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노조파괴 8년, 이제는 끝장을 본다

[워커스] 이어 말하기

[출처: 금속노조]

우리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했다. 2011년 직장폐쇄 후 일주일간의 현장사수 투쟁이 그랬고 국가 권력이 완전히 회사 편임을 확인했던 비닐하우스 농성 3개월이 그랬다. 540명 노동자의 공동체인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국가 기관과 노무컨설팅회사,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공격은 그 누구도 견뎌낼 수 없었다. 실제로 금속노조의 핵심 사업장 대부분이 파괴돼 소수노조로 전락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아나갔고, 정말 잘 싸웠다. 하지만 아픔도 컸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조파괴 광풍을 정면에서 막아내고 사용자 처벌을 넘어서 창조컨설팅 구속 그리고 현대자동차 임직원들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결국 노동부는 이번 노동행정개혁위원회를 통해 노조파괴 사태가 국가기관, 창조컨설팅, 현대자동차, 유성기업이 합작한 사건이었다는 것을 사실상 고백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한광호 열사, 다시 세상에 알려진 노조파괴

격렬했던 2011년 직장폐쇄에 맞선 투쟁, 과반수의 조합원을 잃어 교섭권을 빼앗긴 2012~13년, 과반수 노조를 되찾았음에도 회사의 교섭해태는 반복됐다. 결국 2016년 3월, 쌀쌀했던 이른 봄에 한광호 열사는 세상과 등졌다. 당시 현장은 유시영 회장의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던 때였다. 현대차가 노조파괴에 개입했다는 자료가 확인되는 시점이었다.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미 조합원들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치료를 받고 있었고 산재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긴 시간 자행됐던 회사의 가학적 노무 관리가 한광호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 죽음이 나에게도 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하는 직감은 ‘죽지 않기 위해, 동료를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표현됐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며 전면파업에 나섰고, 다시금 유성기업 노조파괴를 세상에 알리는 투쟁을 벌였다.

서울시청 앞에서 분향소를 차리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상여를 매고 현대자동차 본사 앞까지 장대비를 맞으며 걸었다. 가는 길은 험했다. 현대차 본사 앞은 현대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현대자동차의 무법지대였다. 전쟁터가 이랬을까. 우리는 수십 명이 연행되고, 찢기고, 밟히면서 싸움을 했다. 그랬더니 유시영 회장이 구속됐다.

유시영 회장의 구속, 그런데 왜! 노조파괴는 끝나지 않는가!

그럼에도 8년의 탄압 속에서 벌어진 해고와 징계의 고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왜 아직도 끝나지 않는 것인가? 노조파괴로 사업주가 구속됐고, 재판을 통해 노조파괴가 확인됐다. 직장폐쇄도 불법이고, 해고도 무효고, 어용노조도 불법이어서 무효가 됐다. 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임금삭감, 징계가 이어졌다. 회사는 ‘법과 원칙’을 말하며 대법원 판결을 받고 보자고 했다. 우리는 절망스러웠다. 재판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모두 피폐하게 만들었다. 부당노동행위 처벌을 받게 하려고 모든 자료를 노동자들이 모아서 노동부에 고소하면 노동부는 1년 넘게 사건을 쥐고 있다가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보고했다. 검찰은 그것을 4년 동안 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디에도 노동자 편은 없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몇 년인가! 끝없는 투쟁과 지리한 재판으로 우린 지쳐나갔다. 회사가 불법이라는데 우리는 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여전히 어두운 동굴에 갇힌 것 같았다.

다시 든 투쟁의 횃불, 이제는 끝내자!

올해 10월 15일은 8년의 노조파괴를 끝장내는 투쟁의 횃불을 밝히는 날이었다. 깜깜했던 어둠 속을 헤쳐나간 것은 조합원들 스스로가 빛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1년 전면적인 투쟁, 2012~13년 현장투쟁과 조합원 조직 투쟁, 그리고 2016년 한광호 열사 투쟁처럼 조합원이 스스로 투쟁이 요구될 때 함께 투쟁을 전개했다.

유성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투쟁을 해야 할 때를 기억하고 있다. 평소에 파업을 하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까지 비록 손해보고 하기 싫더라도 다시금 고삐를 조여 가며 투쟁의 전선 앞에 서 왔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다.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 집행부는 조합원들에게까지 비밀로 하면서 서울사무소 농성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조합원들의 반발은 없었다. 투쟁할 때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즉시 전면파업에 나섰고 지금까지도 전면파업을 유지하며 매일 서울로 상경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이제 결판을 내려고 한다. 권한 없는 관리자들의 말장난에 지쳤고, 무엇보다 지속되는 노조파괴로 인한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노조파괴를 시작했던 장본인의 결자해지를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조합원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늘 그렇듯이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결과를 남긴다. 우리는 노조파괴가 우리 문제였다. 그렇게 싸우니 한국사회에서 노조파괴, 복수노조, 교섭창구 강제적 단일화, 민주노조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들여다보는 결과를 남겼다. 거대 재벌의 갑질을 넘어 법 위에 군림하는 현대차 자본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고, 재벌이 이 사회에 가장 큰 적폐라는 사실을 남겼다.

이제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우리는 ‘길은 있는 게 아니고 만드는 것’이라는 걸 결과로 남길 수 있을까? 국가기관과 거대재벌인 현대차, 유성기업의 합작품인 노조파괴를 끝장내고 승리한 투쟁이란 걸 남길 수 있을까?

미안함도, 서운함도, 모두 버리고 오직 승리한다는 결의만!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농성과 현대차 본사 앞, 서울고용노동청, 검찰, 법원을 오가며 벌이는 투쟁에 조합원들은 스스로 현 상황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서로 열띤 토론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노동부도, 검찰도, 경찰도, 법원도, 심지어 현대차까지 이 사태의 해결을 바란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이제서야…’하는 서글픈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남은 모든 힘을 쏟아 투쟁하길 결의했다. 그동안 투쟁 현장에 잘 나오지 않았던 조합원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바쁜 투쟁 일정에도 더 잘해 보자는 의기투합의 술자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서운함도, 미안함도 모두 잊고 ‘이번에는 반드시 노조파괴를 끝내고 승리한다’는 결의만 남겼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투쟁한다.[워커스 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