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연합회 반대에 부딪힌 정부, ‘보육 공공성’ 포기할까

[워커스 어린이집 이슈⑥] 슬그머니 사라져가는 ‘보육의 공공성’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야심차게 발표한 공약이다. 문재인 캠프의 제1공약이었던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도 사실 공단 설립에 따른 일자리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공단 설립을 통해 보육, 요양 서비스의 국공립 비율을 대폭 늘리고, 이를 공단이 운영하면서 공공일자리를 대거 만들어 낸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81만개 일자리 창출도, 공단 설립을 통한 보육 및 요양 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도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공산이 커졌다. 사회서비스공단을 저지하려는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한어총)의 움직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보육의 공공성’이라는 공약을 슬그머니 뒤로 빼돌린 정부와 서울시. 이들이 조금씩 드러내왔던 속내를 짚어봤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사회서비스공단의 운명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 만인 2017년 7월 12일. 국정기획자문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2018년부터 보육, 노인요양 등에 대한 시도별 공단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어린이집과 공공요양시설 등을 대폭 확충하고, 이를 17개 시도에 설립되는 사회서비스공단에서 직영하는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선 공약에선 보지 못했던 단서 조항이 달렸다. 공단 직영 시설은 지자체가 신규로 설치, 혹은 매입하는 시설에 한정하겠다는 것이었다. 민간에 위탁, 운영되던 기존 국공립복지시설은 위탁운영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국공립 시설을 중심으로 한 빠르고 포괄적인 사업 확대가 사실상 힘들다는 완고한 표현이었다.

실제로 국공립어린이집의 비율은 2017년 기준 7.8%에 불과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국공립어린이집 마저도 ‘직영’이 아닌 ‘민간위탁’ 비율이 97%에 달한다. 3천여 개의 ‘민간위탁 국공립어린이집’을 그대로 두고, 신규 설치 혹은 매입한 국공립어린이집만으로 공단을 운영한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사실 국정기획자문위가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전, 한어총은 이미 ‘사회서비스공단 반대’를 내걸고 정부를 압박해 왔다. 그해 6월 30일, 김용희 한어총 회장과 간부들은 당시 윤호중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기획분과위원장과 만나 “사회서비스공단에 교육보직원만 포함된다면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에 앞서 6월 25일에는 보육, 아동 관련 13개 학회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에서 사회서비스공단 전면 반대를 내건 성명을 발표했고, 향후 투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보도자료 배포 일주일 뒤에는 영유아 관련 52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유보혁신연대’가 대다수 유아교육, 보육관계자들이 사회서비스공단에 반대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등 51개 보육 단체는 사회공단서비스 설립 반대 성명을 냈으며, 한어총은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관련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보건복지부가 작성한 비공개 문건 ‘사회서비스진흥원 설립 추진계획(안)’이 공개됐다. 해당 문건에는 ‘사회서비스공단’이 ‘사회서비스진흥원’이라는 명칭으로 격하돼 있었다. ‘공단’이라는 명칭의 기능, 이미지 등을 고려해 ‘진흥원’으로 변경했다는 것이었다. 이름 뿐 아니라 추진 내용까지도 상당부분 후퇴됐다. 진흥원의 목적은 대폭 확충된 국공립 복지시설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닌, 극소수의 국공립 시설만을 운영하며 민간사업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본부 산하의 국공립 수탁시설 등은 추가적 재정 지원 없이 자체 수입을 토대로 운영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사실상 사회서비스의 ‘공급자’가 아닌, ‘시장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해낼 수 있는 사업 규모가 아니었다.

이듬해 3월에서 7월까지.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사회서비스포럼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당초 ‘사회서비스공단’에서 ‘사회서비스진흥원’으로 격하된 명칭이 또다시 ‘사회서비스원’으로 변경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까닭이다. 당시 복지부는 이미 ‘사회서비스원’의 명칭으로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었고, 결국 5월 4일에 법안 발의가 이뤄졌다.

