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뉴딜: 담론을 바꾸기 위해서는 발화자를 바꿔야 한다

[녹색 스트라이크]

5월 말 정부가 한국판 뉴딜의 한 축으로 그린뉴딜을 발표한 이후, 한국 사회는 그린뉴딜 담론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ICT 기반 스마트 상수도 관리체제, 저탄소 융합 신산업, AI 기반 일자리 창출 등 이게 과연 녹색전환과 무슨 상관일까 싶은, 알아듣기도 힘든 용어들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경제지는 그린뉴딜 관련 주식 가치 급등 소식을 전한다. 지자체들도 그린뉴딜 시류에 편승하려는 모습이 뚜렷한 가운데 한 지자체가 “대관령을 한국의 융프라우로”라는 구호 아래 산악 열차를 그린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삼았다는 보도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곳곳에서 그린뉴딜 관련 토론회가 봇물이 터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6월 초부터 여당 의원들이 주도하는 그린뉴딜 토론회가 시리즈로 열리기도 했다. 그 첫 모임에서는 온라인으로 연결된 해외 학자의 기조연설과 기후 관련 전문가들의 발표가 있었다. 이 자리에 GS나 포스코,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 임원들이 토론자로 참여하면서 이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그린뉴딜의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었다. 비슷한 시기 재벌 총수들의 발 빠른 움직임이 감지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반면 노동을 포함한 시민사회는 여전히 의심 어린 눈초리로 그린뉴딜이 무엇인지, 이것이 가져올 영향은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파악하기 벅찬 상황이다. 한쪽에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계획들이 나오는데 다른 한쪽은 감조차 잡지 못하는 분위기랄까.


이런 불균형 혹은 괴리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그린뉴딜 이전부터 있었던 재생 에너지 확대 과정에도 이런 괴리가 있었다. 지난 봄 구례에서 열린 작은 토론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주민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재생 에너지 전환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태양광 단지도 만들고 풍력 발전기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다 이해를 하겠는데, 그게 감정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날 일어나 보면 산이 깎여 태양광 단지가 들어섰고 다음 날 보면 집 주변 어디에 또 태양광 패널들이 들어서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데, 지역 주민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태양광 확장에 분통이 터져 에너지 전환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지지하기 어렵다는 고백이었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지자체나 재생 에너지 사업자, 전문가, 심지어 일부 기후활동가들도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아 왔다. “고개를 들어 산을 봤을 때 어느 곳이든 풍력발전기가 꽂혀 있어야” 한다고 했던,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어느 기후 전문가는 그래서 “주민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효과적인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있었던 한 그린뉴딜 토론회에서는 기후위기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권리고 무엇이고 간에” 최대한 빨리 재생 에너지로 가야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절한 외침도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접근 뒤에는 사람보다 기술과 과학을 우선하는 관료와 전문가 사회의 문화가 있다. 얼마 전 어느 환경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나온 한 전기공학자는 “항상 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 믿는다는 개인의 신념을 밝히며, ‘2050 넷제로’라는 목표를 현실 가능성의 문제로 이야기하지 말고 “딱 박아 놓고 전속력으로 달려가야 하는”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류 구원’이라는 중차대한 목표가 설정되지만, 과학기술주의에 경도된 시각에서 추상적 ‘인류’ 너머에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과 경험은 쉽게 지워지는 경향이 있다. 전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농촌지역 주민들의 반대나 노동자들의 저항은 더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파생하는 사회적 비용 문제로 치환되고 대상화된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누군가에게는 득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될 수도 있다는 고려가 들어설 자리는 좁다.

