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촛불혁명의 완수를 꿈꾼다

[시평] 19대 대선과 촛불, ‘지지자’ 아닌 정치의 주체로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했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촛불혁명이 정권교체로 완성됐다고 믿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촛불혁명의 성과를 보수정당이 수렴해가면서 촛불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선거를 작년 말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의 한 과정으로 이해한다. 촛불혁명이 이루고자 한 것은 단지 대통령 하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것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촛불이 일상으로 확대해 가기를 꿈꾼다.

[출처: 자료사진]

‘정권교체’의 틀에 갇힌 선거

촛불광장에 담겨있던 민주주의의 열망과 의지가 일상으로 확산되지 못한 채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게 됐다. 그리고 촛불광장의 여러 열망은 ‘정권교체’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광장에서는 정치적 주체였던 우리들이 광장을 넘어 삶의 전반에서 주체로 서는 과정을 겪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 힘이 정치적으로 세력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 정치인 중에서 차선을 고르는 투표행위를 넘어서기는 어려웠다. 또한 정치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확인됐듯이 적폐세력의 정치적 기반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버티고 있었으므로, ‘적폐청산’의 요구는 ‘정권교체’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인식됐다.

자유한국당과 검찰, 국정원, 언론, 재벌대기업과 보수교단의 카르텔은 뿌리째 흔들리지 않았다. 특검과 언론을 통해서 이 카르텔이 적나라하게 폭로되고 재벌총수 일부가 구속되기는 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언론을 동원하여 프레임을 바꾸고, 전쟁위협을 조장하며, 지역주의와 혐오를 통해 세력을 결집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가 24%를 득표하며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물론 이후 기득권 카르텔의 주도력이 여전히 자유한국당에 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24% 득표의 힘으로 더불어민주당을 이 카르텔에 더 깊숙이 포섭하려고 시도하게 될 것이다.

뒤로 밀려난 촛불의 요구들

대선이 ‘정권교체’의 틀에 갇히다보니 선거운동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를 향한 촛불의 의지는 단절됐다. 광장의 시민들은 평등하고자 했고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고자 했으나, 대선 시기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 난무했다. 새로운 사회의 가치가 논의되기보다는 여전히 안보논리가 횡행했다. 촛불광장에서는 헬조선인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촛불권리헌장이 제정되기도 했으나 그 문제의식은 좁은 정치개혁 공약들로 환원됐다.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고자 했던 광장의 시민들은 누군가에 대한 ‘지지자’로 전락했다.

‘정권교체’에 갇힌 채 광장의 열망이 새로운 세력화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박근혜퇴진와 더불어 진행됐어야 할 개혁과제들은 뒤로 밀렸다. 촛불정국에서 열린 국회는 탄핵안은 가결했으나, 매우 중요한 법안은 처리하지 못했다. 특조위를 재구성하는 세월호특별법도 처리되지 못했고, 백남기 농민 특검도 진행되지 못했다. 언론장악 방지법도 국회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 사이 황교안 권한대행은 사드배치를 강행했다. 비정규직·정리해고·노조탄압으로 고통받던 노동자들은 결국 광화문 광고탑에 올라 27일간 단식농성을 해야 했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문재인정부는 개혁과제를 완수할 수 있을까?

‘정권교체’ 후로 미뤄진 개혁과제를 문재인정부가 충실히 수행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재벌개혁과 언론개혁, 그리고 검찰개혁, 국정원 개혁 등이 필요한데, 더불어민주당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 정부에서 보여주었던 노골적인 재벌편향과 언론장악, 노동자에 대한 통제나 억압 등과는 다른 태도를 취할 것이고,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등에서도 조금의 진전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사회는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하지만 적폐세력에 대한 온전한 청산이 없다면 그 변화는 언제라도 후퇴한다. 그래서 문재인정부에 ‘적폐세력 청산’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심상정 후보가 적어도 10% 이상을 득표하기를 바랐다. 문재인대통령 당선 이후 우향우하는 정책을 조금이라도 견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광장에서 지도력을 인정받고 그 힘으로 올라선 진보정당이 아니라, 기존의 선택지 중에서 진보적인 곳이었기에 ‘정권교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표방지’ 심리가 여전히 표의 확산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하지만 텔레비전 토론 당시 성소수자들을 존중했던 1분 발언 등 인권정당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6%를 넘는 지지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주체가 되지 않는 한 정의당의 힘으로 개혁과제를 온전하게 끌고 가기는 어렵다.

촛불혁명은 어떻게 완수되는가?

문재인정부가 이전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정부를 만든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촛불혁명이었기에 그 힘이 남아있는 한 문재인정부가 과거 정부와 똑같은 길을 가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촛불을 들어야만 했던 현실, “미래가 없는 불안정한 삶”은 쉽게 나아질 수 없다. 문재인대통령의 공약을 보더라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빗장을 풀고 이명박·박근혜정부가 더욱 확산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대안을 만들기보다는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를 완화하는 수준의 접근이다. 노동3권 보장에 대해서도 불투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기에 삶을 바꾸고자 한다면 노동자들이 더 많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돼야 하고, 더 열심히 싸워야 한다. 스스로 의미있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여전히 촛불광장에서 외쳤던 근본적인 변화의 요구가 우리 마음 속에 살아있다면, 이윤보다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혐오와 배제가 아니라 존중과 공존을 중요한 가치로 삼으며, 전쟁에 맞서 평화를 지켜나가는 삶을 만들고자 한다면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제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가 돼야 한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고, 시민들은 일상에서 자신의 요구를 구체화하는 모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이 정치적으로 모여야 한다. 모이고 말하고 행동하는 힘이 더 일반화되고 일상이 될 때,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러니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지금, 우리는 더더욱 촛불을 일상으로 확대하여 촛불혁명을 완수하자고 다짐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