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가 만든 거대한 불평등

[99%의 경제]


양적완화는 평등하지 않다

공황이나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은행이 대출을 회수하고 만기 연장을 하지 않아 지급결제를 위한 화폐수요가 팽창한다. 동시에 부동산이나 각종 자산을 처분해 이를 마련하려 하기 때문에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폭락한다. 또한 채권의 지급결제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기업이 부도나거나 수익률이 하락해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도 거의 붕괴 상태에 들어간다. 일부 증권사들은 회사 부도로 종잇조각으로 변한다.

이 같은 공황은 극심한 경기침체로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좀비기업을 청산하고 기업의 수익률을 높이며, 자산 가치를 조정해 불로소득을 축소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특히 공황과 경제위기는 다른 어떤 계층보다도 자산가들에게 위협적인 도전이었다. 실물부문의 추락보다 부동산, 주식, 채권 등 자산시장의 폭락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적완화는 이 모든 상황을 뒤바꿔 놓았다. 기업 활동과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이자율을 제로로 낮춰 기업의 자금조달을 쉽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양적완화를 통해 중앙은행이 각종 자산시장에 직접 개입하며 시장의 붕괴를 막았다. 그러자 지급결제 수요도 안정되고 각종 자산시장도 곧 반등하면서 회복해 나갔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은 시장은 살렸을지 몰라도 불평등은 더욱 확대했다. 분명 시장 참여 주체들은 평등하지 않다. 때문에 시장을 그대로 구원했다는 것은 금융시장의 큰손들을 구원하고 위험에 빠진 대기업을 구원하는데 발권력을 동원했다는 얘기와 같다. 결국 경제위기가 불평등을 해소하는 기제가 아닌, 낮은 이자율과 양적완화를 통해 오히려 부를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위기가 발생하자 자산가들은 낮은 이자율과 양적완화에 따른 풍부해진 유동성으로 부동산, 금융자산 등을 헐값에 매입했고 이를 바탕으로 부를 더 키웠다. 반대로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과 전 세계 노동자에게 전가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양적완화를 거듭하면서 국민소득 상위 1%가 전체 국민소득의 20% 이상을 벌어들였다(2018년 말 기준). 한국은 상위 1%가 전체 국민소득의 12%를 벌어들인다. 소득보다 부(자산)의 불평등은 더 크다. 한국의 경우 자산 최상위 1%가 나라 전체 부의 25%를 차지하고 미국은 39%를 차지한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서 자산 불평등은 특히 더 커졌다. 2019년 기준 한국에서 순자산 10분위(상위 10%) 점유율은 43.3%로 전년보다 1.0%p 증가했다. 다른 모든 가구의 자산이 축소하거나 정체했는데 오직 10분위에서만 늘어났다. 상위 20%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10억8517만 원으로 하위 20%(864만 원)의 125.6배에 달해 전년(106.3배)보다 격차가 커졌다. 자산불평등 문제는 부동산 가격 폭등이 원인이다.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서울도 평균 18.9%가 상승했다. 강남 아파트 가격은 문재인 정부가 취임한 2017년 5월 이후 2년 반 동안 34%가 올랐다.

양적완화가 커질수록 불평등도 커진다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하자 3월 중순 이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재정지출의 증가와 양적완화 등을 통해 위기 대응을 본격화했다. 정부 재정지출을 통해 개인에게 긴급재난지원금, 중소영세사업장 대출, 일자리 지원금 등을 보좌했지만 주요 재정지출은 기업 지원, 특히 대기업 지원에 집중돼 있었다. 양적완화도 채권, 특히 회사채 시장과 모기지채권(MBS) 및 정부채권과 주식시장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원 등 금융시장 지원에 맞춰 있었다. 미국, 유럽, 일본, 캐나다, 호주는 물론 한국도 똑같은 방식으로 위기 대응에 나섰다. 특히 무제한 양적 완화를 선언한 미국 중앙은행 연준(Fed)은 지난 3월 말부터 3조 달러(3600조 원)가 넘는 미국 국채, MBS, 회사채를 매입했다.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였다. 무제한 회사채 매입은 물론이고 금융시장 안정화 자금으로 135조 원을 쓸어 넣고 있고, 별도로 대기업 자금지원을 위한 40조 원의 집행을 예고하고 있다.

넘쳐난 자금이 주식, 채권 등 금융시장으로 몰리면서 코로나19 이전보다 거래량은 더 증가했다. 연준이 회사채 시장에 직접 개입해 회사채를 매입하고 보증과 대출을 확대하자, 미국 회사채 시장에서 신규 발행이 급증해 5월까지 누적 투자등급(IG) 발행규모가 이미 1조 달러(1200조 원)를 넘어섰다.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2월 중순 이후 회사채 발행이 급감했으나 3월 23일 연준의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 발표 후 신규 발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난 5월까지 미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규모는 1.08조 달러(투기등급 포함 시 1.22조 달러)로, 과거 5년 평균(0.6조 달러)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연준은 회사채 발행 및 유통시장에서 최대 0.75조 달러(900조 원)의 회사채를 매입할 계획이다.


