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반세계화

극우가 가져간 좌파의 반세계화 운동

사회
홍석만 <워커스> 편집장

패널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이종회 사회변혁노동자당 대표


홍석만 1994년 1월 1일, 멕시코 사파티스타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발효일에 무장 봉기 하며 자본의 세계화(globalization)의 문제를 전 세계에 알렸다. 이후 다자간 무역 협정을 이루려는 WTO(세계무역기구)에 반대하는 투쟁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났다. 이처럼 반세계화 운동은 국제적인 좌파 진영이 주도해서 시작되었고, 세계경제포럼(WEF)에 대응해 2001년 세계사회포럼(WSF)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남미에서는 반세계화 흐름을 따라 좌파 정권이 다수 집권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반세계화 운동의 주체는 극우로 바뀌었다. 영국은 주로 이민자와 난민 문제로 브렉시트를 택했고, 미국은 트럼프 현상으로 고립주의로 가고 있다. 다시 반세계화 운동에 대해서 진지하게 평가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좌파 주도의 반세계화 운동은 어떻게 평가하나? 또 지금 현재 극우 주도의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나?

반세계화, 서로 다르다

심광현 반세계화의 정의를 먼저 내려야 한다. 좌파의 반세계화는 세계화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이윤 중심의 자본의 세계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좌파는 사회주의적 세계화를 펼칠 역량이 안 됐다. 1989년부터 소비에트와 동구권이 붕괴되고 있었고 구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로 역이행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반면 이 틈을 타고 자본의 공세는 세계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으로 1994년 1월 NAFTA가 발효됐고, 이듬해 1995년 WTO가 출범했다. 따라서 좌파 진영이 주도한 반세계화 운동은 어떤 대안을 갖고 시작한 것이라기보다는 방어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종회 서구에서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WTO와 NAFTA라는 기구와 지역 블록으로 신자유주의가 체계화된 건 1994년 이후다. 이때부터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가 본격화됐다. 이 국면에서 유럽과 미국에서는 미국의 MAI(다자간투자협정) 내용이 폭로되면서 저항이 시작됐고, 남미에서는 사파티스타 무장 봉기, 1999년 WTO 각료회의가 열린 시애틀에서, 2003년 멕시코 칸쿤, 2005년 홍콩 각료회의에서 WTO 반대 투쟁이 크게 벌어졌다. 모두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한 투쟁이다.

이후에 자본은 WTO라는 다자 기구에서 합의가 쉽지 않고 저항이 거세지자, 지역 블록으로 (무역 협정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TPP(Trans-Pacific Partnershi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TIP(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가 나왔다. 이렇듯 자본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지역화, 체계화, 제도화했다. 반면 반세계화 운동은 WTO 반대 투쟁과 세계사회포럼의 형성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지역과 개별 국가 단위의 FTA 문제로 천착하면서 수그러들었다.

김현우 반세계화 운동이 좌파의 것이었다는 것도 좀 자의적이란 생각이다. 1994년 사파티스타 운동부터 시애틀까지 나온 담론의 덩어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될 수도 있다 생각한다. 이주노동자 운동도 자본의 장벽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많이 했다. 사실 유럽과 미국의 우익들은 처음부터 세계화에 반대했다. 그래서 1999년 시애틀 대전 이후 반세계화보다 대안 세계화, 대항 세계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말해 왔다. 지속적인 대안 세계화 운동을 만들려면 더 큰 공동의 목표가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투쟁하고 움직이는 지역 주체가 있어야 한다.

FTA, 차도살인지계… 손쉬운 구조조정, 비정규직, 노동 유연화

홍석만 한국 정부도 2000년대 들어 정말 미친 듯이 FTA를 체결하기 시작했는데, FTA가 자본 입장에서 정말 실효가 있었을까? 한미 FTA만 하더라도 2012년에 발효가 됐다. 지금 한미 FTA 효과에 대해 양쪽에서 무역 수지가 더 늘었네 줄었네 하면서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2008년 미국 경제가 금융 위기로 추락한 이후 제대로 회복도 못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정부와 자본은 FTA가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이게 대외 관계, 무역 관계에서의 성과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가령, 한미 FTA 체결 과정과 비정규직법 도입 과정은 정확히 일치한다. 기업의 상시 구조조정 체제 즉, 상시 정리 해고 체제가 마련된 것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2001년부터다. 그즈음부터 FTA 체결 논의도 본격화되었다.

