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워커스사전]

5월 18일이 되면 나는 늘 5월 27일을 생각한다. 27일은 광주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저항자들이 계엄군에 의해 사살되며 항쟁이 최종적으로 진압당한 날이다.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후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5월 27일 밤 도청에 희망 없이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왜 떠날 수 있는데 떠나지 않았고, 왜 이길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싸우고자 했는가. 수없이 솟구치는 물음 중에 가장 해명되지 않는 것이 이 어리석은 싸움의 주체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나서는 더욱 놀랐다. 광주항쟁은 전남대 학생들의 시위로 촉발됐지만, 학생들이 공수부대에 끌려가는 것을 보고 나선 이들은 고아, 거렁뱅이, 넝마주이, 구두닦이, 다방 레지, 술집 웨이터, 식당 종업원, 중국집 배달부, 일품팔이 노동자, 버스 안내양, 시장 상인들, 중·고등학교 청소년, 택시 운전사, 버스 운전사, 공돌이·공순이라 불리던 노동자들, 야학교사와 학생 등이었다. 교수, 기자, 종교인, 엘리트들이 도청을 빠져나가고 마지막 밤에 끝까지 남은 사람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민’이란 깔끔한 말로는 담을 수 없는 사람들. 오히려 ‘시민 바깥의 존재’라 할 수 있는 사람들. ‘남은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예전에는 ‘민중’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민중이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정치적 개념으로서는 더더욱 쓰지 않는다. 쓰더라도 상투어나 옛말처럼 여겨지고 있다. 집회나 진보논객들이 쓰는 글에서 가끔 ‘노동자·민중’이란 묶음말로 등장하지만, 시민사회에서 민중이란 말은 도태된 지 오래다. 노동자란 말은 써도 민중이란 말은 왠지 어색하다. 젊은 세대에게 이 말은 어쩐지 시대감각에 뒤떨어진 말처럼 들린다. 민중은 이제 정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부르주아 공론장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의식이 존재를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역사의 주체로 민중을 호명하지 않는 한, 민중은 역사 속에서도 점점 사라진다. 민중이란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소수, 약자, 저소득층, 하층민, 흙수저 같은 말이다. 그야말로 ‘이름 없는 사람들’로 불리기도 한다. 그 어떤 것도 민중을 대체할 수는 없는 말이다. 말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예전에 민중이라고 하면 떠오르던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도, 문학에서도, 영화에서도, 이제 민중은 점점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서사 속에서 불려 나오거나, 아니면 영화 기생충이 묘사하는 것처럼 빈자와 패배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무능과 실패와 몰락의 상징으로 재현된다.

영국의 정치비평가인 오언 존스는 <차브>라는 책에서 영국의 노동계급 소멸 과정을 문화적으로 추적한다. 차브는 영국 하층민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다. 차브는 몰락한 노동계급과 민중의 형상을 이미지로 재현한다. 영국 중산층이 차브에서 떠올리는 것은 알코올과 약물중독, 비만, 불결, 멍청이, 낙오자, 영국인이면서도 제대로 영어를 발음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 ‘백인 쓰레기(white trash)’라고 불리는 이들은 사회 최하층을 차지하며 세금만 축내는 무능한 자들로 여겨진다. 차브에서 따온 캐릭터는 코미디나 드라마에서 비열하고 비참하게 그려진다. 중산층이 차브에 대해 갖는 혐오 감정은 인종차별 못지않으며, 때로는 그 이상으로 심하기도 하다. 이민자들이 가진 최소한의 상승 욕망과 의지조차 없는 계급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일어난 민중의 몰락은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정치적 결과로서의 ‘계급혐오’였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기층 민중’이란 말은 민중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토대요 뿌리라는 뜻으로 쓰였다. 지금은 잘 쓰지도 않지만 누군가 이 말을 사용한다면, 아마 그것은 말 그대로 그냥 사회의 가장 말단에 존재하는 ‘기층민’으로 이해될 것이다. 아파트가 아닌 빌라 사는 거지, 임대아파트인 LH나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는 뜻의 ‘빌거, 엘거, 휴거’라는 말은 ‘차브’와 다를 바 없는 계급혐오의 상징어다. 지식인들이나 중간계급 시민들도 이제는 ‘민중’이란 말에서 느꼈던 역사적 부채 의식을 더는 느끼지 않는다. 노동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에서 부가 나온다고 하는 창조경제와 혁신자본주의는 지식과 정보의 생산을 담당하는 중간계급 시민을 부를 창조하는 주력 계층으로 재생산했다. 과거 스스로 생산을 할 수 없어, 민중의 밥을 얻어먹거나, 국가의 밥을 얻어먹어야 한다고 생각됐던 지식계급이 이제는 고부가가치를 생산한다는 소위 ‘미래 먹거리’로 민중을 먹여 살리고, 나라를 먹여 살리는 유산계급 기업가적 존재가 됐다.

