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전쟁,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99%의 경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본격화한 전쟁은 소비에트 해체 이후 민족 간 영토분쟁의 성격을 지닐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쟁탈의 성격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신자유주의화 및 유럽 시장으로의 통합과 (동남부 지역에 밀집된) 우크라이나 주요 자원과 토지(흑토)의 러시아 지배합병이 맞서고 있다. 민족 간 영토분쟁인 이 전쟁이 국제전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전쟁은 지도상의 영토 획득과 수복만이 아니라, 산업전환 등 축적구조의 재구성, 공급망 재편, 세계시장의 분할과 무역 질서의 재구성을 목표로 한 자본주의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과 직접 맞물려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유럽, 중국과 러시아 등이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패권을 놓고 대결하는 패권경쟁의 전장이 됐다. 돈바스와 헤르손 등 남부 지역에서 벌어지는 군사적, 물리적 전투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 전쟁과 직접 관련된 또 다른 전투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 정보, 군사 훈련을 제공하고 각종 군수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중국과 인도, 사우디, 튀르키예 등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부여한 러시아 경제제재와 봉쇄를 무력화하고 러시아와의 교역을 확대하며, 직간접적으로 전쟁을 지원하고 있다.

한편, 이 전쟁은 경제적으로 공급망 교란, 에너지 수급 위기 등이 초래하는 세계 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수단을 제공하기도 한다. 문제의 원인이면서 해결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현재는 스태그플레이션이나 경기침체 아래에서 민간소비, 민간투자 확대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 지출을 늘릴 수밖에는 없다. 이때 (뉴딜 같은) 공공투자 지출은 물론 군비 지출도 정부 지출에 포함된다. 그런데, 공공투자 지출은 지출 규모나 자본의 회전속도가 군비나 전비 지출에 비해 확연히 느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몇 년 동안 쌓인 재고 무기를 한두 달의 전쟁으로 모두 소비할 만큼 군비 지출은 (전쟁 발발 등 조건에 따라) 회전속도가 매우 빠르다. 게다가 새로운 무기나 군수물자를 요구에 맞게 생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수요를 동반한다. 벌써 미국에선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다른 나라와 정상적인 전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 재고가 떨어져 있다며 위험하다는 아우성이 솟구치고 있다. 빨리 무기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스태그플레이션 (또는 경제위기) 아래에선 정부 지출, 특히 군비 지출 요구가 강력해지므로 군사적 대립과 긴장 확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그에 따라 세계 각국은 군비증강과 국방비 증액이 도미노 물결을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서 우크라이나 전쟁도 재래식 무기의 소비처이자 러시아의 경제적, 군사적 ‘늪’으로서 ‘장기전’ 양상을 띤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확대로 가뜩이나 세수가 줄어든 데다, 통화긴축에 정부예산까지도 전반적으로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이 국방비만큼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3월 공개한 2023년도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안에 따르면, 2023년도 전체 예산은 5조 8,000억 달러(약 7,086조 원)로 지난해보다 3.5% 줄었으나, 국방예산은 4% 늘어난 8,133억 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그런데 이 국방예산이 작다며 의회에서 국방예산을 더 늘려 결국 8,400억 달러(1,121조 원) 규모로 상원을 통과했다.

