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가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가?

[연속기고] 기울어진 운동장과 사회적 대화 (1)

이정규 주 스웨덴 한국대사가 11월 초 스웨덴노총과 면담을 하면서 “한국노조 태도를 바꾸는데 스웨덴노총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국노조들은 대화를 거부하고 맨날 거리에서 투쟁을 외치고 파업을 한다. 살트훼바덴 협약 체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 발언은 현재 한국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정부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파업하는 것을 정당한 권리 행사로 여기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부의 인식이 이러하니 애초부터 노‧사‧정의 구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위원장의 이야기에서도 확인된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11월 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노총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합의하고 타협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의 DNA를 갖고 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어용이라는 비판조차 ‘어려울 때 용기를 내는 것’이라고 맞받아칠 정도로 책임 있게 나오고 있다”고 칭찬했다. ‘어용’을 ‘용기’라고 말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이 태도도 놀랍거니와, 한국노총 스스로 고백했듯이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정부 여당의 입장을 따르는 것을 ‘사회적 대화’로 인식한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1. 노동자는 동등하게 말할 수 있는가

사회적 대화는 권리가 동등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노동자와 기업은 권리가 동등하지 않다. 스웨덴노총 부위원장은 한국대사에게 “우리라고 대화만 하는 것은 아니다. 1938년 살트훼바덴 협약이 타결되기까지 40년가량 지속적으로 파업하고 투쟁했고 결국 사용자들이 대화 테이블에 앉아 대화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결국 합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는 사용자들을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대화자리에 앉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들은 왜 경사노위에 적극 참여하는 것일까? 기업들에게 사회적 대화의 DNA가 있어서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억지로 앉게 된 것도 아니며, 기업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업과 정부가 한편이 되어 노동자들을 억지로 대화의 자리에 끌어다 앉히려는 상태인 것이다.

왜 한국의 사회적 대화의 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인지 스웨덴노총 부위원장이 명확하게 말한다. “노조 할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파업하고 투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현장에서 결사의 자유와 노조 할 권리가 보장되고 동등한 조건에서 대화가 가능한 노사관계가 구축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교조는 아직도 박근혜 정부로부터 ‘노조 아님’ 통보받은 그 상태 그대로이다. 공직사회 비리 척결을 위해 싸웠던 공무원들은 아직도 해고자 신분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선별적으로 허가받고 있으며, 고 김용균 님을 사망에 이르게 한 원청사용자 서부발전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도 그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노조를 지키기 위해 용역깡패들의 폭력을 견뎌야 한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회사에 단지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기 위해서 400일이 넘는 굴뚝농성을 한다.

노사관계가 이렇게 왜곡되어 있는 것은 정부의 인식이 여전히 기업의 이윤 중심적이며, 언론과 사법부도 기업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11월 22일 유성기업 임원이 노조원들에게 폭행당했다는 뉴스가 나간 후 노동조합을 향해 언론들은 ‘조폭노조’라고 이야기하며 비난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8년간 얼마나 심각하게 사측의 폭력에 시달렸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는 관대한 법원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가혹하게 법을 집행하고 큰 액수의 손배 가압류를 자행하는 일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일상이 되고 있다. 불법파견을 저지른 사용자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법대로 하라고 농성한 노동자들은 연행되고 구속된다. 이런 현실에서 대등한 대화는 가능한가.

2. 경사노위는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가

경사노위는 한국 사회 노동자들의 지위를 반영한다. 그것은 경사노위의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현재 경사노위에는 노사 대표를 각 5인으로 구성하되, 노동자 위원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그리고 청년, 여성, 비정규직으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정부 장관급 대표 2인과 공익위원 4명, 경사노위 위원장과 상임위원까지 모두 1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노총과 청년과 여성을 대표하는 이들은 그 조직에서 추천하여 들어왔으나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않았고, 비정규직 노조들은 ‘비정규직 대표’가 경사노위에 들어간 과정과 내용을 알지 못하며,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공익위원은 정부가 사실상 임명한다. 노사가 대화하고 정부가 중재하는 모양을 갖되, 실질은 정부가 결정하는 구조이다.

경사노위에서 다루는 의제도 마찬가지이다. 경사노위가 출범한 이후 첫 번째 안건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다루는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였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해놓고 사실상 주52시간 상한제를 확정한 것 외에는 하지 않았던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에 대비하도록 한다면서 기업에 대한 처벌을 유예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수용하라고 압박을 했기 때문에 이것이 첫 번째 안건으로 상정된 것이다. 이것은 기업들이 정부에게 청원했고 노동자들이 반대한 의제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논의하는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의 공익위원을 위촉하는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추천한 위원에 대해 다른 위원들이 ‘사회적 대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냐’고 힐난하며 반대했고,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에서도 한국노총이 회의 운영 방식을 문제 삼으며 퇴장한 것은, 결국은 정부의 정책을 경사노위를 통해 관철시키는 구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의제도 마찬가지이다. 경사노위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의 핵심은 국제노동기구(이하 ILO) 기본협약 관련 사안이다. 정부는 이 사안들이 논쟁이 있는 사안이므로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국내법을 먼저 정비하고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ILO 기본협약은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 공무원의 노조 가입범위,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조합 인정 등 이미 당연하게 보장해야 할 헌법상의 권리들이다. 우리나라가 ‘한-EU자유무역협정’을 통해 ILO의 기본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약속해놓고도 이를 충분하게 이행하지 않아서 유럽연합이 정부간 협의를 공식 요청해놓은 내용이다. 하루라도 빨리 정부가 결단하여 비준하면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시간을 끌면서 사회적 대화라는 테이블에 올린 이유는 ‘당연하게 보장해야 할 권리’를 조금씩 내주면서 노동자들의 다른 권리를 빼앗거나 혹은 기업들이 요구하는 바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현재는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을 개선한다고 하면서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사업장 점거파업을 금지하며, 파업 시 대체근로를 투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제한적으로 주면서 노동권을 침해하는 기업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경사노위의 기본적인 논의 방식이다. 이것이 과연 동등한 주고받기인가.

