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투운동 3년…두 성범죄자 중 누굴 뽑을까

[이슈]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성폭력 혐의, 그리고 젠더 지도 바꾸는 여성노동자들

“내 딸이 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요? 딸아이는 훌륭한 상원의원실에서 일했는데 그만 두게 됐어요. 그런데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죠. (그러려면) 언론사라도 찾아야 할 텐데, 딸은 그 의원을 존경하기 때문에 관두겠대요.”

1993년 CNN 방송 프로그램 <래리 킹 라이브>에 익명으로 전화한 한 중년여성의 말이다. 30년 가까이 CNN 아카이브에 잠자고 있던 이 녹음 기록이 최근 미국 언론에 소환됐다. 이것은 바로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제기한 전직 보좌관 타라 리드(Tara Reade)의 주장을 입증하는 유일한 공식 기록이다. CNN은 최근 리드의 어머니가 당시 익명으로 전화한 여성의 주소지인 산루이스 오비스포에 살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리드 역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확인했다.

2017년 미국에서 미투(#Metoo) 운동이 일어난 지 3년. 그동안 미국에선 수많은 정치인이 미투운동의 여파로 옷을 벗었다. 피해자들을 지지하기 위한 법제도도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권력의 카르텔은 여전히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자 중 한 명이 바로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한 타라 리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해온 바이든 전 부대통령은 여성권 향상을 위한 자신의 노력을 강조하며 가해 사실을 부인했다. 그의 주변 인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의 편에 섰다. 다수의 언론은 침묵했고, 일부 언론은 피해자를 흠집 내거나 가십성 보도를 했다. 이들은 트럼프에 맞설 대선이 코앞에 있다는 이유로 한 여성노동자의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입막음하려 했다. 미투운동의 주역들과, 민주당과 가까운 페미니스트들은 ‘피해자를 믿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다’며 바이든에게 표를 주자고 입을 모았다. 아주 소수만이 두 성범죄자를 두고 과연 누구를 뽑아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유세하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출처: 레프트 보이스]

‘존경하는’ 의원을 위해 일한 여성노동자

올해로 56세인 타라 리드는 조 바이든이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던 1993년 그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리드는 지난해 봄 바이든의 성폭력 혐의를 제기하며 미국 사회의 오래된 딜레마를 증언했다.

리드는 지난해 4월 4일 캘리포니아 네바다 카운티 지역신문 <유니온>에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상원실에서 근무할 당시 바이든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손가락을 목 위로 올리곤 했다”고 폭로했다. 또 바이든이 자신의 다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의원실 행사에서 술시중을 들었으면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도 밝혔다. 짧은 내용이었지만 곧바로 리드를 향한 백래시가 시작됐다. 리드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작원일 것이라는 음모론도 나왔다. 쏟아지는 백래시 속에서 리드는 다시 침묵했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캠페인이 본격화하면서 리드는 자신의 침묵에 대해 재고하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 사건이었지만, 리드는 자신의 딸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했고, 온라인에서의 명예훼손에도 맞서고 싶어졌다. 미투운동의 결실로 설립된 ‘타임즈업법률방어기금’에 문의한 결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자문을 받고 용기도 얻었다.

