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1호 업무 ‘일자리위원회’의 근황

[워커스] 이슈(4)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의 첫 업무 지시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의 구성이었다. 후보시절 1호 공약이었던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였다. ‘대통령 직속’이라는 말 그대로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회의도 직접 주재 하겠다고 했다. 장관급이 위원장을 맡아 왔던 ‘노사정위원회’보다도 위상이 높았다. 일자리위원회는 노사민정의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로 깃발을 올렸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는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단순히 일자리의 증감여부를 확인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일자리 상황과 일자리 창출, 경제 지표뿐 아니라 일자리의 질까지 상시 모니터링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의도 였다. 그저 그런 비정규직 일자리의 양산이 아닌, 질 좋은 일자리의 창출. 그리고 질 나쁜 비정규직 일자리의 정규직 전환. 7개월 전 출범한 일자리위원회는 구직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잠시나마 희망을 안겼다.

[출처: 청와대]

민주노총에게 ‘일자리위원회’란?

민주노총은 내부 찬반 논쟁 끝에 일자리 위원회 참여를 결정했다. 일자리위원회 참여를 통해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동적폐 청산을 실현하고,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를 없애고 더 많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역할을 다하겠다는 참여의 변을 밝힌 채였다. 단서 조건도 달았다. 일자리위원회 1차 회의 전까지 노정교섭 정례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실행계획이 나오지 않으면 ‘참여를 재론 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4차례의 일자리위원회 회의가 진행됐지만, 노정 교섭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은 나온 바가 없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입니다.” 일자리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는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의 말이다. 보통 두 시간 가량의 회의를 하는데, 쟁점에 대한 찬반 토론이나 논의가 전혀 되지 않는 구조라고 했다. 최종진 직무대행은 “발제를 주로 정부에서 하고, 얘기하고 싶은 사람은 불과 2~3분 의견 피력만 할 수 있지 쟁점 토론이 되지 않는다”며 “심하게 이야기하면 매우 실망스럽고, (노동계의 참여가) 모양새 갖추는 것밖에는 안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사실 일자리위원회는 지난 6월 ‘일자리 100일 플랜’부터 10월 발표한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 등 굵직한 일자리 계획들을 발표해 왔다. 취임 후 100일 안에 시급히 추진해야 할 ‘일자리 100일 플랜’의 13대 과제 중에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 68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조기 국회통과를 추진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 폐기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약 6개월 뒤인 11월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등은 노동시간 연장 등을 골자로 하는 근로 기준법 개악안 날치기 표결을 시도했다. 주요 내용은 노동부의 불법 행정해석에 따른 주당 68시간의 근로시간을 2021년까지 합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해당 법안에는 휴일노동 수당을 삭감하고, 노동시간 특례업종 제도를 존치시키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노동계는 환노위 여야3당 간사의 합의안이 사실상 청와대의 지시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1일 열린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단계적 시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국회가 매듭을 지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음날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중복할증 문제는) 환노위 여야 3당 간사가 합의한 대로 시행하자”고 촉구하고 나섰다. 그날, 여당은 당정청 조찬회동에서 연내 입법으로 가닥을 잡았다. 노동계에서는 청와대가 근로기준법 개악에 힘을 싣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내부 이견에도 ‘일자리 위원회 참여’라는 정부의 포섭전략에 응한 민주노총이었다. 하지만 한상균 위원장의 구속 기간이 길어지고, 근로기준법 개악까지 맞닥뜨리면서 노정관계에도 균열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12월 18일, 근로기준법 개악 중단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 정치 수배 해제를 요구하며 민주당사 대표실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향후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방향을 둘러싸고도 노정간 긴장관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직 직무대행은 “현재 정부가 ‘정규직 양보론’을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앞으로 연공서열형 호봉제 폐지와 직무급제 도입 등의 쟁점이 점점 드러날 것”이라며 “또한 일자리위원회가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상 직무를 등급화 해, 또 다른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에도 상당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일자리, 대박인 줄 알았는데 폭망 각