이외에 독일, 영국, 벨기에, 루마니아, 이탈리아, 폴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이 국방비 지출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방비를 엄격히 제한했는데, 1,000억 유로(140조 원) 규모의 특별기금을 마련하고, GDP의 1%대였던 국방비를 2024년까지 GDP의 2% 이상으로 대폭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와 이웃한 폴란드는 국방력 증대를 위해 2023년 국방비로 전년 대비 69% 증가한 206억 6,000만 달러(약 30조 원)를 책정했다. 영국도 부자감세안으로 트러스 총리가 취임 45일 만에 사임했음에도 국방비 증액 계획은 그대로 지켜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국방예산을 2026년에 GDP 대비 2.5%까지 올리고, 2030년에 3.0%가 되도록 증액한다는 방침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중국-대만 간 위기 또한 고조되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군비와 국방예산도 위협적인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전쟁 초기 전체 인구의 1%만이 중국의 공격 대응 전력으로 동원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올 초부터 예비군 훈련을 더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협의해 최신 무기를 수입하고 있다. 현재 대만 군부는 중국의 침공에 대비해 중국 취약점 분석에 치중하고 있으며, 전쟁 예비 비축물자(식량, 연료, 의약품, 군수물자 등)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2023년 국방예산을 4,151억 대만달러(약 18조 6,670억 원)로, 전년 대비 12.9% 대폭 증액해 편성했다. 여기에 최신 전투기 구매 특별예산을 포함하면 실질적 국방예산은 5,863억 대만달러(26조 3,660억 원)에 이른다.

중국 정부는 국방예산을 지속적으로 인상해 왔다. 2013년 7,200억 위안이었던 중국의 국방예산은 올해 1조 4,505억 위안(약 290조 원)으로 10년 동안 2배로 늘어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월 16일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대만 위기와 미국의 포위 전략에 맞서 군의 현대화는 물론 강대한 전략 억지력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에 따라 국방예산을 더 증액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도 GDP 대비 1%인 현재 국방예산 수준을 나토 수준인 2%까지 대폭 올린다고 밝혔다. 올해 일본 방위비(국방예산)는 5조 3천억 엔(51조 원) 수준이었는데, 일본 정부는 2023년도 방위비를 6∼7조 엔 정도로 증액하고, 이후에도 매년 1조 엔 정도 증액해 2027년에는 10조 엔(98조 원)을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국방예산 확보를 위해 국채를 더 발행하거나 소득세를 개편해 세금을 더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본 내에선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도 국방예산을 늘렸다. 정부의 2023년 국방예산안은 57조 1,268억 원으로 올해 54조 6,112억 원보다 4.6% 증액됐다. 그리고 지난해 말 ‘2022~2026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앞으로 5년간 약 315조 원의 국방예산을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전쟁의 여파로 각국에서 군비 증가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민족 간 영토분쟁이자 자본 간 시장쟁탈과 패권경쟁인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군비 경쟁과 동아시아의 위기 고조는 노동자·민중의 이해와는 관련이 없고 자본의 이해에 기반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더 높인다. 자본은 이 갈등을 통해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극복의 계기를 마련하고 새로운 축적구조와 경제질서를 구성할 수 있지만 이 과정은 전 세계 노동자, 서민, 시민의 피와 땀, 희생 속에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전쟁

코로나 봉쇄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폭등, 비용 인상을 빌미로 한 독점 대기업들의 마진율 인상으로,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이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넘어섰다. 지난 9월, 소비자 물가지수(CPI)로 측정한 유로존의 연간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10%를 넘었다. 그러자 유럽중앙은행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꺾기 위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며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에 대응한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꺾기 위한 금리인상은 실업률 증가를 직접적인 정책 목표로 한다. 파월 연준 의장은 미국의 실업률이 높지 않고, 만족할만한 수준까지 실업률이 오르지 않아서 계속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금리인상 여부의 기준, 목표를 실업률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금리인상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좀비자본, 한계자본을 퇴출해 실업을 발생시키고, 기업이 이자 비용 증가를 일자리 축소로 대응하도록 만들어 실업률을 올리는 것이 금리인상의 주요 목표인 셈이다.

금리인상의 목표가 실업의 증가인 이유는 바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고 임금인상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업을 당한 가계의 소득이 줄면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실업을 당하지 않은 노동자라도 높은 실업률 때문에 임금인상을 억제하게 돼 인금인상률도 정체되거나 감소한다. 그러면 노동자 가계의 실질 임금, 실질 소득이 줄기 때문에 소비수요가 줄어들어 인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다.