결국 리드는 올 3월 25일 다시 사건을 공론화했다. 이번에는 가슴 깊은 곳에 맺혀 있던 응어리까지 입 밖으로 밀어 올렸다. 그는 미국 코미디언 겸 작가 케이티 할퍼가 방송하는 팟케스트에 출연해 자신이 바이든에게 1993년 봄 국회의사당 지하에서 스포츠용 가방을 전달하다 성폭력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벽에 밀어붙였고 손으로 나를 만지다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곤 치마로 내려갔다가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동시에 키스를 했다”고 밝혔다. 이후 리드가 바이든을 밀어내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너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고, 그 후 바이든은 그의 어깨를 잡고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리드는 당시 바이든의 보좌관 3인(테드 카우프만, 데니스 토너, 마리안 베이커)에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괴롭힘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나서지 않자 상원 인사청에 서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리드에게 돌아온 것은 직장 내 괴롭힘뿐이었다. 그는 인턴 관리를 포함해 자신의 업무를 내놓아야 했고 결국 일자리마저 잃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에 대한 미투가 나왔지만 반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사건을 다룬 언론은 일부 매체에 불과했다. 바이든은 이미 ‘최악’의 트럼프와 경쟁할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상황이었다. 바이든 측은 리드의 폭로가 있은 지 2주 후인 3월 30일에야 그의 선거캠프 여성 부매니저인 케이트 베딩필드를 통해 “여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가 있으며, 기자들은 그러한 주장을 엄격하게 조사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언론이 그렇게 하길 권한다. 이 비난은 거짓이기 때문이다”라고 입을 뗐다. 이어 베딩필드는 4월 12일 <뉴욕타임스>에 “바이든 전 부통령은 여성폭력 관련 문화와 법을 바꾸는 데 공적인 삶을 바쳤다”며 “그는 획기적인 여성폭력방지법을 입안하고 통과하도록 싸웠다. 이 주장에 대해 분명한 것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이 직접 이 사건을 거론한 것은 훨씬 더 늦은 5월 1일에서였다. 그는 MSNBC ‘모닝 조’에 출연해 “이 일(성폭력)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며 자신의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또 “성추행과 성폭력의 구체적인 내용은 복잡하지만 복잡하지 않은 두 가지가 있다”며 “하나는 여성이 존엄과 존경을 가지고 대접받을 자격이 있으며, 그들이 앞으로 나설 때는 침묵이 아니라 경청돼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들의 이야기가 적절한 조사와 정밀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경고와 다름없는 입장을 밝혔다. ‘모닝 조’ 사회자는 그런 바이든을 앞에 두고 트럼프가 그보다 얼마나 더 많은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지를 읊어댔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가해자와, 그의 일개 직원이었던 한 피해자. 이들의 주장에 정계와 언론은 분명한 어조를 유지했다. 힘 있는 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바이든 편에 섰고, 그들은 여성운동을 비롯해 시민사회 저변의 목소리까지 뺏어갔다.

리드가 바이든의 성적 괴롭힘을 호소한 보좌관 3인은 그의 주장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리드는 바이든에게 성폭력 혐의의 증거가 될 인사파일 공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해당 파일은 상원이 관리한다며 책임을 돌렸고, 상원은 ‘중대한 기밀 사항’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선캠프 수석보좌관을 지낸 데이비드 액슬로드는 5월 2일 바이든을 부통령으로 선출하기 위한 조사 과정에서 성비위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리드는 ‘타임즈업법률방어기금’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지난 2월 리드는 이 기금을 관리하는 국립여성법률센터(NWLC)로부터 바이든은 연방 공직 후보자이고, 그에 대한 사건을 돕는 것은 조직의 비영리 지위를 위태롭게 할 수 있어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을 들었다. 이 사건은 취재한 <인터셉트>의 질문에 마리아 패트릭 NWLC 대변인은 “NWLC는 비영리 자선 단체로서,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과 관련된 규제를 포함해 자금 사용에 제한을 가진다”고 답했을 뿐이다. 타임즈업법률방어기금은 리드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변호사 명단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들 모두 리드의 변호 의뢰를 거절했다. <인터셉트>의 취재 결과, 타임즈업법적방어기금 컨설팅 펌인 ‘SKDK니커보커’의 상무이사 애니타 던은 바이든 선거캠프의 최고 고문이기도 했다.

미투운동의 창설자 타라나 버크를 포함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도 성폭력 논란을 잠재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 역시 리드의 주장을 믿지만, 그래도 바이든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밝혔다. 미투운동을 대중화한 알리사 밀라노나 성폭력 생존자인 아이아나 프레슬리 의원 모두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버니 샌더스 역시 경선 포기 전에는 리드의 주장을 지지했지만, 그 후로는 내내 침묵하고 있다. 바이든 선거운동캠프에서 기후팀을 이끌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또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리드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보도한 언론도 드물다. AP는 2019년 4월 리드를 인터뷰했지만 그의 주장이 모순되고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사를 내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도 2019년 리드를 인터뷰했지만 보도하지 않았다. 뉴스위크는 리드에게 왜 성폭력 의혹을 진작에 제기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다. 리드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거나, 그의 사생활이나 학위가 의심된다거나, 그의 일부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다는 기사도 여과 없이 나갔다. 바이든의 성적 비행의 패턴이 발견되지 않는다며 그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리드의 동료나 지인, 친구들은 그의 피해 호소를 구체적으로 기억한다고 밝혔으며, 리드가 지도한 인턴 2명도 그가 갑자기 일을 중단했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증언을 경청한 언론이나 기관은 드물었다.

