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투쟁 승리! 노조파괴, 복수노조 사업장들의 희망입니다

[기고] 동굴 속에 갇힌 8년, 이제 햇빛을 보고 싶습니다

100만 원짜리 파업

2012년 7월 13일. 금속노조는 10만 총파업을 벌였습니다. 집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옆에 있는 지부 간부가 불쑥 말을 전했습니다. “오늘 유성조합원들은 파업 끝나고 지역본부 강당에서 뷔페 식사를 한 대요” 뷔페라니? 저는 전후 사정도 따져보지 않고 대뜸 화를 냈습니다. 2011년 직장폐쇄를 당하고, 해고자가 속출하고, 어용노조까지 생긴 마당에 지금 조합원들과 뷔페라니... 당시 지부 수석을 맡고 있던 저는 “유성지회는 투쟁으로 돈 들어갈 때가 한두 군데도 아닌데 팔자 좋네”하며 퉁명스럽게 내뱉었습니다. 집회를 무사히 마치고 유성지회 조합원들이 강당으로 모였습니다. 저는 조합원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강당으로 갔습니다.

[출처: 유성범대위]

뷔페라고 하더니 펼쳐놓은 음식을 보니 고작 떡 몇 개에 미역국과 소주, 그리고 수육 한 접시가 전부였습니다. 자리에 앉자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형님들이 일단 소주부터 한잔하라며 잔을 건넵니다. 그리고는 대뜸 “수석님! 오늘 우리 100만 원짜리 밥 먹고 있어요” 하는 겁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눈만 껌벅거리고 있으니 이내 100만원자리 밥을 먹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 회사가 파업 집회 나가지 않으면 조합원 1인당 100만원 성과를 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거부하고 파업 했습니다” 하는 겁니다. 당시 유성지회 조합원들은 2011년 직장폐쇄 이후 1년이 넘도록 잔업`특근은 고사하고 기본급도 제대로 다 못 받는 처지였습니다. 그나마 파업과 해고자들 생계비 거출까지 했으니, 80만원이라도 손에 쥐어 가면 감지덕지라고 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회사가 던진 100만원의 성과급. 정말이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유성지회 조합원들은 노조의 결정대로 선뜻 파업에 동참했습니다. 노조집행부는 그런 조합원들이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해서 보잘 것 없지만 따뜻한 밥 한 끼를 조합원들과 나누기로 했다는 겁니다. 이야기를 듣는데 어찌나 미안하고 고마운 지 눈물이 나서 밥을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유성지회 조합원들은 그렇게 노조를 지켰습니다. 억만금을 줘도 바꾸지 않을 동료애로 노조파괴 8년을 버틴 것 입니다.

부품사 노조 노조파괴 비용, ‘60억 5817만 원’

2010년 발레오만도, 2011년 유성기업으로 시작된 부품사 노조들에 대한 자본의 노조파괴는 무서웠습니다. 백주대낮에 용역깡패들이 저지른 폭력으로 현장에 시뻘건 피가 낭자해도 노동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습니다. 아무리 자본이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가혹한 처벌은 노동자만 받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특공수사본부가 차려지고 마치 간첩 소탕하듯 이루어지는 대대적인 토끼몰이에 경찰서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범법자가 되었습니다. 금속에 모든 현장들은 ‘다음은 우리 사업장이 되지 않을까’하는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유성지회와 같이 탄탄한 조직도 직장폐쇄, 용역깡패들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싸워도 이길 수 없구나”하는 극도의 패배감과 무력감이 노조 전체를 휘감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속한 사업장에도 회사가 세운 복수노조가 생겼습니다. 지회 집행부는 해고를 당했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싸우기도 전에 ‘이길 수 없다’는 공포가 현장 곳곳에 암세포처럼 퍼지고 있었습니다. 발레오만도,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까지... 자본이 마음만 먹으면 노조를 통째로 파괴할 수 있다는 패배감이 압도하는 현장에서는 저항은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나라도 살아 남겠다’며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350명의 조합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그래서 고작 50명이 남았습니다. 금속노조 깃발을 들고, 금속노조 조끼를 입고 다녔던 전직 간부들은 모두 금속노조를 버리고 어용노조를 선택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콘티넨탈도 창조 컨설팅에 2억9,200만원을 건넨 금융거래 내역이 드러났습니다. 유성기업 13억1300만, 한진중공업 10억3400만, 상신브레이크 9억2800만, 보쉬전장 8억4300만, 만도 4억4500만, 발레오만도 4억400만, 에스제이엠 2억2000만 원 등 전국금속노동조합 소속 사업장만 집계하면 60억5817만 원이 심종두 대표이사와 그의 부인, 조카, 장인 등이 함께 경영한 창조컨설팅으로 입금된 사실이 밝혀졌지요. 가진 자들은 이렇게 돈만 뿌리면 모든 것을 박살낼 수 있었습니다.

