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자 승리 -절망 속의 승리?

역대 최저 투표율의 정치적 의미

예상은 예상일 뿐이었다. 치프라스는 총선 승리를 통해 다시 한번 정국 주도권을 장악했다. 치프라스의 배신을 심판하려던 혁명적.급진적 좌파는 대중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시리자-신민당의 대연정을 원했던 트로이카의 희망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980만명의 유권자 가운데 427만명이 선거를 외면했다.

선거결과: 1월 총선의 반복

이번 조기총선은 결과만 놓고 보자면 1월 총선의 결과와 거의 비슷하다. 역설적으로 7월 국민투표와 3차 협상안을 둘러싼 정국의 소용돌이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3% 득표에 성공해 의석을 얻은 8개 정당 중에서, 중도좌파 사회당(PASOK)의 미세한 회복과 중도연합(EK)의 의회진입, 또 다른 중도파(Potami와 ANEL)의 하락세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이런 변화 역시 시리자-독립당 연립정부 구성에 특별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3차 협상안의 초긴축 기조와 치프라스의 배신을 비난한 좌우파 세력 중에서는 극우 황금새벽당(XA)만 의회에서 살아남았다. 요란한 선거유세와 최근 난민사태로 급성장이 예견됐던 황금새벽당도 명목상 제3당으로 올라섰지만, 예상과 달리 미미한 증가세에 머물렀다. 8월 시리자내 반란파 25인을 중심으로 출범한 민중단결(LAE, Polular Unity)은 3%의 벽을 넘지 못해 의회 진입에 실패했다. 따라서 그렉시트를 포함한 강력한 반긴축 세력의 중심은 의회 밖에 머물게 됐다.


역대 최저 투표율의 정치적 의미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역대 최저 투표율이다. 시리자의 승리나 민중단결의 실패보다는 56.54%라는 낮은 투표율이 그리스 민중의 상태와 그리스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리스는 1974년 군부독재 종식 이후 90%를 육박하는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그러나 1980년대 85%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25%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투표율은 낮아졌고, 2010년대 30%를 넘더니 이번 선거에서는 40%를 돌파했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이유는 8년 넘게 되는 지속되는 경제위기와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이다. 시리자가 약진했던 2012년의 총선과 집권에 성공한 올해 1월 총선의 경우도 35% 전후의 투표율에 머물렀다. 1월에 비해 약 7% 감소한 투표자는 현상황에 대한 대중적의 불신과 실망을 대변한다.

따라서 치프라스와 시리자가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는 투표를 거부한 43.5%로 인해 퇴색할 수밖에 없다. 끝없이 지속되는 경제위기와 여전히 온존되는 부패구조 속에서, 상대적으로 시리자가 깨끗한 정치세력이라 해도, 현재의 제도정치에서 별다른 희망과 대안을 발견하지 못하는 다수의 대중이 존재한다. 이들의 숫자(427만3979명)는 시리자에 찬성표를 던진 숫자(192만5839표)이나 시리자와 신민당 양대 정당의 지지표(345만1956표=192만5839+152만6117)를 훨씬 상회한다.

시리자의 승리?

시리자는 승리했고, 치프라스는 원하던 바를 얻었다. 승리 확정 이후 아테네의 시리자 당사에는 수백명이 모여 승리를 축하했다. 그러나 1월에 모인 수천명은 아니었다. 과연 시리자는 승리했는가?


외형상 승리했지만, 시리자의 득표는 1월에 비해 32만여표 감소한 192만여표에 머물렀고, 지지율도 소폭이지만 0.88% 감소했다. 3% 득표에 못 미칠 것이란 예상을 넘어 겨우 3%벽을 넘은 그리스독립당(ANEL)의 10석으로 치프라스의 시리자는 155석의 다수파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시리자는 전체 유권자 980만명 중에서 195만명, 즉 19.57%의 지지를 얻었을 뿐이다.

다시 미궁 속으로...

한마디로 모든 예상은 빗나갔다. 시리자와 신민주당의 접전, 황금새벽당의 부상 등 각종 여론조사가 제시했던 선거 전의 예상은 모두 틀렸다. 9월 선거의 결과는 1월 총선의 결과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1월 총선을 둘러쌌던 희망과 대안의 아우라는 완전히 사라졌다.

치프라스와 시리자를 비판하며 대안을 모색했던 시리자 이탈파 민중단결의 패배는 뼈아프다. 비록 시리자의 선회에 대한 비판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대중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리스 공산당은 자신의 고정표를 방어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반자본주의적 안타르시아나 분노한 자들의 운동(인디그나도스)을 정당으로 전환시킨 통합민중전선(EPAM) 역시 1% 이하의 미미한 득표에 머물렀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그리스 좌파 전체의 패배이기도 하다.

치프라스의 당으로 전락했다고 비판받는 시리자가 총선 이후 당대회를 통해 사회와 제도정치 양축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유형의 좌파정당임을 재확인하고 불가피한 긴축 속에서 투쟁하는 정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적 정치를 창출할지는 미지수다.

그리스 민중은 2008년 이후 지속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지쳤다. 아니 탈진했다. 1월 총선과 7월 국민투표를 통해 잠시 희망을 가졌지만, 기대는 실망과 분노로 변했다.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서 시리자를 선택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치프라스는 3차 협상안의 틀 안에서, IMF의 확고한 지원으로 부채탕감을 포함한 그리스 경제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승리와 민중단결의 실패로 시리자 내부에서 좌파는 멸종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미래는 치프라스와 시리자의 힘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원영수(국제포럼)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영수씨그만하시죠

    "치프라스의 당으로 전락했다고 비판받는 시리자가 총선 이후 당대회를 통해 사회와 제도정치 양축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유형의 좌파정당임을 재확인하고 불가피한 긴축 속에서 투쟁하는 정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적 정치를 창출할지는 미지수다."

    '불가피한 긴축'이랍쇼? 그 불가피함이 당신이 아직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있는 시리자 녀석들이 합의하고 강행하는 거 아니요?

  • 변혁

    시리자
    치프라스
    정권 연장해서 뭐 할래?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