  타라 리드와 조 바이든 [출처: 인터셉트 화면캡처]

‘직장 내 권력 관계에 관한 이야기’

지난 1년간 바이든을 상대로 성폭력 혐의를 제기한 여성은 리드를 포함해 8명에 이른다. 이들은 바이든이 부적절한 키스, 포옹, 스킨십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바이든은 여성들의 문제제기를 인정했지만 “친절한 의도였지만 보다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이라고 약속했을 뿐이었다. 리드는 이 사건을 두고 “그(바이든)의 행동은 직장 내 지배력에 대한 것”이라며 “그것은 성적 비행이 아니라 권력 남용에 관한 이야기”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를 계속 감싸주었던 그의 주변 사람들”이라며 “나는 바이든이 내 삶을 흔들어놓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리드를 지지하는 유명 인사를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리드가 미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드물지 않다. 지난 4월 30일, 보스턴에 위치한 라디오방송 WBUR에서 여성젠더학 연구자 리 길모어(Leigh Gilmore)는 “타이밍이 나쁜 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경청하는 것이다. 타라 리드가 공정한 경청을 받을 ‘좋은’ 시간은 없다. 우리는 치열한 정치적 순간 동안 제기되는 의혹의 부적절함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알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스트이자 교육연구자 타티아나 코자 렐리는 <레프트보이스>에 “의회 페미니스트들은 유리천장을 깨뜨린 후 타라 리드와 같이 깨진 유리잔을 청소해야 하는 남겨진 노동자계층 여성들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며 “어느 때보다 다른 대안의 체제가 필요한 시기”라고 밝혔다.

미국 미투운동 3년이 그린 새로운 젠더 지도

미국에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별 탈 없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그렇다고 지난 3년 간 미투운동이 같은 자리만 맴돌았던 것은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와 페미니스트, 여성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미국 사회의 젠더 지도를 새롭게 만들어왔다. 특히 미투운동은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직장 내 성폭력을 핵심 문제로 만들었다.

미국에선 미투운동 이후, 대표적으로 2017년 12월 타임즈업법률방어기금이 만들어져 모두 2,400만 달러(약 289억 원) 이상이 모금됐다. 이 기금은 도움을 요청하는 저임금 여성노동자, 사회적 소수자에게 법적 지원을 하기 위해 고안됐다. 지난해 10월 기준 모두 3600명 이상이 지원을 받았다. 일례로 지난 5월 맥도날드 여성노동자 20명 이상이 기금 지원을 통해 사측에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12월에는 미국 의회가 일명 ‘미투의회법'을 제정해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고 절차를 보다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했다. 또한 가해자가 국회의원일 경우, 정부가 내던 합의나 배상금을 가해 당사자가 직접 부담토록 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캘리포니아와 뉴욕, 뉴저지 등에서 성폭력이나 성희롱, 성차별을 포함하는 비공개 합의를 금지했다.

또한 그동안 연방성희롱법이나 대부분의 주법은 독립계약자의 성적 권리를 보호하지 않았지만, 2018년부터 뉴욕주를 시작으로 독립계약자와 가사노동자들의 성적권리를 보호하는 주법들이 만들어졌다. 미투운동은 최저임금 인상에도 활기를 불어 넣었다. 팁을 받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해 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손님의 괴롭힘을 참아야 했지만, 미투 이후 노동자들은 괴롭힘을 참는 대신 최저임금 인상 운동에 나섰다. 이미 관련 법안이 시카고나 매사추세츠 등에서 발의됐다. 미국 하원도 지난해 8월 팁을 받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적지 않은 생존자들이 재정적 보상도 받고 있다. 직장 내 차별에 대한 민권법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연방 기관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는 2018년 성폭력 생존자들을 대신해 그들의 기업으로부터 7천만 달러를 받았다. 이 금액은 2017년에 비해 47% 증가한 것이다.


[각주]
① https://www.theunion.com/news/localnews/nevada-county-woman-says-joebiden-
inappropriately-touched-her-whileworking-in-his-u-s-senate-office/
② https://soundcloud.com/katie-halper/joe-bidens-accuser-finally-tells-her-fullstory
③ https://www.leftvoice.org/joe-bidenand-the-farce-of-liberal-feminism
④ https://www.vox.com/identities/2019/10/4/20852639/me-toomovement-sexual-harassment-law-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