김현우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 시기에 투자자국가소송제도와 같은 독소 조항 때문에 한미 FTA를 이런 조건으로 맺으면 국내 경제에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접근이 주를 이뤘다. 다른 영역에서도 한미 FTA를 맺게 되면 국내 경제와 노동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하지만 홍석만 편집장 얘기는 한미 FTA 체결 여부와 관계없이 논의하는 것 자체가 국내의 노동 조건을 악화시켰다는 입장이다. 쉽게 말하면, 독소 조항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국내 노동자들은 피해를 받았다는 점인데, 여러 평가가 가능할 것 같다.

홍석만 FTA를 맺으려면, 자본의 입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노동력 비용을 줄이고, 노동은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FTA라는 것이 대외 무역, 대외용이 아니라 국내용, 국내 노동자를 상대로 한 공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일종의 차도살인지계 같은 것 말이다.

심광현 당시에도 같은 주장을 했는데, FTA가 요구한 것은 손쉬운 구조조정이다. FTA 이전에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금기시됐고 어려웠다. FTA는 국내, 국외 효과가 있다. 한국 자본의 입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국내 효과다. 기업이 ‘먹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와 국회는 2006년부터 FTA를 논의하며 손쉬운 구조조정을 위해 관련 정책과 법을 바꿔 나갔다. 자본은 경제 발전의 도구로 구조조정을 밀었고 비정규직 등 노동 유연화를 확대했다. 문제는 노동 진영조차도 산업별, 업종별 이해에 따라 전체적인 대응에 집중할 수 없었던 점이다.

이종회 개별적 산수만 놓고 얘기하니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한국은 1998년부터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했다. 한-칠레 FTA는 2004년이다. 그 전에는 몽골과 한국이 유일하게 FTA를 안 맺은 나라였다. 한국은 신자유주의를 상대적으로 늦게 도입했지만 가장 짧은 시기에 빠르게 전면화를 이뤘다. 노조를 깨기 시작한 것도 신자유주의 전면화 이후다. 일본도 신자유주의 완성이 1980년대 말까지 20년 걸렸다. 우린 10년 만에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 운동은 한일, 한미 FTA 반대 투쟁으로 전 세계의 반세계화 흐름과 같이했다. 하지만 국가의 산업적 이해득실을 얘기하기 시작하며 무너져 갔다. 지금은 민족적,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이 거의 굳어졌다.

  사진 / 홍진훤

영국 “Britain First”, 그리스 “EU First”?

홍석만 유럽에서 극우나 신고립주의가 부상하게 된 이유나 배경이 어디에 있나? 브렉시트로 문제가 된 EU에 대해서도 약간 거칠게 구분하면 스페인과 그리스, 이탈리아는 유럽 핵심 국가는 아니다. 그리스 긴축안에 대해 국민 투표를 할 때, 시리자는 긴축에 반대하면서도 일관되게 EU 탈퇴를 거부했다. 그리스는 고립된 그리스의 국민으로 남기보다 유럽의 시민으로 남고자 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또한, 동유럽 국가도 EU에 남기를 바라고 있다. 반면, 북유럽과 영국, 독일, 프랑스는 자기들끼리만 사는 게 낫다는 주장이 많다. 그러면서 탈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심광현 EU 출범 후 20년 만에 영국이라는 주력 부대가 탈퇴했다. 영국은 1993년 말 신자유주의적 EU를, 미국은 1994년 1월 NAFTA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둘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EU에서 영국이 빠진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유럽의 위기를 뜻한다. 2010년 유럽의 경제 위기와는 또 다른 정치적 위기다. 결과적으로 보면, 영국이 신고립주의를 택한 것이 아니다. 영국은 신자유주의적인 EU를 만들었는데 더 이상 그 EU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국은 신자유주의가 가진 금융 자율화를 통해 이득을 챙겼다. 이제 금융 이익은 줄어들고 반면 세계 부채의 고통을 분담하는 상황이 왔다. 이런 상황에 영국이 부채 분담을 싫어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단순히 고립주의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 위기가 번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종회 미국의 고립주의, 영국의 고립주의가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각국의 고립주의는 역사, 문화적으로 과거부터 존재했다. 그렉시트와 브렉시트도 다르게 나타났다. 그렉시트는 긴축과 노동 문제가 핵심이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이주민 문제가 본질을 덮었다. 각국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모두 다르다.

김현우 2005년 프랑스에서 EU 헌법 비준 국민 투표가 있었다. 통과될 거라 낙관하고 있었지만, 프랑스공산당과 반자본주의신당의 전신인 프랑스혁명공산당(LCR) 주도로 헌법 비준이 부결됐다. 애초에 르펜이나 드빌리에 같은 극우파가 부결을 먼저 선동했다. 이번 브렉시트는 반대로 좌파 정치 세력의 일부가 브렉시트에 찬성하기도 했지만 우파에 의해서 진행됐다. 고립이냐 아니냐 혹은 좌파냐 우파냐 하는 것도 현상적인 문제일 뿐이다.

