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지 않고 살면 안 되나요

[워커스] 사회주의탐구영역


#1. 집을 사겠다고? 청춘을 내놓아라

바야흐로 금융의 시대. 요즘은 군대 훈련소에서도 ‘금융교육’이라는 걸 하더군요. 훈련병들을 모아놓고 은행 직원이 찾아와 강의를 하고, 군복무기간동안 군인용 적금상품(시중의 일반 적금보다 금리가 조금 더 높습니다)에 가입하도록 하는 건데요. 저도 이 교육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강사로 왔던 한 대형은행 직원(아마 차장 직함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은 ‘왜 돈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한 아주 열띤 연설을 해주었죠. 물론 대부분의 내용은 잊어버렸지만, 담배 끊고 그 돈을 아껴서 모으라는 말과 함께 아직도 기억나는 인상적인 멘트가 있었습니다.

‘돈 많은 집 자식이 아니라면, 20대에 차를 사는 건 인생 망하는 길이다. 무조건 집을 먼저 사야 한다.’ 집이 없으면 삶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부터 돈을 모아놓지 않으면 내 집 마련의 높은 문턱을 넘을 수 없다는 얘기였죠. 가혹한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발언이었습니다만,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차를 살 돈도 모으기 어려울 텐데, 그러면 내 인생은 이미 망한 것인가.

‘하루 이틀 지나면 1억 원씩 오른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 매매가가 급상승하면서 하루아침에 억 단위로 가격이 바뀌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죠. 최근 급격한 오름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에도 전반적으로 집값은 상당히 높았습니다.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요. 평균 소득을 가진 국민이 한 푼도 안 쓰고 몇 년이나 소득을 모아야 중간 가격대의 주택을 살 수 있는지를 나타낸 지표라고 합니다. 작년 3분기 서울은 이 수치가 11.2가 나왔는데, 도쿄(4.8)나 뉴욕(5.7)의 2배 수준이었다고 하죠. 한 푼도 안 쓰고 10년 이상을 모아야 겨우 집을 살 수 있다는 건데, 어떻게 사람이 한 푼도 안 쓰고 살 수가 있겠습니까. 하다못해 집을 사기 전에도 주거지는 필요하죠. 월세든 전세든 마련해야 하고, 먹기도 해야 하고요. 지지난 호에서 언급했습니다만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놓은 ‘비혼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가 2017년 기준 월평균 193만 원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임금노동자 평균소득은 약 330만 원 정도죠. 이 계산대로라면 이미 생계비가 소득의 절반을 넘어서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서 절반만 쓰고 나머지 절반은 그대로 모은다고 해도 내 집 마련에 거의 20년이 걸리게 됩니다. 20대 중반부터 저렇게 돈을 벌어 모은다고 해도 40대 중반은 돼야 집 한 채 살 수 있게 된다는 거죠. 그런데 그 사이에 결혼하고 아이도 낳는다면, 양육비에 교육비 부담까지 추가될 겁니다. 결국 20대에 차를 사든 안 사든 어차피 내 집 마련의 기회는 어렵다는 거죠(차를 사면 좀 더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내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해서 망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삶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분명하죠.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 돼야 한다고 하지만, 주택과 부동산이 버젓이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되는 이 세상에서 주거는 권리가 아니라 넘기 어려운 문턱, 불안정을 양산하는 기제가 되고 있습니다. 몇 년을 일해도 1억을 모으기 어려운데 하루 이틀 사이에 집값이 수억 원씩 오른다면,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겁니다.

#2. 그 많던 집들은 누가 다 사갔을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0년 전인 2008년에 이미 100%를 넘어섰습니다. 즉, 가구수(1인 가구 포함)보다 주택수가 더 많다는 것이죠. 지역별로 살펴보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는 서울과 경기의 경우 100%에 미달하지만, 2016년 기준 서울은 96%, 경기도 99%에 도달했죠. 이 통계에 따르면 서울은 약 14만 호, 경기는 약 4만 호의 주택이 부족하다고 나오는데요. 문재인 정부는 지난 11월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하고 공공임대주택 65만 호를 비롯해 5년간 주택 10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했습니다. 통계상 부족분보다 4배나 더 많은 물량이죠. 그렇다면 수도권에 주택을 더 공급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 8월, 민주당 최인호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임대주택 사업자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공개한 적이 있는데요. 이 자료를 보면 등록 임대사업자 가운데 가장 많은 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무려 1,659채(!)를 갖고 있었습니다. 주택을 공급한다고 그 주택이 필요한 사람에게 배분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죠. 주택이 상품인 이 세상에서, 특히 투기를 통해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재테크 상품인 사회에서 주택공급은 주택난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심화시킵니다. 말하자면 투기판이 더 커지는 거죠.

이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다주택자를 규제하면서 주택가격이 오르지 않도록 안정화시키려고 하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부동산경기가 가라앉게 되면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이 손해를 보고, 부동산투기에 빚까지 내면서 뛰어든 사람들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과거 일본이나 10년 전 미국처럼 심각한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주택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압력에도 직면합니다. 사실 이 점은 비단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이전 정부들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문제였죠. 주택이 자산증식의 수단이 아니라면, 주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급된다면 거품이 발생할 이유도 없고 거품붕괴에 따른 경제위기를 걱정할 이유도 없으며 주택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주택은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거래돼야 하며, 몇 채를 갖고 있든 집으로 돈놀이를 하든 그건 전적으로 소유자의 권리’라는 믿음에서 탈피한다면 말입니다.

