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주(州)’의 반란, 미국의 역사적 교사파업

[워커스 인터] 파업은 왜 번질 수밖에 없었나

  노스캘리포니아에서 교사들이 붉은 옷을 입고 행진하고 있다. [출처: DemocracyNow!]

“딸은 학교에 주 4일밖에 가지 못하는데, 저는 주 5일을 가르치거든요. 딸이 등교하는 날에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요. 딸을 저희 부모님 댁에 데려다 주면 부모님이 딸을 학교에 보내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저는 오클라호마시티 반대편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가서 응급수의사 보조 일을 새벽 2시까지 해요. 10년 내내 투잡을 계속하고 있어요. 10년째 임금인상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받는 연봉은 33,000 달러뿐입니다. 제가 교사인데, 정작 제 딸이 교육예산 삭감 때문에 주 4일밖에 등교를 못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 오클라호마 주 고등학교 교사 첼시 헤른돈

“웨스트 버지니아 주, 오클라호마 주, 켄터키 주에서는 교사들이 파업했을지 몰라도, 여기 아리조나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사람들이 말했던 것 기억하십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여기 와 있고,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이벤트 하나, 트위터 글귀 하나로 이 움직임이 촉발됐다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던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의 운동은 수십 년 간 방치돼 온, 수년 간 입에 겨우 풀칠해가며 살아가던 교사들의 삶에서 움터 나온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이 아리조나 주 청사 안에 있는 의원들이 우리 학생들의 미래에 관심조차 없다는 것을 체념해 온 삶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모였고, 우리는 강하고, 우리 지역에서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힘을 이렇게 쟁취한 것입니다!” - 아리조나 주 초등학교 교사이자 아리조나교육자연대(AZEdunited) 공동창립자 노아 카벨리스


‘불법파업’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교사들

2017년 10월, 웨스트버지니아 주 찰스톤 중학교 영어교사 제이 오닐이 ‘웨스트버지니아공무원연대’라는 비밀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었다. 이 그룹의 회원은 2018년 1월 말 2만 명으로 급증했고, 이에 힘입은 교사 34,000명이 2월 22일 웨스트버지니아주 전역인 55개 카운티에서 총파업에 나섰다. 파업 진행 도중에도 저소득층 결식학생들에게 도시락을 빠짐없이 싸주던 웨스트버지니아 주 교사들은, 파업을 중단하라는 전국교사노동조합(AFT)와 국가교육연합(NEA) 지도부의 지시를 묵살하며 파업을 지속하다가, 3월 7일 임금 5%인상 약속을 주 의회에서 받아내고서야 9일간의 파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에 힘입어 4월 2일에서 12일까지 오클라호마 주에서도 30년만의 파업이 9일간 이어졌고, 4월 26일에서 5월 3일까지 아리조나 교사 2만 명이 파업에 나섰다. 4월 27일에 시작된 콜로라도 주의 교사파업은 5월 12일까지 이어졌다. 켄터키 지역에서도 4월 2일에 수천 명의 교사들이 주 청사에 운집해 집회를 벌였고,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도 5월 16일부터 시작된 교사 2만 명의 파업, 농성, 행진이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에 힘입어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조지아 주의 드칼브 카운티에서는 400여 명의 통학버스운전기사가 집단병가를 내며 파업에 돌입했다. 드칼브 카운티 통학버스운전기사의 42%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이 과정에서 7명의 통학버스운전기사가 해고당해 현재 복직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교사파업의 물결을 미 언론에서는 “‘붉은 주(州)’의 반란(red state revolt)”이라 부른다. 붉은색으로 대변되는 공화당의 텃밭인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는 뜻도 담고 있지만, #RedforEd (교육을 위한 빨강티 입기 운동)의 물결에 수만 명의 교사들이 붉은 셔츠를 입고 미국 전역에서 벌인 총파업을 일컫는 중의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이뿐이 아니다. 미국 전국단위의 가장 큰 교사노동조합 두 개인 AFT와 NEA의 지도부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웨스트버지니아 주 지회가 참다못해 먼저 움직였고, 아리조나 주에서는 기존의 노동조합이 움직이지 않자 자체적인 움직임을 새로 만들어 사회운동으로 확장시키기고 법적으로 불가능했던 교섭을 실현해 냈다. 냉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적색공포’에 근간을 둔 ‘단결강제금지법’에 의거해 파업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이 지역들에서, 해고와 체포를 감수한 교사총파업의 불길이 번졌다. 산적해 있던 병폐들이 아래로부터의 역동적인 노동조합운동과 파업을 통해 들춰졌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주의를 염원하며 행동하는 ‘붉은 물결’이 이는 것 아니냐는 전망들도 존재한다. 콜로라도 주를 제외하고, 교사파업이 일어난 ‘붉은 주’들은 모두 ‘노동권법’이라는 기만적인 이름을 둔 사실상의 ‘단결강제금지법(right to work law)’이 시행되는 지역들이다. 주에서 단결강제금지법을 시행하게 되면 그 지역에서는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근로자의 자유’가 주법으로 내걸린다. 그리고 특정 노동조합 가입이 취업의 요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법적으로 명시된다. 따라서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조합원 확장에 여러 가지 제약이 뒤따르고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이는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과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해당 주에서 파업을 불법으로 간주할 법적 근거까지 된다.