양적완화를 통해 급작스런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렸을 뿐 아니라, 투기등급 채권까지 매입하며 투기자본의 이익까지 보장해 줬다. 부도날 위험이 높아 쓰레기 채권으로 불리는 정크본드, 즉 투기등급 채권까지 중앙은행이 매입하면서 이 채권의 거래 규모와 발행액도 더 커졌다.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해야 할 쓰레기를 정부가 돈을 주고 매입하며 더 큰 쓰레기를 만들어 팔고 있는 것이 현재 채권시장의 모습이다. 게다가 주식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일본 중앙은행처럼 연준도 주식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고 하는데 누가 주식투자를 주저하겠는가? 투자 혹은 투기의 실패를 막아주고 반 토막도 못 건졌을 증권 수익을 온전히 보전해 준 것이 정부다.

게다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interest coverage ratio, EBIT/이자비용) 1미만 기업의 비중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낮은 이자율로 대출을 받게 하고 고위험 회사채 발행까지 지원해 좀비 기업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더 심각하다. 한국 주식시장 상승률은 세계 1위다. 코로나 위기가 발생하고 3개월이 채 안 돼 코스피 지수는 저점 대비 50% 넘게 상승했고, 코스닥은 무려 75% 이상 급등해 위기 전 수준을 뛰어넘었다. 폭락과 폭등을 거듭했던 원유 선물시장의 투기적 행보에 이어 최근 ‘우선주’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6월 들어 삼성중공업 우선주의 상한가가 연이어 벌어지면서 6월에만 주가가 1,265%가량 뛰었다. 6월 17일까지 우선주 주가상승률 상위 20종목의 주가상승률이 보통주의 10배 이상이었고, 우선주와 보통주와의 평균 주가괴리율(보통주 대비 우선주)이 918%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였다.

한국이 좀 유난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산시장은 코로나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해 자산 가치의 상대적 상승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미국 CNN은 10억 달러(1.2조 원) 이상 자산보유자들이 코로나 이후 3달 동안 자산의 19%(약 680조 원)가 증가해 3.5조 달러(약 4200조 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빈곤 더하기 빈곤

국제노동기구(ILO)의 4월 말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로 전 세계 노동인구의 약 절반에 달하는 16억 명이 생계 위협을 받고, 그 영향으로 세계 빈곤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처럼 자산시장 급등 이면에는 실업과 생계고가 존재한다. 앞서 미국에서 10억 달러 이상 자산가들이 코로나 위기에 680조 원의 자산 가치 급등을 이루는 동안 미국인 4천 3백만 명이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한국도 상황은 똑같다. 코로나19 초기라고 할 수 있는 지난 1분기,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고용 한파가 저소득층에 집중됐다. 동시에 계층별 소득 격차가 지난해보다 더 벌어졌다. 통계청의 <2020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흑자액’은 소득 하위 20%인 1분위는 25만 1천 원 적자, 2분위 53만 4천 원 흑자, 3분위 103만 8천 원 흑자, 4분위 166만 1천 원 흑자, 5분위 408만 2천 원 흑자로 집계됐다. 특히 1분위의 경우 임금소득 감소액(51만 3천 원)도 컸으나 정부에서 받는 연금·사회수혜금 등 공적이전소득(51만 1천 원)이 이를 상쇄해 그나마 현 수준을 유지했다. 코로나 초기인데도 저소득층 소득이 25만 원 감소할 동안 상위 소득계층은 408만 원이 늘었다. 코로나 위기가 본격화된 4, 5, 6월을 반영하는 2분기에는 이 격차가 더욱 심각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물경제는 악화 일로를 거듭하고 있다. 세계은행(WB)은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을 –5.2%로 전망했고 이는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의 –3.0% 전망치보다 더 낮다. 각국에서 경제활동이 재개되며 경기상황이 다소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언제든 2차 대유행이 가능하고 실제 발생하고 있는 지역도 많아 생산과 소비의 회복 속도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금융사기로 변질된 자산시장

주식, 채권 등 자본시장은 기업의 수익성을 보고 투자하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 실물 부문의 지표는 곤두박질치는데 주가는 이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실물과 완전히 괴리된 주가는 어떻게 오르고 있는가? 바로 신규 자금의 유입 때문이다. 모두가 주식을 팔고 현금화하려 하면 주가는 당연히 내려간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팔고 나가는 자리를 동학개미들이 메웠다.

지난 3개월 동안 많게는 50조 원을 신규로 투자했고 현재에도 30조 원 가까이 남아 있다. 기업 지표와 상관없이 오직 신규 투자금의 유입으로 현재의 주가가 형성되고 있다. 기업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수익률이 반 토막 나더라도 저점에 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신규 투자액이 늘어날수록 더 높은 수익을 올린다. 매출이나 수익 없이 내부 신규 자금 유입으로 유지되는 기업, 그게 바로 다단계 피라미드다. 주식시장을 이런 다단계 금융피라미드로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정부와 중앙은행이다.

실물 부문의 침체와는 정반대로 주식과 채권 등 자산 인플레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임금소득은 줄거나 그대로인데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산 가치만 폭등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 결과 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부자가 되는 반면 자산을 소유하지 못한 임금노동자,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들은 경기침체의 고통을 그대로 받게 된다.

