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 노동자, 채용·승진 성차별 사건 ‘혐의없음’ 결정에 ‘항고’

검찰 “사업주에 법적 책임 묻기 어려워” 판단에 노조 “차별은 ‘관행’이 했나” 비판

구미 반도체 중견기업인 KEC 소속 노동자들이 성차별 사건에 대해 ‘혐의없음’ 결정을 내린 검찰의 논리가 해괴한 궤변에 불과하다며 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앞서 KEC 노동자들은 회사에 채용과 승진에 성차별이 존재한다며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황창섭 KEC 대표 이사를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공소시효 5년이 지나 공소권이 없고 그 이후 시기부터는 “제도 집행 과정에서 피고소인이 남녀 간 승격 차별에 관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없고, KEC에서의 승격차별은 오랜 기관 ‘관행’으로 형성돼 굳어진 측면이 크다”라며 사업주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지난 1월 28일 밝혔다.


이에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소속 이미옥 외 42인은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에 항고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금속노조는 24일 오전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논리는 해괴한 궤변에 불과”하다며 “20년간 근무한 노동자 중 남성은 모두 S직급이고, 여성은 아무도 S직급으로 승격하지 못한 채 J에 고정된 인사 결정을 사업주가 아니라 ‘관행’이 했다는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KEC는 노동자들의 등급을 6등급(낮은 순부터, J1, J2, J3, S4, S5)로 구분해, 등급별로 다른 임금(호봉) 테이블을 적용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검찰도 KEC 성차별이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시효가 소멸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효는 끝나지 않았다. 2010년 이후 채용된 여성노동자는 현재도 채용 당시 차별이 시정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라고 꼬집었다.

앞서 노조는 회사가 생산직군 노동자 채용에서 여성은 모두 가장 낮은 등급(J1)을 부여한 반면, 남성은 공고졸업생인 경우 이보다 높은 등급(J2)을 부여했고 이는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며 대표이사를 고소했다. 그밖에 2018년 기준 생산직 전체 353명 가운데, 여성 151명은 모두 J등급이지만, 남성은 202명 중 J등급이 20명뿐이고 나머지 182명은 모두 S등급인 점도 지적하고 있다. 가장 낮은 등급(J1)으로 입사한 생산직 중 20년 이상 재직자 108명 중 남성 56명은 모두 S등급으로 승격했지만, 여성 52명은 모두 J등급에 머물러 있다는 내용 등도 있다.

황미진 KEC지회 지회장은 “(회사는) 여성은 S등급이 된 적 없고 그럴 수도 없다며 7~8년 차 남성 노동자들의 승급을 위해 고과를 포기하라고 했다. 여성은 단순 업무만 하므로 승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여성은 생리나 육아로 휴가를 많이 쓴다며 C 고과를 줬다. 승급하려면 인사고과 A를 받아야 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휴가를 요구하면 여성이 ‘(제사를) 갈 필요가 뭐가 있냐’는 성차별 발언도 서슴지 않던 회사”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고소 전까지 ‘관행’으로 여성은 승진할 수 없다고 수없이 말했다. 그 관행으로 여성 노동자는 채용부터 승진까지 남성과 다르다는 말을 검찰이 받아쓰기한 것”이라고 목소리 높여 비판했다.


검찰 불기소 이유 “법리적 큰 문제 있어”

탁선호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검찰의 불기소 이유는 법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녀고용평등법상 공소시효는 5년이 맞지만, 핵심은 “범죄행위가 언제 종료되느냐의 문제”라며 “검찰은 차별행위가 있고 나서 범죄행위가 종료되고 차별의 결과만 지속된다고 했다. 그래서 2014년 이전 차별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공소권이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인식은 차별의 생산 구조와 법 취지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예컨대 “동일한 시기에 입사해 동일한 업무를 하는 여성과 남성이 있다. 여성은 승진이 되지 못해 임금에서도 차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차별은 누적되고 결과가 확대 강화된다”라며 이런 “차별적인 제도와 관행을 해소하지 않은 게 범죄행위이다. 관행을 이어가면서 차별은 더욱 확대 강화하고 있다. 공소시효는 만료되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검찰은 임금 차별에 관련해서는 수사를 진행하지도 않았다. 탁선호 변호사는 “20년 전 입사한 여성은 승진한 남성노동자에 비해 임금 차별을 겪고 있다. 그런 임금 차별은 입사 시 채용에서의 차별, 승진에서의 차별이 누적된 결과다. 남녀고용평등법 8조는 동일노동을 했을 때 동일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공소시효가 5년으로 만료됐다는 검찰의 주장에 따라서도 최근 5년의 임금 차별에 대해서는 공소권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탁선호 변호사는 “형법에서는 ‘차별 의도’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고용노동부는 KEC를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사업장이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관련해 ‘부진사업장’이라고 공표했다. 그리고 2019년 국가인권위는 승진 상 차별에 대해 시정을 권고했다.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사업주가 어떻게 차별 의도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냐. 인사권·경영권을 갖고 명백한 차별을 계속하는 사업장을 봐주겠다는 수사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노동자들을 일할수록 가난하게 만든 KEC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KEC 사례로 사업주에 경종을 울리고 성차별이 또 다른 노동착취 수단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김천지청은 항소심 결과를 제대로 내놔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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