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박근혜 망령 속 서울대, 지난한 학생들의 싸움

[인터뷰] 윤민정 공대위 집행위원장

지난 3월 11일 새벽. 서울대가 시흥캠 반대 농성을 하던 학생들을 진압했다. 직원들은 학생들을 강제로 끌어냈고, 버티는 학생들을 향해 소화전으로 물대포를 쐈다. 이날 폭력 침탈로 4명의 학생들이 응급 후송됐다. 학내 분위기가 들끓었다. 결국 4월 4일 학생들은 총회를 열고 ‘성낙인 총장 퇴진 요구의 건’을 90% 이상 찬성으로 가결했다. 5년에 한 번꼴로 열리는 학생총회가 시흥캠 사태로 6개월 만에 두 번이나 열렸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서울대는 박근혜의 적폐가 사라지지 않은 곳”이라고 호소했다. 아직까지 친박 성향의 성낙인 총장이 버티고 있어서다. 서울대 학생들은 여전히 촛불 광장에 있다. ‘부동산 투기 대학’인 서울대 시흥캠퍼스 조성을 막기 위한 이들의 투쟁은 벌써 9개월에 접어들었다.

성 총장은 지난 25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 나서 서울대 현안에 대해 읍소했다. 그는 국공립대 통합을 반대했고 시흥캠퍼스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본부를 점거해 700m 떨어진 임시사무실을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성 총장이 이사장실을 임시사무실로 쓸 때, 학생들은 전기가 끊기고 폐쇄된 본부에서 위태로운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31일, 본부 2층에서 ‘서울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와 학생 탄압 중단을 위한 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윤민정 집행위원장(정치외교학부, 15)을 만났다.

  윤민정 '서울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와 학생 탄압 중단을 위한 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출처: 김한주 기자]

10명 출교 조치, 6명 형사 고발 등 수십 명이 징계된 사례는 2000년 이후 처음이다. 학생들은 징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지난 29일 학생 12명이 징계혐의고지서를 받았다. 출교 조치가 정해진 건 없지만 학생처 실무자가 학생들에게 흘린 얘기다. 징계위원회를 통해 수위가 정해질 예정이다.

2000년 이후 학교에서 학생을 징계 제명한 일은 없었다. 2002년 학생-청원경찰 간 폭행에도 무기정학이었고, 몰래카메라, 부정행위 사건에도 유‧무기정학 조치였다. 올해 1월에 처음 징계 얘기가 나오고, 학생들이 많이 위축됐다. 그러다 3월 11일에 폭력 강제 해산으로 큰 위협을 받았다. 결국 학생들은 다시 점거에 들어갔다. 4월 4일에는 학우 2천 명이 모인 총회에서 기조를 재확인했다. 이 총회에서 성낙인 총장 퇴진 요구안이 90% 이상 압도적으로 가결돼 힘을 많이 받았다. 수년에 한 번 열리는 총회다. 가장 최근 총회는 2011년 서울대 법인화 투쟁 때였다. 그런데 시흥캠 투쟁으로 반년에 두 번의 총회를 성사시켰다. 그래서인지 책임감도 많이 생겼다.

보수 언론에선 학생들이 불법을 저질렀다며 징계를 정당화한다. 학교의 불법은 없었나?

먼저 언론들이 학생 목소리를 들어보기나 했는지 묻고 싶다. 언론은 우리가 한 100가지 행동 중에 1가지가 어긋나면 대서특필한다. 그러나 학교가 저지르는 100가지 불법은 보도하지 않는다. 언론들은 서로 단독이랍시고 시흥캠퍼스 사업을 선전할 뿐이다. 학교는 3월 11일 학생들의 본부 점거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소화전을 이용해 물대포를 쐈다. 이는 소방법 위반이다. 소화전은 비상시에만 쓰는 거다. 그날 새벽부터 본부를 침탈해 학생을 폭력적으로 끌어내고, 내동댕이쳤다. 이날 학생 4명이 실신 등으로 응급 후송됐다. 집행은 학교 정규직들이 했다. 성낙인 총장이 지시했다는 뜻이다. 이날 폭력 사태의 책임은 성 총장에 있다. 그럼에도 왜 언론은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나.