어떻게 해소하나

정부나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 공급한 화폐로 자산 소유자들의 자산 가치가 증가하면, 그 화폐는 누군가의 부채로 남게 된다. 실물경제의 성장 없는 자산 가치의 증가는 다른 사람의 부채 증가를 나타낼 뿐이다. 이런 자산 가치의 증가는 (잉여)가치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하는 사람들이 만든 가치의 수탈을 의미한다. 양적완화는 이처럼 자산가치의 변동을 통해 생산된 가치를 노동자에게서 자산가들로 이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임금노동자들은 경기침체의 고통을 그대로 받을 뿐만 아니라 (자산 가치 증가에 따른) 부채부담까지도 져야 할 판이다.

따라서 정부의 재정통화정책의 방향이 단순한 기업 살리기, 기존 금융시장 안정화에 맞춰져서는 안 된다. 기존 체제를 그대로 구제한다는 것은 시장 실패로 인해 혹은 경제위기 국면에서 당연히 손실을 봐야 할 기업 또는 자본을 구제한다는 것이며 이는 시장 참여가 중 가장 큰 손인 대자본과 대자산가들을 구제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적자금으로 이 시장을 구제한다는 것은 재정지출과 양적완화의 반대편에 쌓여가는 공적 부채로 이를 구제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기업부실 또는 투자 실패가 아닌 유동성 부족 때문에 지원을 받은 기업 또는 자본이라도 이 부채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공적자금 투입기업의 믿지 못할 이윤공유 약속이 아니라, 코로나 대응 정책이 발표된 이후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모든 자산 수익을 전량 환수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대부분의 증권이 종잇조각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에 누구는 수백조 원, 나아가 미국과 같이 수천조 원의 정부 지원으로 앉아서 돈을 벌고 있는 이따위 상황을 더는 용인해서는 안 된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홍석만(참세상연구소)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아저씨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

    부결나니까 또 비상총회를 붙일건가. 그런데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등이 무엇을 책임진다는 말인가. 사퇴가 책임인가. 맞아죽을하고 꼴깝떠나. 단체에서의 사퇴는 실질적인 책임과 가결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동안 김명환 위원장 등이 1노총이 된 후 몸과 정신이 녹아내린 것이 사실이잖어. 왜, 어떻게 한국노총을 제치고 이전 한국노총이 했던 행태 등을 답습하려고 했는가? 이것만으로도 민주노총 위원장 등의 사람들은 민주노총 정신을 실종시킨 것이다. 자신들의 능력에서 한계가 맞닥뜨렸었다면 군소정당과 더민주당의 친국회의원들에게 명확한 입장을 내라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저 같이 머리 맞대서 임금노동자 계급과 노동계를 농락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3~4일 안으로 폐기를 하고 재투쟁 선언을 하던가. 대의원 대회를 부쳐서 가결여부와 상관없이 전원사퇴를 하던가 하시요. 지금 이대로는 당신들의 향후 투쟁성을 전혀 믿을 수 없소. 문재인 그 눈치밥 개쇠끼가 sk를 가서 머리부터 숙이고 들어가는 것을 봐라. 너희들 수장이 그런데 뭘 믿고 노동운동을 하려고 하는가. 다시 말하지만 대의원 대회 전에 폐기하고 투쟁선언을 하던가. <대의원 대회 부쳐서 가결여부와 상관 없이 전원 사퇴를 하던가> 잘 판단해서 선택하시요.

  • 아저씨

    김태년이 경희대 나왔다. 경력도 일천하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전문대 나왔나. 니들이 이런데 경제단체를 상대할 수 있나. 경제계에서 김태년 정도는 머리세포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면서 가지고 놀 수 있다. 아니면 그 멍청한 물건 정도는 열받치게 해서 골로 보낼 수도 있다. 니들 수준이 이런데 무슨 대의원 대회를 거쳐서 내일을 기약하냐. 문재인 그것도 청와대 수석 경험한 것 그것 하나 뿐이 없다. 그런 것은 지 얼굴에도 불었지만 권력과 돈으로 녹아내리기 쉽다. 요즘 일주일 동안 볼에 돈과 부귀영화, 권력이 더덕더덕 붙어서 돌아다니는 꼴 좀 봐라. 재계하고 보수주의자들이 볼 때는 이건 사시출신이 아니라 개장에서 나온 모지란 개나 우리에서 나온 배고픈 돼지로 취급을 하기 딱 좋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등이 무엇을 믿고 향후 일정을 기약할 수 있다는 말인가. 추미애 장관하고 윤석렬 총장한테 물어봐라. 저건 마음만 먹으면 1달 안으로 두드려 잡거나 한쪽으로 몰아서 잡을 수 있다고 하지

  • 아저씨

    야, 민노총 위원장, 개존만한게, 기자회견 하지마. 경사노위 시다바리나 하겠다고 대의원 대회를 하냐. 이 양반이 완전 또라이구만. 기자회견 하지 말란 말이야 민주노총만 똥칠 하지 말고. 민주노총이 문재인 정부의 3부리그냐. 이걸,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