일자리위원회가 내세운 대표적인 정책 과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었다. 위원회는 상시, 지속적 업무와 생명, 안전 분야는 비정규직의 제로화를 목표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공공기관과 지자체 등에서 진행 되고 있는 ‘정규직전환 심의위원회’는 ‘해고심의위원회’라는 지탄에 휩싸이며 표류하고 있다. 일자리위원회의 목표에 따르면, 상시지속적 업무는 명확한 예외 사유가 없는 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가스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의 공공기관에서는 상시지속적업무를 일시, 간헐적 업무로 왜곡해 전환 제외로 결정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우 전환 대상자에게 직고용 희망 여부를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요구하며 전환 대상자를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하는 각 기관의 ‘전환 심의위원회’는 밀실에서 졸속으로 회의를 강행해 논란을 빚고 있다. 17개 시도교육청의 경우 심의 위원회 명단과 회의 내용, 자료 등 모든 것을 비공개하고 있다. 《워커스》가 정보 공개청구 제도를 통해 17개 시도 교육청에 전환 심의위원회 위원 명단을 요구했지만, 현재까지 단 한 곳도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나마 구성 현황만을 부분공개 한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은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 명단은 개인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개인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사유를 들었다. 심의위원회 인사들이 대부분 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구성돼 있고, 졸속 심의가 이뤄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때문에 민주노총은 교육청 정규직전환 심의위원회를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지 않으면, 심의위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이선인 민주일반연맹 위원장은 “일자리위원회에 처음 들어간 날, 이용섭 부위원장에게 ‘유사 동일 노동과 관련해 이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 부위원장은 ‘유사 동일 노동은 임금을 똑같이 지급하는 것이 정부의 원칙’이 라고 분명히 말했다”며 “하지만 정부가 여러 차례 지침을 발표했음에도, 이를 지키는 지자체가 하나도 없다. 일자리 위원회에 어떠한 기대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 기대했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 역시 “일자리 위원회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같은 거창한 정책을 냈지만, 이는 예산이 수반되지 않으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며 “정부의 자회사 전환 방식이나 무기계약직은 정규직 전환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둘러싼 정책 후퇴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일자리위원회는 지난 10월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통해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소규모 영리 단체 중심의 사회공공서비스를 ‘사회서비스공단’에서 총괄 운영해, 공공사회서비스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확대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내년도에 ‘사회서비스 관리와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 서비스진흥원’ 설립이라는 형태로 후퇴 했다. 10월에 보건복지부가 작성한 자료에는 공단이 아닌 ‘진흥원’ 형태로 추진함과 동시에, 핵심 서비스로 거론 됐던 보육, 요양 등을 대폭 축소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어쨌든 일자리 상황판은 돌아간다

일자리위원회는 산하에는 민간일자리 전문위원회, 공공일자리 전문위원회 등의 전문위원회가 꾸려져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이 ‘공공 일자리 전문위원회’에서 논의될 법 하지만 아직까지 진척 상황은 없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은 “아직까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등의 문제를 쟁점으로 다룰 만한 수준이 아니다. 상견례를 제외하면 12월 22일이 첫 회의”라며 “이 자리에서도 어떤 의제를 어떤 순서로 논의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회의에서 △국민의 생명, 안전 일자리 확충 △양질의 교육을 위한 교육부문 일자리 확충 △사회서비스 좋은 일자리, 사회 서비스공단으로 확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공부문이 저임금노동자 처우개선 선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 △일자리 확대를 위한 제도개선 등 7가지 의제를 제시해 놓은 상태다. 아울러 의제별 논의 순서에 있어서는, 현재 정책이 후퇴한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문제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우선적으로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그렇다고 일자리위원회의 성과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일자리위원회 산하 건설분과에서는 지난 12월 12일, 건설 산업 일자리 개선 대책을 확정했다. 여기에는 건설 노동자의 임금체불 예방을 위해 발주자가 임금 등을 직접 지급하는 ‘전자적 대금지급 시스템’의 확대와 적정 임금제 도입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해당 정책마저도 적지 않은 논란을 남겼다. ‘외국인 노동자’ 단속 강화 등을 통해 ‘불법외국인력 퇴출’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까닭이다. 이날 열린 일자리위원회에서 민주노총은 건설 현장의 불법, 편법 근절 대책으로 제시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 정책에 대해서는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기도 했다.[워커스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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