5월 1일 학생들이 본부 2층 기자실 유리창을 깨고 재점거했다. 보수언론은 대대적으로 “학생들의 불법 행위” 장면을 포착해 1면에 싣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 발생한 일인가.

우리는 불법, 폭력을 위해 농성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평화적 기조를 학생끼리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가 기자실 유리창을 깨기 전, 학교 직원들이 1층에서 총장 면담을 요구하던 학생 30명을 폭력적으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1차 폭력이 발생했다. 또 학교는 직원 수백 명을 1층 로비에 배치했다. 학교의 본부 침탈을 막으려면 직원들과 물리적으로 충돌해야 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무슨 힘으로 이들을 끌어내나. 그래서 1층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총학생회도 직원과 몸싸움을 벌이는 것보다 재물손괴가 낫다는 판단이었다. 물리적 충돌을 피하고자 기자실에 진입한 거다.

[출처: 김한주 기자]

성낙인 총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시흥캠퍼스 사업이 통일, 4차산업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므로 국가와 학교의 미래가 달린 사업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의 판단은 어떤가.

서울대는 2007년부터 시흥캠 사업을 준비했다. 우리는 2013년 기사를 보고 처음 알았다. 당시엔 서울대 학생이 시흥캠에서 무조건 거주해야 하는 ‘의무형 기숙사(RC)’가 문제였다. 총학생회장이 단식하고 삭발해 대화협의체를 얻어냈다. 그때는 실시협약 전이었다. 2014년, 2015년에 대화협의체가 운영됐다. 그러던 중 2015년 8월 친박 성낙인 총장이 들어왔다. 이후 1년간 대화협의체는 열리지 않았다. 학생 반발에도 성 총장은 지난해 8월 실시협약을 밀실 체결했다.

시흥캠퍼스가 처음 나온 2007년부터 학생들이 본부를 점거한 2013년까지 통일, 4차산업 얘기는 없었다. 우리가 지난해 본부를 점거한 뒤 학교에서 급하게 마련한 근거다. 학교는 사업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정부가 인정할 만한 기조를 마련했다. 그래서 통일, 4차산업 같은 좋은 핑곗거리가 나왔다.

시흥캠은 서울대, 한라건설, 시흥시가 제일 넓은 땅에서 최대 이익을 거둬내는 사업이다. 간단히 말해 부동산 투기다. 시흥 배곧신도시에 서울대를 배치해 투기 붐을 일으키는 거다. 한라건설은 현대그룹 계열사다. 매년 부도 위기이던 한라건설이 서울대와 손을 잡자 흑자를 냈다. 2016년 1.8조 원 매출을 기록했다. 동시에 서울대는 건설사 투기사업을 자본 확장에 이용하려 한다.

우리도 통일, 4차산업 준비 동의한다. 하지만 이 목표를 투기로 달성한다면 ‘서울대’와 ‘서울대학생’은 상품으로 전락한다. ‘서울대학생이 사는 명품신도시’에 자본을 모아달라는 것이다. 시흥시 의회에서도 서울대학생은 수익성이 높으니, 조속히 사업에 착수하라 압박하고 있다. 그 사이 우리는 상품으로 전락했고, 대학 공공성은 무너졌다. 학교는 이런 학생 주장에 답변하지 않고 있다.

성낙인 총장은 빅데이터연구원은 방 두 칸밖에 안 된다며 관악캠퍼스 포화, 공간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31일) 낮에도 관악캠퍼스 관련 공청회가 있었다. 한 교수가 “관악캠은 공간이 없는 게 아니라 공간 효율성 문제가 크다”고 발제했다. 관악캠 면적은 어마어마하다. 학생 1인당 점유한 땅도 넓다. 결국 공간, 배치 이용의 문제다. 서울대 법인화 후 유휴 공간도 늘었다. 기업들이 건물을 짓고 활용하지 않는다. 법인화 이후 사회과학대 앞 학생후생관을 없애고 기부자 이름으로 새로운 건물을 지었다. 이 공간도 유용성이 떨어진다. 또 건물마다 수익성 업체가 즐비하다. 한 건물에 카페가 몇 개씩 있다. 인문대는 한 시야에 카페 세 개 점포가 눈에 들어올 정도다.