이것이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자본주의의 방식이다. 임금소득 저하가 구매력 저하로 이어지고 소비수요의 감소가 직접적으로 인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가정함으로써 실업과 임금 감소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번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과거에 발생했던, 또는 미래에 발생할 모든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이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제함으로써 금리인상의 불가피성, 즉 실업 발생과 일자리 축소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현재의 금리인상은 필연적으로 노동자, 노동계급의 희생을 요구한다.

금리인상은 인플레이션의 부담과 책임을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자 수혜자인 금융시장과 대형금융자본, 비용 인상보다 더 높은 마진을 붙여 물가(가격)를 올리고 덕분에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얻고 있는 독점시장의 대기업에 묻는 것이 아니다. 금리인상은 약해빠진 중소자본인 한계자본, 노동자와 일반 서민들에게 인플레이션의 부담을 지우고 책임을 묻는다. 노동자 계급의 희생 아래에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본의 시도는 이렇게 나타난다.

유럽과 미국의 노동자와 서민들은 이런 인플레이션 책임 부담 전가에 대해 전쟁과 같은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인플레이션 전쟁’이다.

프랑스 최대 정유사 토탈에너지 노조는 생계비 해결을 위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 한 달 넘게 지속하고 있다. 또한 10월 18일 철도 노동자, 교사, 의료 노동자 등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파업에 참여해 프랑스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다. 이날 철도 노조도 전국 파업에 나서면서 프랑스 지방의 기차 운행량이 절반으로 줄었고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을 잇는 유로스타도 운행이 중단됐다.

영국에서는 물가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 수준인 10.1%에 이르렀으며, 물가상승에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최근 수개월간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철도 노동자, 간호사, 항만 노동자, 변호사까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영국 최대 노조인 공공부문 노동조합 유니슨도 국가보건서비스(NHS) 노조원 40만 6,000여 명이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유로존에서 인플레이션이 가장 심한 독일에서는 루프트한자 조종사 등 유럽 전역 항공사 및 공항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했다. 10월 22일, 수만 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물가상승 억제, 화석연료 의존 탈피, 원자력발전소 가동 중지, 빈곤층에 대한 에너지 보조금 증액 등을 요구하며 독일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10월 중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는 노동자와 시민 수천 명이 모여 정부가 에너지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에너지, 식품 등 필수품의 가격이 너무 심하게 올라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빈곤에 빠지고 있다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또한 헝가리에서는 최근 학생과 학부모 수천 명이 교사들과 함께 시위에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교사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 정부가 시위 참여 교사 5명을 해고하는 일도 있었다. 교사들은 정부의 해고 조치에 반발해 더 거세게 시위에 나서고 있고, 학부모와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충돌이 커지고 있다. 한편, 체코 프라하에서는 지난 9월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에너지 비용이 올라 가계와 기업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정부가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계기가 됐다. 체코는 이달에 또 새로운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킹달러 현상이 지속하면서 각국의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킹달러로 수입물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강제적인 공급망 재편으로 수출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돼 수출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킹달러로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타국에 수출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킹달러는 미국에 수입 물가 하락과 경상수지 회복이라는 엄청난 이득을 주고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에 수입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심화, 경기침체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신흥국에서는 외자유출 확대와 외환보유고 가치하락으로 외환위기 불안까지 확산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스태그플레이션 상황과 같이 금리인상은 반복되고 과잉자본이 청산될 때까지 여러 차례 부채위기가 반복하고 그에 맞춰 실업률도 증가할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출로 물가 상승의 부담을 고스란히 받는 한국 등 신흥국에서는 물가인상에 경제 위기 우려까지 더해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미국, 유럽은 물론 한국과 아시아 신흥국에서 실업 확대와 노동자 임금축소로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시기도 길어질 전망이다. 그 길이만큼 노동자와 서민의 고통도 길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유럽 노동자에 이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노동자들의 시간, 출전(出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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