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적 양적완화와 그린뉴딜

[이종회 칼럼] 공황 그리고 가보지 않은 길


공황 그리고 가보지 않은 길

미국이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이미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EU는 마이너스 금리를 추가로 더 늘리면서 양적완화까지 예고하고 있다. 경제성장률, 고용률과 같은 여러 경제지표나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현상을 보면서 경기침체의 징후라고들 한다. 한국도 금리를 내렸고 역대 최저금리 상태에서 또다시 인하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2008년 공황 이후 지속된 양적완화로 유동성이 늘어나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기채권의 수요가 늘고 금리가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경기침체 국면에 대한 판단도 다르고 이에 대한 처방도 답이 없다. 자본 역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또 다른 경기침체는 이미 예측된 일이다. 그런데 처방은 그때마다 다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공황이 일어나고 그 여파로 세계공황이 발생했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부도가 나면서 세계 4대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를 비롯한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이 파산하고 최대 보험사 AIG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보험회사들이 주저앉았다. 그러자 미국 FRB를 비롯해 유럽, 일본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 은행의 부실자산을 국채로 바꿔주거나 쥐고 있던 국채를 사들이면서 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했다.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 유동성을 지원하는 비전통적 방식으로서의 양적완화가 그 처방이었다.

공황이란 과잉생산에 따른 이윤율의 저하가 그 배경이다. 공황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과잉생산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 등을 거쳐 한계기업들을 정리하고 수요를 진작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 일반적으로 수요 진작을 위해서는 금리를 낮추거나 정부가 세수를 고려해 채권을 발행하고, 그만큼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무제한으로 돈을 풀면서 망해야 할 한계기업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리고 은행에 몰아준 현금은 은행에 그대로 잠겨있거나 대출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고 또 다른 금융상품으로 돌아다녔다. 결국 넘쳐나는 달러, 유로, 엔화들이 전 세계 주식시장을 비롯한 투전판을 더 키웠고 공황에도 거품은 꺼지지 않았다.

망한다던 신자유주의는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 재정정책과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기법으로 명맥을 유지했고 ‘뉴 노멀(New Normal)’이 됐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한계기업들이 살아남으면서, 자본과 상품의 과잉은 해소되지 못했고 제대로 된 자본순환 사이클도 거치지 못해 또 다른 공황을 맞이하게 됐다.

어찌 됐든 유럽과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 상태이고, 미국조차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의 여지가 거의 없다. 경기 불황에 접어들어도 금리 조절을 통한 유동성 발행의 탄력성이 없다. 그리고 여전히 유동성이 넘쳐흐르고 있음에도 불황에 접어들다 보니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달리 돈을 풀 방안을 찾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중앙은행이 정부채권을 사들여 정부에 돈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기존의 양적완화 방식으로 은행이 쥐고 앉아 돈이 지 않거나 금융적 순환으로만 이루어지는 현실에 대한 타개책이다.1)

이 정도 되니 일부는 혹시 외환위기라도 닥칠까, 아니면 환차익이라도 보겠다는 마음에 외환통장에 달러를 늘리고 있다고 한다. 경제위기에도 부동산 가격이 내려갈지 올라갈지 판단을 못 할 정도니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어찌됐든 돈을 또 푼다는 것이고 한국은행 역시 금리인하 이외에 다른 종류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연구한다고 하니 한국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비전통적이란 수식어가 그러하듯 양적완화를 통해 2008년의 파고를 넘어왔다면 이번에 닥쳐올 경기침체에 따른 처방 역시 비전통적 방식일 것이다.