서울대는 관악, 수원, 평창, 연건에 캠퍼스를 갖고 있다. 시흥캠은 5번 째다. 지난 국감에서도 수 천억 혈세가 들어간 평창캠퍼스의 공간을 쓰지 않고, 전임 교원도 10명밖에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평창캠에 자율주행차 연구 관련 활주로가 필요하다는데 아직 실행 계획도 없다. 우리가 평창캠 운영을 분석하려고 손익예측 관련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부존재 통보했다. 서울대의 캠퍼스 확장은 곧 자산팽창이다.

성낙인 총장은 엘리트 양성, 서울대 하향평준화를 우려하며 국공립대 통합을 반대한다. 학생들 생각은?

아직 학생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총학생회도 정책 입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그래도 합의된 건 학벌주의로 서울대를 특권화하는 건 잘못됐다는 인식이다. 국공립대를 통합하더라도 하향평준화가 아닌 학점공유제 같은 방식이면 다른 대학과의 상호작용으로 오히려 서울대의 특권이 강화될 수 있다. 성낙인은 엘리트 교육 주장하면서 정시 축소, 수시 확대를 얘기한다. 서울대 특권을 갖고 자기 입맛에 맞는 학생을 뽑거나, 고교 학벌에 기반 해 뽑겠다는 뜻이다. 그런 맥락에서 성 총장의 엘리트 교육은 학벌주의, 특권 지키기다.

학교와 싸움도, 여론전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부동산 투기 대학’에서 벗어나기 위한 원칙적인 투쟁인데, 왜 이대 투쟁만큼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이대 투쟁의 시작은 미래라이프대학이었다. 그리고 정유라가 터진 거다. 이대 투쟁은 정부 교육정책에서의 입찰 여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학교가 입찰을 취소해 해결됐다. 하지만 서울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얽힌 문제다. 시흥시 지자체, 건설재벌, 서울대 세 주체는 투기자, 계약자 몇만 명을 안고 있다. 여기서 수 조 원이 오간다. 학생들이 싸워서 실시협약 철회를 이뤄도, 학교는 소송, 배상 문제에 휩싸인다. 그래서 ‘부동산 투기 반대’라는 원칙을 내걸어도 어려운 투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사회에 서울대 기득권이 강력하다. 조선일보 등 보수 기득권 세력이 서울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최근 성 총장을 인터뷰한 조선일보 사회부장도 서울대 출신이다. 지난해 10월 10일, 본부 점거 당시 총장실 책상에서 학생 사찰 명단을 봤다. 이곳에서 내 이름과 학과, 소속 단체, 단체의 지향점 등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틀 뒤 언론에 조직 이름과 함께 보도됐다. 학교와 언론의 유착 관계를 보여준 거다. 교육부 장관도 서울대 부총장이던 이준식이다. 장관도 바뀌지 않는 한 서울대 사태를 정부가 해결 못 한다.

[출처: 김한주 기자]

최근 학내 여론은 어떤가.

징계, 형사 고발로 학교를 같이 다닌 학우가 더 이상 학우가 아니게 될 거란 우려가 크다. 같이 막아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두 번의 총회 성사, 압도적 가결이 말하고 있지 않나. 이미 성낙인 총장에 대한 반감은 확인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 이길 것인지에 대한 전망이 부재하다. 최근 시흥시의회도 가세했듯, 우리가 가진 힘은 매우 작은데, 건설자본, 학벌 권력, 지자체가 압박하니 현실적인 고민이 많다. 원칙적인 투쟁인 만큼 학내에서 동의도 얻고, 장기화됐지만, 세력을 키우지 못했다. 학생들의 가세가 절실하다.

앞으로 성낙인 퇴진 운동의 전망은?

일단 지금 학생이 수세에 몰렸다. 한 학우는 재물손괴죄로 6월 1일 경찰에 출석한다. 학교는 여론전에서 ‘학생 불법’ 운운하며 ‘선빵’을 날렸다. 학생 투쟁이 사회적 정당성을 얻어야 다시 반등할 수 있다고 본다. 불리한 조건 속 여론전이지만 공대위 차원에서 학문의 공공성, 특권 반대 등의 구도를 만들 예정이다. 또 개혁적 열망과 함께 출범한 새 정부가 서울대 기득권을 얼마만큼 청산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서울대 학생 약 100명 5월 31일 서울대본부 앞에서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위한 집회에 참여했다. [출처: 김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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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사진을 보니 함께 하는 학생들이 적어서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