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와 청년실업, 그리고 노동법 개악

[양규헌 칼럼]자본 천국 프로젝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가 임금피크제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지난 9월 15일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의결했다. 임금피크제의 유형은 정년연장형, 재고용형, 근로시간 단축형의 3가지 유형으로 공통점은 하나같이 ‘임금을 줄이는 방식’이다. 임금피크제 자체는 임금을 줄이고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제도임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노사합의로 결정해야하는 법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노사정합의의 내용은 임금을 깎든, 해고를 시키든 회사마음이라는 것이다. 자본주도의 일방적인 구조개악을 노사정이라는 허울을 씌워 뚝딱 해치웠다. 노동자계급의 대표성과는 거리가 먼 한국노총을 끼워 넣어 구색을 맞춘 박근혜정부의 발상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자본과 정권의 해결사로 나선 한국노총

한국노총이 노동자계급의 대표가 될 수 없다는 근거는 한국노총조합원이 전체 노동자의 4%밖에 안 된다는 이유가 아니다. 한국노총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노동자의 요구를 수렴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한 적이 없다. 지배계급의 억압과 침탈에 대해 언제나 강도 높은 투쟁, 총파업을 외쳤지만 결과는 공허한 외침으로 끝났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동력이 살아있고 투쟁이 고양국면일 때는 전선에 균열을 일으키고 김을 빼는 역할을 함으로써 투쟁전선에 혼란을 야기하고 찬물을 끼얹었다. 투쟁전선의 교란과 균열의 대가로 지도부가 정치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게 노동운동사의 한부분이다. 결국 한국노총은 노동자계급을 배신하고 자본과 권력에 기생했던 조직이기 때문에 과거 전노협 건설은 제2노총건설이 아니라 노동자조직을 대표하는 유일한 중앙조직 하나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건설되었고, 지금의 민주노총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이번 노사정 합의는 형식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정통성과 명분 없이 “자본가 천국 만들기 프로젝트”에 한국노총을 빛 좋은 개살구로 끼워 넣었으나 노동자계급의 대표성은 천부당만부당하다.

이번 노사정합의문은 모호한 단어들로 도배되어 입장에 따라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게 작성되어 있다. 공식적인 합의문을 이렇게 모호하고 헷갈리게 하는 경우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노사정이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하고 토론한 결과로써의 합의문이 해설서조차도 생략되었다. 뿐만 아니라 합의문을 바탕으로 제출한 정부여당의 법안은 경총의 안을 그대로 복사해서 제출하고 있다. 노동자의 입장이 반영되기는커녕, 일방적 ‘노동자 죽이기’의 합의내용이 구체성을 감추면서까지 모호하게 작성되었다. 그 이유는 일방적 ‘노동자 죽이기’의 분명한 표현을 은폐시켜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피하고 한국노총에게 변명의 여지와 면죄부를 주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노사정합의는 자본의 천국을 만들려는 프로젝트

이번 합의를 근거로 정부는 ‘두 개의 지침’과 ‘다섯 개의 법안’으로 전례 없는 노동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모든 법안이 심각하지만 특히 ‘저성과자 해고지침’과 ‘취업규칙 변경’은 노동자에게 아주 작은 권리조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저성과자’를 낙인찍는 도구는 무엇이며 ‘저성과’를 어떻게 판단하겠다는 것인가. 노동자를 자본가 마음대로 낙인찍고 마음대로 해고하겠다는 것이다. 사회통념을 내세우며 ‘저성과자’라고 낙인만 찍으면 위로금이나 한 푼의 보상 없이 명퇴나 해고를 시킬 수 있으니 이런 자본의 천국이 어디 있는가. 지금도 1년에 180만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고 있고, 나쁜 일자리(저임금과 고용불안) 때문에 해고되는 노동자가 500만 명이 넘는다. 때문에 ‘저성과자’ 딱지만 붙이면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마음대로 해고시킴으로써 재벌이 갖는 이익은 10조가 넘는다고 하니 대한민국은 자본의 천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취업규칙도 마찬가지다. 임금피크제 도입은 각 사업장의 노사가 합의해서 채용, 인사, 해고 등과 관련된 취업규칙을 변경해야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이번에 시도되고 있는 노동법개악에는 노조동의 없이 취업규칙 변경도 가능하다는 쪽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개악이 관철되면 단체협약은 무용지물이 되고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헌법에 인쇄된 글자로만 존재하는 꼴이다. “자본가 천국 만들기 프로젝트”는 21세기 노동자들을 조선시대 노비와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시키려 한다. 그 근거는 비용이나 대가없는 해고의 빈자리는 비정규직을 양산할 것이고, 노사관계의 기능이 제도적으로 억압당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기능은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관리부서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저성과자 해고지침’, ‘취업규칙 변경’건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공짜로 해고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지며 이는 결국 불법파견을 합법으로 둔갑시켜 비정규직을 확산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꼴이다. 소위 ‘노동개혁안’의 도입은 자녀세대와 부모세대 모두를 알바노동과 같은 불안정한 노동의 길로 내모는 것과 같다. 정부와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통해 ‘우리 아들딸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자’고 떠들고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의 본질은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철저히 유린하겠다는 것이다. 세대 간의 갈등을 증폭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을 분열시켜,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는 음모가 담겨있다.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빼앗은 대가로 경제위기에 땜질을 하고 지배계급 내부의 균열을 봉합하겠다는 비윤리적인 발상이 돋보인다. 이런 음모는 청년실업을 빌미로 노동자계급의 고용구조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개혁이라는 구실로 비정규직을 확산하며 청년에게도 나쁜 일자리를 유도하며 청년실업의 책임을 청년들에게 전가할 것이 분명하다.

