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만의 나라 꿈꾼 트럼프, 바이든의 미국은?

[INTERNATIONAL1] 딥 스테이트, 음모론…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신자유주의의 유산 넘어야


1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신임 대통령이 삼엄한 경비 속에서 취임했다. 앞서 지난 6일 트럼프 지지자 8천여 명은 미국 의사당에 난입해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미국 의회에서 폭력 사건이 일어난 것은 1814년 8월 대영제국군의 워싱턴 방화사건1) 이후 처음이었다. 침입자들은 의사당 곳곳에 나치 상징과 문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오픈데모크라시〉는 14일 “이것은 미국 파시즘”이라며 “무솔리니의 로마 행진과 히틀러의 뮌헨 폭동처럼 도널드 트럼프의 반란은 수년간 거리 폭력의 시작”이라고 경고하는 기고를 실었다. 그만큼 바이든 신정부의 어깨는 무거웠다. 현재 바이든에 맞선 극우들은 그가 부통령으로 집권했던 시절 부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극우의 폭력행위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6일 현장에 있었던 쓰리 퍼센트(Three Percenters), 오우쓰키퍼(Oath Keeper)와 같은 민병대 조직이나 딥 스테이트를 말하는 큐어넌(QAnon) 지지자, 부갈루보이즈(Boogaloo bois), 프라이드보이즈(Proud Boys) 등 극우 집단은 트럼프 집권 기간 무장 시위를 계속했다.

미국 극우 집단은 트럼프 집권을 시작으로 공공연히 미국 지역 의회와 청사 등 공공기관이나 진보진영을 공격해 왔다. 지난해 1월 20일 버지니아 리치먼드에서는 무장한 2만 명이 주의회에서 시위를 벌였고, 5월 1일에는 미시간에서 AR-15 소총으로 무장한 세력이 주의회에 난입해 국회의원을 위협했다. 8월 25일에는 아이다호, 12월 21일에는 오리건 주에서도 극우가 주청사에 난입했다. 워싱턴 올림피아시티 거리에서는 12월 11일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특히 극우는 진보진영을 상대로 폭력적인 공세를 폈다. 〈가디언〉 12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27일부터 9월 5일 사이, 시위대에 차량이 돌진한 사례만 최소 104건에 달했다. 지난 12월 11일에도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블랙라이브즈매터(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BLM) 시위에 차량이 돌진해 6명이 부상을 입었다. 국제전략연구센터가 지난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백인 우월주의 단체는 지난해 1~8월 동안 미국 내 테러 사건 중 67%를 저질렀다.

트럼프의 극우 전략

물론 미국 극우가 트럼프 집권 시기 활개를 친 이유는 트럼프 자신에게 있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너져 내리는 사회 계층의 분노를 극우 이념으로 빨아들이며 집권했고, 집권 기간 내내 극우 조직들을 고무하며 재생산 기반을 넓혔다. 또한 트럼프는 민주당을 좌파, 사회주의 세력이라 부르며, 세계적인 패권 약화와 사회 불평등 극단화의 위기를 야기한 장본인으로 낙인찍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기독교 복음주의에 기초한 미국 백인사회를 지지하는 대통령이라고 자임하고 극우와 동일시하며 그들을 동원했다. 또 가짜뉴스를 SNS로 유포하며 딥 스테이트나 큐어넌 같은 음모론에 자양분을 제공했다. 트럼프는 집권 과정에서 독자적인 지지층까지 형성했으며 이제는 창당까지 고민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1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Axios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공화당원의 3분의 1이 자신은 공화당원이라기보다 트럼프 지지자라고 답했는데, 교육 수준이 낮거나 고령일수록 지지율이 높았다.

트럼프는 다수 소외계층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무엇보다 미국 사회의 기득권층에서 더욱 탄탄한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지난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가족 총소득이 3만 달러 미만인 유권자 54%가 바이든을 지지한 한편, 10만 달러 이상의 유권자 54%는 트럼프를 지지했다. 또한 4년 전과 비교해 가족의 재정 상황이 더 좋다고 답한 응답자의 72%가 트럼프를, 더 나빠졌다는 응답자의 74%가 바이든을 지지했다. 정규직의 51%가 트럼프를, 비정규직의 57%가 바이든을 선택했다. 한편, 대학에 다닌 적이 없는 유권자의 54%, 작은 도시 또는 시골 지역에 사는 유권자의 57%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난다.2) 이번 국회의사당 폭동에 참가한 이들 다수도 기득권층이었다. 미국 시사잡지 〈디 애틀랜틱〉은 지난 1월 13일 “국회의사당 폭동자들은 ‘하층’(계급)이 아니었다”며 “그들은 당신이 ‘존경할만한 사람들’로 기업주, 부동산중개인, 군인들이었고, 일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었어도 다수는 중산층이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의 2004년 선거와 트럼프의 지난 대선 결과를 비교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가족 총소득 10만 달러 이상인 유권자로부터 받은 트럼프의 표 54%는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받은 57%에서 3%P 낮다. 반면 백인 복음주의자의 76%가 트럼프를 지지했지만, 부시는 59%의 지지를 받았다.3) 트럼프가 공화당 지지 유권자 중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결정적으로 더 많이 받은 것이다.

