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권력 장악과 이상적 공산사회 건설의 꿈

[혁명의 세계, 반란의 역사]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파네스의 〈여인들의 민회〉


지난 호에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대표적인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테〉를 통해 여성들의 혁명과 반란을 다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아테네 여성들은 〈리시스트라테〉의 주도하에 집단 성파업을 벌여 전쟁을 종식했다. 하지만 아테네의 정세는 매우 불안정하고 불확실했다. 기득권 정치체제의 모순과 사회제도의 불평등이 만연한 시기였다. 부정부패와 비리가 온 나라에 넘쳐 악취를 풍겼다.

이들의 국정운영은 안일했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급급해 나라의 미래를 방치했다. 일상으로 복귀한 여성들은 아테네 남성의 무능함과 무책임을 더 방치할 수 없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여인들의 민회〉(Assemblywomen, B.C. 392)에서 아테네 여성들의 정치 권력 장악과 국정운영을 다뤘다. 주인공 프락사고라(Praxagora, 공공 집회에서 활동하는 여성)는 가부장제 남성 정치구조에 파열음을 내지 않으면 아테네는 멸망을 피할 수 없다고 인식했다.

여성들의 권력 장악

방법은 간단했다. 여성들이 아테네 최고의 의사결정 기관인 민회를 장악하는 것이다. 민회는 일출과 함께 시작하기 때문에 남편이 잠든 사이, 남편의 외투와 라코니케풍 구두, 가짜수염을 붙이고 남자로 변장했다. 그리고 민회 장소인 프닉스 언덕에 일제히 몰려갔다. 평상시 민회 출석에 시큰둥한 남성들보다 국가 시스템을 혁신하려는 여성들의 압도적 참여는 당연했다.

프락사고라는 생명존중, 자원의 공정 배분, 부정부패 방지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또한 기존 정치와 차별화된 여성 정치의 효율성을 주장했다. 민회에서 이들은 기존의 남성 정치가들이 악당, 도둑, 밀고자이고, 여성들은 “민주정체를 전복하려 하지 않기”1 때문에 여성에게 도시를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락사고라를 비롯한 남장 여성 인물들이 제시하는 비전은 철저히 삶 기반의 정치다. 이들은 삶이 곧 정치인 사회를 추구했다. 그리고 남장 여성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도시를 여자들에게 넘기기로 결의”2 했다.

공산주의적 유토피아

여성이 민회 장악을 통해 실현하려는 내용은 가히 혁명적이다. 그것은 첫째, 사유재산 폐지다. 모든 사유재산과 생산, 소비수단을 국유화해 공동으로 소유하자는 것이다.

프락사고라는 제안한다. “모든 재산을 만인이 공유하여, 모두가 공유재산으로 살아가고, 빈부격차를 해소하자는 거예요. 그리하여 한 사람은 넓은 땅을 경작하는데 다른 사람은 묻힐 땅도 없다거나, 한 사람은 많은 노예를 거느리는데 다른 사람은 노예가 한 명도 없는 일이 없게 하자는 거죠. 그러니까 만인이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도록 하겠다는 거예요.”3 그의 남편 블레퓌로스(Blepyros)가 재산 공유의 방식을 묻자, 그녀는 “토지와 돈과 그 밖에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을 만인의 공유재산으로 만들 거예요. 그런 다음, 이 공유재산을 우리 여인들이 알뜰살뜰 잘 관리하여 여러분을 먹여 살릴 거예요”4라고 답한다.

사유재산 폐지와 ‘공유재산’ 그리고 ‘여성지배’(Gynaikokratia)는 아리스토파네스가 주장하는 유토피아적 정치사상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와 맞닿아 있다. 불평등은 자유와 평등을 실현할 수 없고, 지속적인 경쟁과 불평등의 확산은 재산의 균등한 분배로 해결되지 않는다. 개인 소유가 완전히 폐지되고 모든 생산과 소비 수단이 사회주의적 차원에서 이해될 경우에만이 평등은 실현될 수 있다.

사유재산을 반대하는 토지 공동소유의 문제는 노예 증가로 인한 생산품 수요 증대와 연관돼 있다. 이는 기원전 5세기 말, 그리스 사회의 공통된 문제로 아테네 폴리스의 위기 상황에서 다양한 개혁적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둘째, 결혼과 가족제도의 폐지다. 이는 성적인 영역에서 완전한 자유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프락사고라는 그의 남편과 이웃 주민과의 대화5에서 결혼제도 폐지를 주장한다. 이를 통해 폴리스 구성원들이 완전한 의미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구상을 펼친다. 즉, 그는 성적 자유를 통한 성적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는 공동체의 질서를 마련하기 위해 결혼제도와 성매매를 폐지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희랍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을 통해서만 사유재산이 허용되기 때문에, 결혼제도의 폐지는 곧 사유재산 폐지를 의미했다. 희랍의 여성들은 사랑으로 결혼하지 않으며, 가족 재산은
아들에게 양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상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참여를 현실화하고, 지배적으로 군림했던 남성 중심 사회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성적 억압에서의 해방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성평등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도 결혼제도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엥겔스는 ‘일부일처제’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 도구라고 강조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

하지만 아리스토파네스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사유재산과 결혼제도의 폐지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판적인 관점에서 그러한 내용을 불필요한 것으로 설명하려 한다. 이러한 주장은 공산주의적 삶에 가까운 실현 불가능한 모순으로 비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현실 인식이 부족한 지배계급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의 여성들이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의 의미는 아테네 지배계급의 정치적 노선을 비판하며,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했던 정치적 은유다. 그의 희극은 희극적 요소와 사회 혁명적 프로그램의 성격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모든 민중의 성적·경제적·사회적·정치적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실험하고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 드러난 유토피아적 사고는 해석 가능성보다 실천 가능성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역사가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희극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면 된다. 이것이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의 교훈이 아닐까?

<각주>
1. 천병희 옮김, 453행
2. 천병희 옮김, 455행
3. 천병희 옮김, 590~594행
4. 천병희 옮김, 598~600행
5. 천병희 옮김, 611~650행

<참고문헌>
류재국, “고대 그리스 희극의 두 여주인공이 추구한 연극적 행동과 정치적 시가로서의 의미- 리시스트라테 와 여인들의 민회 를 중심으로”,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40권(한국브레히트학회, 2019).
아리스토파네스, 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도서출판 숲, 2010).
임성철·권현숙, “아리스토파네스의 『여인들의 민회』 571-710에 나타난 프락사고라의 정치 프로그램에 대한 의미 고찰”, 『철학·사상·문화』 제23호(동서사상연구소, 2017).
임성철, “아리스토파네스의 『여인들의 민회』와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타난 공산적 삶의 질서에 대한 고찰”, 『지중해지역연구』제22권 제2호(2020).
임성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과 사회비판-우스운 것의 기능을 중심으로”, 『지중해지역연구』제18권 제3호(2016).
한정숙,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길, 2008).
홍은숙, “그리스 희극에 나타난 포스트휴머니즘 전망: 뤼시스트라테와 민회의 여인들에 나타난 집단지능.”, 『인문연구』 93호(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0).
태그

사실과 사상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배성인(성공회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문경락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이 있지요 어떤 주의든 공감대의 너비나 폭이 깊어야 부작용이 적다고 생각합니다.....선에도 그림자가 있는 법이라.......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