공황에 대한 처방, 한국형 양적완화

2008년 공황이 닥치자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살리기’ 등 녹색뉴딜 사업에 총 50조 원의 투자 계획을 확정하고 4대강 사업에만 22조 원을 풀었다. 이어 금리를 인하하고 기업이 어렵다며 법인세를 인하하고 노동자에게는 임금피크제 등으로 고통 분담을 요구했다. 말하자면 금리인하와 재정지출 확대, 감세와 같은 확장적 거시정책을 통해 내수를 진작하는 정통경제학 교과서적인 해법이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해운회사 부실문제를 해결하고 초이노믹스의 부동산경기 활성화 대책으로 야기된 가계부채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한국형 양적완화’가 거론됐다. 부실회사에 채권이 물려있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한 추가 출자를 위해 양적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변동금리, 일시상환에서 고정금리, 분할상환으로 주택담보대출의 조건을 변경하기 위해 주택금융공사에 자금을 지원하려면 한국은행이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조건을 변경하는 것은 주택 금융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 액수면 한국은행이 나서지 않고 추가경정예산 등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결국은 실행되지 않았다.

‘민중적 양적완화’와 ‘그린뉴딜’

지난 공황 당시 미국 중앙은행의 재정으로 부도난 금융회사들을 살리면서 손실을 사회화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양적 완화로 돈은 풀었지만 결국 은행만 살렸고, 은행은 돈이 넘쳐 중앙은행 계정에 다시 돈을 묻어두거나 금융시장의 거품만 키웠다. 또한 공황 초기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을 손보겠다며 ‘토드 프랭크 법안’ 제정과 같은 개혁적 정책들이 논의됐지만 결국 실행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미국 FRB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명박과 아베는 실제로 통장에 현금을 꽂아주거나 상품권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나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은 가진 자들의 돈놀이에 그쳤다. 경기 침체라지만 2019년 한국의 가계 및 기업이 보유한 6개월 미만의 단기 수신금융, 말하자면 투자처를 찾지 못한 현금과 같은 단기부동자금은 1000조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여력이 있다며 재정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재정정책은 가진 자들의 돈놀이에 돈을 보태 거품만 키우며 불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사회변화의 기반이 되는 동시에 돈이 아래로 흘러 수요를 창출하는 기획을 가져볼 가장 적절한 시기다. 박근혜 대통령 당시 초이노믹스를 밀어붙이던 최경환의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라는 말대로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볼 최적의 시기다. 영국 노동당이 내놓은 ‘민중적 양적완화’와 미국 민주당이 적극 논의 중인 ‘그린뉴딜’이 그것이다. 조국을 밀어붙이던 심정으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간다면 가능하지 않은 길이 아니다.

교통시스템 현대화, 서민용 주택, 초고속, 종합정보통신망, 교육시설 등의 건설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국립산업투자은행(National Investment Bank)을 설립하고 영국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 BOE)이 산업투자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사들이면 된다.2) 어차피 국립이기에 새로운 양적 완화 방식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교과서에도 나오는 공황대책인 뉴딜정책과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정책의제를 결합한 미국 민주당의 그린뉴딜 정책을 내용적으로 결합한다 해도 손색이 없다. 최근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간이 자연에 미친 지질학적 영향을 가리키며 ‘인류세’라는 화두도 제기됐는데, 이 또한 주목해볼 수 있다. 이는 사회의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지구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될 수 없다는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채택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적극적인 기획일 수 있다.3)

‘촛불 정부’라고 하는 문재인 정권의 역류는 강화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혁신성장’으로 자본주도성장의 경로로 전환했다.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예비타당성조사조차 면제하고 24조 원 규모의 투자를 하고, 삼성과 같은 재벌을 찾는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이제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를 넘어서야 한다. ‘투자의 사회화를 통해 사회적 수요 중심의 사회적 경제체제로 전환’을 모색해 경제위기의 공포, 수탈과 착취의 이중 공포, 그 무한 반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각주>

1) 홍석만, 미국 연준, 통화정책 체계 변경과 위기 대응, 〈참세상〉. 2019.9.4.
2) 이종태, 한국형 양적완화=코빈식 양적완화?, ⟪시사in⟫. 2016.5.18.
3) 하승우, 경제성장주의와의 결별 없이 대안이 가능한가?, 〈전환기의 한국사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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