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살리는 작은 학교

[유하네 농담農談] 다섯 살 세하의 유치원 적응기

[출처: 이꽃맘]

유치원에 다니기 위해 매일 40km를 운전하다

지난해, 만 세 살을 지나 다섯 살이 된 세하가 유치원에 갔습니다. 호저면의 유일한 병설 유치원인 호저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입니다. 원주로 이사 온 후 일곱 살이던 유하가 인원 초과로 떨어졌던 유치원이라 입학 신청을 할 때부터 걱정이 많았습니다. 유하는 호저초 병설 유치원에서 떨어진 뒤, 집에서 수십 km 떨어진 장양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녔었죠. 인원이 초과할 정도로 아이들이 있는데 병설 유치원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말이 되냐고 교육청에 항의도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유하를 데리고 1년 동안 매일 40km를 운전하며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초보운전 유하 엄마의 운전 실력이 팍팍 늘었습니다.

혹시 세하도 떨어지면 어떡하나 긴장했지만, 어쩐 일인지 아이들이 많이 줄어 별 무리 없이 호저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유치원에서는 호저면 가장 안쪽 마을인 우리 집까지 스쿨버스를 보낼 수 없다고 해,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북원주IC까지 매일 차로 데려다줘야 했죠. 매일 왕복 16km 운전은 계속됐습니다.

세하의 인생 첫 위기!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10명의 아이가 다니는 작은 유치원이었습니다. 36개월까지는 엄마, 아빠와 24시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교육철학에 어린이집 등을 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었던 세하가 잘 적응할까 걱정이었습니다. 유하가 무리 없이 잘 적응했기에 세하도 그러려니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세하는 유치원에서 오줌을 싸지 않았습니다. 오전 8시 30분에 집에서 나가 오후 4시 30분까지 유치원에 있으니 8시간 동안 오줌을 참고 집에 왔습니다. 유하보다 조금 예민한 다섯 살 세하에게 닥친 인생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세하는 엄마와만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과 이 방법 저 방법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세하가 다리를 배배 꼬며 “엄마가 보고 싶어요”라고 하면 유치원 선생님은 재빠르게 유하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유하 엄마는 얼른 차를 몰고 가 세하를 데리고 왔습니다. 바지에다 오줌을 싸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럴 때면 유하 엄마는 선생님께 연신 죄송하다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작은 아이들을 온종일 돌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커다란 짐을 안겨드린 것 같아 유치원 선생님께 너무 죄송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은 “괜찮아요. 세하는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라며 웃으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다섯 살이 아닌 예비 여섯 살 세하

“세하야, 세하는 언제 유치원에서 화장실에 갈 거야?”라고 묻자 세하는 “나는 여섯 살이 되면 용기가 생길 것 같아”라고 했습니다. 꾀를 낸 유하 엄마는 9월 1일을 디데이로 잡고 “세하야, 세하는 9월 1일이 되면 예비 여섯 살이 되는 거야. 다섯 살이 아니라 예비 여섯 살도 여섯 살이니까 용기가 생길 거야”라고 했습니다. 달력에 예비 여섯 살 되는 날을 적어놓고 한 칸 한 칸 함께 지워나갔습니다. 유치원 선생님과의 합동작전이었습니다. 선생님도 세하가 예비 여섯 살이 될 거라며 용기를 줬습니다. 이런 합동 작전에 용기를 얻었는지 유치원에 다닌 지 6개월이 지난 9월, 드디어 세하는 유치원에서 오줌을 쌌습니다.

세하가 유치원에서 오줌을 싼 첫날, 유치원 선생님은 기쁨에 유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 드디어 세하가 해냈어요! 칭찬 많이 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세하는 장원급제라도 한 듯 선생님의 축하 카드를 들고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며 “엄마 나 오늘 유치원에서 오줌 쌌다”라며 으쓱합니다. “축하해. 너무 잘했어.” 세하를 번쩍 들어 안아줬습니다.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유하네는 이날 세하를 데리고 커다란 실내 놀이터가 있는 고깃집에도 가고, 커다란 케이크도 사서 축하했습니다. 세하가 스스로 한 걸음 자란 기쁜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시골 작은 학교

세하가 스스로 불안함을 떨치고 유치원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학교가 가지는 힘 때문이었습니다. 10명의 아이와 두 명의 선생님이 함께하는 작은 유치원은 도시의 큰 유치원과는 달리 세밀한 돌봄과 기다림이 가능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 한 반에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도시의 유치원 선생님들에게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골 작은 학교가 가진 최고의 장점입니다.

이런 시골 학교의 장점을 아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시골 학교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유하가 다니는 우리 마을 고산초등학교에는 원주 시내에서 오고자 하는 아이들이 줄을 섭니다. 지역 아동이 부족해 통합지역학교로 운영되는 이곳은 한 학년에 한 반, 딱 10명의 아이만 받습니다. 전교생이 17명까지 줄어 폐교 위기에 빠졌던 학교에 시골 학교의 장점을 살려보겠다는 교장 선생님이 부임하고, 입소문이 나자 아이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 겁니다. 교장 선생님은 낡은 학교 건물을 새로 지어야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고, 결국 예산을 받아 지난해 새 학교 건물을 지었습니다.

코로나19로 도시 학교들이 문을 닫았을 때도 유하네 마을 작은 학교는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한 반에 10명, 절로 거리 두기가 되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잘 살필 수 있었습니다. 도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해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코로나 우울증까지 겪는다는데, 유하네 학교는 더 세밀하게 아이들을 보살피며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예비 1학년 수요조사에서 12명의 아이가 우리 학교로 오겠다며 신청했습니다. 자리가 꽉 차자 지역 아동은 정원이 넘어도 받아준다는 얘기에 우리 동네로 집을 알아보는 부모들까지 생겼습니다. 새 건물에 병설 유치원까지 생겼으니 3월이 되면 3학년 유하와 진짜 여섯 살 세하는 함께 학교에 다닐 예정입니다. 유하 엄마는 원주살이 4년 만에 등하교 운전에서 해방입니다!

학교가 있어야 마을이 있다

마을에 학교가 있다는 것은 마을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지난해 5월 기준, 강원도에서 460개 학교가 사라졌습니다. 경상북도는 729개 학교가 사라졌습니다. 학교가 사라진다는 것은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없으니 작은 마을로 이사를 하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지역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유하네는 작은 학교를 억지로라도 살리고 유지하는 것이 마을을 살리는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 소리가 멈추면 마을도, 나라도 멈추겠죠. 원주 끝자락, 유하네가 사는 작은 마을은 학교와 함께 조금씩 살아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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