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에 가려진 노동정책

[양규헌 칼럼] “노동존중은 노동자계급이 쟁취해야 몫”

역사적인 촛불시위의 성과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출범 이전부터 제시했던 문재인 정부의 노동공약 기조는 노동존중사회였다. 그런데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노동정책에 의아심이 더해가고 있다. 최근 진행되는 비정규, 최저임금, 노동시간 등을 처리하는 정부와 집권 여당의 태도는 노동존중사회의 개념부터 의문이 생긴다. 노동존중에서 노동이란 무엇인지 되새겨봐야 하는 이유는 노동과 노동자의 구분이 모호해져서 사람과 행위가 뒤섞인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물자를 필요로 하고 그 물자를 구입하기 위해 정신적, 육체적 노력을 하는데 그 행위를 노동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노동이라는 개념은 그 대상이 전체를 망라하지만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자를 가리키며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고 그 대가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노동존중은 노동자 존중이다.

[출처: 청와대]

말장난에 불과한 비정규 노동자 정규직 전환

현 정부의 1호 노동정책은 공공부문 비정규 정책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출범 이후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았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부의 비정규직 해결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날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노동자들은 박수치며 환호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허한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노동존중의 의미라면 우선 법 자체를 손질해야하며, 무엇보다 고용안정과 격차해소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기보다는 자회사를 세워 채용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어디에서 많이 보아왔던 과거 정권의 노동정책 답습이다. 뿐만 아니라 격차해소 차원에서 고용형태를 전환한 노동자에게 정규직에 걸 맞는 임금인상이 뒤따르지 않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 1호 노동정책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은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산출근거 없이 주먹구구식 최저임금

최저임금도 예외가 아니다. 최저임금이든, 최저생계비든, 표준생계비든 각각의 산출방식이 있는데 최저임금도 산출방식은 실종되고 ‘속도조절론’이 등장했다. ‘속도조절론’에서는 어디에서도 최저임금의 기본개념을 찾아볼 수가 없다. 조절론의 배경에는 공약을 파기하기 위한 변명과 허접한 정치적 판단만 있을 뿐이다. 나아가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발전에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 근거도 이해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의 필요성은 최저임금을 올려야 내수 경기가 활성화되고 경제가 내실 있게 성장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공약의 근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해괴한 논리로 등장하여 노동관련 공약과 정책은 후퇴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국책노동연구소(노동연구원)조차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나쁜 영향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심지어 노동운동 했다고 자랑질 하는 집권여당 원내 대표가 독소조항이 수두룩한 최저임금법안을 노동자계급에게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면서까지 통과시키는 과정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정부통계를 적용해도 최저임금법은 저임금 노동자 21만 6천명의 기대수익을 줄어들게 했다. 아울러 최저임금이 너무 올랐다고 호들갑을 떨어대도 실제 손에 쥐는 월급은 그대로인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으니 저임금 노동자는 더욱 암울한 상황에 처해져 있다.

최저임금인상은 법안심사 과정에서 최저임금 정의를 확인해야 했고, 최저임금 산출근거를 분명히 제시했어야 했다. 그런데 소위 관료집단이 데이터가 아닌 정치적 논리와 감각을 앞세워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을 떠들어 대다 보니 산출근거나 기준이 없는 최저임금이 되고 말았다. 최저임금을 억제하려는 수작치고는 기준조차도 모호한 유치하고 한심한 꼴이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생산성이 올라간다

노동시간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노동자의 노동시간은 OECD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높은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2004년 이후 우리나라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여기에 노사가 합의하면 12시간의 연장근로가 가능해진다. 이러면 52시간이 최대치가 되는데, 문제는 주 단위를 평일 5일로만 해석해서 평일의 연장근로와 주말의 휴일근로를 별개로 판단한다.

그럼에도 지난 7월 1일부터 적용된 ‘주 52시간 근무제’ 역시 노동자는 물론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업주들이 반발한다는 이유로 목표와는 역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 노동자에게는 삶의 질을 보장하고, 기업이나 업소는 부족한 노동력을 신규고용으로 보충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으나 결과적으로 자본의 책임을 유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틈만 나면 노동생산성을 비교하며 한국노동자가 일을 안 한다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노동생산성은 노동시간을 분모로 산출되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노동생산성도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했던 노동존중사회는 노동무시사회가 되고 있다

최근 경제를 살리겠다는 김동연 부총리의 행보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세계, SK, 현대, LG그룹 총수를 만나고 국정농단과 연루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그룹의 이재용까지 만났다. 현 정부 스스로 기소한 범죄인을 대통령에서부터 부총리까지 만나는 어마어마한 딜은 거의 막장수준이다. 경제부총리를 만난 재벌총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수조 원을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마치 경제가 바로 살아날 것 같은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재벌이 투자를 하는 것은 재벌의 이윤배가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진행하는 계획일 뿐이다. 그런데 재벌 만나기에 안달을 하는 문재인 정부는 재벌의 거창한 투자계획과 고용을 두고 식상한 쑈를 연출하고 있다. 부총리라는 자가 재벌을 향해 ‘투자하면 광화문에서 춤을 추겠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짓은 박근혜정부의 어부바 쑈랑 오버랩 되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역대정권에서 재벌이 약속했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그대로 집행된 걸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노동존중을 부각시키며 등장한 문재인 정부라고 해서 재벌을 만나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재벌에 구걸하는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으려면 균형을 가져야 하고 최소한 균형을 유지하려면 중소 영세상인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면서 재벌의 갑질과 부당한 관행은 왜 눈감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재벌을 만나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서 무더위에 피땀 흘리는 노동자와 거리에서 농성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현 정부의 이런 행태는 노동존중이 아니라 노동무시라는 철학이 깔려 있기 때문이고 이제 그 본질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이벤트 속에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노동자계급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하나씩 그 본질이 드러나는 상황이 되어 노동자들의 삶을, 불안정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최저임금·비정규직·노동시간 등에 대한 노동정책의 공통점은 임금인상 억제정책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머지않아 소득주도성장의 실패책임도 노동자 탓으로 돌릴 것이 예상된다. 자유주의 정치세력 내에 노동운동했던 자가 포함되었다고 해도 그들이 노동자계급의 삶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나간 짧은 역사에서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인 신뢰와 기대를 안고 노정교섭, 노사정 교섭에 미련을 둘 것이 아니라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입장과 태도를 분명히 설정하고 그에 따른 전략전술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노동존중은 저들이 베풀어 주는 시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쟁취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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