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비판하면 국보법으로 처벌해야 하는가”

검찰,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에 2년 구형… 변호인단, “비상식적 추론으로 사상의 자유 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된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에 검찰이 “종북, 급진적 사회주의 세력은 엄중 처벌해야 한다”며 2년 형을 구형했다. 이 대표는 “자본주의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며 최후진술 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비상식적 추론만으로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재판부에 무죄 선고를 요청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가 22일 오전 10시부터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에 대한 마지막 집중심리를 진행했다.

오후 4시 15분경 최후진술에 나선 피고인 이진영 대표는 “대한민국에 태어나자마자 모든 국민이 자본주의 사상을 유일사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국가보안법에 의해 단죄되고 있다”며 “이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며 지배적 사상과는 다른 대척점에 있는 사상도 전 국민이 보는 가운데 토론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고 발언했다. 또 “20세기 반공시대의 유물인 ‘금서’가 지금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음을 검찰의 공소장으로 확인했다”며 “비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이진영 대표가) 검찰이 주장하는 ‘북한을 찬양, 고무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 선동할 목적(이적 목적)’을 갖지 않았고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는 오직 검사의 추론뿐”이라며 “가장 근본적인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검찰 측 신동원 검사는 이진영 대표가 주고받았던 이메일, 공안전력자들과의 접촉, 철도 파업 등에 관여했던 점등을 토대로 이적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2년을 구형했다.

연구자료가 이적표현물?
‘디지털 아카이빙’은 고마운 작업


  구속 전 이진영 대표의 모습, 자료사진

이진영 대표는 4,000여 권의 진보적 사회과학서적을 직접 전자파일 형태로 변환한 디지털 아카이빙 사이트 <노동자의 책>을 운영해왔다. 검찰은 이 중에 64건의 이적표현물이 있고 사이트 회원 및 불특정 다수가 무료로 열람할 수 있게 했다는 ‘반포’의 죄가 있다며 지난 3월 공소를 제기했다. 검찰은 애초에 130건을 문제 삼았지만, ‘페다고지’ ‘러시아혁명사’ 등의 고전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되자 이를 축소했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검찰이 제출한 범죄일람표에 기재된 각 도서, 문건들은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등을 통해 열람할 수 있고 전자파일 형태로도 저장할 수 있다. 변호인단은 “피고인이 게시한 표현물을 기초로 한 다수의 북한 연구 논문이 국립중앙도서관 검색 결과 확인된다”며 “소설을 비롯한 북한 서적은 현재의 남북한 현실을 직시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오늘 심리에서 “이적표현물은 마약과 같다”며 “소지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다른 서적들이 있더라도 몇몇 서적에 대한 이적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적표현물에 대한 위험성을 집중 부각하며 이동호 자유민주연구학회 사무총장을 증인으로 불러 묻기도 했다. 이 사무총장은 “(검찰이 문제 삼은 해당 서적들이) 젊은이들에게 반자본주의 인식, 반항 인식을 고취한다”며 “이를 방치하면 내부 공격에 취약한 자유민주주의가 전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검찰 측 추론에 “재판에서 수사기관이 피고인의 사상과 양심을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며 “피고는 비판적, 변혁적 인문사회과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동자의 책>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반포’ 문제에 대해서도 죄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반포’의 의미를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배부해 알게 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는데 <노동자의 책> 이용방법은 이와 다르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책>은 회원가입 후 ‘등업’되면 업로드 된 자료 일부를 볼 수 있고, 책 전부를 원할 경우 이메일로 별도의 신청을 해야 한다. 변호인단은 “‘맛보기’ 정도로만 책의 일부 내용을 올렸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내용을 알게 됐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피고인이 왜 국립중앙도서관 등의 기관에서 열람이 가능한 도서, 문건들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인터넷에 게시했는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변호인단은 이진영 대표가 2002년부터 디지털 아카이빙 작업을 시작한 사실을 알리며 “이 부분에 대해선 오히려 선구자적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인 측 증인으로 나온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는 “60년대 지성사, 문학사를 공부하는 데 헌책방에서도 못 구하는 자료를 <노동자의 책>에서 구할 수 있었다”며 “한국은 아카이빙이 약해 40~60년대 어떤 책이 나왔는지 잘 모르는데 한 개인의 노력으로 아카이브자료가 만들어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검찰 “평상시 글에 진의가 숨어있다”, 변호인단 “비상식적으로 추론해”
이진영 대표, “자본주의 비판할 자유 있다” 사상의 자유 강조


검찰은 특히 이진영 대표가 <노동자의 책> 회원에게 보낸 메일, 지인에게 보낸 메일을 들어 이적의 내심이 발견된다고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이의 근거로 2011년부터 2015년까지의 보낸 메일 중 ‘스캔 작업의 목적은 공부 자체가 아니라 혁명’ ‘능지처참할 자본주의 세상을 분쇄할 무기’ ‘노동자혁명정당건설’ ‘국가 전복’ 등의 문구를 문제 삼았다. 또 폭력을 혁명 수단으로 삼아 국가를 전복시키겠다는 것에서 이적성을 발견할 수 있다며 “종북, 급진적 사회주의 세력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 유포를 안 하겠다는 것이 거짓 약속에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체를 구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이에 “피고인 내심의 목적을 검사가 자의적으로 추단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추론이며, 피고인에 대한 모욕”이라고 항변했다. 변호인단은 “공소장에 기재된 대부분의 사실관계는 피고인이 수발신한 이메일의 일부 자극적인 부분만을 짜깁기했거나 피고인이 레닌 책 내용을 언급한 부분을 마치 피고인이 그러한 주관을 오롯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옮겨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표현이 다소 생경하고 익숙하지 않더라도 표현을 했다는 것만으로 국가변론을 선동했다고 볼 수 없다”며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의사를 표현한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이 고 김수행 교수 등 유수 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는 점을 들어 충분히 용인 가능한 선에서 비판했다고도 말했다.

재판을 지켜본 이진영 대표의 아내 최도은 씨는 “이메일, 카카오톡, 네이버밴드를 다 검열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표현을 문제 삼아 이적이라고 하는 딱지 붙이는 후진적 행태가 답답하다. 사회과학자료를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 전자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이적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나 싶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이날 현장에는 이진영 대표의 가족과 변호인단, 인권단체 등 3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해 재판을 지켜봤다. 재판부는 내달 20일 오후 2시 30분, 피고 이진영 대표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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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열

    그늠의 반공 이적 뭔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고 우리에게는 말할자유와 누근든지 생각이 다르다는걸 말할 자유와 비판할 자ㅠ를 기진다
    검찰의 해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 필로누스

    ㅋㅋㅋ 그놈의 종북타령 좀 이제 그만하면 안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