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압박 정책과 한반도 정세

[워커스] 인터내셔널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제시하며 등장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년 동안 국제사회에 수많은 논란과 커다란 혼란을 제공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반이민 정책을 앞세우며 인종주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고, 미국에 불리하게 체결됐다며 각종 다자협정을 파기하는 등 국제사회의 규범도 흔들어 놓았다. 이란 핵 합의 무력화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중동 질서도 혼란에 빠졌다.

동북아 정세는 그 어느 지역보다 역동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다. 특히 대북 정책에 있어서는 일관성있게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강화하는 최대의 압박 정책을 이어왔으며, 앞으로도 전망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출처: Democracy Now]

트럼프의 ‘코피 전략’과 북한의 대응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로 동북아 정세가 다시 심상치 않다. 지난 1월 30일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트럼프는 “미 본토 위협”이란 말까지 쓰면서 대북 압박을 공언했다. 북한 폭격에 대한 정당성을 미 국민들에게 강변하고 트럼프 행정부에 쏟아질 대내외의 비난을 희석시키기 위한 하나의 언사로 들렸다. 비록 ‘군사적 조치’란 말은 없었지만 또 다시 소름이 끼치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 자리에 웜비어 부모와 탈북자 지성호를 초청한 것도 잘 짜여진 각본처럼 보인다. 그의 연설 어조는 지난 2003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전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그의 연설은 바로 전날인 1월 29일, 미 상하 양원에서 이례적으로 평창올림픽 지지 결의안을 동시에 발의한 것을 무시한 행위이다. 지지 결의안에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담았고, 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돌발행동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주한 미 대사로 내정된 빅터 차를 교체했다. 그의 낙마는 북한을 상대로 한 ‘코피 전략’(bloody nose, strike 제한적 선제타격)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백악관의 방침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부분적 폐기를 요구한 트럼프 정부의 입장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대북 강경파인 백악관과 대화를 선호하는 국무부간의 갈등이 아직도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코피 전략’은 2017년 12월 21일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지가 보도하면서 일반인에게도 알려진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이다. 이 전략은 2017년 4월 시리아 정부군을 토마 호크 미사일로 공격해서 효과를 거둔 작전에 착안해서 만든 전략으로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촉발하지 않고 북한의 주요 지역들을 제한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쉽게 애기해 싸움에서 주먹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한 방 쳐 코피를 터뜨리면 겁을 먹고 물러서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북한에게 기대하는 전략이다.

아직 완성된 전략이 아닌데다 그 방식이나 효과에 대해 대체적으로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 북한은 시리아와 달리 핵과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어서 군사적 보복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확전을 두려워해 보복을 못할 것이라는 극소수의 의견도 있지만, 북한의 핵 개발과 북미관계 역사를 고려하면 보복 수단과 방식은 다양하기 때문에 전혀 타당하지 않은 판단이다. 문제는 이 전략이 공개됨으로써 북한의 대응이 새로워졌고, 그것이 2018년 들어와 한반도 정세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미국의 불만과 중국의 호재

북한은 지난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대화를 제안했고 문재인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그것도 백악관과 상의 없이.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감히 남한 정부가 미국과 한마디 상의 없이 북한의 제안을 수용한 것에 대해 매우 놀랐을 것이며 분노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이 국정 연설에서의 대북 압박과 빅터 차 낙마 등으로 나타난 것이고,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여론 악화를 무릅쓰고 남북 단일팀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동계올림픽을 활용해 전쟁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겠다는 절박함이 보인다.

이후 펜스 부통령의 평창 올림픽에서의 부적절한 행동과 천안함이 전시되어 있는 2함대 사령부 방문 그리고 탈북자 면담 등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불만과 항의의 표현이었다. 여기에 일본 아베 총리의 한미연합훈련 재개 발언 등이 더해져 미일 동맹국들의 횡포가 가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펜스 미 부통령의 회동 무산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북한은 현장에서 펜스 부통령의 반북태도와 무시 전략을 확인하면서 그와 대화를 해도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이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에 개방적 입장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상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이러한 정세가 중국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비록 유엔의 대북제재에 중국이 과거보다 높은 수준에서 동참하는 바람에 북한의 불만이 고조됐고, 이후 시진핑 특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을 만나지 못해 체면이 실추됐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북한의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공세가 한미 관계에 긴장을 자아내고 있다는 것은 중국에게는 분명한 호재다.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지만 당분간의 한반도 긴장 완화는 중국이 원했던 바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코피 전략’이 그 부적절함으로 인하여 동의를 얻지 못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일한 패턴의 반복과 판단 착오

한반도 문제는 동일한 패턴의 반복이다.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긴장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 긴장을 핑계로 일본 및 한국과 동맹을 강화해 동북아의 지정학적 패권을 유지하려 하고, 일본은 한반도 긴장을 이유로 전쟁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 나아가려 한다.

북은 핵 개발을 통해 체제인정-평화협정체결을 얻어내려 한다. 그러나 평화협정체결에는 북핵 포기와 주한미군 철수가 핵심 쟁점으로 걸려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미국의 태평양 패권의 구동축임을 감안하면, 미국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동의할 리가 없다. 미국의 태평양 패권추구와 동북아 평화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제재에 의해 궁지에 몰린 북한은,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는 것과 체제보장의 조건에서 최소의 대가로 남한으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얻어내는 것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맞선 상황에서, 남한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내어 남북 양자관계로 끌어들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게 불가하다면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현 단계에서 다음으로 좋은 선택이다. 이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관건이 되겠지만, 당분간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평화공세가 보다 본격적으로 구사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평화공세는 종국적으로는 북미대화를 실현시키는 데로 모아지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통상과 경제 분야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이 미국의 방위 제공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 대가로 통상압박을 가하거나 방위비 분담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 트럼프처럼 ‘약탈적 거래’에 능한 장사꾼이 한미관계의 우월적 지위라는 호재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일 공조가 긴밀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간 공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신뢰를 확인받으려 한다. 그렇다고 한미일 군사동맹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은 아니다. 중국과의 관계는 경제협력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전략적 협력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하지만 종종 미국으로부터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균형외교를 추구하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정세 분석과 전망 예측은 매우 취약하다. 남북관계는 북핵 문제와 함께 서로 풀려나가고 촉진하는 선순환 구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북미 관계 개선 없이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청와대는 2017년 11월 7일 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한반도 정세가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통해 핵무기 보유국을 선언했기 때문에 북미간 협상의 여지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정말 그럴까? 과학적이고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어쨌든 미국의 경제 압박이 시작됐다. GM철수는 그 시작이다. 미국은 북과 대화하는 척하며 뒤로는 군사 압박과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취하려 할 것이며 한미 갈등이 격화될 것이다. 남한은 지금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앞에 한미동맹이 얼마나 공허한 개념인지 실감하는 중이다.

한미 군사합동훈련이 재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와 함께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전쟁이 나도 한반도에서 나는 것’이라는 트럼프의 말마따나 위기는 언제고 다시 발발할 수 있으며, 이는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이 중요한 이유다. 어떻게든 전쟁을 막아야 하며, 트럼프와 미국 지배세력의 전쟁기도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노동자 민중의 평화운동, 반전운동이 절실하다.[워커스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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