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당선이 더 심한 시험지옥으로 만들지 않도록

[기고] 그의 자유주의 공정담론을 넘어서야

이준석 씨는 58.8%의 당원들과 여론조사의 압도적 지지로 보수야당인 국민의 힘 당대표에 당선됐다. 나이 많은 정치인들이 즐비한 한국정당정치에서 30대 당대표 당선은 시대의 변화나 대중들의 바람을 반영한 것은 분명하다. 오래 묵은 정치인들이 청년들이 겪는 불평등하고 힘겨운 삶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과 그럼에도 대변할 사람이 없는 현실은 이씨를 청년세대의 대표자로 보이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청년세대의 입장을 대표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그가 청년세대의 ‘특정 목소리’를 담은 것은 분명하다. 특권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에 진저리치는 사람들에게 그가 전면으로 내세운 ‘공정’은 혹할 만하다. 이준석 당대표의 등장은 한국사회의 핵심 키워드인 ‘공정’과 ‘세대문제’를 제도정치의 장에서 본격화한 것이다.

[출처: 국민의힘 홈페이지]

자유주의에 ‘공정’ 포장 얹은 것일 뿐

하지만 나는 그의 ‘공정’이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포장지만 바꾸고 가격만 올린 상품처럼 다가온다. 그가 내세운 공정이 ‘국민의 힘’이라는 보수정당이 지향했던 가치인 자유주의에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위험한 것은 자유주의가 ‘공정’이라는 포장을 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사회체제나 구조의 불평등을 외면한 자유시장경제와 개인의 경쟁을 원리로 개인의 삶과 사회가 운영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는 봉건적인 신분제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 생산,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다. 태생적으로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하되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적 불평등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씨가 쓴 책 제목도 <공정한 경쟁>이다. 그는 마치 우리 시대의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겪는 모욕적 삶과 불평등이 단지 경쟁이 공정하지 않아서‘만’ 생긴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당연히 불공정과 특권은 문제이며, 이는 척결돼야 한다. 정유라나 조국사태로 대표된 대입과정에서의 탈법과 불법 등은 ‘경쟁이라도 공정하게 하자’는 말에 수긍하게 하는 상황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구조적으로 뿌리내린 불평등을 시정할 수 없다.

지금 수많은 청년들이 겪었던, 아니 전 세대가 겪고 있는 학력차별, 성차별, 비정규직 같은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은 ‘경쟁이라도 공정하게’한다고 해결할 수 없다. 아니, 지금 우리 사회는 계급적 차이만이 아니라 다양한 차별의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나이가 많다고, 어리다고, 여자라고, 장애인이라고, 성소수자라고 불이익을 받는다. 심지어는 남성에게 더 많은 점수를 주고 남성만을 더 많이 뽑는 성차별적 채용시험은 단지 몇몇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 전체에 팽배하다. 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이라고 절반의 임금만 받으며,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여성인 경우 비정규직 특수고용에 더 많이 있다. 불평등한 체제를 시정하지 않고 시험과 노력만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다.

보편적 권리를 특권화시키는 공정경쟁

자유주의가 일정정도 표방하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가치는 참정권 등 근대 인권에서 일정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불평등은 시정되지 않아 노동권이나 주거권 같은 사회적 권리가 강조되었으며, 결과의 평등이라는 가치로 나아갔다. 그런데 이준석 씨가 표방한 ‘공정경쟁’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할 권리들을 ‘일정한 능력이 되는 자’에게만 주겠다는 것이다. 각종 국제인권규약이 말하고 있는 참정권,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 문화권 등 시민적 사회적 권리들을 경쟁에서 이긴 자만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게 인권이다. 그런데 경쟁을 강조함으로써 인권을 자격화 시킨다. 그의 공정담론은 보편적 권리를 특권화 시킬 뿐이다.

게다가 그는 국제사회가 사회적 소수자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를 없애자고 한다. 선거 과정에서 그는 ‘모든 할당제 폐지’ 요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불공정하다고 공격했다. 누적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소수자할당제를 특혜인양 왜곡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 여성할당제, 지역인재 의무 선발 등이 특혜라는 주장은 ‘불평등한 체제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특권을 유지시키겠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하는 공정경쟁의 핵심에는 시험이 있다. 그는 당대표 수락연설에서도 시험을 통해 당의 주요 보직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보은 인사와 인맥관리로 부적절한 사람이 직책을 맡는 것이 야기하는 문제를 시정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시종일관 시험이 공정하다는 신념을 표현해왔다는 점에 주목하게 만든다. 서울대 합격자들이 강남권에 점점 더 몰리는 ‘좋은 학벌의 중산층화’가 말해주듯이, 시험조차도 계급적 불평등에 기초하고 있다. 시험에 집중할 수 있는 살만한 집안 환경과 알바를 하며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의 차이는 애써 외면하다. 유학을 가더라도 돈과 인맥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침묵한다. 체제의 불평등을 말하지 않은 결과, 경쟁에서 패한 사람에게 ‘무능하다’는 낙인까지 찍는다.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결과의 평등으로 이어져야한다는 인권의 가치를 뒤로 후퇴시킬 뿐 아니라 패배자라는 낙인까지 찍는다.

개발독재 시절 강화된 각종 시험제도와 입시제도 등을 통한 능력 검증이 현 시대에 맞는가도 문제일 것이다. 나아가 시험이라는 획일화된 기준으로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진보세력은 약해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의 공정경쟁에 환호하는가. 자유주의적 공정담론, 차별적 공정담론이 불평등을 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당장 ‘공정하게 경쟁이라도 하자’는 주장이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게 하는 기회’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더불어민주당도 여전히 불평등을 시정하는 정책을 내세우지 않는데, 비슷한 공정을 외치는데 ‘그나마 젊고 유능해 보이는’ 이준석에게 끌리는 게 아니겠는가.

두 거대보수정당의 정치 외에는 다른 정치적 비전이 보이지 않고, 다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현실이 문제다. 자유주의적 공정담론을 넘어서는 평등담론이 직조하는 공정의 목소리가 작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불평등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더 모여서 실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세력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공정경쟁 신화가 만든 시험지옥’에 모두가 빠져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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