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보다 트럼프 택한 문재인

[기자의 눈] 오바마박근혜 이은 트럼프문재인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가 진행되던 30일,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사무소들 앞에서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출한 건강보험제도 개혁안 ‘트럼프케어’가 보편적 건강권을 헤친다며 철회를 촉구하고 있었다.

그 날 발표된 한미 양국 주요 6개항 서명에는 사실 문재인 대통령 이름이 아닌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재됐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기존 정부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출처] 외교부

애초 한미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외신은,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촛불로 탄생한 ‘한국판 브렉시트’(뉴욕타임스)라거나 그가 진보 진영을 대표한다(타임지)거나 사드 문제로 인한 갈등 가능성을 주목하면서 이번 회담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이나 진보 보다는 트럼프를 택한 듯싶다. 애초 ‘종미(從美)’를 부르짖는 보수언론의 정치공세 속에서 극우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은 자명했다. 그러나 트럼프에 맞서 다른 사회를 요구하는 미국 민중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한국에서도 촛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성격 탓에 기대도 모아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뜨거운 감자였던 사드 문제는 테이블에 가져가지도 못하고 너무나 쉽게 트럼프의 손을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선 6월 26일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 결정을 취소, 철회할 생각이 없다”(중앙일보-미국 CSIS 포럼)고 발언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드 배치에 관한 후속 방침들까지 사실상 거론하며 한 발 더 내딛었다. 양 정상은 합의문에서 “대한민국은 상호운용 가능한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 및 여타 동맹 시스템을 포함해, 연합방위를 주도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방어, 탐지, 교란, 파괴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군사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 동안 문재인 정부는 사드에 대해 철회를 언급하지는 않았더라도 환경영향 평가 등을 통해 절차를 밟아가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및 여타 동맹 시스템’ 등의 군사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갈 것이라며 사드 배치에 관한 추가 조치에 나서겠다고 확인한 것이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 기업인들을 대동해 미국에 대한 투자 확대를 발표하도록 주선한 한편, 양국 간 자유무역 확대를 노골화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트럼프의 편을 들고 있다. 합의문에 따르면, “비관세 장벽 축소, 양국 간 투자 증진, 기업인들 지원” 등 ‘자유무역’ 확대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트럼프와 소수 대기업의 이해에 충실한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한미FTA 재협상을 시작했다고 말한 데 대해 한국 측은 ‘합의된 내용 외적인 부분’이라고 일단락 졌지만 재협상을 하든 그렇지 않든 자유무역 확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기에 향후 한미 간 통상 문제는 지금까지처럼 기업의 이익에 치우쳐 노동자나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공산이 크다.

  미국 시민들이 트럼프케어에 반대하여 시위하고 있다 [출처] @ProtestShamefulTrumpcare

오바마박근혜와 트럼프문재인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의 글로벌 정책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합의문에 따르면, “감영병 위협 예방 지원, 반ISIS 국제연대에서의 강력한 한미 간 파트너십 재확인, 이라크에 대한 1000만불 등 테러리즘과 폭력적 극단주의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아프가니스탄 평화와 안정 재건을 위한 노력”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의 대 중동 정책은 세계적 테러리즘과 난민 문제 확대 등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 탈퇴 운동이 국민적 호소력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반성 없이 트럼프의 편을 들었다.

돌이켜보면, 이 같은 대북, 글로벌 정책은 박근혜 전 정부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길게보면 그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추진해 왔던 것이기도 하다. 그 뒤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버락 오바마 정부와 함께 추진해 왔던 정책들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내에선 민주당 정권이 미국 보수당 정권과 함께, 한편으로는 국내 전 새누리당 정권이 미국 민주당 정권과 함께 추진해왔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방미에서 궁지에 몰린 트럼프의 손을 잡으며 다시 트럼프문재인이라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한 몸으로 한반도 위기와 경제 불평등을 확대해온 이상한 공식을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신 트럼프케어에 반대하며 일어서는 미국인들에게, 미흡하더라도 한국의 보편적 건강보험 사례와 함께 사드 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소성리 할머니들의 외침을 전했다면 어땠을까? 다른 사회를 원하는 미국 민중이나 촛불은 분명 다른 공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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