또한, 신자유주의와 신고립주의가 서로 이율배반적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정말 자유주의도 아닌 것이, 국가와 지역의 고착성이 없어진 것도 아니었고, 국가 기구와 제도도 선별적으로 자유화했다. 따라서 어떤 세계화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반세계화 운동은 좌파의 것이었다는 형태로 좌우 라벨을 붙이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고장 난 신자유주의 버스… 무엇을 할 것인가

홍석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위기를 맞고 있나?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심광현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2010년 유럽 위기, 2012년 그리스 국가 부도 사태가 짧은 시간에 세계 곳곳에 나타났다. 세계는 30년간 신자유주의라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러다 바퀴 하나 떨어져 나가고 엔진에서 연기가 풀풀 나는 상황이다. 이 버스를 수리할 것인지, 다른 버스를 만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좌파는 다른 버스를 만들자는 쪽이다. 하지만 만들려면 힘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연대해야 한다. 만들려는 버스가 좋고 나쁨을 떠나 다른 버스 자체를 먼저 만들려는 것이다. 이 버스가 가는 방향이 뭐냐는 것은 대안 세계화 목표 방향이 뭐냐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투쟁하고, 미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넘는 삶의 실천을 전개하고 실험해야 한다. 대안 세계화 운동이 다층성을 가진 것이라면, 대안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전체 현상에 비해 많지 않았다. 적(노동)-녹(환경)-보(여성)를 중심으로 일상적인 연대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종회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저지 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고 신자유주의 체제 자체가 흔들렸다. 지역별로 공격의 방식도 달리 나타났다. 그에 따라 유럽, 아랍, 북미의 싸움 형태가 모두 달라졌다. 아랍은 생존권 문제와 반독재, 반군사 형태로 나아갔다. 미국은 2011년 금융, 부채, 빈부 격차 문제에서 월가 점령 시위로 나타났다. 금융 통제로 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패스트푸드를 중심으로 불완전 노동 철폐 싸움으로 번졌고 최저임금 15달러 운동으로 나갔다. 유럽은 대부분 긴축 반대 투쟁으로 판이 짜였다. 우리도 노무현 정부 때 비정규직법 등 신자유주의적 개편이 법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이때 비정규직 철폐 구호가 등장하고 비정규직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까지 오고 있다. 이러한 주체들로 새롭게 판을 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각국별로 의제도 다양하고 주체도 불균등해서 공통의 의제 설정이 쉽지 않다.

김현우 이번 이탈리아 로마 시장을 배출한 오성운동의 당수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가 장난으로 생태주의를 얘기한 게 아니다. 매우 진지하게 얘기했다. 고립 혹은 개방보다 어떤 공동체인지를 얘기해야 한다. 이 점에서 스페인 포데모스와 그리스 시리자, 이탈리아 오성운동은 이를 적절히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파의 선동과 대비되는 우리 공동체의 키워드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의미로 대안 세계화 즉, 지역주의와 국제주의의 접근을 고민해야 한다.

밀양뿐 아니라 독일과 포르투갈, 스페인의 지역에서도 송전탑 반대 운동을 비롯한 지역 에너지 전환 운동이 나타났다. 이는 ‘따로 또 같이’인 것이다. 공식 기구 없이 같은 목표를 갖고 런던, 뉴욕, 치아파스에서 ‘따로 또 같이’ 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민주주의, 어떤 경제 체제, 어떤 공동체를 바란다는 공통의 지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반세계화 운동의 버전을 올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같은 경우, 스카이 공동 행동(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강정마을, 용산 참사의 연대 프로젝트)에서 그런 가능성을 많이 봤다.

이종회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별 국가별로 다양한 의제와 방식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에 도전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를 대신할 체제에 대한 고민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세계화일 뿐만 아니라 개별 국가에서 노동 유연화, 일상적인 구조조정, 부채를 통한 금융적 성장을 의미한다. 노동을 유연화시켜 임금을 줄이고 대신 부채를 통해 성장하는 방식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의 체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과거에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체제가 존재했지만 1990년대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다른 대안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경제 위기가 장기화한 상황에서 이를 타개해 나갈 사회 체제, 국가 시스템에 대한 문제로까지 고민이 상승해야 한다.(워커스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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