지난 5월에는 보건복지부가 지자체장과의 간담회에서 ‘사회서비스원 선도사업 추진계획(안)’을 발표했다. 사회서비스원을 일부 시도에 시범, 선도적으로 적용해 사업의 타당성 및 효과성을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자료에는 그간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의 주요 사업이었던 ‘보육’과 ‘요양’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5개 대상사업(국공립어린이집, 공립 요양시설, 초등 돌봄교실, 다함께 돌봄, 공립 사회복지관 등) 중 2개 사업을 선정해 시설운영 사업을 실시하라는 지침이 담겨 있었다.

부러진 닻을 올린 서울시의 ‘사회서비스원’

지난 10월 23일 <경향신문>은 ‘문 대통령 대선공약 ‘사회서비스공단’ 서울시가 먼저 닻 올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으나 답보상태인 ‘사회서비스공단’이 서울에서 본격 닻을 올린 셈”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회서비스공단’ 역시 보육이 배제된 반쪽짜리 사업계획에 머물러 있다.

사실 박원순 시장은 ‘국공립어린이집 확충’에 누구보다 앞장 서 왔다. 서울시 보육포털 홈페이지에 국공립어린이집 확충과 관련한 실시간 상황판을 만들어 놓을 정도다. 실제로 박원순 시장 재임 7년간(2011~2018년)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은 약 810여 개가 증가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늘어난 국공립어린이집 대다수는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한 ‘관리동 국공립어린이집’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다보니 서울시 안에서도 대형아파트 밀집 여부에 따라 국공립어린이집의 증가 속도가 다르다.

지난 7년간 국공립어린이집이 집중적으로 증가한 곳은 서초구(57개)와 성북구(54개)다. 국공립어린이집 개수도 성북(82개)과 서초(77개)가 가장 많다. 반면 구별 0~4세 인구수가 가장 많은 송파구와 강서구는 각각 37개, 35개소가 증가했다. 2011년까지만 해도 어린이집이 두 번째로 많았던 송파, 강서구(35개)는 현재 72개와 70개소 정도에 머물러 있다.

서울시 내부에서도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문제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의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TF 3차 회의 자료에 따르면, 공단 사업 우선 순위 분석 결과 ‘어린이집’이 노인방문요양, 노인요양시설에 이어 3순위로 집계 됐다. 하지만 서울시는 기존의 민간위탁 시설을 공단으로 이관하는 것에 여전히 소극적이다. 서울시 사회서비스공단에 보육이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이미 공공연히 밝혀왔다. 지난 5월 16일,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관계자들이 진행한 ‘사회서비스선도사업 추진방향’ 간담회에서 서울시는 “선도사업은 신축 시립요양시설만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사업 운영성과 및 시장여건 등에 따라 일부 확대 가능성은 있다”며 “기존 위탁시설을 인수하는 방안은 시장에 왜곡된 신호를 줄 수 있어 1순위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말에는 서울시와 한어총이 면담을 진행한 후, 서울시가 보육을 제외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실제로 연합회 회원들은 ‘(박 시장이) 사서원(사회서비스원)에 보육을 넣지 않기로 답을 주셨다’며 ‘연합회의 수고와 봉사를 칭찬하시며 큰 상을 주셨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공유했다. 지난 10월 12일에는 서울시가 9월에 이미 ‘보육’을 제외한 사회서비스원 설립 계획을 수립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지역 어린이집 원장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3선에 성공했다. 당시 선거캠프에는 ‘보육특별위원회’가 꾸려졌고, 여기에 소속된 2,787명의 어린이집 원장 및 보육교직원들이 박원순 후보 지지를 공식 표명한 바 있다. 한편 서울시 관계자는 “보육 분야를 포함시킬지 여부는 첨예한 쟁점이라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며 “조만간 이해관계자들을 모아 논의 과정을 거치고 올해 안에 결론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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