이렇게 트럼프는 극우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더욱 보수화하는 미국 사회 기득권층을 결집했고 이를 위해 극우세력을 앞세웠다. 이에 맞서 조 바이든이 지난 대선에서 당선했지만, 그가 과연 미국을 빈민, 소수자, 노동계층을 위한 나라로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것은 미국의 극우가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바이든 신정부의 내각이나 정책이 미국 사회 불평등을 심화한 오바마 정부 시절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에 집권한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은 거대 은행 등 금융기관은 구제하면서도 금융위기 속에 놓인 노동계층 가구는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미국 사회 불평등은 더욱 심화했다. 미국 독립 씽크탱크 ‘외교관계위원회(CFR)’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7~2009년 금융위기로 미국 가정 전체가 소득의 20%를 잃었는데, 2015년까지 경기가 회복됐어도 중간 소득은 2000년 수준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회복 또한 불평등했다. 2016년까지 상위 10%는 2007년보다 11% 더 많은 부를 차지했지만, 하위 90%의 자산은 27.7% 줄었다. 하위 60%의 소득은 무려 33% 악화했다. OECD에 따르면, 이러한 미국의 소득 불평등은 G7 중 가장 심각한 것이다.

미국 극우가 활성화한 것은 이 같은 조건에서다. 미국 비영리 법률지원기구 남부빈곤법률센터(SPLC)가 발행한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1000개를 유지하던 미국 극우 집단은 오바마 시절인 2009년 136개 증가해 약 80% 폭증했다. 센터는 “미국의 정치, 인구통계, 경제적 변화에 대한 광범위한 포퓰리스트의 분노가 전국적인 극우 그룹의 폭발을 촉진했다”고 지적한다.

대안 없는 민주당

민주당은 트럼프 집권 기간에도 그를 비난할 뿐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 탄핵이나 청문 등 정치적 대결에 집중할 뿐 저임금이나 의료민영화, 주거, 개인 부채, 인종차별 등 미국 민중이 고통 받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서는 트럼프와는 다른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BLM 운동의 부상과 기층 운동의 노력으로 민주당은 집권에 성공했지만, 트럼프는 코로나19 위기 속에 치러진 지난 선거에서도 미국 유권자로부터 7,400만 표를 받았다. 이는 지난 선거 때보다 많은 표였다. 미국 공화당 지지자의 45%가 이번 의사당 난입을 지지할 만큼 미국 사회 저변이 극우에 동조하고 있다.

한편, 버니 샌더스 등 미국 사회주의 세력이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해 노선 전환을 주창했지만, 민주당 기득권층의 장악력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민주당의 반트럼프 공세 속에 공동으로 꾸린 대선 선거팀도 민주당을 견인하는 데 실패했다. 보편적인 공공의료보험 도입, 그린뉴딜, 학생 부채 폐지 등 사회주의 세력이 제안한 주요 정책 중 입안된 것은 찾기 어렵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바이든이 지난 7월 노동가정을 위해 경제를 재건하겠다고 공약했음에도, 신정부는 대부분 친기업 인사로 꾸려졌다는 점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실리콘밸리가 후원하는 인물이며, 장관급 26명도 다수가 친기업 인사거나 오바마 정부 때 일했던 이들이다. 안토니 블링켄 국무장관 내정자는 오바마 시절 국무부 차관으로 민간 부문에선 이스라엘 인공지능회사 윈드워드와 일했던 웨스트엑섹 어드바이저스를 설립한 바 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 내정자는 퇴역 4성 육군 장군으로 드론, 미사일, 사이버 보안기기 생산으로 유명한 다국적 군산업체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와 다국적 의료서비스 회사에서 이사로 활동한 친 기업 인물이다. 상무장관으로 발탁된 지나 레이몬도 로드아일랜드 주지사는 공공예산을 축소하고, 월가에 공적 연금을 판매한 전력이 있으며, 교통부 장관을 맡은 피터 부티지지 인디애나 주 사우스 벤드 전 시장은 친자본 경영 컨설팅회사 매켄지 컴퍼니를 위해 일했다. 국가정보국 국장으로 지명된 애브릴 헤인스 전 CIA 부국장은 드론 공격과 CIA 고문, 대량감시에 책임이 있다.

신자유주의의 유산

현재의 위기 속에서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강행된 신자유주의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미국 정치 이론가 웬디 브라운은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언급하지 않고 우익 포퓰리스트의 부상, 큐어넌 같은 반동적이고 기이한 음모론, 세계 정치 전반에 퍼지고 있는 허무주의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1월 12일 미국 사회주의 언론 〈자코뱅〉과의 인터뷰에서 신자유주의가 노동을 짓밟고,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고, 산업을 규제하고, 자본 이동성을 해제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낮춰 주는 경제 프로그램만이 아니라고 말했다. 즉,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을 관철하기 위해 반민주주의 세력을 동원하고 이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정치적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로 지난해에만 약 1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역사상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극우는 미국 경찰과 군대, 자본에서도 여전히 촘촘한 지원을 받고 있다. 바이든 신정부가 극우를 앞세워 부자만의 나라를 만들려는 트럼프 또는 제2의 트럼프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선 더욱더 미국 민중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바이든 신정부와 자본을 압박하고 소외된 노동계급을 조직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힘과 투쟁이 더욱 절실한 때다.


<각주>

1) 1812년 미국과 대영제국 간 헤게모니 경쟁으로 불붙은 전쟁 중 발생
2)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0/11/03/us/elections/exit-polls-president.html
3) https://edition.cnn.com/ELECTION/2004/pages/results/states/US/P/00/epolls.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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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현재 미국에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로 지난해에만 약 1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역사상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극우는 미국 경찰과 군대, 자본에서도 여전히 촘촘한 지원을 받고 있다. 바이든 신정부가 극우를 앞세워 부자만의 나라를 만들려는 트럼프 또는 제2의 트럼프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선 더욱더 미국 민중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바이든 신정부와 자본을 압박하고 소외된 노동계급을 조직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힘과 투쟁이 더욱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