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흔들기...적색 언론이 필요해

[워커스] 초록은 적색

[편집자 주]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부산 기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 정지 기념식에서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공약사항이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해선 언급을 피하고 사회적 합의만을 강조했다. ‘탈핵 시대’를 발표한 기념사에 건설 중단이던 기존 정책을 사회적 합의로 후퇴시킨 셈이다. 언론들은 기존 정책과 공약 후퇴 보단 ‘탈핵’을 중심으로 보도하면서 문제를 비켜간다. 용석록 객원기자는 애초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정책을 보수언론들이 어떻게 흔들어왔는지 지적한다.


  울산 시민 가운데 약 70%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원하며, 탈핵정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그럼에도 언론이 찬반 주민 갈등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공공성을 지닌 언론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출처] 용석록

울산의 탈핵단체가 진행하는 탈핵학교 강연에서 다큐멘터리 <후쿠시마 5년의 생존>을 만든 최세영 감독을 만났다. 최세영 감독은 작품 외에 별도의 사진 몇 장을 소개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1961년 1월 20일자 동아일보의 한 꼭지다. 당시 원자력연구소 이창건 연구관이 기고한 글이었는데 그 일부를 그대로 옮겨본다.

“하여간 누가 무어라던 우리에겐 하나의 신념이 있다. 보리 한 알이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이, 과도의 방사능에 피폭되면 생명이 단축되고 (...) 심지어는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지만 우리는 가늘고 긴 생보다는 짧더라도 차라리 굵직한 삶을 지향하며 또 과도의 방사능에 조사되는 것 때문에 결혼 후 자손에게 영향을 주는 한이 있어도 자위 받을 하나의 커다란 구실이 있다. 즉 그것은 우리는 원자 씨앗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1961년 1월 20일 당시 원자력연구소 이창건의 동아일보 기고글 중

“방사능에 피폭되면 생명이 단축되더라도” 핵발전소를 짓자는 말이다. 이창건은 그의 표현대로 ‘원자 씨앗의 아버지’와도 같은 원전1세대 핵마피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58년부터 원자력계에 몸담았고, 현재 한국원자력문화원장으로 있다. 이창건 같은 자가 핵마피아로 활동한 원전1세대라면 최근 ‘신고리 5·6호기’를 자율유치하고,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강행해야 한다는 울산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은 원전피해 1세대다. 신고리 5·6호기가 들어서야 이주할 수 있는 서생면 신리마을 주민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건설 강행을 주장하고 있다. 핵발전소와 인접한 지역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핵발전소 건설을 찬성하는 기막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단지 피해지역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만이 그 이유는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이나 울주군의 이해관계나 원전지원금 같은 돈이 위세를 부리고도 있다.

애초 지난해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허가한 뒤 잇따라 울산 앞바다와 경북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하면서 원전 밀집지역의 사고 우려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원전 추가건설을 금지하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중단 움직임이 시작됐다. 하지만 지역 보수 정치인과 단체의 건설 중단 반대 움직임에 언론까지 가세하면서 모처럼만에 찾아온 건설 중단 흐름에 쐐기를 박고 있다.

언론은 특히 낡아빠진 ‘중립’의 입장에 서 양측 사이 논란만 부추기면서 흙탕물을 끼얹는다. 울산지역 대부분의 언론은 신고리 5·6호기에 대해 울주군 서생면 주민의 ‘건설 중단 반대’ 입장을 연일 ‘탈핵진영과의 찬반 갈등’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소속 이채익·박맹우 국회의원, 김기현 울산시장 등 보수정치인은 경제논리를 앞세워 “안전하게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언론은 이런 보수정치인의 입장까지 비판 없이 내보내고 있다.

[출처: 용석록]

조중동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의 광고 세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서생면 주민들은 고리 1~4호기, 신고리 1~4호기와 인접해 살면서 피해를 입고 있다. 미세한 방사능에 노출돼 건강상 피해를 보고, 부동산 거래가 안 되거나 관광객 수가 줄어서 경제적 손실까지 감당하며 살고 있다. 핵발전 반경 5km 이내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어야 하지만, 이미 오래된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에 대한 지원법은 560미터까지만으로 이주협상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

탈핵단체는 지역주민의 고통과 피해에 대해 정부가 대안을 내놓아야 하며, 더이상 핵발전소를 짓지 말자고 한다. 핵발전의 위험성을 모두 다 느끼고 있지만 언론을 통해 보여지는 건 ‘갈등 상태’다. 언론이 이런 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주민 피해 문제를 다루지 않고 ‘갈등 양상’으로 보도하는 것은 이창건이 주장하는 황당한 글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지역언론뿐 아니라 중앙언론도 매몰비용과 경제적 손실을 부각시키는 등 핵발전의 근본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미디어오늘(2016. 10. 11) 기사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지난 2012년부터 2016년 9월까지 광고홍보 예산을 가장 많이 집행한 신문은 동아일보였다. 한수원은 5년 동안 방송광고에 약 113억여 원을, 인쇄매체 광고에 약 38억여 원을 집행했다. 이 38억여 원 중 약 7억 4,000만여 원을 조선·중앙·동아일보에 집행했다. 이 중 동아일보에 가장 많은 2억 6,601만 원이 들어갔다.

언론만이 문제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 백지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김진표 위원장은 지난 2일 산업통상자원부·원자력안전위원회·한수원 합동보고에서 “신고리 5·6 호기는 전체 원전 안정성 등을 깊이 있게 논의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한수원은 공식적으로 “정부 정책에 따르겠다”고 했지만 공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새 정부가 탈핵로드맵을 어떻게 짜고 발표할지 조금 더 지켜볼 일이기는 하지만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만큼은 단호하게 ‘중단 재검토’ 논란을 불식시켰어야 했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대하는 언론과 정치현실을 보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적색 언론, 적색 정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하다.[워커스 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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