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과 오행

[윤성현의 들풀의 편지](6) 변증법적 세계관

둥근 알은 양이요 하늘을 닮았고 모난 판은 음으로 땅을 뜻한다는 바둑은 왜 가로-세로 각각 19줄일까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여러 판을 두다보니 가장 맞춤한 형태로 되어서 그럴까요, 아니면 어느 정도 처음부터 정해졌던 것일까요? 19×19=361로 1년 365일을 본떠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바둑판의 숫자는 단순히 경험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기보다는 애초부터 의식적으로 설계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의학은 어떨까요? 약물이나 처방은 단지 경험의 산물일 뿐이요, 경맥이나 경혈도 기공을 수련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일까요?

고대왕조들은 천문을 관측하고 역법을 만들며 토지를 측량하고 도량형을 정하는 데에 사활을 걸었는데 야만에서 벗어나야 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집단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4000년 전쯤에 황하 강 유역의 치수에 성공하여 하 왕조를 열게 되었다는 우왕의 이야기는 이런 사실의 일부이며 이러한 관측이나 계산, 측량이나 기록에는 수학이 필수적인 수단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가뭄이나 홍수,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 현상의 내재적인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역사적인 한계로 ‘천체의 운행에 근거하여 인사(人事)의 길흉을 추측한다’는 천인상응(天人相應)의 세계관은 뿌리 깊은 미신의 터전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일찍이 “귀신을 들먹이는 사람과는 의학을 논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상대적으로 변수가 적은 인체에서는 주술적인 행위와 의학적인 치료의 결과적인 차이가 쉽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끈이론을 이끈 어느 물리학자가 “어떻게 원리를 알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수학이 이끄는 대로 따랐을 뿐이다”고 답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음양오행, 오장육부, 십이경맥, 삼백육십경혈 등 한의학 개념과도 떼래야 뗄 수 없는 수(數)는 현대의 물리학만이 아니라 고대의 한의학 이론을 세우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구구단 외우던 기억, 나시지요? 원래 낯선 일은 다 어려운 법이지만 그래도 외우기 쉬운 몇몇 단이 있었지요? 홀수, 짝수 왔다 갔다 하는 홀수 단보다는 짝수, 짝수로 건너가는 짝수 단이 더 쉬웠겠지요. 2단과 5단을 외우는 것이 특히 수월했는데 왜 그럴까요? 2와 5가 10의 약수이기 때문이겠지요. 2나 5로 나누면 에누리가 없이 떨어지기 때문에 계산하기가 편한 까닭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기수(基數)가 10이 아니고 12였다면 구구단이 아니라 십일십일단과 씨름해야 했겠지만 2, 3, 4, 6이 모두 12의 약수이기 때문에 외우기 쉬운 경우도 두 배나 늘어납니다. 2밖에 크지 않지만 (1과 자신을 제외한) 약수가 두 배나 많은 12진법을 기수로 쓴다면 그만큼 다양한 셈을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낚싯대를 두 배 많이 가진 낚시꾼처럼 말입니다.

수학적으로도 유리하고, 시계나 달력 등 일상에서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2진법이 아니라 10진법을 일반적으로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손가락이 다섯 개, 양쪽 합해서 열 개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가 처음 수를 익힐 때 자신의 손가락을 이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요?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도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면서 닫히고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에서 열립니다. 고대인들이 수를 발견하고 셈을 할 때도 손가락이 결정적인 도구로 쓰였으며 그 수가 열이라는 사실, 그것이 10진법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상징으로 하여 한의학 체계의 한 축을 이루는 오행(五行)이 사행이나 육행이 아니라 꼭 오행인 이유도 고대인들이 천문과 지리를 연구할 때 10을 기수(基數)로 썼기 때문이며, 음양 둘로 십을 나누면 오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행 관념은, 존재란 관계를 맺음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으며 또 존재란 운동(변화)의 과정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관계식입니다. 목은 화, 화는 토, 토는 금, 금은 수, 수는 목을 낳는다는 상생관계를 표현합니다. 또 수는 토, 토는 목, 목은 금, 금은 화, 화는 수에 의해서 죽는다는 상극관계를 표현합니다. 시간이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장마철로 나뉘고, 공간이 동서남북과 중앙으로 갈리는 것이 다 관계 속에서의 변화인데 그 규율이 오행이라는 것입니다.

오행 이론은 사물의 존재 원인이 사물 자체에 있으며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대립을 통해서 변화한다는 유물론적이면서도 변증법적인 세계관의 표현임에는 확실합니다. 다만 그 규율이 5인가라는 점은 증명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나의 손목, 발목에서 다섯 개의 손가락, 발가락으로 나뉘고 인삼의 잎이나 무궁화 꽃잎도 다섯 장씩이지만 모든 생명체의 여러 기관을 따져보면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10진법이나 12진법과 같은 수의 체계가 한의학에도 도입됨으로써 인체의 각 장기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장과 육부가 되고, 경락도 12경맥, 360경혈이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은 이론과 체계를 갖춘 하나의 학문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끼워 맞추기를 해야 했습니다. 12경맥을 설정하고 이와 짝할 6장6부를 만들어 내야만 했으니 장부라고 하기에는 실체가 없는 심포(心包)와 삼초(三焦)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축구를 하려면 축구공이 필요하고 옷도 바늘이나 베틀이나 방직기로 짜듯이 과학은 과학적인 도구를 전제로 합니다. 진화론조차도 화석원료를 쓰는 근대적인 교통수단이 없었다면 다윈이 한평생 각지를 탐방하여 여러 표본들을 비교대조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혈압계나 혈당측정기, MRI나 내시경이 없었던 한의학은 오늘날에 평가한다면 한계이면서도 유산이기도 한 자신의 방법을 갖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근대과학적인 도구를 갖지 못한 한계 속에서 한의학은 신비로움을 벗고서도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자본이 연구하는 이론만이, 자본이 결정하는 기준만이 유일한 ‘의학’이 된 오늘날, ‘다른 의학’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과학적인 발견조차도 누구의 소유권이며 어느 회사의 특허권이 되는 사회에서 인간과 자연, 모두를 위한 의학은 가능할까요? 선원이 흑인노예들이었던 배를 타고 다닌 다윈이 노예제도를 반대했다는 사실이 그의 이론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입니다.

* 참고
<<신비로운 수의 역사>>, 조르쥬 이프라 지음, 김병욱 옮김, 예하 출판
<<음양오행설의 연구>>, 양계초, 풍우란 외 지음, 김홍경 편역, 신지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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