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롤모델’, 아마존 노동자들의 눈물

[이슈] 유럽 아마존 노동조합…프랑스선 법정투쟁, 이탈리아선 무기한 파업

  아마존: 누구편이세요? [출처] DemocracyNow!

저 끝 모퉁이서 일했던 흑인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늘 ‘이지 컴 이지 고’ 하는 곳이기에 궁금해하는 게 오히려 유난이다, 하며 머리를 털었다. 그래도 등골이 오싹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곤 얼마 뒤 설마 했던 일이 센토소 씨에게 벌어졌다.

인도네시아 이민자 해리 센토소 씨(1)는 지난 2년간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상품 분류 일을 했다. 정규직이 되길 원했지만 대목에 ‘때려 박히고’ 나면 어김없이 계약 해지됐다. 일을 다시 시작한 건 지난 3월 아마존이 코로나19로 주문이 폭주해 10만 명을 채용하면서였다. 늘 취업 앱을 끼고 수십 군데에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63세인 그가 찾을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그런 그는 3월 29일 새벽 출근길에 오른 뒤, 2주 후인 4월 12일 오전 사망했다. 코로나19 감염이 문제였다. 이날은 그의 27번째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센토소 씨는 출근한 지 5일 만에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회사가 코로나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기에 ‘그냥 몸이 좀 좋지 않은 것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이틀을 쉬고 4월 5일 다시 출근했다. 몸이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더 쉬다간 해고될 게 뻔했다. 그런데 같은 날 5일 아내도 아프기 시작했다. 센토소 씨는 4일을 더 일했다. 산더미 같은 소포를 분류하고 운반할 때마다 숨이 가쁘고 열이 올랐다. 약국에서 일하던 아내는 4월 8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센토소 씨 가정은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3일 뒤인 4월 11일 한밤중에 센토소 씨는 호흡 장애를 일으켰다. 다급히 구급차에 실려 갔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의 숨은 멎어 있었다. 아마존은 센토소 씨가 죽기 1주일 전에야 마스크 착용과 체온 측정을 도입했다. 아마존은 센토소 씨가 숨진 다음 날, 7만 5천 명을 추가 채용하겠다고 밝혔다.(2)

5월 20일까지 아마존 캘리포니아 어바인 시설 확진자 사례는 알려지지 않았다. 센토소 씨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따르면, 5월 28일까지 아마존 노동자 1079명이 코로나에 감염됐고 9명이 사망했다. 이 수치는 아마존 노동자들이 언론뿐 아니라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각종 SNS를 뒤져서 자체적으로 집계한 결과였다.(3) 노동자들은 확진자나 사망자 수가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5월 초 미국 13개 주 검찰이 감염 현황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아마존은 아직까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것이 쿠팡의 롤모델, 아마존 노동자들의 현주소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업체 아마존만큼 코로나19로 이익을 본 기업은 없을 것이다. 아마존은 올해 1분기에 시간당 3천 3백만 달러(약 400억 원)의 수익을 냈다. 그러나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아마존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회사가 마스크나 소독제 제공, 사회적 거리두기나 방역에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확진자나 감염자 수도 공개하지 않아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불만도 컸다. 아마존은 폭주하는 주문 물량에만 정신이 팔려 노동자의 안전을 갈아 넣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미국 500여 개의 아마존 물류창고 여러 곳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수십 명씩 무더기로 발생했다. 특히 지역 당국에 따르면, 펜실베니아주 북동부 포코노 마운틴스에 위치한 상품창고에선 확진자가 100명 이상 나왔을 만큼 사업장 감염 정도는 심각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3월부터 병가 투쟁과 파업, 시위와 서명운동 등 갖은 방식을 동원해 코로나로부터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절박하게 싸웠다. 그러나 아마존은 안전과 근무조건을 개선하는 대신 이를 요구한 직원에 보복을 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아마존은 5월 초까지 시위에 참가했거나 노동조건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노동자 중 최소 6명을 해고했다. 이외에도 시위에 참가한 노동자 여러 명이 징계 절차에 회부됐다.(6) 팀 브레이 아마존 부사장조차 아마존의 보복성 해고를 비판하며 5월 1일 사표를 던졌을 만큼, 아마존은 막무가내였다. 또 글로벌아마존유니온연맹(GAUA)(7)이 최근 주최한 포럼에서 그가 “아마존 노동자들은 ‘힘의 불균형’을 역전시킬 수 있는 노조와 정치 행동이 필요하다”고 밝힌 만큼, 노동자의 힘이 약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제 미국 아마존 노동자들은 법정 싸움으로 응답 없는 아마존에 돌파구를 내고자 한다. 뉴욕주 스태튼 아일랜드 물류창고(JFK)(8)에서 일하는 노동자 3명은 6월 3일 아마존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 아마존이 ‘현기증 나는 속도’를 강요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거나 손 씻기와 방역을 어렵게 했다고 썼다. 소송에 참여한 노동자 바바라 챈들러는 “3월에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함께 사는 사촌도 감염됐고 급기야 4월 초에 사망했다”며 아마존에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아마존이 미국에서만 방역에 소홀한 것은 아니었다. 유럽의 여러 사업장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다. 아마존은 유럽에서도 감염 현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해외 언론에 따르면, 아마존에선 3월 초부터 확진자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해 계속 증가해왔다. 아마존 사업장에선 세계에서 첫 번째로 이탈리아에서 3월 1일 확진자가 나왔고, 스페인에서도 3월 19일까지 확진자 4명이 확인됐다. 스페인 노조연맹 CCOO는 이외에도 100명 이상이 전형적인 감염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CCOO는 즉각적인 창고 폐쇄와 방역을 요구했지만 아마존은 이를 거절했다.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3월 중순까지 100명 이상의 프랑스 노동자가 감염 위험을 문제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만큼 노동 현장의 공포는 컸다. 그나마 프랑스에선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을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마존은 이들에게 근로 여건이 심각하지 않다며 무급 조치하겠다고 통보했을 뿐이다. 독일에서도 5월 프랑크푸르트 인근 아마존 사업장에서 8명이, 함부르크 인근 사업장에서 5월 말까지 53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이외에도 7명이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을 압박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대결뿐”

