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정보는 비밀이 될 수 없다

[기획연재] 삼성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비공개 재결 비판③

[편집자 말] 지난 8월 23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삼성전자 등 3개 계열사가 제기한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 정보공개 결정 취소청구’ 행정심판 사건 중 주요 쟁점 사안을 모두 비공개 하기로 결정해 다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전문가, 산업보건전문가, 반올림 활동가들은 이 같은 행정심판 결과가 부당하며 영업비밀보다 생명건강권 정보에 대한 알권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이에 참세상은 왜 삼성의 안전정보가 공개돼야 하는지 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번 기획연재는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민중의소리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연재순서]
① 삼성의 사익보다 알 권리…“알 권리는 살 권리다” | 이상수(반올림 상임활동가)(링크)
② 노동자 생명 포기한 중앙행정심판위원회 | 심재섭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링크)

  지난 4일 시민사회단체들이 작측보고서 비공개 재결의 취소를 위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필자도 기자회견에 참가해 함께 하고 있다.(오른쪽에서 첫 번째) [출처: 반올림]

정보공개법에 따른 알 권리

고용노동부가 보관하고 있는 삼성의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이하 정보공개법)에 따라 누구나 요청하여 받아볼 수 있는 정보이다. 이 법은 정부 등 공공기관이 만들었거나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사회구성원들에게 공개해야 함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이 원칙에 예외도 있다. 국가안보에 관련돼 있거나 영업비밀이나 개인정보 등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경우에는 공개 요청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 중 영업비밀의 경우는 다시 ‘예외의 예외’를 정해두었다. 안전과 건강에 관련돼 있는 정보라면 아무리 영업비밀이라도 공개요청을 거부할 수 없도록.

그렇다면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는 어떤 정보인가. 노동자 건강보호와 직업병 예방을 위해 작업환경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이다. 고용노동부에 보고하는 서식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정해져있다. 문자 그대로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정보이다.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에 대한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할 이유로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알 권리를 보장하면 나라가 망한다니

삼성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정보공개법을 거스르더라도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는 감추어야 한다. 왜냐. 영업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나 법원이 보기에 영업비밀이 없다지만, ‘업계 사람들’이라면 이 자료를 통해 영업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 특히 외국 경쟁업체들은 이 정보들을 조합하여 삼성의 핵심기술을 캐낸다. 그리되면 한국의 국가경제 전체가 위협받는다. 한 줄로 요약하면 ‘정보공개법에 따라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삼성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알 권리를 요구한 시민들은 국가경제를 풍전등화로 만들어버린 매국노인가. 정보 요청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판사들, 법원 판결에 따라 알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고용노동부는 국익을 위협하는 자들이란 말인가. 한 기업의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를 공개하여 국가경제가 위험해진다면, 그게 무슨 국가이고 그게 무슨 경제란 말인가.

만일 삼성 말이 사실이라면

백번 양보하여 삼성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치자.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에 영업비밀이나 핵심기술에 해당하는 내용이 들어있고, 사람들이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를 통해 삼성의 핵심기술을 볼 수 있고, 이 정보들이 외국 경쟁업체들에 유출될 수 있다고 치자.

이렇게 가정하면 비로소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 공개 논란의 ‘본질’이 분명해진다. 이제 질문은 좀 더 날카롭게 각이 선다. “기업의 이익에 지장이 생길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면 사회구성원들의 정보 접근권을 제한해도 되는가?” 즉, 이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할 때와 제한할 때 각각 누가 어떤 이득을 얻고 누구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저울질해야 하는 가치판단의 질문이 남는다.

안전보건정보는 결코 비밀이 될 수 없다

지난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39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유해물질 노출과 노동자 인권에대한 보고서(A/HRC/39/48)가 제출됐다. 이 보고서에서는 “알 권리야말로 건강권의 기초”라며 그 중요성을 국제 인권 기준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가령 사업주들은 사용 화학물질의 이름과 그 건강영향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고 그냥 일을 시키곤 하는데, 이는 “사전 동의를 받지 않고 자행하는 인체실험”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노동자에게 작업의 위험을 아예 알려 주지 않았으니, 위험 작업을 회피하거나 거부할 권리조차 이중으로 침해당한 셈이다. 또한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제대로 정보를 소통하지 않는다면 법적인 ‘사기’ 혹은 ‘기만’으로 볼 수 있으며 여러 국제 협약에서 금지하고 있는 ‘강제노동’으로도 간주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기업들의 영업비밀 주장이 노동자의 알 권리 실현에 ‘지속적인 걸림돌’이었으며, 작업장의 안전보건 개선, 피해에 대한 보상, 제품이나 공정에 대한 개선 등을 계속 미루는 전가의 보도로 쓰였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15개의 노동자 인권 보호 원칙들 중 하나로 “독성물질에 대한 안전보건정보는 결코 기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공개돼야 한다

국제 인권 기준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에 영업비밀이나 국가핵심기술이 들어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에 진짜 영업비밀이 들어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어려운 판정 기준이나 절차를 마련할 필요는 없다. 설령 기업의 이익에 지장이 생길 개연성이 상당히 높더라도 이런 자료는 절대로 기밀이 될 수 없다는 명확한 입장이 필요할 뿐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이 입장은 “사회구성원들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려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가령 기업의 영업 손실이 초래될 수도, 해당 업계의 핵심기술이 유출될 수도 있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이유 때문에 안전보건정보에 대한 알 권리를 제한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말한다.

‘국가핵심기술’이 아니라 ‘국가핵심가치’를 묻는 시험대

국가 차원에서 이런 국제 인권 기준에 걸맞는 입장을 세울 수 있으려면, 그 사회의 핵심가치가 생명과 안전, 인권에 탄탄히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삼성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에 대한 알 권리 문제는 각 주체들이 지금 한국 사회의 핵심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가늠하는 시험대라고도 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앙행정심판위원회, 그리고 삼성은 이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담겨 있으므로 사회구성원들의 알 권리를 제한해서라도 삼성의 수출 실적이나 시장점유율 등 이들이 생각하는 ‘국가핵심가치’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자, 시민사회에서는 삼성의 영업 이익에 약간의 지장을 초래하더라도 건강권과 생명권의 기초가 되는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현재 요구되는 ‘국가핵심가치’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 쪽인가. 당신에게 현재 한국 사회의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지난 10월 4일 기자회견 영상[출처: 미디어 뻐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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