냉전이 한창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1947년, 일명 ‘적색공포’와 미국형 ‘빨갱이 사냥’의 본격적인 서막을 열었던 태프트-하틀리 노사관계법의 유물인 이 단결강제금지법은, 현재까지도 미국 28개주에서 시행 중이다. 공무원인 교사들이 국가나 주를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제반조건에서, 이 28개 주의 미국 교사 연봉이 하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명한 수순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지역의 교사들이 앞장서 파업을 결의했던 것이다.

“고마워요 웨스트버지니아”, 파업은 왜 번질 수밖에 없었나

“고마워요 웨스트버지니아 (Thank you West Virginia)” 오클라호마, 아리조나, 콜로라도, 켄터키,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주에서 운집한 10만여 명의 교육노동자들이 하나같이 외친 구호였다. 먼저 물꼬를 터준 웨스트버지니아에 감사와 연대의 뜻을 전한 것이다. 그러나 지역별 요구사항은 조금씩 달랐다. 주 자체별로 산적한 문제들에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웨스트버지니아는 50개 주 중 교사 임금이 48등으로 최하위권이다. 그런 와중에 2019년에 임금을 고작 2% 인상하고 2020년, 2021년에는 각각 1%씩만 인상하겠다는 공화당 짐 저스티스 주지사의 능욕적인 공약에 반발하며 파업한 끝에 5%의 인상을 받아냈다. 이 외에도 교사들은 주 자체의 건강보험 안정화를 요구했다. 제안된 임금인상만으로는 건강보험료가 감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클라호마는 웨스트버지니아보다 교사 임금이 한 등급이 더 낮은, 50개 주 중 49등이다. 교사들은 38권의 교과서를 87명의 학생들이 돌려보아야 할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교육자원과 교사 당 학생수가 갈수록 급증하는 현실, 연초의 긴축으로 인한 교육비 지원 감축 등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다. 목표는 $10,000의 교사임금인상과 $1,250의 교직원/계약직 임금인상이었다. 9일의 투쟁 끝에 $6,000의 교사임금인상과 $1,250의 교직원/계약직 임금인상을 받아냈고, 담배세금을 통해 공립학교 지원금을 충당할 것을 약속받았다. 아리조나에서는 2008년 경기침체 이후 계속되는 교육비 삭감에 저항하며 2020년까지 교사임금을 20% 인상할 것과 학생교사비율을 23:1로 줄일 것을 요구했다. 투쟁의 결과 2020년까지 20% 교사임금 인상 약속을 받아냈고, 구체적으로는 2018-2019년 간 교사임금을 9% 인상할 것과 2021년까지 매년 5%씩 임금 인상이라는 단계적인 약속을 받아냈으며, 교직원/계약직 임금인상도 약속받았다.

콜로라도에서는 낮은 교사임금, 교사연금지원의 부족, 교육지원비 삭감 등에 반대하며 2주간의 투쟁 끝에 2%의 교사임금인상을 받아냈다. 켄터키에서는 공화당 주지사 매튜 벨빈이 교사연금개악을 날치기 통과시켜 연금을 삭감하자 분개한 교사들이 연금개악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서 이를 막았다. 노스캐롤라이나는 50개 주 자체 중 교사 임금이 44순위이다. 이들의 요구는 교사임금인상과 2008년 경기침체 이전으로의 지원금 복구, 교사 건강보험 보장, 학교 시설정비를 담당할 행정부서의 설립 등이다. 노스캐롤라이나 교사파업은 진행 중이다.

미국 헌법에 명시된 바 교육제도는 주 자체의 관할이다. 따라서 공립학교의 유지비나 지원비는 평균 92%가 주 자체의 책임이고, 계약직을 비롯한 교사들은 주의 피고용인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지역별로 교섭의 대상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치행정이 분화된 미국적 특색에서, 다양한 조건에 처해 있었으면서도, 파업의 물결이 이어진 요인이 무엇이었을까?

첫째 요인은, 단결강제금지에 있다. 일명 ‘붉은 주’ 공화당 텃밭이라는 공통분모는 단결강제금지법이 시행되는 전제조건이었고, 공화당원이 다수인 이 지역들에서는 교사들의 예산 삭감과 보험, 연금의 민영화가 특히 트럼프 정부 들어서면서 가속화됐다. 노동조합을 통한 교섭력을 보장받지 못한 교사들은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둘째 요인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지금이야말로 교사들의 교섭력이 확보되는 시점이었다는 데에 있다. 파업이 일어난 시점은, 이 지역의 교사들이 생활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수십 년 간 받으며 버티다 못해 임금이 두 배 이상 높은 다른 주들로 대거 빠져나간 뒤였다. 교사가 부족해
허덕이는 실정에서 주를 상대로 교사들의 교섭력이 상승했던 것이다. 특히 웨스트 버지니아주에서는 파업이 시작될 즈음 700개의 교실에 담임교사를 아예 지정하지 못할 정도로 주 전체에 교사가 부족한 실정이었다. 참다못한 교사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를 포섭한 사회운동으로의 확산, 전망은

이번 미국 교사 파업의 물결은 소속 조합 여부에 상관없이 기간제/정규직, 청소노동자, 통학버스운전기사 너나없이 연대해 광범한 사회운동을 이끌어 냈다. 또 무능한 허수아비 노동조합을 제쳐둔 채 자발적으로 아래로부터 운집하여 주 자체 정부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는 일터 내 노조 조합원의 비율이 10%를 겨우 웃도는 미국 노동운동의 척박한 현실에서 놀랍고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객기어린 도구로 전락한 공화당과, 신자유주의적 행보를 굳건히 이어가는 민주당 사이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된다.[워커스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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