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은 연대를 통해 권리를 찾는다

[기획연재]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④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노동자의 권리는 점점 박탈됐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지금은 정규직 노동자들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미래의 희망을 잃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벌기 위해 장시간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차별과 위계화에 익숙하여 비정규직을 폄훼하기도 한다. 때로는 비정규직을 고용의 안전판으로 삼으려고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운동의 목표는 단지 고용형태만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지 비정규직의 눈으로 바라보고 함께 토론하면서 '비정규직 사회헌장' 18개 조항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오월의 봄 출판사)라는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그 중에서 네 개의 조항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18조>

노동자들은 위계와 경쟁을 거부하고,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과 단결하고 투쟁하고 연대하고 정치적으로 나설 권리가 있다.


"내가 김용균이다"

2018년 12월 11일,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이하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서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울며 말했다. "오늘 동료가 죽었습니다. 석탄을 이송하는 설비에 기어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스물다섯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저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정규직 안 해도 좋으니 더 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그런데 오늘 또 동료를 잃었습니다." 기자회견장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증샷으로 만든 현수막이 놓여있었다. 그 현수막 안에는 그날 새벽 죽음을 맞은 고 김용균의 사진도 있었다. 그날 모든 비정규직이 함께 울었다.

이후 두 달 동안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내가 김용균이다"라고 외치며 싸웠다. 살기 위해서 나간 일터에서 죽고, 차별 때문에 자존감이 훼손되고, 정규직화 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오히려 해고되고, 회사가 불법파견을 저질렀는데 그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고 그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만 구속되는 세상에서 김용균의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12월 21일과 22일 청와대 앞에서 1박2일 투쟁을 하고, 1월 18일 구의역에서 청와대까지 걸었으며, 그날 청와대 앞에서 다시 밤을 지새웠다. 1월 28일 하루단식과 문화제 등을 했고, 범국민추모대회나 고 김용균 죽음을 알리는 투쟁의 현장에는 늘 피켓을 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앞자리를 지켰다.

이 싸움에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토록 힘을 쏟았는가. 같이 투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자신의 절실한 현안을 안고 있었다. 해고당해서 천막농성을 하기도 하고, 사측 구사대에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구조조정으로 인해 해고를 앞두고 있기도 하고, 노동조합을 인정받지 못해서 싸우고 있었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위해 싸우는 중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모두들 김용균 동지의 투쟁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이 싸움이 비록 자신의 문제와 직접 연관이 없다 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진전시키는 과정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멈춰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를 더 크게 만듦으로써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데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싸움의 승리를 그 노동자들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KTX 해고 승무원들이 10년이 넘는 해고생활을 끝내고 현장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끈질긴 투쟁으로 불법파견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검찰을 이기고 아사히글라스 자본을 기소하도록 만들었을 때, 김천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가 부당해고 소송에서 이겼을 때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부당한 해고, 회사에 관대한 검찰에 대한 분노가 모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 투쟁을 할 때에도 이 투쟁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서로 조언하고 연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투쟁의 진전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길을 여는 것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연대투쟁을 넘어 공동투쟁으로

고 김용균 동지의 투쟁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한국사회 불평등의 핵심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과 만납시다'고 요구하며, 비정규직 스스로가 나서서 주체로서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11월 12일-15일까지 비정규직 노동자 100여명이 4박5일 동안 청와대와 대검찰청, 국회 등지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함께 싸웠다. 대검찰청 투쟁에서 6명이 연행되기도 했고, 국회와 청와대 앞 투쟁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다쳤지만 노동자들은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별의 구획을 넘어 만나고, 공통의 과제를 두고 함께 싸웠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서로의 투쟁에 힘을 보태는 '연대'만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기 어렵다. 특히 한국사회는 비정규악법을 통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으며, 비정규직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할 권리는 제도로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파견법, 기간제법을 폐기하는 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위한 '특수고용 노동조합 인정'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 투쟁을 '노조법 2조 개정'이라는 형태로 함께 이루고자 한 것이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국회나 상급단체에 의존하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개별사업장에 대한 연대를 넘어 제도를 바꾸는 '공동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 만들었다.

지금 벌어지는 노조법 개악을 막기 위해서도 공동투쟁이 필요하다. 제도가 개악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노조가 없거나 노조의 힘이 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탄력근로시간제가 도입되면서 보완장치는 모두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어서 노조 없는 노동자들은 11시간의 휴게시간 보장도, 임금보전 방안도, 2주전 통보도 모두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여기에 더해 경사노위에서 파업시 대체인력 허용이나 사업장 내에서의 쟁의행위 금지 등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는 더더욱 파업의 효과를 갖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활동을 가로막는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현재 투쟁하는 이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과 단결하여 투쟁하고 제도와 정치를 바꿀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4월 13일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법 2조 개정 투쟁에 연대하고, 문재인정부 출범 2년이 되는 5월 10일, 점차로 우회전하는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을 되돌리기 위해 싸우며, 7월초 총파업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와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정책을 관철시키고자 한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는 노동조합이 있는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아직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함께하고 있다. 노조가 없더라도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비정규직 스스로의 힘으로 제도를 바꾸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공동투쟁'에 함께 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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