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질문들] 감옥의 규율은 감옥 밖을 넘어선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재판을 봤다. 기대(?)했던 드라마틱한 순간은 없었고, 예상외로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재판정에 선 모습이 그날의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다. 훗날 내가 피고인으로 몇 번의 재판을 받으면서 그때의 기억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사회에 큰 이슈가 되는 재판도 있지만, 순서를 기다리며 지켜본 재판 대부분은 무시무시한 범죄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엄청난 범죄가 아니어도 재판 과정은 두렵고 긴장되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범죄자’에 대한 시선을 공유하고 있기에 범죄자가 된 이후의 삶을 상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가 사라졌다고 나의 존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외부와 격리돼 유치장에 갇히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경찰차에 실려 가며 ‘길어봤자 48시간이면 나온다’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유치장에 들어선 순간 화장실(사실 이것을 화장‘실’이라고 할 수 없다)에 시선이 고정된 채 굳어 버렸다. ‘이걸 써야 한다고?’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허벅지 높이 정도의 벽만 있어 사실상 공개적인 용변 보기가 된다. 좌변기에 앉아 중앙에서 감시하는 남성 경찰과 눈을 마주치는 상상을 하자 도저히 그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보다는 이런 화장실의 존재가 모욕으로 느껴졌다. 48시간 동안 내가 감수해야 할 것은 자유의 박탈이지 모욕과 굴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화장실을 마지못해 사용했을 여성 유치인들의 한숨이 그 방에 배어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유치실 외부에 있는 샤워실을 사용하겠다고 했고, 유치장을 나오자마자 국가인권위에 인권침해 진정을 넣었다. 경찰서는 바로 화장실 개선공사를 했다. 이렇게 당장 바뀔 수 있는 것을 그동안 왜 안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경찰은 유치인이 화장실에서 ‘안전’한 상황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대겠지만 이것은 철저하게 감시자의 입장이다. 사고를 방지한다지만 왜 사고가 발생하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고민하기보다는 감시와 통제가 쉬운 방식을 채택한다. 유치인의 상황과 환경을 토대로 생각했다면 이들을 존중하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에게 중요한 것은 유치인의 안전이 아닌, 사고가 없도록 유치인과 공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였다.

유치장에 있으니 화장실을 비롯해 갇힌 사람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알게 됐다. 나는 스스로 (죄가 없으니) 당당하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용기가 필요했고 할 말을 속으로 여러 번 되뇌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그날 밤 유치장에 들어온 여성의 표정을 봤다. 그녀 역시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을 봤고 아마도 그녀의 표정이 몇 시간 전 나의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녀와 나의 차이는 이 모욕에 대해 말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였다. 48시간 유치장의 시간이 이렇다면 감옥은 얼마나 끔찍할까? 다행히 나는 구속형도 아니고 벌금도 크지 않아 노역할 일도 없어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다.

‘죗값’에 포함될 수 없는 것

최근 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사실상 동부구치소는 그동안 코로나19 방역 대책이 없었다. 수용자들은 11월 27일 구치소 직원의 첫 확진 판정이 나온 이후에야 마스크를 지급받기 시작했다. 법무부 교정본부는 지난해 9월 교정시설에서 보건용 마스크를 자비로 구매할 수 있게 해달라는 진정을 “보건용 마스크는 구매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자비 구매를 통한 사용은 불가능하다”며 기각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다른 국가의 교정시설에서는 과밀 수용된 수용자들의 집단감염 사례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국제연합(UN) 등 국제기구는 코로나19 집단감염 예방을 위해 과밀수용 해소를 권고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외부로부터 교정시설을 차단하는 것 외에 뚜렷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감옥 밖 세상이 거리 두기를 위반하고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했을 때, 감옥 안의 세상은 위반할 안전조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안전을 위한 요구조차 불가능했다.

동부구치소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몇몇 수용자가 살려달라는 간절한 메시지를 내밀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몇 문장을 쓴 종이나 수건을 창밖으로 내미는 것뿐이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수용자가 외부로 편지를 발송하는 것조차 금지했다고 하니, 손 너머 두려움이 가득한 사람들이 그려진다. 그런데 구조 요청한 수용자들을 징계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동부구치소는 편지를 통한 감염 걱정으로 편지 외부 발송은 금지하면서, 수용자에게 마스크는 지급하지 않았다. 과연 구치소가 생각하는 안전은 무엇이었을까? 감염병 통제보다 수용자 통제가 우선인 구치소가 평소 수용인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동부구치소 기사 댓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범죄자에게 세금이 들어가는 것이 아까워 마스크 지급을 반대한다’라거나 ‘범죄자들의 인권이 없는 것은 죗값’이라는 말들이 있었다. 다수의 의견이 아니더라도 그 말들이 무서웠다. 피고인이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인권을 이야기할 때마다 돌아오는 말이 있다. “범죄자 인권보다 피해자 인권이 먼저다.” 범죄자이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과 처우는 당연할 뿐 아니라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며 세금을 들먹인다. 범죄자의 인권이 박탈되는 만큼 피해자의 인권이 커지는 것이 아닐 텐데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자유를 잃고, 소중한 사람과 단절되고, 생의 중요한 시간을 놓치는 것 이상으로 치러야 하는 죗값은 무엇일까?