#3. 사회주의의 ‘내 집 마련’

사회주의자들은 주거가 삶을 위한 기본적, 보편적 권리로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보았듯 이미 주택수 자체는 근래 증가한 1인 가구수도 상당부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존재하며 계속 추가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수치로만 본다면 수십만, 혹은 백만 호에 달하는 신규주택을 더 공급할 이유는 없는 것이죠. 물론 낡은 집이나 생활여건이 낙후된 지역은 해당 거주자들의 후생복리를 위해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후죽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일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주거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존재하는 주택을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죠. 주택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된다면 자연히 주택은 자산증식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고, 특정 금액의 지불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빚을 지거나 안정적인 주거를 누릴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사회주의에서는 가령 주택을 국가 혹은 사회의 소유로 전환하고, 거주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영구 임대하는 방식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주택을 구매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구할 필요 없이, 소정의 관리비 정도만 부담한다면 (이건 세금의 방식으로 부과할 수도 있겠지요) 집을 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거주이전의 자유는 사라지는 걸까요? 전혀 아닙니다. 예컨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면, 지금 거주하는 지역사회에(행정적으로는 읍면동 주민센터 같은 곳, 혹은 주민들의 자치평의회가 조직되어 있을 수도 있겠죠) 알리고 이주하고자 하는 지역의 주민센터나 평의회에 확인해서 비어 있는 임대주택이 있다면 얼마든지 집을 옮길 수 있는 것이죠. 집을 팔아 돈을 받고, 다른 집을 사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과정이 사라질 뿐입니다.

지역사회나 평의회는 주민들의 필요를 수합해 주택이 모자라거나 낙후된 주택을 재건축해야 할 경우 추가적인 투자를 함께 결정하여 집행할 수 있을 겁니다. 이 경우에는 국가의 지원을 일정 부분 받되, 혹여 있을 지 모를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추가 투자를 결정한 지역공동체 에서 함께 분담하는 방법도 있겠죠. 주거는 공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사회구성원들이 합의한다면, 세부적인 비용분담과 절차는 민주적으로 조직된 공동체의 평의회들에서 논의를 통해 결정할 문제입니다. 개인들의 주거비용을 이렇게 국가재정이나 공동체 차원에서 분담하면 재정파탄에 이르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지도 모르겠지만, 주택경기 부양을 명목으로 건설자본에 대규모 세금을 들이붓고 주택사업자들이 막대한 지대수입을 올리는 것에 비하면 훨씬 효율적이고 낭비를 줄이면서 구성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이지 않을까요?

한편, 사회주의에서는 다주택을 보유하고 사적인 임대 사업을 벌일 수는 없겠지만(애초에 국가와 사회가 무상에 가까운 영구임대주택을 보장하니 사적인 임대 사업자를 찾아갈 이유도 없습니다), 사업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2개 이상의 거주지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회서비스가 무상으로(혹은 그에 가깝게) 공급될 경우 이를 악용하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것이라는 공격도 있을 법한데요.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여러 거주지를 옮겨 다니며 살겠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의 주거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공동체에 제공하도록 하면 됩니다. 즉, 모든 구성원들이 기본적인 주거를 확보한 상태에서 충분히 여유주택이 남아 있을 경우에는 추가 임대를 가능하게 하되(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주택을 추가 임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결정 할 수 있겠지요), 사회적 자산의 낭비를 막는 차원에서 구성원들이 적정하다고 판단하는 수준의(가령 관리비를 상회하는) 급부를 요구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구나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사회주의건 무엇 이건 어느 인간사회에서도 불가능합니다. 다만 자원을 배분함에 있어 자본주의가 지불능력을 요구한다면, 사회주의는 구성원들의 필요를 기준으로 한다는 핵심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죠. 한 사람이 수십, 수백 채의 집을 보유해 주거가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건 ‘정당한 사업’이고, 사회적 소유와 책임 하에 구성원들의 생존과 생활의 욕구를 공적으로 충족하는 것에 대해서는 도덕적 해이라고 한다면 이는 명백히 부당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사회주의 사회의 기반인 평의회를 비롯한 구성원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는, 자신들이 직접 결정하고 그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진정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훌륭한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겁니다.

#4.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 그럼 집 바꿔 살아보실래요?

한 가지 덧붙여야 할 것은, 주택문제는 주택소유권을 국유나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고 기본적인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자본주의에서와 같은 기본적 주거권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은 빚어지지 않겠지만, 오늘날처럼 지역 간 불균형과 격차가 심각하다면 어떤 지역은 주택이 남아도는데 어떤 지역은 계속 주택을 추가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겠지요. 구성원들이 그 상황을 계속 원한다면 못 할 이유야 없지만, 사회적 자원이 특정 인구집단이나 지역에 편중되고 소모되는 문제 역시 계속될 겁니다.

가령 현재 서울, 특히 강남 일대의 아파트값이 폭등하는 것은 강남아파트가 거주의 필요성과 별개로 하나의 투기상품이 되었기 때문에 실수요보다 투기수요를 진작시켜온 탓도 있지만, 분명 서울과 강남이 상징하는 경제생활 인프라와 교육 등 사회여건들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요인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 같은 상태라면 지역에 공공주택을 많이 공급한다고 해도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죠. 결국 주택문제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양질의 일자리, 양육과 교육, 교통, 문화여건 등 사회적 필요를 각 지역들에서 얼마나, 어떻게 충족시키느냐에 따라서도 결정될 겁니다. 행정적으로 국회를 옮긴다거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구성원들의 필요와 욕구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경제계획의 수립은 사회주의적 ‘내 집 마련’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워커스 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