자본은 창조 컨설팅의 도움만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동부, 검찰, 경찰 등 국가권력도 자본을 지원했습니다. 복수노조, 노조파괴 사업장들은 노동부를 한두 번 찾아가는 게 아닙니다. 문이 닳도록 찾아가 요청도 하고, 소리도 지르지만 노동부는 자본이 고용한 공무원들이었습니다. 검찰은 노동자들을 가해자로 만드는 일등 공신이지요. 회사 사업주들이 잘못하면 검찰은 기소도 안하고 몇 년씩 묵혀둡니다. 경찰...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갈까요? 노조파괴를 당하고 나서 맘 편히 집회를 한 기억이 없습니다. 300명이 안되니 인도로 행진해라, 500명이 안되니 차선을 내줄 수 없다, 기자회견에서 구호 외치지 마라, 1인 시위인데 왜 2명이 서있냐, 작은 집회도 연행을 각오해야 하는 등 그들이 노동자들에게 한 짓은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노조파괴는 국가권력이 나서서 진두지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동굴 속에 갇힌 노동자들

그 중에서도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는 가장 잔인했습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연봉 7천만 원 받는 노동자들이 불법파업’이라고 규정하자 국가권력은 유성기업 사측을 비호하고,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고액 연봉 노동자 수종이는 몸과 마음 모두를 다쳐 만신창이가 됐지요. 그 독한 담배를 4갑 이상 피지 않으면 버티지 못했습니다. 매일 누군가를 차로 치어버리는 상상을 합니다. 시골 같은 작은 읍내 교회를 다니는 성민이는 몇 년 째 헤진 상복을 작업복처럼 입고 다녔습니다. 양재동 현대 차 본사 앞만 다녀오면 옷이 찢겨서 왔습니다.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다던 딸 부잣집 선혁이는 해고당하고 불쑥 불쑥 올라오는 화기를 아내에게 풀어서 아내에게 큰 상처를 줍니다. 지나고 나면 후회하는 데도 갑자기 올라오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기도 합니다. 노조간부이자 유족이었던 석호 형은 후배들에게 늘 웃음을 주던 사람인데 열사 투쟁 내내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6년째 노조 사무장하며 온갖 궂은일을 다하던 지순이는 디스크로 휴직을 내야했지요. 8년이 다되도록 언제나 웃는 사람은 정훈이 형뿐입니다. 지역에 노조파괴, 복수노조 사업장 후배들은 다 압니다. 웃는 정훈이 형의 속은 열두 번도 더 타서 재로 사라졌다는 것을요. 유성지회 노동자들은 모두들 이렇게 8년을 살아왔습니다. 조합원 절반이 우울증 고위험군에 놓이는 현장. 우리 모두는 동굴 밖으로 나가 햇빛을 보고 싶은데 이렇게 갇혀 있습니다.

노조파괴, 복수노조 사업장들은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회사는 기업노조와 무쟁의 타결을 하고 성과급을 챙겨줍니다. 공장 안팎으로 CCTV를 설치해 현장통제와 감시를 강화합니다. 집회에서 노동자들이 한 발언은 토씨하나 빠지지 않고 회사에 그대로 보고되지요. 전환배치, 잔업과 특근 배제도 일상적으로 벌어집니다. 공포, 분노, 서러움, 억울함 등이 몸과 정신을 지배합니다. 여기에 민주노조를 지키는 노동자들에게 힘든 일은 ‘희망의 부재’였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유성투쟁,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서울 사무소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뭔지 모르는 게 불쑥 올라왔습니다. 뭉클함이었을까요. 이정훈 지회장님께 전화를 거니 "이번에는 진짜 끝내고 내려 갈 거야”라고 합니다. 콘티넨탈지회 조합원들에게도 유성투쟁 소식을 전했습니다. 솔직히 부러워도 하지요. 300명의 조합원들이 8년 넘게 싸울 수 있다는 게 소수노조 사업장들은 부럽기만 합니다. 유성투쟁은 어느 덧 동굴에 갇힌 노조파괴, 복수노조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희망입니다.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 그래서 유성노동자들의 싸움은 그들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굳이 알량한 권선징악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노조파괴도 싸워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지금 선두에서 싸우고 있는 유성 노동자들이 그 길을 뚫어주기를 또한 간절하게 바랍니다.

오늘 지회 노보에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을 큼지막하게 실었습니다. 지회 조합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유성 노동자들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큰 힘은 보태지 못하겠지만 투쟁기금도 걷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함께 행동할지 조합원들과 고민도 나누기로 했습니다. 거대한 현대자동차 건물 앞에서 영정사진을 든 채로 드러눕던 유성 노동자들의 눈물을 우리도 함께 흘리겠습니다. 낯설고 두려운 길. 그래서 더욱 서럽고 분하지만 꼭 가야만 하는 길. 유성기업 노동자들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겠습니다. 결국 이건 우리 모두의 싸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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