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은 이재용 부회장 ‘생일’

[1단 기사로 본 세상] ‘조용한 기부’라는데 거의 모든 언론이 보도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조선일보가 6월 23일 23면에 ‘삼성 사장단 조용한 기부 잇달아 고액 기부자 클럽에’라는 제목으로 1단 기사를 썼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9명의 삼성 사장들이 이름을 올렸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느닷없이 이재용 찬양으로 끝맺는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메시지에서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며 ‘동행’을 강조했다.” 갑툭튀 ‘이 부회장’은 당연히 이재용 부회장이다. 기부도 오너가 시켜서 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는데 굳이 ‘이 부회장’을 소환했다.

기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이재용)는 월급 전부를 소외된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인다. 기사에 등장하는 ‘알려졌다’는 서술어는 “그런 소문을 듣긴 했는데 확인되지 않았고, 사실 난 잘 몰라” 쯤으로 읽어야 정확하다.

월급 전부를 소외된 이웃을 위해 기부할 정도로 선행을 베푸는 분이 세금을 떼먹으려고 기를 써가며 온갖 불법과 편법을 다 부렸다는 오해를 받으며 자주 검찰과 법원, 구치소 앞에 서는지 모를 일이다. 이걸 설명해야 논리에 맞는 기사가 된다. 삼척동자도 이 부회장을 포함해 삼성 사장 모두가 기부한 돈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같은 편법으로 얻은 이익이 수천 배가 넘는 걸 안다.

거의 모든 신문에 ‘조용한 기부’라는 명패를 달고 보도되는 선행은 ‘조용’보다는 ‘요란’에 가깝다. 매일경제는 같은 날 32면에 이 소식을 머리기사로 실었다. 매경은 ‘삼성사장단 9명 소리 없이 릴레이기부 동행’이란 제목을 달았다. 매경은 이 기사 제목 중 ‘소리 없이’에 따옴표를 찍어 강조했지만 누가 봐도 ‘요란’이다. ‘조용한 기부’ 또는 ‘소리 없이 기부’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언론이 이 소식을 전했다.

매경은 이 기사에서 “삼성은 임직원의 기부문화를 장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 기부를 장려하지, 처벌하는 회사도 있나. 하나마나 한 소리다. 삼성은 임직원이 기부하면 회사가 동일한 금액을 출연하는 ‘매칭 그랜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매경은 ‘매칭 그랜트’ 참여율이 90%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참여율이 90%라니, 무슨 공산당 투표율도 아니고.

  6월 23일자 여러 신문에 실린 삼성 사장단 선행 기사들.

매경은 다른 어떤 언론보다 디테일했다. “이 부회장은 예전부터 신임 임원들에게 와인이나 난초 같은 선물을 보내는 대신에 임원들 명의로 기부금을 내주고, 임원 개인 명의로 된 기부카드를 선물한다”고 친절하게 소개했다. 디테일이 살아있다. 이 정도 되면 9명의 삼성사장들 선행 보도인지, 이재용 부회장 개인 선행 보도인지 헷갈린다.

매경은 “삼성전자는 코로나19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력사에 2조6000억 원 규모 자금을 조기 집행”한 것도 언급하면서 삼성이 하청업체도 챙기며 상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일보는 이날(6월 23일) 18면과 24면에 삼성 미담기사를 2건이나 썼다. 24면엔 삼성사장단 기부 선행을, 18면엔 ‘삼성, 폴란드 마스크업체에 스마트 공장’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삼성이 폴란드 마스크업체에 스마트 공장 노하우를 전수해 생산량이 3배로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 뒷부분에도 이 부회장 얘기가 느닷없이 실렸다. 세계일보는 18면 기사 끝에 “23일 만 52세 생일을 맞는 이 부회장은 이번 주 ‘운명의 한주’를 맞는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26일 예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이 폴란드 마스크업체에 스마트 공장 기술을 전수했다는 기사에 이 부회장 신병처리 문제를 끼워 넣었다. 덕분에 이 부회장 생일이 ‘6월 23일’인 걸 전 국민이 알게 됐다. 국민 모두가 이 부회장 생일까지 굳이 알아야 할까.

동아일보만 취지에 맞게 삼성 사장단 선행만 담아 보도했다.(6월 23일 30면 ‘삼성 박학규 경계현 사장 아너 소사이어티 합류’) 이것저것 끼워 팔지 않고 사장단 선행만 보도한 곳은 동아일보가 유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