1차 노동시장(정규직) 과보호가 청년실업의 원인이라는 정부 주장은 새빨간 거짓

특히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합의 당시에는 없앴으나 실제 법 개정에는 기술적으로 끼워 넣었다. 정부와 자본은 이중구조의 원인이 1차 노동시장의 경직성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정부는 1차 노동시장의 ‘과보호’라는 벽을 허물어야만 부문 간 노동이동이 활발해져 이중구조가 완화될 수 있고 청년실업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가 자기 책임을 회피하며 정규직에게 책임을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수년간 정규직의 실질임금은 제자리걸음이었지만 노동시장 내 격차는 더 커졌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정부와 자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정규직은 줄어들고 비정규직은 늘어났으며 80만 원 이하를 받는 노동자가 40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불안정노동자의 실태를 반영하고 있다.

청년실업의 위기를 노동자계급내의 대립으로 조장, 강화하면서 정치적 음모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곳간이 넘치는 재벌에게 계속되는 특혜를 차단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다. 저성과자 낙인만 찍으면 재벌이 갖는 이익은 10조가 넘으며(비용 없는 해고), 노사합의 없이 임금피크제가 시행되면 한해 5조 이상의 이익이 저절로 생겨난다. 청년실업의 해결방안은 돈 많은 재벌에게 15조를 퍼 주는 게 아니라 재벌의 곳간을 풀고, 청년고용할당제만으로 청년의 일자리는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법인세 분리과세만으로도 15조 재정이 늘어날 수 있는데 구조적인 청년실업의 문제를 노동자 죽이기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 그러나 노동자가 해결해야

기만적인 노사정 합의를 통해 법제화하려는 사안들은 일반적인 악법이 아니다. 노동탄압과 임금착취에 맞서 노동자들이 저항해야 할 근거들을 법률로서 없애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노동법 개악저지의 수준으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개악의 결과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노동조합의 존재의미를 말살시키기 때문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쟁취한 아주 작은 성과마저도 모조리 앗아가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권과 자본의 정치적 술수를 끝장낼 수 있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노사정합의에 대해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이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그 분노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현재의 민주당이 권력을 잡았을 때, 노동자에 대한 태도가 지금의 박근혜 정권과 다르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기형적 노사정 테이블을 통해 정리해고를 제도화했으며, 노무현 정권에서는 소위 비정규보호법을 법제화하였다. 노동운동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이 텔레비전 토론회 나와서 비정규보호법을 법으로 만들면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법이라고 큰소리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 당시 5~6백만이었던 비정규노동자가 현재 1200백만까지 늘어난데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분명히 답해야한다. 아울러 새정치민주연합이 지금의 노·사·정 합의를 비판하려면 자신들이 저질렀던 반 노동자적 행태(정리해고, 비정규법안, 노동자탄압)에 대한 사과가 전재되어야 조금의 진정성이나마 가질 수 있다.

상황은 참담하다. 그러나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망은 밝지 않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기에는 노동자계급이 딛고 선 벼랑 끝 낭떠러지가 너무 깊다. 때문에 10월과 11월의 총파업투쟁을 민주노총과 함께 제대로 조직하는 것만이 저들의 음모를 저지하는 방안이다. 자유주의 세력에 목줄을 맞길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운명은 노동자에 의해 위치 지워짐을 확인해야 한다. 지난시절 노동자 대투쟁과 노·개·투 총파업투쟁을 지난 추억으로 회고할 것이 아니라 현실로 재현해 내는 것이 자본가계급의 노동자 죽이기에 맞서는 최소한의 방어투쟁이며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본질을 대중적으로 공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제는 현 시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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