감옥의 규율은 감옥 밖을 넘어선다

며칠 뒤 또 세금이 등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조두순에게 기초생활수급 지원금 주지 마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언젠가 우리를 위해 쓰일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세금 한번 밀리지 않고 성실히 납부하며 살아왔”는데 “괴물 같은 인간에게 월 120만 원씩 국세를 투입해야 한다고 하니, 이렇게 허무하고 세금 낸 게 아깝다”라고 했다. 이 청원에 동의를 한 사람은 1월 15일 현재 5만9000여 명이다. 그의 범죄를 향한 분노는 이해하지만,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게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 주는 제도조차 예외가 돼야 한다면 결국 같은 시민이 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청원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이런 말들이 이어지면 범죄자를 격리하는 방법을 계속 만들어 내는 힘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조두순의 출소는 봉인 해제된 괴물이 다시 우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공포가 됐다. 안산시장이 직접 조두순의 재범을 막아야 한다며 일명 ‘조두순 격리법(보호수용법)’ 제정을 청원했고, 정부·여당은 ‘제2의 조두순’을 막겠다며 ‘친 인권적’인 보호처분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강력범죄자 가운데 재범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치료 또는 재사회화를 목적으로 최장 10년 동안 별도 시설에 격리하는 것인데, 세상과 단절된 채 장기간 살면 과연 재사회화가 될까?

지난해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 내 출소한 강력범 100명이 모여 사는 시설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 소식에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이곳은 오랫동안 교회에서 운영하는 민간 갱생 보호 시설로 숙식을 제공하고, 직업 교육, 출소 후 상담, 일자리 알선 등을 무상으로 지원하며 1만여 명의 출소자를 사회로 복귀시켰다고 한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 ‘재사회화 시설’은 국회의원의 문제 제기로 동네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곳이 돼 이전을 요구받고 있다. 정부가 ‘친 인권적’인 보호처분제도를 도입하겠다면 대체

이 시설은 어디에 존재할 수 있을까? 전과자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준비가 안 됐는데 재사회화가 가능할까?

감옥은 격리와 박탈, 감시와 통제를 기본 속성으로 한다. 감옥을 운영하는 국가는 통제를 위해 수용자의 권리를 미루고 억압과 복종의 규율을 일상화한다. 그리고 국가의 이런 통제는 시민의 동의로 지속한다. 그 동의에는 범죄자가 받아야 할 ‘벌’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감시와 통제는 감옥 밖으로 이어져 여전히 추방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감옥의 규율을 유지하고 감옥과 유사한 격리 시설을 만들어 감시하는 제도들이 계속 만들어질 수 있는 동력은 감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옥 밖의 세상에 있다. 그리고 그 규율은 아직 감옥에 오지 않은, 그러나 언제든지 갇힐 수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있는 것이기도 하다.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이수정 교수가 출연해 법무부에선 보호 수용법에 대해 연구 중이라며 “가해자의 인권이 중시되는 동안 피해자의 인권은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현재 피해자 나영이 가족이 이사를 했다”면서 “가해자는 제집으로 돌아갔지만, 피해자는 그동안 살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현실”에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가해자의 인권 보호가 피해자의 피해를 키우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인권과 피해회복에 국가와 사회가 그동안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고 국가는 이 문제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인지도가 높고 신뢰가 높은 전문가가 대중매체에서 가해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인권을 빼앗는 것처럼 발언하면 범죄자의 재사회화나 감옥의 실패를 해결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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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이수정 교수가 출연해 법무부에선 보호 수용법에 대해 연구 중이라며 “가해자의 인권이 중시되는 동안 피해자의 인권은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현재 피해자 나영이 가족이 이사를 했다”면서 “가해자는 제집으로 돌아갔지만, 피해자는 그동안 살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현실”에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가해자의 인권 보호가 피해자의 피해를 키우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인권과 피해회복에 국가와 사회가 그동안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고 국가는 이 문제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인지도가 높고 신뢰가 높은 전문가가 대중매체에서 가해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인권을 빼앗는 것처럼 발언하면 범죄자의 재사회화나 감옥의 실패를 해결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