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

[파견미술-현장미술]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외침


판화가 이윤엽은 판화로 소통하고 판화로 이야기하는 작가다. 노동자투쟁 현장마다 이윤엽의 판화는 늘 함께한다. 어느 현장 어느 곳에서 요청이 와도 그는 투쟁현장의 핵심을 파고드는 판화를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에는 힘이 실려 있다. 웃음도 있고, 희망도 있다. 그런 이윤엽은 수다쟁이다. 그가 현장에 나오면 현장분위기는 한순간에 웃음꽃이 핀다. 익살스런 몸짓과 표정은 그의 작품 속 어느 노동자의 모습이거나 어느 농부의 모습이다.

이윤엽은 과장하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우리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하다. 그가 만든 판화들은 투쟁현장의 이미지로 티셔츠가 되기도 하고, 손수건이 되기도 하고, 엽서나 웹자보가 되기도 하고, 투쟁 문화제 배경현수막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는 투쟁 당사자들과 판화 만들기 작업도 하고 판화 찍기 작업도 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판화에 담기도 한다. 이윤엽은 손기술이 좋은 작가다. 그러다 보니 농성장 여기저기 설치물을 만들기도 하고 농성장 수리를 돕기도 한다.





어느 날 이윤엽에게 문자가 온다. “유아 씨 메일 보냈어.” 뜬금없지만 메일을 열어보면 새로운 판화 작품이 들어있다. 작품만 봐도 무슨 현장에 어떤 내용을 표현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필요할 거 같아서’ 그럼 난 바로 투쟁사업장에 전화를 하고 이미지를 보낸다. 어느 날은 필자가 전화를 건다. 이러저러한 현장이 있다. 이런저런 내용의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 있나. 이윤엽은 전화를 끊고 바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한다. 그가 보내주는 이미지는 늘 좋다.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가 언론사와 인터뷰한 글은 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솔직하다. 그래서 그가 좋은가 보다.

“재미와 즐거움. 현장은 물론 슬픈 일투성이지만 내가 뜨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러면 나도 좋다. 현장이 내 그림에 힘을 주고 내가 현장의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내가 뜨면 싸움은 이겨’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떠벌리고 다닌다. 요즘 싸움이라는 게 이겼다고 해도 애매한 절충과 타결인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파견 미술가들이 싸움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게 난 좋다.”

“파견 미술가라는 게 투명 자동차 같은 거다. 탑승자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미술가가 아닌 사람들도 있고 누가 한 사람 올라타면 시간이 되는 사람들 함께 타고 가서 리본도 묶고 그림 설치도 하고”





2011년 희망버스가 출발하기 얼마 전 충남 아산유성기업지회 소식이 들려왔다. 피범벅이 된 노동자들의 사진이 온라인을 통해 알려지면서 밤에는 잠 좀 자자고 하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왜 이처럼 처참하게 탄압당해야 하는지 분노가 치밀었다. 때마침 유성기업 아산지회에서 연락이 왔다. 세상에 이 부당함을 알려야 하는데 이미지 작업을 해줄 수 있냐는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늘 그렇듯이 이윤엽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루 만에 올빼미사람을 판화로 만들어 보내왔다.

2011년 5월 18일 유성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충남 아산 유성기업 공장 앞은 폭력의 아수라장이었다. ‘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 밤에는 잠 좀 자자’는 구호아래 지회는 쟁의절차를 밟아 ‘주간연속2교대제 및 월급제 쟁취’를 위한 합법 파업에 돌입했다. 주간조가 2시간 부분파업을 하자 회사는 ‘직장폐쇄’를 강행했다. 지회는 직장폐쇄가 ‘불법’이며, 노동자들의 파업은 합법임을 강조하며 공장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사측은 7일 만에 경찰병력과 용역깡패를 동원해 조합원을 전부 공장 밖으로 몰아냈다.

공장 밖 도로를 사이에 두고 멀리 회사가 보이는 비닐하우스에 농성장을 만들었다. 이윤엽과 함께 농성장으로 갔다. 조합원들과 함께 공장을 향한 이미지 작업을 시작했다. 비닐하우스를 덮고 있던 검은색 덮개를 바닥에 펼쳤다. 20미터는 족히 넘는듯했다. 물감과 페인트 등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꺼내들고 모두가 모였다. 이윤엽은 스케치하듯 “공장 문을 열어라”라고 써 내려갔다. 거기에 덧칠을 하는 작업과 글자 주변에 그리고 싶은 그림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다.

페인트가 마르고 조합원들과 힘을 합쳐 비닐하우스 위에 검은 덮개를 올렸다. 멀리 공장 앞 도로에 올라가 보았다. 글자는 또렷하게 보였다. 공장 담벼락 안쪽에서 조합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망루 위 감시자들의 등골이 오싹해졌으리라. 우리는 쉬지 않았다. 올빼미 현수막을 창고 앞쪽과 지붕 위에 걸었다. 넓은 논밭 너머 열차가 달리고 있다. 열차를 타고 가는 이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하늘 위로 평택 미군 기지를 오가는 헬기가 날아간다. 저들에게도 우리의 요구가 보이길 희망했다.

해가 저물어 간다. 조합원들은 오늘도 비닐하우스에서 쪽잠을 청한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공장 문을 열라는 큼지막한 글씨 아래 조금 마음 편하게 잘 수 있었으리라.[계속]





















덧붙이는 말

* 이 글은 문화연대가 발행하는 이야기 창고 <문화빵>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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