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한국판 뉴딜’, 이명박-박근혜 정책 ‘재탕’했나

알맹이 빠진 뉴딜 정책, 재벌 대기업과 수도권 집중으로 양극화 심화

최근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이 과거 정책을 재탕한 ‘속 빈 강정’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전환’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114조 원의 국비를 투입했지만, 정작 ‘사회적 대전환’에 대한 고민 없이 대기업 주도의 경제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시민사회대책위는 28일 오전 10시, 민주노총에서 ‘한국판 뉴딜 문제점과 대안 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한국판 뉴딜 정책은 ‘국가적 뉴딜’ 사업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라서 개별적으로 세부항목을 하나씩 짚어볼 만한 가치도 없다”며 “굳이 요약한다면 기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혼합한 정도에서 질적으로 벗어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유사한 문재인의 ‘혁신경제’

시민사회 및 전문가들은 ‘한국판 뉴딜’이 한국사회 전환과 관련한 고민과 논의 없이 추진돼 내용이 부실하고, 결과적으로 대기업 주도의 경제를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김병권 소장은 “K-방역에 대한 칭찬에 취해 3개월 만에 섣부르게 포스트 코로나를 기획하다보니, 코로나19재난 교훈을 토대로 이후 사회를 전망하는 대목에서도 섣부름과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정부는 코로나 이후 주요 화두를 ‘비대면’, ‘언택트’로 제시하고 이를 손쉽게 디지털 경제와 연결시켰다. 하지만 봉쇄, 휴교, 휴업, 재택근무 등의 일시적 현상을 ‘고착화’ 시키는 방식의 ‘비대면’은 일개 기업들의 틈새시장 전략으로 본다면 몰라도 장기 국가전략으로 채택하기에는 엄청난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같은 재난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것이 아닌, 재난이 일상화 된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판 뉴딜(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휴먼 뉴딜) 중 한 부분인 ‘디지털 뉴딜’ 정책이 과거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소장은 “대체로 지금까지 해왔던 ICT산업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코로나19 충격을 의식해 ‘비대면’을 특별히 강조한 것 정도”라며 “기존 ICT산업정책을 가속시키겠다는 철저히 공급주의적 정책이라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문재인 정부 초기의 혁신경제-현재의 디지털 뉴딜에 이르기까지 매우 일관되고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이 대목에 뉴딜 또는 ‘대전환’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으며, 어떤 점에서는 디지털 뉴딜의 원조라고 할 김대중 정부의 ‘IT산업 정책’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역시 “디지털 뉴딜 사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부가 ‘혁신 경제’라는 이름으로 추진해오던 사업들을 재구성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 경제’가 박근혜 정부의 모토였던 ‘창조경제’와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병일 대표는 “‘혁신 경제’의 제도적 기반인 소위 ‘데이터 3법’을 둘러싼 논란, 즉 빅데이터, 인공지능 환경에서 개인정보 처리 규범을 둘러싼 논란은 2016년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데이터 3법’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정부 주체의 동의 없이 서로 다른 기업 간에 가명처리 된 개인정보를 판매, 공유, 결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시민사회에서는 이를 ‘개인정보 도둑법’이라 비판해 왔다.

급조된 ‘그린 뉴딜’, 빈약한 내용으로 빈축

‘그린 뉴딜’ 역시 빈약한 내용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김병권 소장은 “그린 뉴딜은 애초에 기획재정부 원안에 없었던 것인데 대통령의 지시로 급조해서 그런지, 더욱 내용이 빈약하다”며 “현재 글로벌 표준으로 논의되고 있는 2020년 버전의 그린 뉴딜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고, 오히려 이명박 정부 버전의 녹색성장에 가깝다. 가장 명확한 증거는 목표의 부재, 또는 잘못된 목표의 설정”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UN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해야 하며 이를 위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50% 감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목표치에 달성하려면 10년간 매년 7.6%씩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셈이다. 김 소장은 “얼마 전 타임즈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올해 코로나19 충격으로 약 7%의 탄소배출이 극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즉 10년 내내 코로나19와 같은 충격을 받아야 우리가 원하는 목표치의 탄소배출 감축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그린 뉴딜은 이처럼 강제적인 (경제활동) 축소 대신 탈 탄소산업과 생활로의 계획적 대전환을 통해 우리의 삶도 지켜내자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10년 목표와 이에 준거한 매년 목표가 명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또한 “미국이나 EU등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그린 뉴딜은 넷제로와 온실가스 감축 등을 목표로 ‘인프라’, ‘에너지’, ‘교통’, ‘수송’ 등 광범위한 정책이 제시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그린 리모델링’, ‘그린 에너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같은 단위 사업으로 연결되고 있다”며 “그린 뉴딜에 담겨야 할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국판 그린 뉴딜이 대기업 지원과 수도권 집중을 전제하고 있어,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이유진 연구원은 “패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 없이 전기차 등 대기업이 추진하는 산업을 집중지원 한다는 메시지만 있다. 수도권 집중은 지역 소외를 더 심화시키게 된다. 총체적 부실”이라고 지적했다.

‘휴먼’ 없는 ‘휴먼 뉴딜’...불안정노동 존치시켜

사회적 전환에 따른 일자리 문제를 비롯해, ‘휴먼 뉴딜’에 포함되는 사회안전망 정책에 있어서도 고민과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례로 최근 흑자기업인 한국게이츠가 공장 폐쇄를 단행한 것 역시, 현대차의 산업 전환과 맞닿아 있지만 정부나 기업이 이와 관련한 대책을 내놓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이유진 연구원은 “한국게이는 현대기아차에 타이밍벨트를 납품하는 1차 벤더다. 고용된 사람은 147명. 2.3차 업체까지 연결된 사람은 6000명에 이른다”며 “현대차가 공장폐쇄 문제에 나서지 않는 것은 이곳이 내연기관차 부품공장이기 때문이다. 산업 전환에 따른 고용충격이 이미 시작된 만큼, 그린뉴딜에 (고용) 안전망 정책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병천 교수 역시 “코로타19 재난으로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현상 중 하나가 사회안전망에도 들어가 있지 못한 플랫폼 노동자들과 같은 불안정 노동자임을 확인했다. 또한 최근 5년간 특고,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등 비임금 노동자가 213만 명가량 늘어났다”며 “하지만 정부나 여당은 ‘4차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AI)을 강조하면서 주로 노동을 줄이거나 불안정한 노동을 양산하는 혁신만 찬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광규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노동권 보장, 불평등양극화 해소, 정의로운 전환 등이 실현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구축이 전제되지 않은 자본 의존적 산업 재편은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경험한 바와 같은 폐해를 반복할 것”이라며 “안전망이라고 제시된 것도, 양질의 고임금 일자리와 고용 창출보다 현재의 불안정한 노동을 존치시킨 상태에서 일정부분 사회안전망을 통해 최소한의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김형용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은 한국판 뉴딜에서 ‘사회안전망’은 디지털 뉴딜(58.2조 원), 그린뉴딜(73.4조 원)을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그물망(28.4조 원)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판 뉴딜에서) 사회안전망은 소득, 건강, 주거, 돌봄 지원 등을 포함하지 않고, 사람투자 사업으로 구성됐는데 이 전략 역시 안전망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신산업인재 육성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대구, 경북지역에서 대규모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전체 확진자 치료의 77%가량을 공공병상에서 수행했다. 공공의료 확충이 빠진 한국형 뉴딜을 기만”이라며 “재벌기업과 대형병원 퍼주는 비대면 의료 정책이 한국형 뉴딜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