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5명 중 1명 성희롱 등 성폭력 경험

“형식적 성희롱 실태조사 아닌 학교비정규직 겨냥한 제대로 된 조사 필요해”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5명 중 1명은 학교에서 성희롱 등의 성폭력 경험이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노동조합이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최초의 조사로,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성폭력과 성차별이 일상화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7일 오전 서울교육청 앞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 학교비정규직도 #Me_Too(미투)’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비정규직 성희롱 성폭력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4일간 이뤄졌고, 전국 504명(여성 99.6%)이 응답했다.

여성 응답자가 대부분인 이번 조사에서 21.2%가 성희롱 등의 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2015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보다 심각하다. 여성가족부 실태조사에선 여성의 9.6%, 비정규직의 8.4%, 초중고 종사자의 5.1%가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성폭력 경험 후 어떻게 대처했냐는 질문엔 ‘불이익이나 주변 시선이 두려워서 그냥 참고 넘어갔다(50.0%)’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싫다는 의사를 밝히고 행동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32.5%)’ ‘동료나 상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10.0%)’ ‘여성단체, 국가인권회나 고용노동부 등에 신고하고 시정을 요청했다(3.5%)’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학교나 교육청의 고충상담창구에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답변은 2.0%로 미미했다.

이민정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조직국장은 “여성가족부의 조사보다 2배에 달하는 피해 실태가 파악됐다”며 “여성가족부와 교육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면서 여성인 노동자들을 직접 타겟한 제대로 된 실태 조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정부의 ‘공공부문 성희롱 성폭력 근절 보완대책’과 지침에 따라 교육청, 학교의 성희롱 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를 제대로 충분히 신설하고, 성폭력 사건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비정규직, 학생 등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조사에서 학교 내 성폭력 상담창구 등의 유무 물음엔 ‘없다’는 답변이 41.7%로 가장 많았고, ‘들어본 적 없다’는 답변이 35.7%를 차지해 성폭력 신고 및 해결 창구가 거의 미비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성희롱 예방 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보통이다(42.7%)’, ‘받아본 적 없다(27.6%)’, ‘만족스럽다(16.9%)’, ‘불만족스럽다(12.9%)’ 순으로 답변이 나왔다.

이날 이지순 전국교유직본부 서울지부 지회장이 기자회견에 참가해 학교 현장의 실태를 증언하기도 했다. 이 지회장은 “성희롱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면 ‘아줌마라서 괜찮은 줄 알았다’는 변명을 하면서 사과하는데 그 변명이 더 기가 막혔다”라며 “동료 교원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해직당한 것을 못 봤다.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고, 관리자는 아무렇지 않게 교장, 교감, 행정실장으로 승진하는 곳이 학교”라고 비판했다.

전국교육공무직 본부는 학교 현장의 성희롱 성폭력에 대해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정부에 요구하는 한편, 계속 피해 사례를 취합해 공동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이 익명으로 적은 실제 피해 사례들>

-어렵게 용기 내어 신고했지만, 후회가 될 만큼 너무 힘이 듭니다.
-성희롱 판정을 받은 장학사가 징계 없이 교장 발령을 받았고, 신고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부당해고와 부당전직을 당했습니다.
-학교 성희롱의 수많은 사례를 보면 교육자나 관리자 자격이 없는 자는 버젓이 승진해서 교감, 교장이 되거나 가벼운 경고만 받고 직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상담이나 신고의 효과가 있을까 싶고 회의적입니다.
-60대 교장 할아버지가 20대 비정규직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저녁 식사를 빌미로 단둘이 데이트코스를 밟으며 겪었던 추잡한 일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납니다. 당시 큰일 당하지 않으려고 잔머리 굴리며 피하기만 하고 못 들은 척, 못 본 척하며 침착했던 나 자신이 한심스럽습니다. 20대 초반이었지만 조금 더 순진했다면 신고라도 했을 텐데. 주변 주임님들이 ‘어쩌겠니’ ‘피해라’ ‘피하자’라고 가르쳐주신 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에 묻힌 게 억울합니다.
-교장샘이 조리실무사들에게 조리복이 아닌 비키니를 입히면 밥맛이 더 좋아지겠다고 했었습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박다솔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