3. 정부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기구로서의 경사노위

이런 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정부의 의지가 의제나 합의과정에 중요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의제를 선점하고 경사노위를 압박하여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노동계를 굳이 참여시키려는 것도 민주노총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투쟁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여겨진다.

12월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새로운 경제정책은 경제 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히면서 “필요한 경우 보완조치도 함께 강구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적극적으로 도모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말은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편하여 최저임금의 인상 속도를 늦추라는 뜻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개악해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더니 이제는 최저임금을 더 개악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진행한 확대경제장관회의 직후 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국회 논의를 거쳐 2월 중에 법 개정안을 마련하며, 최저임금법 개정을 통해 2020년 최저임금은 시장수용성과 지불능력, 그리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 대화가 정부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최저임금을 후퇴하는 개악 절차를 밟을 테니, 경사노위는 알아서 그 내용을 ‘사회적 대화로 포장해달라’는 말로 들린다.

이것만이 아니다. 경사노위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해 논의할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공익위원 문제로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위원회는 구성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주52시간제 보완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1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위반 단속규정을 탄력적 근로시간제 입법이 완료될 때까지 유예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 말은 설령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통과되지 않더라도 사용자들을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장시간 노동을 시키도록 만들며, 이런 정책을 통해 노동자들이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합의하도록 압박하겠다는 의사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이미 방향을 정해놓고 사회적 대화는 이런 방향으로 하라고 가이드를 정해준 것이다. 경사노위가 결국 정부 의지를 관철시키는 기구라는 점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4. 사회적 대화에서 고통은 비정규직에게 전가된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방향이 전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저임금 노동자들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포용국가’라는 개념 안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은 의미가 없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경사노위에 들어오라고 압박하고 이 안에서 합의하라고 요구한다. 합의해야 하는 내용은 당장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최저임금 개악이며, 노동조합의 활동을 가로막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점거파업 금지, 그리고 대체근로 투입이다. 이것에 대해 합의하면 누가 가장 고통을 받는가.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1998년에 노사정위원회가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통과시킨 이후 그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은 주로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이었으며, 그 노동자들이 지금 비정규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부는 ‘비정규직’을 자주 호명한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민주노총을 압박하려고 할 때만 호명된다. 민주노총이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없다고 하면서 비정규직 당사자가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하던 정부가,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고 김용균 님을 비롯한 비정규직들은 ‘대통령님 만납시다’라고 호소했지만, 고 김용균 님의 죽음 이후에도 과연 그 목소리를 듣는지 알 수 없다. 중소기업 사장들도 만나고 재계 인사도 만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만나지 않는다. 경사노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할 것이라는 기대가 과연 타당한가. 설령 양념처럼 몇 가지 보호조치들이 논의되어 관철되더라도, 지금 논의되는 의제 자체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비정규직에게 노사관계는 없다.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고 노조법도 있는데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한 교섭과 합의가 불가능하다. 정규직 전환 협상을 하는데도 단체교섭으로가 아니라 노사전문가협의체를 만들어서 노동자들을 소수화하여 기업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고, 원청은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거나, 특수고용은 노조도 인정받지 못해서 노동조합이 교섭할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모든 것을 법에 기대서 해결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수많은 불법파견 소송과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과 부당해고 소송이 난무한다. 기본적인 노조 할 권리도 없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데 어떤 사회적 대화를 말할 수 있는가?

노동자들이 현장에서부터 노조 할 권리를 보장받고 노사관계가 이루어지면서 교섭하고 투쟁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그 바탕 위에서 더 큰 사회적 의제에 관한 논의도 시작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의거하여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노조 할 권리가 가로막히고 사회적으로는 제도가 개악되어 그것을 막기 위해 계속 거리에서 싸워야 하는 현실에서 도대체 무슨 사회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 이 글은 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2019.01. 통권 185호)에 실린 글입니다.

경사노위 출범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노동문제를 둘러싼 사회 주체의 대화와 타협, 그를 통해 권리가 보장되고 노동정책의 방향을 수렴해 갈만큼 한국사회의 노동권이 충분히 무르익었는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더불어 조직률이 미약한 한국 노동운동의 상황에서 미조직 ․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떻게 주체로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지, 사회적 대화 기구로 노동자의 권리가 수렴되거나 대변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려합니다. 해외의 제도를 원용하였으되, 주요 한 축인 노동이 딛고 있는 지반은 여전히 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사회적 대화와 투쟁 사이에서 노동의 목소리는 어떻게 발현되어야 할지,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갖고자 합니다.

1)사회적 대화를 역사와 사례로 돌아보고(해외사례의 시사점/한국의 사회적 대화기구 검토 등), 2)사회적 대화의 책임주체로 양보와 책임을 노동에 강요하는 상황인데, 노동권 보장 실태는 그에 합당하게 보장되고 있는 것인지, 3)그리고 비정규직을 대변한다는 전문가도 경사노위의 한축을 차지하고 있는데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대화로 다룬다는 것의 함의, 쟁점, 비판점은 무엇인지 등을 발제와 토론에서 깊이있게 다루려 합니다.

* 토론회에 앞서 "한국사회 노동권 보장 실태에 대한 노동자/시민 인식조사"도 진행됩니다. 인식조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