과학기술과 공학에 대한 과신과 이에 기반한 관료적 지식체계가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은 미국의 정치인류학자 제임스 스캇의 <국가처럼 보기(Seeing Like a State)>의 주된 연구과제였다. 이 책에서 스캇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많은 시도가 실패했던 이유를 추적했다. 그는 과학에서부터 도출된 해법들이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구축돼온 사회적 관계와 지역적 차원에서의 지식이나 기대수준이 무시되었던 탓으로 파악했다. 과학기술을 최고의 원리로 삼는 국가는 언제나 인간사회에 대한 단순화, 체계화, 표준화를 통해 ‘가독성(legibility)’의 체계를 구축하고자 했는데, 이 가독성의 영역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무방비였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의 개발독재에서부터 과거 정부의 녹색성장 실험에 이르기까지 많은 국가 프로젝트들이 삐끗했던 것이나 자율적 시장질서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 경제정책이 매번 새로운 경제위기를 야기해왔던 경험은 기술관료들의 과학적 지식체계가 결코 온전한 것이 아니었음을 반증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스캇은 과학기술적 지식체계가 다른 어떤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과신에서 벗어나 메티스(metis)—“오랜 세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과 인간 환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취득된 실용적 지식"—를 적극 끌어안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역 어부들의 지식 없이는 과학적 항해술이 자리 잡기 어려웠던 것처럼, 지역화된 지식의 수렴 없이는 대규모 사회적 프로젝트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표현의 자유와 선거참여가 보장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중요한데,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메티스가 그 나라의 법과 정책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가정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과 특히 사회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강화해 에너지 전환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해외 그린뉴딜뿐만 아니라 파리기후협약에서도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와 그 주변 전문가들은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탈 석탄’ 방향이 천명되고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일시 가동중단이 발표됐을 때, 석탄화력 노동자들은 자신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며 또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나라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알기에” 정부의 방침을 “애틋하게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이 정도면 정부에서 보다 중장기적인 탈 석탄 정책을 같이 협의하자는 제안을 할 법도 한데, 정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전기차로 전환할 경우 자동차 산업 노동자의 30% 이상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데,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시늉도 안 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추진돼왔던 농촌지역 재생 에너지 사업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정부는 ‘주민수용성’ 문제 해결이라는 기술적 대응을 할 뿐 지역 주민들을 지역 에너지 전환의 주체로 세우려는 노력은 여전히 약하다.

그린뉴딜과 관련된 담론에서 불균형과 괴리가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것이 담론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신속한 탈 탄소 에너지 전환은 전 사회적인 참여를 필요로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모두가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아울러 그린뉴딜이 저소득층,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들의 고민을 담아내는 틀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기술관료-전문가 중심의 추상적 서사만 가지고서는 어림도 없다. 과거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풀뿌리에 기반한 새로운 담론 구조가 필요하고 이는 새로운 발화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미래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뒷산에 들어선 시꺼먼 태양광 패널을 보며 분통 터져 하는 농민이, 쪽방 생활하는 청년이 무식하다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이들에게 마이크를 건네야 한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선철(독립연구자,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아저씨

    민주화 인사를 무시하면 안돼요. 광주에서 날아다니던 민주화 인사들은 홍가하고 안가 정도는 그냥 발로 차버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안먹히면 며칠 정신을 가다듬어서 제대로 한방 먹여가 케이오 시킨다.

  • 아저씨

    붙었다

    민주화 인사:홍씨 일루와바!
    홍씨:어헛 홍씨라닛!
    민주화 인사:당신이 반공투사야
    홍씨:(어물버물)
    민주화 인사:문인답게 사세요.
    홍씨:(나도 사낸데 대권을 한번 쥐어봐야지)내가 문인으로만 보입니까?
    민주화 인사:(앞발차기로 명치를 차면서)반공투사가 그 정도야!
    민주화 인사:(고꾸라진 홍씨의 머리를 차면서)반공투사가 반골이냐

    이렇게 민주화 인사와 홍씨가 한판 붙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홍씨는 한이 맺혀서 감나무로 올라가 봄부터 여름까지는 떫고 가을에는 꿀맛 같은 감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 아저씨

    민심과 권력(호외)

    호규:그렇게 마음대로 하실 겁니까?
    문대통령:나도 최선을 다 하고 있어
    호규:말 안들을 때는 어떻게 되는 아십니까?
    문대통령:!!!!!
    호규:당대표 경선 중단시켜요, 끝내 말 안들을 때는 당신 버리고 보수당하고 다시 붙게 될 겁니다. 잘 판단해야 합니다.
    문대통령:!!!!!(저 자식을 일찍 죽였어야 하는데)"
    호규:(잔대가리 주제에, 지가 하고 있는 것을 누가 모를 줄 알고)

    호규가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청와대 집무실 문을 "꽝" 닫고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