민중은 그냥 자동 소멸한 것이 아니다. 민중의 소멸은 신자유주의적 계급재구성 과정에서 이루어진 계급투쟁의 산물이다. 민중의 하강은 중산층 시민의 상승과 한 쌍으로 진행됐다. 역사 속에서 민중은 개념적으로 유실됐고 실존적으로 추방됐다. 계급 혐오론이 ‘아파트’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에서 시작된 도심 청소는 전국적인 재개발로 확장됐다. 정권은 도시를 청소하면서 민중도 청소했다. 독재정권의 민중이 근대화를 위한 계몽과 계도의 대상이었다면, 민주화 이후의 민중은 제거돼야 할 도시의 흠집 같은 것으로 변했다. 둘 다 폭력적인 방식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주택 1백만 호 보급 공약은 건설사를 위한 것이지 무주택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반강제적으로 도시로 유입된 도시하층민들은 다시 도시 바깥으로 추방되어야 할 대상이 됐다. 신도시 개발과 도시재개발이 이뤄지던 90년대 내내 전국 곳곳이 철거민 투쟁의 현장이었다. 철거 현장은 민중에 대한 전쟁을 방불케 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동산 시장은 금융자본주의의 탈출구였고 중산층의 지대상승 레버리지였다. 이명박의 뉴타운은 오세훈의 창의도시로, 박원순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변모해갔다.

부동산은 민중적 장소를 철거하며 민중 담론장을 해체하는 정치적 결과를 낳았다. 서민 주거지에서 대단지 아파트로의 장소성의 변화는 투표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으로 개혁성향의 야당 우세였던 지역 표심이 보수 기득권으로 돌아섰다. 수도권 지역구는 전체 지역구의 절반에 가까운 수를 차지한다. 이 정치적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민주당은 도시 중산층의 이해에 부합하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서도 ‘서민’은 탈각됐다. 공장과 빈민가가 도시 바깥의 농촌으로 재배치되면서, 민중도 개발 지도를 따라 계속 밀려나며 외부화됐다. 성 안의 시민과 성 밖의 민중이 나누어졌다. 외부화되지 않은 민중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도시의 내부에 남았다. 그들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배달원으로, 청소노동자로, 돌봄노동자로, 각종 판매원으로, 도시의 시민들을 위한 필수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그들의 실존은 유니폼 속에, 심야의 노동시간 속에, 중산층 시민들과 분리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은폐됐다.

