워죽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비집을 틈은 없다. 언론과 미디어는 ‘웬만큼 딱한 사정’이 아니면 전하지도 않으니 내가 만나는 15살 청소년이 이런 죽음들을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냉난방과 약간의 돌봄으로 견뎌냈을 삶들이,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죽었다. 덥거나 추운 날씨가 아니라 이들을 배제하고 방치하는 사회의 차별적 구조가 죽인 것이다.

어디 가난하고 아픈 인간뿐인가. 정치사회 권력을 쥔 ‘슈퍼리치’ 인간종은 지구별을 마치 제집 안방처럼 여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이용할 대상이다. 돈 되는 자원만 나온다면 바다 한가운데도, 아마존 깊숙한 원시림에도 우악스레 파이프를 쑤셔 넣는다. 주변으로 석유나 가스가 줄줄 새 생태계가 사멸되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자본 권력이 유발한 기후생태 위기로 셀 수 없는 대형 산불, 역대급 폭우, 해양 파괴, 가뭄, 지반 침식 등이 일어난다.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재난의 시대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동식물이 터전을 잃으며 끊임없이 죽어간다. 애초에 공장에서 상품으로 출생해 살해되는 동물이 매년 700억 명이다. 쿠팡 노동자가 시계도 차지 못한 채 분초에 쫓기며 택배 박스를 옮기듯(1), 축산 공장의 노동자도 돌아가는 칼날들 사이에서 오늘도 무사하기를 바라며 동물의 몸을 자르고 피를 빼낸다. 계획된 도살 속도에 맞춰야 해서 이곳의 노동자들은 어느 현장보다 사고율이 높다.(2) ‘비인간 동물이 착취 받는 곳에선 반드시 인간 동물도 착취당한다’는 동물권 활동가들의 말이 떠오른다. 차별적 구조가 어찌나 거대하고 촘촘한지, 세상이 온통 살해다. 그 피가 흘러 땅과 바다, 마음마저 스며든다.

기후생태 위기에 대응하자고 바락바락 외치다 보니 들리지 않던 이야기가 들린다. 노동자는 일하다 죽고, 장애인은 시설에 갇히고,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용인된다. 농민은 농사를 지을수록 빚을 얻고, 이주노동자는 노예처럼 일하며, 빈곤은 구조적으로 지속한다. 알면서도 모르던, 들어도 아프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너무 아프다. 이 폭력적인 시스템 속에서 번듯하고 안온하게 살아가는 수치심에 마음이 곪는다. 자본 권력은 순환하는 세계에 끼어들어 자연을 끊임없이 파내고, 힘없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터전에서 쫓아낸다. 직선으로 이뤄진 네모난 세상을 건설하며 대자연의 순환을 가로막는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짓는 거대한 세상 밖으로 너무 많은 이들이 밀려난다. 불평등은 기후위기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기후정의선언의 한 태제처럼,(3) 이 불평등과 생명 수탈이란 업보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이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지 못하리라.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경고대로 지구 평년 온도 1.5도 상승 제한을 지키려면 멈추지 않고 우상향해 온 탄소 배출량의 그래프가 절벽처럼 꺾어 내려가야 한다. 기후생태 위기에 관심이 있다면 정부와 산업계가 허용하는 만큼 숫자 몇 개 높이고, 유인책을 만드는 것으로는 위기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배출할 것 다 해놓고, 죽고 다치고 나서야 보상해주는 것으로는 그 무엇도 지킬 수 없다. 뿌리 깊은 불평등과 생명 수탈의 종지부를 찍을 전복적인 변화가 이 위기에 대응할 유일한 대안이다. 진실을 외쳤던 이들이 변화를 지체하고 억압하는 이들에 맞서 권력 관계를 흔들고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부수며 생명을 지키고 권리를 확장해왔음을 기억하자.

‘나무를 심자’라는 말이 아닌 숲 파괴 금지, 숲을 파괴해 만든 품목의 수입을 금지하자. ‘채식을 자주 하자’를 넘어 동물 사육과 도살을 금지하고 축산업의 정의로운 전환 대책 수립을 촉구하자. ‘취약계층의 기후재난 피해 보상하자’가 아니라 재난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주거와 일자리를 비롯한 기본권을 빠짐없이 보장하고 확대하라고 명령하자. ‘기업 탄소 배출을 저감하자’가 아닌 산업계의 눈치를 보며 할당하는 배출권거래제를 폐기하고 기업 탄소 배출 한계량 도입, 초과배출을 중대 재해로 취급해 탄소 초과배출 기업은 영업정지 처분하고 경영진은 구속하자. ‘기후 공약이 있는 좋은 후보를 뽑자’가 아니라 반생명적 자본주의 체제와 이를 지탱하는 기득권, 거대 양당의 권력을 무력화하는 체제를 전환하자.

‘기후위기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해피엔딩 영화가 아니다. ‘막아야 한다’가 아니라 함께 겪어내야 한다. 최전선 공동체 모두가 그런대로 겪어나갈 수 있는 회복 가능한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함께 겪어낼 수 있는 사회에서는 기후생태 위기와도 공존할 수 있다. 지금 가장 강력하게 필요한 것은, 주변부로 밀쳐지고 차단된 목소리들을 찾아서 마이크를 건네는 것, 그리고 서로의 삶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보장할 정책을 빠짐없이 함께 외치는 것이다.

기후정의를 외치지만 사실 정의라는 말, 잘 모르겠다.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열정이 차오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후정의 운동이 모든 밀려난 존재들의 이야기를 외치는 거라면, 분노와 사랑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만일 당신도 그렇다면, 부디 멸종반란의 문을 두드려주길 바란다.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광장에서 이야기하고, 폴리스 라인을 뛰어넘는 순간순간에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

* 본 글은 멸종반란을 대변하는 글이 아닌 활동가 개인의 글입니다.


<각주>
(1) 은혜진, “2급 발암물질 노동’, 쿠팡 물류센터 야간조 체험기”, 《워커스》 82호
(2)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오월의봄, 이마즈 유리·장한길 옮김, 2020, 313쪽
(3) 기후정의포럼, ≪기후정의선언 2021≫, 한티재, 202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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