그러나 미국과는 다르게 유럽 아마존 노동자들은 노조운동의 힘으로 상당한 안전조치를 쟁취했다. 대표적으로 아마존은 프랑스에서 지난 4월 15일 코로나 방역 조치 중 하나로 전국에 소재한 대형 물류창고 6개를 모두 폐쇄했다. 또 폐쇄 기간 노동자 1만 명에 대해선 유급 휴가 조치했다. 아마존은 미국에서 한국의 김앤장 같은 법률회사를 동원해 노조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프랑스에선 그렇지 못한 탓이 컸다.

애초 프랑스 아마존의 코로나19 방역 조치는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3월 말 프랑스 아마존 노동자들은 방역 조치 도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파업을 경고해 회사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노동자 중 일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장 프랑수아 베로(Jean-François Bérot) 등 노조 ‘수드 연대(Sud-Solidaires)’의 조합원은 3월 중순 아마존을 고소했고 프랑스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들었다. 아마존은 코로나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백만 유로를 투자했으며 노동 현장에 150개의 새로운 안전 조치를 실시했다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법원은 아마존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적합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노동 조건 개선을 원하는 노조를 회피했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이를 문제로 아마존에 ‘비필수’ 상품 배달을 중지하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하루 100만 유로(약 13억 3천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명령했다. 아마존은 즉각 항소했지만 항소법원 역시 노동자 편을 들었다. 결국 아마존은 벌금을 피하기 위해 6개 물류창고를 폐쇄했다.

프랑스 법원의 판결은 안전 문제에 있어 사업주가 노동자와 협의하도록 하는 프랑스 노동법에 따른 것이었다. 아마존은 재차 항소할 계획이었으나 여론이 악화하면서 이를 포기하고 프랑스 노조 대표단과 협상했다. 5월 16일 발표된 협상 결과에 따르면, 5월 19일부터 단계적으로 물류창고를 개방하고 사측과 노동자위원회가 주 1회 안전 조치 운영을 평가하기로 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교대 근무 시간을 15분 축소하기로 했으며 이 기간 임금도 보장하기로 했다. 아울러 독립적인 안전전문가가 아마존의 안전 조치를 평가하기로 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도 아마존 조직 노동자들이 산업행동에 나서 노동조건을 개선했다. 이탈리아에선 북부 피아첸차 물류창고 노동자 1100여 명이 3월 17일 안전 조치를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나서 11일 만에 회사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이로써 아마존은 식료품, 의약품 등 필수항목만 배달하겠다고 노조와 약속했다. 또 교대 근무 중 방역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허용했고 노동안전위원회도 만들었다. 아마존은 그동안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해왔지만 이번 집단행동에는 무릎을 꿇었다. 아마존은 2017년에도 북부 피아첸차 인근 상품 창고 노동조건 개선에 관해 정부가 중재하는 협상 테이블 참여를 거절한 바 있다. 독일 아마존 노동자들이 소속된 최대 서비스노동조합 베르디(Verdi)도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7년 만에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9)

글로벌아마존유니온연맹은 아마존의 연례 프라임데이 기간인 올 9월,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를 조직할 예정이다. 아마존에 맞서 법정 투쟁을 이끈 베로 씨는 승소 후 “프랑스든 독일이든 미국이든 아마존 노동자들은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아마존이 행동하도록 압박하는 유일한 길은 대결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아마존 노동자 센토소 씨의 죽음에 아마존의 책임을 묻고 있는 그의 아들 에반은 “우리 가정이 겪은 일을 겪게 될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아마존과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시카고 아마존 노동자들 [출처: @DCH1United]

[각주]
1) https://www.latimes.com/business/technology/ story/2020-05-27/la-fi-tn-amazon-worker-dead-hiring-wave
2) 이 수치는 ⟪워커스⟫가 미국 언론들을 조사해 집계한 것이다.
3) https://www.newsandtribune.com/coronavirus/ jeffersonville-worker-2nd-amazon-covid-death-in-indiana/article_1a8e7848-96d2-11ea-abd3- 5f71665cba2d.html
4) https://www.cnbc.com/2020/04/13/amazon-hiring-75000-more-workers-as-demand-rises-due-to-coronavirus.html
5) https://www.latimes.com/business/technology/ story/2020-05-28/amazon-whole-foods-workers-track-coronavirus-cases
6)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20/ may/05/amazon-protests-union-organizing-cracking-down-workers
7) 20개국 이상의 아마존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동단체이다.
8) https://taz.de/Aus-Le-Monde-diplomatique/!5682191/
9) https://www.jungewelt.de/artikel/378338.verdi-bestreikt-amazon-seit-sieben-jahren.html?sstr=ama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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