이런 민중 소멸은 담론적 차원에서도 동시에 진행됐다.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자유주의 담론의 부상 속에서 근대성 비판으로 수행됐던 거대담론에 대한 비판과 성찰은, 외려 진보적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자신의 어깨를 누르고 있던 민중과 노동이라는 주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똑같은 거대담론이라도 ‘민족 문제’는 중심 의제로 남았다. 남북 분단체제의 지속이라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고, 반독재 투쟁으로부터 부상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정당성에 민족 담론이 유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에 성공한 민주화 세력은 노동자 민중의 대변자는 벗어던졌지만 민족의 대표는 자임하고자 했다. ‘민중 대 반민중’의 구도보다 ‘민족 대 반민족’의 전선이 훨씬 유리했다. 뿐만 아니라 민족 개념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거치며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정치적 개념에서 시장적 개념으로 변모했다. ‘코리아’는 브랜드이자 상품이 됐고, 한류 열풍을 통해 문화적으로도 세련화됐다. 반면 민중 개념은 그런 문화적 재창조의 계기를 갖지 못했다. 결국 개념이 유실된 자리에 현존하는 민중에 대한 혐오의 문법이 문화적 반동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80년대 민중운동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대항공론장 운동이기도 했다. 민중예술과 민중문학, 민중사 운동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민중담론장을 만들어냈다. 이 대항담론장은 현실의 접면을 요구했기에 노학동맹을 비롯해 농민, 빈민 연대 등 다양한 민중연대의 장소와 방법들을 만들어냈다. 민중운동이 시민운동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지식층과 민중의 연대와 결속의 공통장은 하나씩 유실됐다. 시민운동의 전략적 파트너는 노동자·민중에서 정부와 기업으로 옮겨갔다. 시민운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더 필요한 사람은 노동자 민중이 아닌 국회의원과 사회명망가가 됐다. 이 과정에서 사회 운동의 역사적 주체 또한 민중에서 시민으로 상징 전환됐다. 광주민중항쟁이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된 것이 대표적인 상징이다. 87년의 6.10 민주항쟁도, 2016년의 촛불시위도, 시민항쟁, 시민혁명으로 기록되는 과정에서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의 이름을 지워냈다. 민중은 부르주아 공론장에서 호명의 대상이 되어 과거의 역사로부터 불려 나오는 자로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의 주인은 원래 시민이 아닌 민중이다. 데모크라시의 데모스는 시민이 아니라 민중을 뜻한다. 고대 희랍어로 시민(politēs)은 자신의 폴리스(polis)를 가진 자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자, 정체를 구성할 수 있는 자를 뜻한다. 성(ptolis)이라는 말의 기원이 알려주듯이, 정치적 장소로서의 도시를 의미하는 폴리스도, 거기서 살 수 있는 폴리테스도, 모두 특권에서 출발한다. 민주주의는 특권으로서의 참정권을 보편적 권리로 만들었던 최초의 정체다. 그 특권을 해체한 사람들이 바로 데모스다. 데모스(demos)는 ‘집을 짓다’란 뜻의 동사 ‘데모(demō)’에서 나온 말이다.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오래 정착해 산다는 뜻으로, 거주하다, 점유하다, 등을 의미한다. 데모에서 나온 또 다른 단어인 데미우르고스는 ‘집(세계)를 짓는 사람’으로서 창조자, 제작자, 노동자를 뜻한다. 데모스는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마을을 동시에 뜻한다. 즉 촌락인 동시에 촌락민이며, 귀족과 달리 핏줄로 엮인 사람들이 아닌 지역적으로 같이 사람으로서의 거주민을 뜻한다. 정복민의 관점에서 볼 때는 원래 살고 있던 사람이란 의미에서 원주민, 토착민을 뜻한다. 귀족들은 스스로를 데모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재용이 한남동에 살지만 ‘한남동 주민’이 아닌 이재용이라는 고유한 존재성을 갖듯이, 데모스는 자신의 데모스를 벗어나면 데모스가 아니게 된다. 그런 점에서 데모스는 단순히 ‘주민’이 아닌 분명한 계급성과 장소성을 나타낸다. 데모스는 그 어원에서 볼 때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이란 뜻에서 우리말의 ‘풀뿌리’ 민중과 가장 가깝다. 민주주의의 시작은 바로 이 민중이 시민이 된 사건이다. 민중은 엘리트에 의해 만들어진 숭고한 주체가 아니다.

원래 한자로 민(民)은 창이나 바늘에 찔린 눈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것은 정복민이나 포로를 노예로 만들 때 눈을 찌르거나 손발을 자르던 관습에서 나왔다. 그것은 노예의 표식을 나타내는 동시에 저항을 무력화하는 방법이었다. 고대 아테네의 데모스도 민중권력을 수립하기 전까지는 부채에 저당 잡혀 채무노예로 전락한 내부의 노예화된 존재들이었다. 아테네의 고귀한 자(agathos)들은 데모스를 미천한 자, 천민(kakos)이라 불렀다. 고대의 민주주의는 바로 그런 이들에 의해 발명됐고, 솔론의 시대로부터 400년 이상 민주정을 발전시키고 지켜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원에 숨어있는 위험한 비밀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민중의 재구성과 민중담론장의 재구성은 민주주의의 재구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27일 밤 도청에 남은 마지막 사람들이 도망가지 않은 것은 도망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이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의 마지막 장소였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쓰러지고도, 가장 먼저 일어나며,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풀뿌리. 승산이 없는 곳에서도, 희망이 없는 곳에서도, 살아가고, 살아내는 사람들은 늘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만약 그런 시간이 또 온다면, 포기하지 않고 싸워 희망을 남길 이들은 여전히 그런 사람들일까? 뿔뿔이 흩어져 사라져버렸다고 하는 ‘민중’이 다시 도래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이미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다른 세상을 향한 투쟁은 시민 바깥의 존재, ‘아직 시민이 아닌 자’들로부터 상상되고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그 투쟁과 결합하는 새로운 노학동맹, 민중의 단결과 시민적 연대다. 역사적 주체이자 정치적 주체로서 ‘민중’의 탈환과 재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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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효정(정치학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고강사)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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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망

    네....
    우리는 민중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